플러스엑스 신명섭 고문
공동 창업자이자 플러스엑스 고문을 맡고 있는 신명섭은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의 교육에 힘쓰며 다시 한번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한다.
오늘날에는 브랜드 관점에서 로고, 웹사이트, 공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상식처럼 통용되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각 분야가 파편화되어 개별적으로 인식되었다. 플러스엑스는 이를 하나의 맥락 아래 통합적으로 이해하며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데 꽤 큰 지분을 갖고 있다. 공동 창업자이자 플러스엑스 고문을 맡고 있는 신명섭은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의 교육에 힘쓰며 다시 한번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한다.
지난해 12월 말에 디자인 교육 플랫폼 ‘플러스엑스 쉐어엑스’를 론칭했다.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그동안 플러스엑스를 운영하면서 국내 디자인 대학 여러 곳에 출강했다. 일회성 강연까지 합하면 국내의 수많은 대학에 가보았다.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디자인 실무 교육에 대한 니즈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학에서 매번 디자인 디렉터를 초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소수의 뛰어난 디자인 디렉터들이 많은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업계를 이끄는 디자인 회사들이 일하는 방식과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 스킬 등을 젊은 디자이너와 학생들이 배울 수 있게 한다면, 그들이 빠르게 성장해 업계 전체가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가 조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가 아닌 패스트캠퍼스를 파트너로 택한 점도 흥미롭다.
성장하고 싶은 의지와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정 학교와 지역에 상관없이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 기업과의 협업이 유리하다. 교육 콘텐츠를 빠르게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춘 기업을 찾는 과정에서 패스트캠퍼스와 협업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수치를 밝힐 수는 없겠지만 수강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일반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첫 강의를 론칭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수강했다. 강의 준비 단계에서 플러스엑스의 콘텐츠가 충분한 수요가 있을지 면밀히 검토했다.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도 했다. 뛰어난 디자이너 개인의 강의를 듣는 것과 디자인 전문 회사의 노하우를 배우는 강의 중 거의 3:7의 비율로 디자인 전문 회사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수강생이 많았다. 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 전문 회사의 강의를 듣고 싶다는 후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운영 중인 UX·UI·BX 디자인과 모션그래픽 강의 외에도 산업·공간·서체·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강의를 올해 4분기에 공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플러스엑스와 뜻을 같이할 디자인 전문 회사들을 한창 만나고 있다.
온라인 교육 외에 오프라인 워크숍도 진행 중이라고.
내가 직접 주관하는 BX 워크숍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역과 학교에 상관없이 BX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배움의 장을 열고 싶었다. 막상 포트폴리오를 받고 면접을 해보니, 디자인을 배웠어도 BX와는 상관없는 전공자이거나 아예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지원한 경우도 꽤 있었다. 배움과 성장을 지향하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플러스엑스 쉐어엑스의 교육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학점을 채우기 위한 수업이 아닌 자신의 진로 설정을 위해 신청해서인지 참여자 모두 집중력도 좋고 과제 퀄리티도 훌륭하다. 이들에게 커리어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다.
실무 교육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그동안의 경험도 작용한 것 같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도출한 인사이트가 있다면?
네이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브랜드 경험 디자인의 개념을 정립하게 되었다. 디자인 외에도 브랜드, 영상, 개발, 인테리어,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과 협업했는데, 이 과정에서 브랜드 경험 디자인은 온·오프라인 매체들을 종합해 사용자의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개념이었지만, 네이버에서 여러 디자인 영역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일을 맡으면서 다른 기업 중에도 이러한 접근 방식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창업에 도전했다. 이후에는 플러스엑스만의 일하는 방식을 많은 기업에 알렸고 역제안도 했다. 가령 패키지 디자인 리뉴얼을 의뢰한 클라이언트에게 앱까지 함께 어우러지도록 제안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브랜드 경험 디자인에서 인쇄물과 공간, 온라인상의 경험 등을 모두 하나의 맥락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플러스엑스를 비롯해 변화의 흐름을 선도하려 했던 디자인 회사들의 목소리가 모였기에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나?
BTS의 BX 디자인 리뉴얼, 중국의 해외 직구 커머스 플랫폼 카오라 BX 디자인 리뉴얼, 캐시노트 BI 리뉴얼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BTS의 BX 디자인 리뉴얼은 플러스엑스를 가장 많이 알린 프로젝트로 디자인계 밖에서도 많이 주목받았다. 영향력 있는 프로젝트를 맡은 덕분에 플러스엑스의 인지도가 한층 높아졌다. 카오라 프로젝트는 언어도 문화도 다른 중국 클라이언트와 협업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잘 설명하고 그들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한다면 해외 프로젝트도 충분히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캐시노트는 사업자들의 경영 관리를 돕는 앱으로, 브랜드 고문으로 참여하면서 리뉴얼의 방향성을 제안하고 컨설팅을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기 컨설팅을 통해 브랜드로서 지속 가능한 구조까지 설계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 사례다.
플러스엑스는 디자인 컨설팅 외에도 다양한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다.
제품, 패션, 화장품, 앱 서비스 등 13년 동안 여러 사업을 시도했다. 현재는 사무용 카드 홀더 브랜드 ‘아이디 프레임’과 화장품 브랜드 ‘디폰데’를 운영 중이다. 클라이언트의 일을 하는 것은 타인의 니즈를 채워주는 것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로서 하고 싶은 대로 일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많은 디자이너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디자인한 제품과 서비스로 자체 수익을 내는 브랜드를 갖는 꿈을 꾼다. 하지만 상당수의 디자이너들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을 맛본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한 경영자의 자질이 디자이너로서의 능력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미성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었지만 판매와 영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여럿 봤다. 플러스엑스도 그런 경험이 많았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내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결국 디자인 관련 비즈니스가 잘 맞는다고 판단해 플러스엑스 쉐어엑스를 론칭하게 되었다.
플러스엑스를 창업한 지 13년이 지났다. 그동안의 시간을 되돌아본다면?
플러스엑스가 업계 정점에 올랐다고 보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13년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우리보다 오래 회사를 운영하는 선배 디자이너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명망이 높았던 디자이너들이 이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지속성만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세월이 지나도 살아남기 위해선 자기다움과 변화에 맞춰 진화해나가는 기민함이 중요하다.
생성형 AI 등 급격한 기술 변화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어떤 소양이 필요할까?
인공지능이 디자인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호기심과 탐구심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어떤 가치를 지향할지 질문하고 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안목까지 갖춘 사람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소양이야말로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