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 한국의 가구〉전
인천공항 박물관 개관 이래 최초의 인천국제공항공사 소장품 기획전이 열렸다.
인천공항 박물관 개관 이래 최초의 인천국제공항공사 소장품 기획전이 열렸다. 박물관 라운지에 한국의 고가구와 한국미가 담긴 현대적 디자인의 가구를 조화롭게 구성했다.
공항은 한 나라의 관문이자 첫인상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기능적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국가의 품격까지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2021년 6월 개관한 인천공항 박물관은 이러한 소명 의식을 가진 공간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국립중앙박물관이 협력해 문을 연 이곳은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탑승동에 위치해 긴 여정을 앞둔 출국자들에게 휴식과 영감을 선사한다. 특수한 박물관의 입지 조건 때문에 콘텐츠를 선별하는 과정 또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곳에서 열린 자체 기획전 〈전이: 한국의 가구〉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번 전시는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의 조화’를 주제로 조선 후기 목가구부터 국내 가구 디자인계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스튜디오 신유의 디자인 가구를 조화롭게 중첩시켰다. 약장, 찬탁, 뒤주 등 인천국제공항공사 소장품 10점과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현대 목가구 12점을 함께 구성한 것인데, 이로써 선조의 우수한 미감을 알리고 그것이 한국형 디자인의 DNA에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조선의 전통 목가구는 소박한 정서와 단정한 미감, 전통 기술, 생활양식이 모두 담긴 한국 문화의 보고다. 나뭇결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살린 재료, 기능에 충실한 간결한 구조, 선과 면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아름다운 비례는 단순하고 절제된 현대의 디자인 미학과도 잘 어우러진다. 하지만 주거 양식의 변화에 따라 전통 목가구의 정갈하고 소담한 멋이 현대와 멀어지며 점차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러한 현실적 간극을 살피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채린 학예사와 스튜디오 신유는 여러 나라 사람이 모이는 공항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고려해 언어의 장벽을 넘어 모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를 구성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디자인이 만국 공통어라는 사실을 이번 전시가 입증해낼 것으로 보인다.
기간 5월 16일∼2024년 3월 29일
장소 인천공항 박물관 전시 라운지 (제1여객터미널 탑승동 3층 122번 게이트)
운영 시간 09:00∼18:00(연중무휴, 여객 수요 등에 따라 탄력적 조정)
기획 김채린
참여 작가 스튜디오 신유
포스터 디자인 윤현학
사진·영상 이의록, 이희인, 홍철기
주최 인천국제공항공사
신용섭, 유승민
스튜디오 신유
“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의 재해석이란 시간성을 내포한 작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 신유의 작품은 공간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전이적 가구’로도 불린다. 이번 전시에서 전통과 현대의 미감을 연결하기 위해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었나?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의 재해석이란 시간성을 내포한 작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드는 가구의 디자인 모티브가 주로 과거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전통 목가구와 함께 연출했을 때 어떤 부분을 계승하고 있는지 관객이 직관적으로 느끼길 바랐다. 검고 투명한 아크릴 사이로 고가구와 스튜디오 신유의 가구가 점진적으로 겹치는 부분이나, 고가구와 스튜디오 신유의 가구가 마치 본래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연출한 공간 디자인에서도 우리가 전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잇고 있는지 보여준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소장품 고가구와 스튜디오 신유의 대표작 ‘린Lin’ 가구 컬렉션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2022년 사치 갤러리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시류Siryu’ 시리즈도 함께 소개했다고.
린과 시류 모두 건축적 요소에서 영향을 받았다. 린이 기둥·보 구조에서 착안한 가구라면, 시류는 벽을 경계로 각기 다른 공간을 연결해주는 문을 형상화한 가구다. 특히 시류는 전통적 미감을 바탕으로 모든 구성품이 조립, 분해되는 형식인 모듈식으로 디자인해 기능성을 더했다. 두 가구 모두 공간과 사용자에게 맞게 수평적, 수직적으로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번 전시 공간 구성과 작품 배치에서 가장 신경 쓴 점은 무엇인가?
최단 시간 내에 출발 지점에서 마지막 지점까지 돌파하는 동선을 지양하는 편이다. 전시 관람이라는 목적에 맞게 바쁜 일상과는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전통 목가구를 단순히 박물관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상상하며 공간을 연출했다. 가구를 배치했을 때 생기는 여백을 통해 우리가 이어가는 전통은 무엇인지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더했으며, 시야각을 확보하기 위해 가구 높낮이를 부분 조정하기도 했다.
‘전이 공간’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존재하는 여백의 공간을 뜻한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탑승동에 위치한 인천공항 박물관 역시 공간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장소라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전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스튜디오 신유의 작품과 공항의 공통점을 가장 잘 짚어낸 단어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번 전시에서 시간적, 역사적 단절과 공간적, 문화적 간극에 집중했다. 고가구와 스튜디오 신유의 작품을 통해 시간적, 역사적 단절 사이에 존재했을 수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인천공항 박물관의 공간적 특수성과 전시 연출을 통해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했다. 지난 5월 전시 개막 이후 약 두 달 동안 전시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전해 들었다. 오로지 이번 전시를 보기 위해 인천공항 탑승동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도 꾸준히 온다고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전시가 스튜디오 신유에 어떤 의미였나?
인천국제공항공사로부터 고가구와 우리 가구를 함께 전시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가슴이 뛰었다. 우리가 작업하는 발상의 근원이 전통에 있기 때문이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소장하고 있는 고가구의 목록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우리가 모티브로 삼았던 요소를 발견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 또 고가구를 직접 봤을 때 생각보다 훨씬 가벼워서 놀라웠다. 스튜디오 신유의 가구는 대체로 묵직한 편인데, 좋은 가구를 만드는 요소로 무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글 김세음 기자 자료 제공 인천공항박물관, 스튜디오 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