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긴 LED 디스플레이 작품?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만난 <제니 홀저: 빛의 선>전시

뉴욕을 대표하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현대 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 건물 1층부터 꼭대기까지 설치한 LED 디스플레이 작업을 소개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LED 디스플레이 작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도시, 미국 뉴욕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드라마가 수도 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문화, 패션의 중심지인 이곳에서 열리는 문화 예술, 디자인 이벤트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 D.C 지만,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따지면 수도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한 힘을 가진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뉴욕에는 언제나 이벤트가 열린다. 매해 진행되는 ‘뉴욕x디자인(NYCxDesign)‘도 그중 하나다. 2011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뉴욕의 디자인 문화를 강력하게 연결하고 증폭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도시 내 산업, 사업체, 주민 및 방문객에게 광범위한 경제적, 교육적,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며 창의적인 환경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뉴욕을 대표하는 행사 중 하나로 매해 화제가 되는 ‘뉴욕x디자인’이 올해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는, 행사 중에 뉴욕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세계에서 가장 긴 LED 디스플레이 작품이 선보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LED 디스플레이 작품

<제니 홀저: 빛의 선(Jenny Holzer: Light Line)>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이 LED 작품은 놀랍게도 35년 전에 이미 공개된 적이 있다. 이를 제작한 이는 뉴욕에서 개념주의 예술가 겸 환경미술가로 활동 중인 ‘제니 홀저(Jenny Holzer)’다. 이번 전시에서는 1989년에 선보였던 작품을 재구성하여 선보이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했던 원형 홀의 6개의 경사로를 따라 빛의 길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건물의 1층부터 꼭대기까지 설치되며 건물 내를 화려하게 빛나게 할 이 작품에서는 ‘경구들(Truisms)’, ‘선동적 에세이(Inflammatory Essays)’와 같이 작가의 상징적인 텍스트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문구들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홀저는 1989년과 현재의 작품을 통해 미술관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닌, 하나의 설치 작품으로 확장시키기에 이르렀다. 방문객들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홀저의 작품을 마주하며, 언젠가 이처럼 우연히 그녀의 작품을 접한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작가와 구겐하임 미술관과의 작업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전시에 앞서 미술관 측은 폴란드의 노벨상 수상자 비스와바 심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의 말을 차용하여 2008년에 제작한 홀저의 작품을 소개하며, 전시의 개막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작품을 4일간 한정적으로 운영한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사회 정의, 여성 인권, 전쟁을 주제로 한 그녀의 메시지는 작가의 작품이 늘 그래왔듯이 LED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포스터, 벤치, 화장실 등 미술관의 다양한 곳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미술관 측은 이외에도 회화, 석재를 활용한 조각 작품, 종이 작품 등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홀저가 다채롭게 펼쳐낸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며 그동안 그녀가 걸어온 예술계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또한 스트리트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홀저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그라피티 아트를 기획하며 작가의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 전시는 ‘뉴욕x디자인 2024’ 행사 기간 중인 5월 17일에 시작되었으며, 올해 9월 29일까지 진행되며 뉴욕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제니 홀저가 언어를 사용한 이유는?

어디서나 볼 수 없는 독보적인 작품을 통해 구겐하임 미술관의 개념을 새롭게 바꿔낸 제니 홀저는 미국 현대 미술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술가이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관을 대표하는 최초의 여성 예술가였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 199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크리스탈상 등 수많은 상을 받으며 예술성을 인정받았으며, 시카고 미술관, 뉴욕 현대 미술관,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등 유명 미술관이 그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950년 미국 오하이오 주 갤리폴리스(Gallipolis)에서 태어난 홀저는 오하이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학교에 있는 동안 그녀가 바랐던 모습은 회화와 판화를 중점적으로 작업하는 추상주의 미술가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처럼 개념주의 예술가가 된 것은 휘트니 미술관의 독립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에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제니 홀저

휘트니 미술관에 있는 동안 작가의 관심은 설치 및 공공 미술로 옮겨갔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명확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바로 ‘언어’였다. 그녀는 언어가 가진 힘에 주목했고, 언어가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자 은폐 및 통제 수단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탐구했다. 이어 ‘공공장소에서 단어와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작가는 뉴욕 거리에 붙여지는 포스터, 티셔츠, LED 디스플레이, 대규모 프로젝션, 광고판 등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1977년 처음 대중에게 선보인 ‘경구들’ 작품은 그녀 자신이 만들어내거나, 또는 다른 이에게 빌려온 짧은 격언 형태의 문구들로 이루어졌다. “과학은 종종 예상보다 더 빨리 발전한다.”, “약간의 지식은 큰 도움이 된다”, “긍정적인 행동은 세계의 모든 변화를 만든다”와 같이 짤막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문구들은 금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사람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지만 누구나 그녀의 작품을 보면 직접적인 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도 작품이 가진 힘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며, 오히려 반대로 그 영향력은 커지는 듯하다. 작품이 공개될 때마다 대중, 평론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집중하게 만드는 홀저의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강력한 힘을 발산하고 있다.

그녀의 또 다른 대표작인 ‘선동적 에세이’는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마오쩌둥과 같은 정치인들에게 영감을 받은 포스터 작품이다. 작가는 정확히 20줄에 100단어로 구성되는 엄격한 형식을 통해 아이디어를 탐구했으며, 이를 뉴욕의 공공 공간에 전시하며 도시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시리즈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작품이 발표된 이래로 몇 번이고 재조명되었으며, 201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팝스타 로드(Lorde)가 이 에세이 중 하나를 발췌하여 제작한 드레스를 입고 나오며 화제를 모았다.

나는 정말로 작가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닙니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 사람인 척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개인적인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쉼터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가 다른 사람을 위한 것, 다른 사람에 관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다른 사람이 되기 바빴기 때문입니다.

제니 홀저

세상 모든 것들에 쓰이는 메시지

1980년대 초반 생존 시리즈(Survival Series)의 일환으로 타임스퀘어에 처음 대형 전자 간판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인 이후 홀저의 작품에는 적극적으로 전자 기기가 활용되었으며, 그와 함께 건물을 덮을 정도의 크기로 확장되며 영향력을 늘려나가고 있다.

건물의 외곽이나 물과 땅의 표면에 대형 텍스트를 투사하는 제논 프로젝션(Xenon Projection),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위한 설치 작품 등, 그녀의 메시지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쓰이고, 역사가 되고 있다.

Protect Protect 2007 Jenny Holzer born 1950 ARTIST ROOMS Acquired jointly with the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through The d’Offay Donation with assistance from the National Heritage Memorial Fund and the Art Fund 2008 http://www.tate.org.uk/art/work/AR00083

작가는 2005년부터 이라크와 중동에 관한 정부 문서에 중점을 두고 작품을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미국 내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총기 사고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는 등 꾸준하고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처음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였던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계속해서 침묵 속에서 생각하고, 숨겨져 있는 것에 대해 조명하며 사람들이 회피하는 폭력, 권력, 전쟁, 죽음, 성욕 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자리를 만든다.

몇 십 년 전부터 선보였던 작품이 현재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적인 이상과 활동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앞으로도 그녀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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