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결과는?

뛰어난 재능과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기준을 세우려는 공예인을 후원하는 로에베 재단

124개 국가의 작가들이 제출한 3,900개 이상의 출품작에서 전문가 패널에 의해 선정된 최종 후보 30인. 그리고 올해의 공예상 주인공.

2024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결과는?

About 로에베 재단 공예상

스페인을 대표하는 명품 패션 하우스 로에베(LOEWE)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의 지휘 아래 2016년부터 매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 (LOEWE Foundation Craft Prize)’을 발표한다. 이를 통해 현대 공예 작가들의 예술성, 그리고 이들의 탁월한 기술력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뛰어난 재능과 비전 및 의지를 가지고 혁신을 지향하며 미래에 새로운 기준을 세우려는 공예인들을 기념하고 후원하고 있다.

셰일라 로에베와 엔리케 로에베 린치 ⓒLOEWE

수상의 주체인 로에베 재단은 로에베를 창립한 가문의 4세대 구성원인 엔리케 로에베 린치(Enrique Loewe Lynch)가 창의성 증진 및 시학, 댄스, 사진, 예술, 공예 분야의 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1988년에 설립했다. 현재는 그의 딸 셰일라 로에베(Sheila Loewe)의 지휘하에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재단은 공예상 외에도 시학을 주제로 한 영예로운 국제상, 세계적인 예술 축제와의 협업, 무용 분야의 후원 등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LOEWE

그 중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브랜드 설립에 기원을 두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1846년, 어느 스페인 장인 공동체가 마드리드 중심부에 있는 번화가인 칼레 로보에 가죽 공방을 오픈했다. 그리고 독일 출신 가죽 장인 엔리케 로에베 로에스베르그(Enrique Loewe Roessberg)가 마드리드에 정착했다. 그는 장인들이 가진 탁월한 품질의 소재에 깊은 영감을 받았고, 1872년 공방에 합류했다.

이후 그는 스페인 장인들에게 기술적인 방법론과 정확성을 전파했고, 여기에 장인들의 독창성과 독보적인 가죽 기술이 더해지면서 로에베가 탄생하게 된다. 가죽 공방으로 시작한 브랜드의 뿌리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현재 시대에서도 공예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브랜드의 중요한 프로젝트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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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시상식에 앞서 30여 명의 최종 후보작을 공개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전 세계 공예 작가가 참가하고 그 중에서 최고의 작품만을 선별해 공개하는 자리인만큼, 선정되는 최종 후보작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기술과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시상식만큼이나 주목받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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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후보작 공개, 시상식에 이어 이 공예상의 꽃은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현재 공예 트렌드를 한 눈에 둘러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201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전시를 시작으로 2018년 영국 런던 디자인 박물관, 2019년 일본 소게츠 재단, 2021년 프랑스 파리 장식 미술관, 2023년 뉴욕 노구치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리며 공예 분야에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에게 이 상이 널리 알려진 때는 2년 전인 2022년이었다.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인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되었으며, 우승자 또한 한국의 정다혜 작가였기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듯하다. 한국이 가진 가장 독창적이며 독자적인 공예로 500년의 역사를 지닌 ‘말총공예’를 활용한 아름답고 섬세한 작품은 누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 최초 세계적인 공예상 수상 소식에, 전시회에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2024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수상자

ⓒLOEWE

올해 또한 공예상의 여정이 진행되었고, 시상식에 앞서 최종 후보 30인이 공개되었다. 124개 국가의 작가들이 제출한 3,900개 이상의 출품작에서 전문가 패널에 의해 선정된 작가들의 작품은 독특한 소재와 더불어 작가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미국, 일본, 대만, 프랑스, 멕시코, 독일, 콩고 등 16개국의 공예 작가들의 작품이 선택된 가운데 한국 작가 또한 5명이 선정되어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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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5월 14일, 최종 우승자가 선정되었다. 우승자는 멕시코 출신의 도예가 ‘안드레스 안자(Andrés Anza)’였다. 멕시코 북동부 도시 몬테레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세라믹 소재의 유연성을 염두에 두고 자연 세계와 마음 속에서 창조하는 현실 사이의 이중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인기있는 도예 작가로서 활발하게 국제적인 전시를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에게 수상의 영광을 선사한 작품, ‘나는 내가 본 것만 안다 I only know what I have seen (2023)’는 거의 사람만 한 크기의 형태가 수천 개의 작은 가시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내화성 점토로 제작된 이 작품은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자체가 비틀리고, 회전하고, 접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역동적으로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작업을 위해 자연스럽게 자연에서 패턴을 찾는다는 작가는 자신이 느낀 자연의 모습을 재해석하고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과정에서 뼈대가 되는 형태의 표면에 뾰족한 형태의 점토를 이어 붙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후 작가는 이를 가마에서 구운 후 아크릴 물감을 칠해 표면을 균일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더욱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점토와 작가의 내면 영역 사이의 교감 과정을 묘사하며, 식물과 동물 형태 모두를 연상하게 하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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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작 외에도 특별상 Special Mentions 부문에서 세 명의 작가가 선정되었다. 일본 작가 미키 아사이, 프랑스 작가 엠마누엘 부스 (Emmanuel Boos), 그리고 한국 작가 김희찬이 그 주인공이다.

도쿄의 무사시노 미술 대학에서 금속 공예를, 글래스고 예술 학교에서는 은세공 및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한 미키 아사이는 일상 생활 및 정물화에 영감을 받아 독특한 주얼리 컬렉션을 제작했다. 속이 빈 종이를 기반으로 나무를 덧댄 후 표면에 달걀 껍질, 조개 껍데기 등으로 독특한 질감을 표현한 ‘스틸 라이프 Still Life'(2023)’는 누구나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매력이 특징이다.

‘레고처럼 Comme un Lego(2023)’을 선보인 엠마누엘 부스는 런던 왕립예술대학에서 유약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독일에서 맞춤형 세라믹 오브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속이 빈 도자기 벽돌 98개로 커피 테이블을 제작하며 물리적인 한계에 도전했다. 접착제 없이 테이블에 고정된 각 벽돌은 개별적으로 들어올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안전한 형태에 상호작용성과 불안정성을 더하는 시도를 도입했다.

한국 작가 김희찬은 전통적인 배 제작에 사용되는 나무 굽힘 기술과 가죽 및 바구니 세공 기술을 활용하여 유기적인 구조물을 탄생시켰다. 그가 이런 복잡한 기술을 이용하고 조합할 수 있었던 것은 금속 예술과 주얼리, 목공 및 가구 디자인 분야를 두루 공부한 덕분이다.

작가의 목표는 전통적인 기법을 새로운 맥락에 적용하여 공예의 시각적인 잠재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기반으로 제작된 ‘#16’은 얇고 평평하게 만든 나무 조각들을 물에 담근 후 다리미를 사용하여 구부리고, 얇은 구리 선으로 꿰매어 완성된 작품이다. 겉은 풍선을 부풀린 모습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촘촘하게 엮인 구리 선들과 나뭇조각이 엮어있는 모습으로 마치 생명체의 내부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LOEWE

올해의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최종 후보 및 수상작을 보면 심사위원들이 기존의 재료에서 새로움을 찾아냈거나, 재활용하여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는 등의 ‘발견’을 이룬 작품들에 주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래를 대비하여 새로운 기준을 세우려는 이들을 후원하는 자리인 만큼, 재료의 물리적인 한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놀라움을 선사하는 작품들이 선정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처럼 공예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만나볼 수 있는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해가 지날 수록 세계적인 공예 작가들의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 최종 후보 작품들은 5월 15일부터 6월 9일까지 파리의 팔레 드 도쿄 Palais de Tokyo에서 진행된 전시에서 선보였다. 그와 더불어 로에베 재단 공예상 홈페이지 내에서 진행되는 디지털 전시회에서는 최종 후보작과 작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 등에 대한 정보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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