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영화를 만드는 영화 광고 비주얼 전문가 김혜진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도둑들>의 광고 비주얼 역시 그의 작품. 한국 영화 220여 편의 포스터를 디렉팅한 그는 지금도 종횡무진 현장을 누비는 실무형 디자이너다

흥행 영화를 만드는 영화 광고 비주얼 전문가 김혜진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영화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본격적인 영화 마케팅 시대와 더불어 영화 포스터의 부흥기도 찾아왔다. 2시간 남짓한 영화를 한 장의 이미지로 압축해내는 영화 포스터는 단순한 홍보물을 넘어 독자적인 그래픽 디자인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20여 년간 한국 영화 광고 비주얼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온 김혜진 꽃피는 봄이 오면 대표는 영화판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 할 만큼 유명하다. 특히 2000년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포스터는 캘리그래피 열풍을 선도한 디자인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도둑들>의 광고 비주얼 역시 그의 작품. 한국 영화 220여 편의 포스터를 디렉팅한 그는 지금도 종횡무진 현장을 누비는 실무형 디자이너다. 인터뷰: 전은경 편집장, 정리: 박은영 기자, 인물 사진: 한도희(스튜디오 얼리 스프링), 장소 협찬: 한국영상자료원

1995년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이름으로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했습니다.

1995년 2월 말에 졸업하자마자 선배들과 함께 다섯 명이 모여 스튜디오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창립 멤버가 이형곤 영화감독, 김현석 홍익대학교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교수 등이었어요. 당시 대부분의 유명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편집 디자인에 관련된 일을 주로 했어요. 그런데 저희는 책, 영화 포스터, 광고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섯 명이 모여 한 달 동안 이름 때문에 고민했는데 뭔가 하나의 의미로 단정 짓는 명사는 피하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우리랑 같은 이름이 없으면 좋겠고 누구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길 원했죠. 대부분의 회사가 이름을 통해 회사 이미지를명확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데 반해 저희는 오히려 ‘이 이름 뭐지?’라며 질문을 던지거나 궁금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지은 이름이 ‘꽃피는 봄이 오면(이하 꽃봄)’이라는 문구인데, 왠지 희망적으로 들리지 않나요? 창립 멤버들은 1년 정도 동업하다 각자 자신이 더 하고 싶은 공부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고 제가 꽃봄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운영하고 있습니다.

꽃봄은 영화 광고 비주얼 분야에서 몇 가지 새로운 길을 개척한 공이 큽니다.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포스터로 캘리그래피 열풍을 선도했고, <나쁜 남자>에서는 영화 포스터 제작을 위해 별도의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죠. 영화계에 발을 디디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보다 영화 <접속>의 영화 포스터를 디자인한 김상만 감독이 먼저 새로운 방식의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선보였어요. 저는 낙하산으로 영화계에 들어왔습니다(웃음). 1999년 초 이현승 영화감독이 명계남 이스트필름 대표님에게 저를 추천했어요. 명계남 대표님이 영화 <박하사탕>을 제작하고 있을 때였는데 제가 그 영화 포스터를 디자인하며 영화 광고 비주얼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영화 광고 비주얼 분야는 특히 마케터와의 기싸움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영화 쪽 일은 정말 미치도록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분야예요. 88만 원 세대가 바로 이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은 연봉을 받고 일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1~2년간 아예 돈을 못 받은 수도 있는 게 영화판이에요. 그럼에도 이 일을 고집하며 계속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남는 건 자존심밖에 없게 되죠. 저희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탄소 같은 여자’들이라고 불러요. 꽃봄은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마케터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어요. 마케터와 일하는 과정에서 큰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아무리 크게 싸워도 영화가 잘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또 같이 일해요(웃음).

영화 광고 비주얼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손에 꼽힐 정도로 몇 안 됩니다.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는 의미인가요?

진입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디자이너의 노동력에 비해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니 버티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리고 두세 편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겪어보지 않고서는 프로세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어요. 누군가 친절히 설명해주지도 않아요. 부딪히고 깨져봐야만 알죠. 업계에서만 통하는 용어도 많아 회의할 때 못 알아들을 수도 있고요. 영화 개봉 전 한 달부터는 밤을 쭉쭉 새죠. 피드백도 굉장히 빨라야 해요. 영화 흥행의 여부를 점치기 어려우니 메이저 투자 배급사와 일하더라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영화 <후궁> 포스터, 2012
클라이언트 황기성필름, 롯데엔터테인먼트
디자인 김혜진, 임희영
사진 조선희
왕의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욕망 사이에서 비극적 운명으로 얽힌 세 남녀의 정사를 다룬 영화다. 절정의 순간을 배우의 표정만으로 담아냈다. 블랙과 골드를 메인 컬러로 사용해 파격적이고 관능적인 분위기로 디자인했다.
포토그래퍼나 마케팅 담당자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인쇄비를 물겠다며 내기를 한 적도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웃음).

2002년 영화 <해적, 디스코 왕 되다>의 광고 비주얼을 진행했을 때인데, 티저 포스터를 만들기보다 배우들의 캐릭터 포스터를 만들어 배너 5~6개 정도를 붙여서 영화관에 세우면 눈에 띄어 광고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어요. 그리고 복고풍의 촌스러운 영화니까 메인 컬러는 노란색으로 하자고 했죠. 당시 영화 포스터에 노란색을 쓰면 영화가 황된다(망한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마케터가 무조건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도 영화계에선 노란색을 그리 선호하지 않아요. 그리고 너무 촌스러워서 안 된다는 거예요. 영화 내용이 복고인데 세련된 이미지로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저는 확신하는데 마케터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아 그럼 영화가 망하면 제가 인쇄비를 물겠다고 한 거예요. <해적, 디스코 왕 되다>는 포스터 반응은 좋았지만 2002년 월드컵 때 상영돼 손익분기점만 맞춘, 흥행에는 아쉬운 작품입니다.

꽃봄은 주어진 소스를 이용해 디자인하기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제시한 시안 중 채택되지 못해 아쉬운 것은 어떤 작품인가요?

저희 회사가 제시한 시안 중 98%가 채택되어 영화 광고 비주얼로 진행됐어요. 작업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시안이에요. 저희가 미는 A 시안이 있지만 대개 B와 C 시안도 준비하잖아요. 그런데 만약 클라이언트가 B나 C를 선택하면 빼도 박도 못하게 되는 거죠. 결과물이 곧 저희 실력이고 영업부장 역할을 해주는 것이니 첫 단추부터 잘 꿰려면 원하는 시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못 팔린 시안은 그저 B컷이라고 생각해요. 아쉬워하면 안 돼요. 만약 심의에 걸려서 못 나간 것이라면 그것 또한 실력이라고 봐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 포스터가 한국에서는 심의에 걸려 조금 수정됐지만 해외용 포스터는 원안으로 제작할 수 있어 다행인 작품입니다. 안 그랬다면 굉장히 안타까웠을 거예요. 배우 김옥빈이 거꾸로 매달려 송강호의 목을 조르고 있는 포즈인데 이 모습은 박쥐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성교하는 장면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해외용 포스터를 보면 김옥빈의 다리까지나와 있는데 실제 이런 각도와 포즈가 나오기는 어렵고요, 모든 부위를 제각각 따다 붙여 리터칭한 거예요.

영화 포스터는 영화의 매력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매체입니다. 포스터가 영화의 흥행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적은 없나요?

영화 <박쥐> 포스터가 인기였던 이유는 디자인을 잘한 것도 있지만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거예요. 영화 <후궁>은 시안 작업부터 순조롭게 진행됐어요. 오르가슴을 느끼고 있는 후궁의 복잡하고 처연한 표정을 티저 포스터의 메인 사진으로 사용했는데, 심의를 피해 갈 수 있게 계획을 잘 짰죠. 무거운 가채 때문에 배우가 힘들었겠지만 목이 이렇게까지 뒤로 꺾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최대한 꺾게 한 다음 입을 살짝 벌리라고 했어요. 작은 디테일이 더해져 매력 있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어요. 어떤 감독이 만들었고 어떤 배우가 나오며 어떤 장르냐에 따라 포스터의 역할이 달라져요. 예를 들어 2002년 영화 <몽정기>가 나왔을 때 충무로에서는 싸구려 영화라고 무시했어요. 하지만 내용이 재밌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일러스트레이션을 활용해 경쾌한 이미지의 포스터를 만들어 매력 있는 영화라는 걸 어필했죠. 당시 300만 관객을 돌파했으니 흥행에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포스터가 흥행에 결정적인 기여까진 아니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영화를 미리 보고 포스터를 디자인하나요?

여건이 된다면 미리 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나리오를 읽어요. 저희가 포스터 디자인을 할 때쯤에는 영화가 촬영 중입니다. 시나리오를 보면 그 안에 답이 다 있어요. 제 방식이 습관일 수도 있는데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전체적인 콘셉트나 메인 컬러가 잡혀요. 그다음 시나리오를 읽으며 제가 상상한 게 맞나 확인하죠. 영화의 클라이맥스 한 컷을 포스터에 담았다고 그 영화를 대변해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시간도 담아야 하고 메시지도 담아야 하죠. 영화 <가발>은 시나리오를 읽다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욕실 장면을 읽을 때 매우 섬뜩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욕실을 배경으로 한 세트를 제작해 촬영했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머리카락을 더욱 오싹하게 표현해 공포 영화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캘리그래피 열풍의 진원으로 항상 언급되는 영화 포스터인데, 당시 얘기 좀 들려주세요.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포스터 콘셉트는 춤을 추는 듯한 액션이에요. 강영호 사진가가 촬영했는데 주인공 세 명이 모두 나온 사진이 딱 한 장밖에 없었어요. 액션 영화인 만큼 딱딱하고 센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나무젓가락을 깎아 영화 제목을 휘갈겨 썼죠. 그리고 피를 토해내는 듯 잉크를 뿌렸어요. 그런데 하마터면 이 포스터 못 나올 뻔했어요. 반응들이 모두 시큰둥한 거예요.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제가 순발력 있게 “바로 그거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주목받기 힘들다. 제목을 읽을 수 없으면 사람들이 궁금해서 다시 한 번 포스터를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다”라고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래요(웃음). 이 영화는 스태프부터 배우 모두 돈을 받지 않고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잖아요. 저 역시 노 개런티였는데, 대신 제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 때문에 참여한 거였어요. 그래서 나중엔 노 개런티 조건을 운운하며 이 디자인이어야 한다고 우겼죠. 이진숙 제작사 PD님이 며칠 시간을 두고 자꾸 보니 괜찮은 것 같다며 동의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어요. 이후 영화가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받으며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포스터도 덩달아 주목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포스터란 존재 자체가 영화를 알리기 위해 있는 것이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1995년 꽃봄이 문을 열 당시 영화가 주요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하며 영화 관련 비주얼에 대한 역할도 중요해지는 시기였습니다. 당시 흐름이 꽃봄이 성장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텐데요.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 제작이 많아졌을뿐더러 <러브레터> 같은 일본 영화 수입이 증가하기 시작했어요. 2003년 영화 <실미도>가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부터 영화계가 점점 상업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 시장이 무조건 좋아진 건 아니었어요. 일 년에 10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야말로 아무거나 다 제작하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영화 100편 중 10편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수익률이 10%가 채 안 돼 충무로 시장이 긴축되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못 만든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검증된 시나리오만 제작해요. 관객들의 눈도 많이 높아졌고요. 할리우드에서도 한국 영화를 모르면 회의가 안 될 정도라고 하니 국내 영화 시장이 많이 성장했죠. 더불어 영화 광고 비주얼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졌고요.

꽃봄의 대표 아이덴티티 작업과 매거진<제트진Z_ZIN>에 대한 소개 좀 해주세요.

최근 빈폴 아웃도어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했습니다. 국내 패션 브랜드 빈폴은 신사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심벌 자체의 인지도가 워낙 높더라고요. 하지만 그것을 아웃도어 브랜드의 심벌로 사용하기엔 어울리지 않아 새로운 게 필요했어요. 그래서 빈폴의 기존 심벌 중 자전거 휠 모양과 여행자에게 필요한 나침반을접목시켜 새로운 심벌을 디자인했습니다. 빈폴의 전통을 계승하되 아웃도어의 방향성을 제시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거예요. 2000년에 작업한 굿모닝증권의 아이덴티티도 기억에 남네요. 박명천 CF 감독이 굿모닝증권의 CF를 맡았을 때인데 화면에 해가 뜨는 이모티콘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처음엔 CF에 필요한 그림을 그린 거였는데 그 이모티콘의 인기가 워낙 좋아 아이덴티티가 돼버렸죠. 2011년에 창간한 타블로이드 형식의 패션 매거진 <제트진>은 사진가 조선희 씨가 기획해 만든 거예요. 신인 포토그래퍼도 발굴하고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마음껏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죠. 메인 콘셉트를 정하고 그 콘셉트에 맞는 화보와 배우의 인터뷰 등을 소개하는 잡지인데, 저희는 그 주제에 맞게 새로운 레이아웃과 폰트 등을 사용해 다양한 편집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할 때와 아이덴티티 작업을 할 때의 접근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관객이나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여 구매를 유도해야 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는 같아요. 하지만 접근 방식은 조금 달라요. 보통 영화 포스터 디자인이 감정에 호소한다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구체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해요. 물론 감성적으로 어필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프로세스 자체는 매우 이성적입니다. 아이덴티티 작업을 예로 들면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는 물론 경쟁 브랜드까지 시장 조사를 합니다. 그리고 실무 디자이너, 행정 팀 등 브랜드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영화는 시나리오를 보면 알지만 브랜드는 그 주인이 가지고 있는 방향성이 모두 제각각이잖아요. 와인 가게나 꽃집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는 같지만 주인이 생각하는 이미지는 모두 다르듯이 주인의 취향을 파악하려면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죠.

꽃봄에서 만든 문구 브랜드 케이 페이퍼(K-paper)에 대해소개해주세요.

케이 페이퍼는 10년 전에 론칭한 문구 브랜드예요. 어떤 분이 카드 디자인 사업을 하면 1년도 안 되어 망할 것이라고 했어요. 당시 4개들이 한 세트가 800원 정도 했는데 저희는 하나에 3500~4000원 정도예요. 질 좋은 종이를 사용하고 인쇄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다 보니 다소 높은 가격으로 책정할 수밖에 없죠. 저희 회사 관리부에서 3년 안에 흑자를 못 내면 브랜드를 접어야 한다고 했는데, 딱 3년 되던 해에 이익이 조금 났어요. 이후 지금껏 이어오고 있는 거예요. 현재 현대백화점과 핫트랙스,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케이 페이퍼 온라인 등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꽃봄을 설립한 지 올해로 19년째지요. 설립 이후 특별한 어려움 없이 고공해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번듯한 건물 안에 사무실이 있으니까 처음 오신 분들은 제가 고생 한 번 안 했을 거라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나고 생각해보니 안 어려웠던 게 아니라 제가 굉장히 무식해서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꽃봄의 첫 사무실은 홍대에 있는 반지하 공간이었어요. 다섯 명이 각자 집에 있는 컴퓨터를 들고 와 일을 시작했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4만 5000원짜리 책상 다섯 개와 7만 5000원짜리 책장 다섯 개를 구입하고 냉장고는 지인에게 사무실 오픈 기념으로 받고, 중고 복사기 하나 사서 일을 시작했어요. 장마철이었을 거예요. 사무실 문을 여는데 바닥에 물이 찰랑찰랑하게 차 있더라고요. 그때 저희가 하드디스크를 바닥에 놓고 사용했는데 말이죠. 지금 사무실로 옮긴 지 올해로 9년 됐는데 지난 10년 동안 이사를 아홉 번 했어요. 보증금 500만 원이 없어 일 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죠. 처음엔 일이 없어 매일 영화 보며 놀았어요. 주변 선배들이 현장에서 그렇게 많이 활동하는데 일 좀 달라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럼 꽃봄은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한 번도 영업을 해본 적이 없나요?

한 번도 없어요. 누가 포트폴리오를 보여달라고 하면 들고 나가지만 영업을 하기 위해 먼저 들고 나간 적은 없어요. 그게 멋있어 보이죠? 돈 없으면 정말 힘들어요. 이러니 저 스스로를 무식하다고 말하는 거예요(웃음). 그냥 버틴 거예요. 제가 직원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너희가 일을 잘해야 한다. 난 어디 가서 일 달라는 말 못 한다. 너희가 잘해야 그 결과물을 보고 다음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 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스튜디오의 모습이기도 해요. 디자이너가 영업을 하지 않아도 결과물로 인정받고 다음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것. 앞으로 일이 점점 줄어들지라도 이 규칙은 바꾸고 싶지 않아요. 저희를 찾아오는 클라이언트에게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물으면 지인 소개나 명함을 보고, 또는 저희 작업을 보고 왔다고 해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 현재 17명의 직원을 둔 꽃봄이 된 거예요.

대표님은 워커홀릭으로 소문났는데요, 초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로서 힘든 점도 많을 것 같은데 일과 가정에서 어떻게 균형감을 유지하나요?

저는 집안일도 잘하고 바깥 일도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봐요. 솔직히 두 가지 일을 어떻게 다 잘하나요? 둘 다 잘한다고 하는 사람은 일을 덜 하거나 집안일 역시 덜 하거나지 둘 다 잘할 수는 없어요. 저는 출산한 이후부터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세요. 솔직히 결혼하고도 주말에 일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전화 오는 곳도 없고, 조용하게 집중하며 일하기 얼마나 좋은 시간이에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일밖에 모르는 엄마를 둔 저희 아이가 측은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일하는 게 제일 행복했으니 일이 기준이었는데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이제 알아요. 그래서 주말 출근을 없앴어요. 결혼이나 임신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여직원도 이해하게 되었죠.

여성 디자이너의 가장 큰 경력 단절의 요인 중 하나가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 디자이너가 현장에서 오래 살아 남기 위해선 일과 가정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루어나가는지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예요.

저 역시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진 않아요. 아이에게 잔인한 엄마죠. 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대답일 수도 있는데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제 개인의 인생도 있는 거잖아요. 주중에는 일하지만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박명천 CF 감독과 함께 부부 크리에이터로서 서로 주고받는 영향이 클 것 같습니다.

서로의 일을 아주 조금만 간섭해요. 예를 들어 어떤 타이포그래피가 더 좋은지 헷갈릴 때면 남편에게 의견을 묻기도 하죠. 책에 관해선 서로 피 튀기는 사이예요. 저희는 책에 욕심이 많아서 서로 안 빌려 줄 때도 있어요. 그래서 똑같은 책을 여러 권 갖고 있기도 해요(웃음). 박명천 감독이 수집가이다 보니 자료 찾을 때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꽃봄 웹사이트를 보면 아카이브 관리가 참 잘되어 있던데요. 대표님의 공간을 보니 정리벽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물류 창고가 따로 있어요. 포스터는 10장씩, 패키지 샘플은 3개씩 따로 보관합니다. 작품마다 포스터 지함이 따로 있고요, 포스터 크기에 맞춰 비닐을 따로 제작합니다. 1년 동안 진행한 아이덴티티 작업은 연도별로 박스에 넣어 잠궈놔요. 데이터는 CD를 굽다 보니 몇 천 장이 되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외장하드 2개에 똑같이 저장해 하나는 영구 보관용으로 관리하고 있어요. 책도 관리부에서 분야별로 정리해 필요한 책이 있으면 바로 찾아볼 수 있게 했어요. 만약 찾는 자료가 없어졌다고 하면 정말 불같이 화를 내고 어떻게든 다시 구합니다.

대표님처럼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근육을 어떻게 단련시켜야 하는지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겸손한 척하는 말이 아니고요, 저는 정말 많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제가 자존심이 센데 그 자존심을 지키려면 일을 잘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일을 잘하는 것은 정말 어려워요. 매번 다 잘할 수도 없고 어쩌다 잘하는 것도 어렵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저는 매번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진짜 자존심이 센 사람은 자기가 무시당했을 때 자존심을 세우며 우기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에 더 좋은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에요. 어느 날 김규환 CF 감독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광고주가 100을 해달라고 할 때 100을 해주는 게 프로인 것 같니? 200을 해주는 게 진짜 프로야.” 이 말에 굉장히 공감해요.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할 때도 저희가 우선 만족해야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더 좋아해주고 관객에게 통하는 디자인이 진짜 잘 만든 포스터예요. 분명 꽃봄을 알리게 한 고마운 작품이 있긴 하지만 저희에게는 앞으로 맡을 영화가 더 중요합니다.

내년이 20주년이에요. 앞으로 꽃봄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내년에 사진가 조선희 씨를 비롯해 회사 네 곳이 모여 사옥을 지을 거예요. 그 건물에서 20주년 기념 전시회를 열 계획도 하고 있어요. 이후 책 한 권을 출간할 생각이에요. 디자이너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직원들과 함께 좋은 곳으로 여행도 갈 거예요. 외국 광고 일에도 욕심이 있어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원래 진실은 단순하잖아요. 그저 좋으니까 계속 꿈을 꾸고 계획하며 꾸준히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21호(2013.07)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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