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마지막 모더니스트, 마시모 비넬리 별세
지난 5월 27일 마시모 비넬리(Massimo Vignelli, 1931~2014)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5월 27일 마시모 비넬리(Massimo Vignelli, 1931~2014)가 세상을 떠났다. 이미 오래전에 작 고한 찰스 & 레이 임스(Charles and Ray Eames) 부부, 허브 루발린(Herb Lubalin), 브래드버리 톰슨(Bradbury Thomson), 폴 랜드(Paul Rand), 솔 배스(Saul Bass) 같은 디자이너들이 미국 디자인계 1세대였다면 그들보다 10년 이상 젊었던 비넬리는 1.5세대쯤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비넬리와 두 번 만났다. 첫 번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타이포그래피 세미나장에서였고, 두 번째는 그의 맨해튼 사무실에서였다.
뉴욕 맨해튼 35번가에 있던 비넬리 오피스는 한 쪽으로는 허드슨 강이 보이고 다른 쪽으로는 맨 해튼 미드타운의 마천루가 보이는, 다소 오래됐지만 운치 있는 건물이었다. 비넬리 오피스는 그 건물 꼭대기의 펜트하우스를 비넬리 스타일로 디자인한 사무실이었는데 세계적 건축가인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사무실이 같은 건물 6층에 있었다. 2000년 뉴욕에 인터넷 회사가 범람하고 맨해튼 빌딩 임대료가 치솟아 사무실을 자택으로 옮기기 전까지 15년간 비넬리 오피스는 세계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다녀간 뉴욕의 디자인 명소이기도 했다. 그의 맨해튼 오피스는 단지 비넬리 디자인 회사(Vignelli Associates)만을 위한 작업실이 아니라 그와 그 부인 렐라(Lella)의 다방면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볼 수 있는 전시장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다소 생소했던 MDF 재질로 만든 모듈화된 책장과 작업대 디자인은 다른 디자인 회사의 인테리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비넬리는 밀라노에서 태어나 밀라노와 빈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건축 학교에서 만난 렐라와 부부, 그리고 동업자로 평생을 함께했다. 그가 직업의 멘토로 생각하고 존경했던 찰스 & 레이 임스 (Carles and Ray Eames) 부부처럼 비넬리와 부인 렐라도 해박한 문화적 지식과 경험으로 여러 디자인 분야를 섭렵한 르네상스형 디자이너 부부였다. 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밀라노는 유럽의 전통과 현대 건축의 조화를 연구하고 재건축 할 수 있는 현대 유럽 건축의 실험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밀라노는 건축의 부흥과 함께 유럽의 인테리어와 가구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러한 밀라노가 비넬리에게는 더없이 좋은 배움의 장소였다. 1957년부터 미국을 오가면서 경험을 넓힌 비넬리는 미국 시카고에서 1964년 CI/BI 디자이너로 유명했던 랄프 에커스트롬 (Ralph Eckerstrom)이 만든 다국적 기업 유니마크(Unimark International)에 합류하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게 되었다. 얼마 안 있어 유니마크는 세계 11개 도시에 자회사를 둔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디자인 그룹이 되었다. 1970년 3개의 철도 회사가 합쳐지며 탄생한 ‘뉴욕 지하철 회사’를 위해 비넬리가 디렉팅하고 디자인한 ‘뉴욕 지하철을 위한 지도와 사인 시스템’은 1931년 디자인한 런던 지하철의 새로운 해석이자 제안 이었다. 그의 ‘뉴욕 지하철을 위한 지도와 사인 시스템’은 몇 번의 사소한 보강 작업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긴 생명의 디자인’을 보여주는 전형이기도 하다.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스타일을 분명히 하고 싶었던 비넬리는 1971년 독립하여 비넬리 디자인 회사(Vinelli Associates)를 설립하고 놀(Knoll) 가구 회사의 전시 디자인과 뉴욕 블루밍데일 백화점(Bloomingdale)을 위한 패키지 프로젝트를 맡아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그의 많은 작품 중 그래픽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것 중 하나는 ‘미국국립공원관리공단’을 위해 만든 ‘유니그리드 시스템(Unigrid System)’으로 이것은 10종류가 넘는 프린트물을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범적 디자인 사례이기도 했다. 그는 늘 디자이너들에게 세가지 책임을 강조했는데, 첫째, 디자이너 자신을 위한 책임, 즉 진실성, 둘째, 클라이언트에 대한 책임, 즉 과제의 효율성에 대한 책임, 그리고 공공에 대한 책임, 즉 디자인의 최종 사용자인 소비자에 대한 책임이었다. 잘 알려진 그의 디자인 명언은 “디자인은 모두 같다(Design is one)”이다. 이것은 디자인의 원칙은 어떤 디자인 에서도 똑같이 적용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는 디자인은 스타일이기 이전에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존경한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는 “건축가는 스푼에서 도시까지 모든 디자인을 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비넬리의 직업적 슬로건이 되었다. 그는 건축을 공부하면서 건축이 지닌 종합성과 규모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었지만 다양하고 다변적인 공헌을 원 했다. 이것이 그가 건축 설계에서 벗어나 인테리어, 제품, 공예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과 패션 디자인으로 관심을 넓히게 된 이유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그의 디자인 원칙과 철학은 명확하고 똑같았다. 그것은 디자인에는 항상 의미와 가치가 담겨 있어야 하고, 전체와 부분 간에 일관된 시각적 문법이 존재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사용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시각적으로 강력하고, 지적으로 고상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을 추구했다. 그의 고향이자 그가 건축과 디자인을 배우며 성장한 밀라노는 스위스와 근접해 있는 도시로 헬베티카 (Helvetica)의 기능적이고 차가운 냉철함을 배울 수 있는 곳인 동시에 패션의 본고장으로 수려하고 온화한 보도니(Bodoni)의 감각을 익힐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마시모 비넬리가 우리에게 보여준 디자인 정신은 ‘헬베도니(Helvedoni)’ 로 원칙과 감각의 탁월한 조화라고 생각한다. 헬베도니의 디자인은 형식과 원칙이 태생적으로 지닌 건조함과 무명성이 잘 조직화된 개성으로 남는다. 2008년 비넬리와 부인 렐라는 그들의 모든 작품을 로체스터 공과대학교(RIT, 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에 기증했고 RIT는 교내에 비넬리 디자인 스터디 센터(Vignelli Center for Design Studies)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의 영면 속 지복을 빈다. 글: 박효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 자료 제공: 비넬리 디자인 스터디 센터, vignellicenter.rit.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