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 디자인의 아이콘 마시모 모로치 타계

도무스 아카데미 석사 과정 중에 처음 만난 마시모 모로치(Massimo Morozzi) 선생님은 무서운 분이었다. 디자인계의 전설인 그를 흠모하며 많은 학생이 경쟁적으로 수업에 몰려들었지만, 막상 논문 미팅을 마친 학생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풀이 죽거나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아이콘 마시모 모로치 타계
마시모 모로치(1941~2014)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건축가로 1966년 아방가르드 디자인 그룹 아키줌(Archizoom)을 설립해 1972년까지 활동했다. 밀라노로 거주지를 옮긴 뒤 알레시, 드리아드, 다네제, 카시나, 피암, 이디얼 스탠다드, 신테지, 루이비통, 니산 등 다양한 디자인 브랜드의 컨설팅과 디자인을 진행했으며, 아트 퍼니처 브랜드 에드라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성공으로 이끈 훌륭한 아트 디렉터이기도 하다. 유럽은 물론 미국, 브라질, 일본, 한국, 미국 등에서 활약하며 강연과 세미나를 펼쳤고 그의 작품은 MoMA, 퐁피두 센터, 카셀 도쿠멘타, 파리 장식미술박물관 등에 소장 및 전시되었다.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모로치는 세계적인 디자인 평론가다.

도무스 아카데미 석사 과정 중에 처음 만난 마시모 모로치(Massimo Morozzi) 선생님은 무서운 분이었다. 디자인계의 전설인 그를 흠모하며 많은 학생이 경쟁적으로 수업에 몰려들었지만, 막상 논문 미팅을 마친 학생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풀이 죽거나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선생님은 단호했고 부족하다고 생각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No!’라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어느 날 건축가 출신의 한 일본 학생이 ‘공(空) 사상’을 들며 자신을 변호하자 선생님은 그를 능가하는 동양 철학에 대한 지식으로 압도했다. 학생은 이내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너의 국적을 내세워 적당히 그 문화로 프로젝트를 포장하지 마.

디자인은 그 자체로 말해야 돼. 디자인은 강한 콘셉트이자 아이콘이야.” 대학 시절의 그는 가르침 그대로였다. 르네상스의 본고장 피렌체 출신으로 폴리테크니코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며 안드레아 브란치(Andrea Branzi), 파올로 데가넬로(Paolo Deganello) 등과 함께 1960년대에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 디자인 운동의 선구자 아키줌(Archizoom)을 창립해 디자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문화에 휴머니즘을 반영한 르네상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디자인계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의 기계미학적 모더니즘에 반기를 들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반영했다. 정신을 대변하는 아이콘적 디자인 추구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디자인에 임하는 진지한 태도가 엄격한 성품을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그 각별한 사랑 때문에 그는 더 관대하고 따뜻한 사람이기도 했다. 탁월한 안목으로 무명의 디자이너를 발굴해 멘토로서 커리어를 열어준 일화는 유명한 미담이다. 다네제(Danese)의 컨설팅을 맡던 시절 프랑스 잡지 한 귀퉁이에서 조그만 의자 사진을 보고 기자에게 연락해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을 발굴해낸 이도, 에드라(Edra)의 아트 디렉터로 활약하며 스튜디오 폐쇄 위기에 있던 브라질 캄파나 (Campana) 형제를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만들어준 이도 바로 그였다. 1997년 처음 상파울루로 전화했을 때 ‘거짓말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어버린 이 형제의 일화는 그가 좋아하는 에피소드다.

에드라의 제품 중 프란체스코 빈파레 (Francesco Binfare)가 디자인한 소파 ‘브렌노(Brenno)’.

캄파나 형제 역시 ‘모로치 없이 자신들도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 주변에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던 난해한 작품 ‘베르멜랴(Vermelha)’를 만들 수 있도록 도면화하고, 세계 최고의 이탈리아 장인기술과 신소재를 결합시켜 출시한 이 의자는 곧 MoMA와 퐁피두 센터에 영구 소장되며 디자인 아이콘이 되었고 이 형제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한편 가까운 곳에서도 디자인 멘토로서 그의 헌신은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졸업 후 그의 추천 덕에 우상이었던 에토레 소트사스 (Ettore Sottsass)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얻었고, 2006년 WDL 콘퍼런스 초청 당시에는 유럽에 비해 좋지 않은 한국의 여건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방문이 디자인에 대한 강한 열망을 지닌 한국 학생들에게 큰 용기가 될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더 묻지도 않고 흔쾌히 방문해줬다. 그의 강단에는 스테파노 조반노니(Stefano Giovannoni)도 함께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암을 앓던 마시모 모로치 선생님의 영면 소식이 들리자 각계 인사들의 무수한 탄식과 슬픔의 글이 SNS를 장식했다. 우리는 이 큰 슬픔 속에서도 한 가지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바로 디자인을 사랑하고 헌신한 그가 세계 디자인 최고의 축제,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 기간에 떠났다는 점이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그다웠다는 말로 서로 위로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이탈리아 디자인의 대부이자 멘토, 전설적인 아트 디렉터,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이 이제 ‘마시모 모로치’ 그 이름 자체로 시대와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글: 여미영 대림미술관 큐레이터, 담당: 최명환 기자, 인물 사진: 김성용 기자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마시모 모로치에게 가르침을 받은 여미영이 그의 영면 소식을 듣고 글을 보내왔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34호(2014.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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