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문화를 만드는 이야기꾼, 문승지 디자이너
계원예술대학교 감성경험제품디자인(현 리빙디자인)과를 졸업한 디자이너 문승지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졸업 전시 작품으로 디자인한 ‘캣 터널 소파’였다.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사용하는 가구로 세계 유명 언론에 먼저 소개되며 주목받은 그는 현재 본인만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차근차근 고유의 디자인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계원예술대학교 감성경험제품디자인(현 리빙디자인)과를 졸업한 디자이너 문승지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졸업 전시 작품으로 디자인한 ‘캣 터널 소파’였다.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사용하는 가구로 세계 유명 언론에 먼저 소개되며 주목받은 그는 현재 본인만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차근차근 고유의 디자인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인터뷰: 김민정 기자, 인물 사진:김도균(DKAY 스튜디오)
계원예술대학교에서 감성경험제품디자인을 전공했지요. 대학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말 그대로 감성, 경험에 대한 원론적인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일반적인 디자인 방법론만 학습했다면 예쁘게 보이거나 멋있게 보이는 형태적인 것에만 집착했을 텐데 그 제품이 왜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지, 또 놓이는 장소나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 고유의 스토리를 생각하며 디자인할 수 있게 된 거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스토리를 가시적인 결과로 만들어내는 훈련을 했던 것 같아요. 학과 수업 외에 재미있는 경험도 많이 했는데 대학교 1학년 때는 친구들 몇몇이 돈을 모아서 ‘나와 너’를주제로 전시회도 열었어요. 기획팀까지 꾸려서 홍대에 있는 작은 갤러리를 대관하고 케이터링업체랑 인디 밴드까지 불러서 오프닝 파티도 열었는데 망하다시피 했죠(웃음). 그래도 열정이 넘치는 친구들끼리 모여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 경험 자체가굉장히 좋았어요.
‘캣 터널 소파’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여 졸업 후 바로 창업을 했습니다.
‘캣 터널 소파’는 같이 학교 다니던 친구들(박용재, 이강경)과 함께 만든 졸업 전시 작품이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당시 동물 학대관련 이슈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동물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캣 터널 소파’를 아이템 삼아 반려동물 브랜드 엠펍(m.pup)을 창업했는데 학교에서 작업실을 대여해주고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도 투자를 받아 시작할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팻 디자인 관련 사업보다는 제 이름을 딴 문(mun) 디자인 스튜디오 운영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어요. 창업 초기엔 직원이 6명까지 있었지만 디자이너로 활동하기에는 지금처럼 혼자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게 훨씬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요. 어쨌든 저는 사업가가 아니라 디자이너니까요.
해외 언론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 역시 ‘캣 터널 소파’였습니다.
디자이너는 좋은 의도와 개념을 담아 견고한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세상에 선보이고 파급력을 갖도록 하는 일 역시 중요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프레젠테이션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한 것이죠. 졸업 전시작품은 보통 그대로 묻히거나 버려지기 마련인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 동안 해왔던 작품들의 특징과 장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 보도 자료를 만들어 외국의 주요 매체에 전부 연락했습니다. ‘정말 순수 하게 내가 이런 작업을 했는데 당신네 매체에 실렸으면 좋겠다’는 요지로 몇 백 군데에는 보낸 것 같아요. 그중 세 군데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게 점점 소문이 나고 계속 언론에 소개되면서 국내에도 점차 알려지게 된 거죠. 당시 기사를 읽은 해외 독자들에게 격려 메일을 꽤 받았는데 영국의 한 노신사는 ‘당신이 이런 디자인을 해서 우리 고양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될 것 같다’며 감사하다는메일을 보내오기도 했어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코스(COS)와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요?
코스 쪽에서 제 홈페이지를 보고 함께 일해보고 싶다며 메일을 보내왔어요. 2013년 S/S컬렉션 기간 동안 45개 도시 매장의 메인 디스플레이로 졸업 작품이었던 ‘포 브러더스 체어(Four Brothers Chair)’를 전시했죠. 국내에서 제가 디자인 기획을 세우고 제작은 코스 기획팀에서 영국 현지 제작 장인들과 함께 했습니다. 포 브러더스 체어는 한 장의 합판에서 버려지는 부분 없이 총 4개의 각기 다른 의자를 만들 수 있게 디자인한 것인데 가구 제작 시 50~60%의 나무가 버려진다는 사실에 착안해 설계하게 됐습니다. 현재 연남동에 있는 편집 숍 ‘모어 댄 레스’에서 전시 중인 ‘이코노 미즈드 체어(Economized Chair)’ 역시 똑같이 하나의 합판에서 총 4개의 의자를 만들지만 인체공학 적 측면에 더욱 중점을 뒀죠.
지금까지 주목받은 제품을 보면 모두 고유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대학 시절 경험하고 배운 것이 중요한 매개체가 됐을 것 같은데요.
계원예술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한 국립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다녔는데 수업이나 교육 방식이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아 많이 실망했어요. 그런데 계원예술대학교에 와서는 그때까지 부딪혔던 벽 이나 틀이 완전이 깨지는 느낌이랄까, 자연스레 디자이너의 꿈도 갖게 됐죠. 나무 판자와 끈 하나를 주면서 이걸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해 오라는 식의 과제도 그렇고 수업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으니까요. 저는 디자이너가 사회를 변화시킬 순 없지만 기존에 없던 문화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캣 터널 소파’가 동물 학대를 아예 사라지게 할 순 없지만 반려동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하나의 문화는 만들 수 있 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품에 특별한 스토리를 담아야 하는 것이고 파급력이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 회적 이슈나 앞으로 디자인을 통해 담아 내고 싶은 스토리는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개념은 좀 더 포괄적이에요. 스토리텔링, 제품의 견고함, 스킬 모두 중요하지만좋은 기획을 통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 역시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지역 문화인데요. 지역 깊숙이 숨어 있는 고유의 문화를 끌어내서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더 나아가 이를 발전시켜 재미있는 브랜드로 만드는 거예요. 현재 문래동을 기반으로 한 ‘정다방 프로젝트’ 팀과 진행하는 작업 역시 주변 철 공장에서 버려지는 자재를 가지고 공간 디자인을 하는 것인데 더 나아가 공장 엔지니어들과 소통하며 좀 더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해볼 수 있는 거죠. 또 제가 제주도 출신인 만큼 제주 지역의 다양한 특산품 및 관광상품의 디자인이나 브랜딩에 관한 다양한 작업을 할 수도 있고요. 가장 최근 디자인한 제품으로 현무암의 물을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해 만든 화분과 제주도의 한 기업과 함께 하고 있는 가구 프로젝트 역시 이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