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Lights in 9 Rooms>전으로 방한한 폴 콕세지

한남동에 새로운 갤러리 디뮤지엄(D Museum)이 문을 열었다. 통의동 대림미술관, 한남동 구슬모아당구장에 이어 대림이 선보이는 또 하나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공간’의 태동을 알리는 특별전의 주제는 ‘빛’이다.

<9 Lights in 9 Rooms>전으로 방한한 폴 콕세지
폴 콕세지(Paul Cocksedge) 1978년생. 영국의 조명 디자이너로 2004년 ‘폴 콕세지 스튜디오’를 창립한 이후 제품, 조명, 가구, 공간과 건축물을 디자인 해오고 있다. 영국 왕립예술학교(The Royal College of Art)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3년 가정용 오븐으로 합성고무 소재인 스티렌을 구워 만든 조명등 ‘스티렌(Styrene)’으로 디자인계에 화려하게 등장했으며 이어 잉고 마우러의 개인전에서 작품을 함께 선보이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플로스(Flos), 야마지와(Yamagiwa), 알트레포르메(Altreforme) 등의 회사와 협업하며 확실한 대세로 자리 잡았다.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 런던 디자인 뮤지엄 등의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스와로브스키, 플로스, 에르메스 등 유명 브랜드와 활발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Paulcocksedgestudio.com

“내가 하는 모든 작업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빛이다.”

한남동에 새로운 갤러리 디뮤지엄(D Museum)이 문을 열었다. 통의동 대림미술관, 한남동 구슬모아당구장에 이어 대림이 선보이는 또 하나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공간’의 태동을 알리는 특별전의 주제는 ‘빛’이다. 9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9개의 황홀한 라이트 아트 <9 Lights in 9 Rooms>전의 일곱 번째 방문을 열면 A3 사이즈의 얇은 조명 72장이 바람에 날리듯 펄럭인다. 잉고 마우러(Ingo Maurer)의 뒤를 잇는 조명 디자이너로 불리는 폴 콕세지(Paul Cocksedge)의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에디션이다. 2003년 조명 ‘스티렌(Styrene)’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관람객이 키스를 하면 천장에 조명이 켜지는 ‘Kiss’, 꽃병에 꽂은 생화가 시들면 조명도 꺼지는 ‘라이프 01’ 등 여전히 마법 같은 디자인으로 관객을 놀랜다. 지난 12월 4일 폴 콕세지가 전시 공식 개관을 하루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2016년 5월 8일까지 열린다. 글: 김은아 기자, 인물 사진 : 김범경(예 스튜디오)

키스 Kiss’, 2009년
사진 마크 콕세지 국제 빛 축제(International Festival of Lights)의 일환으로 밀라노에서 선보인 설치 작품. 겨우살이 덩굴식물 미슬토(Mistletoe) 장식 아래 서면 남녀가 키스해야 한다는 런던 풍습에서 착안했다. 대형 미슬토 아래서 키스를 나누면 가장 얇은 피부인 입술과 입술로 전류가 전달돼 5만 개의 전구에 빛이 들어온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는 ‘돌풍, Bourrasque’는 원래 야외 전시용으로 고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종이가 바람에 팔랑 날아가는 콘셉트여서 밖에 전시해야 하는 게 맞다. 실내에 전시하는 것은 처음인데 오히려 갤러리에 이만한 공간과 높은 층고를 갖췄다는 사실에 놀랐고 넓은 공간 덕에 실내에 있지만 밖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충분 히 만족스럽다. 처음에는 실내라고 해서 철저히 빛이 차단된 어둠 속에서 관람객과도 연결 고리가 차단된 채 전시하게 될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고 가는 관람객들 얼굴에 빛이 반사돼 일렁이면서 작품이 멋지게 완성되는 느낌을 준다.

‘부라스크’의 디자인 과정은 어땠나?

사실 조명 이전에 테이블이 먼저였다. 한 귀퉁이가 살짝 접힌 채 중심을 잡고 있는 종이에서 영감을 받은 테이블 ‘포이즈드(Poised)’는 다리가 없이 철강판을 휘어 만들었다. 마치 넘어질 것 같은 디자인이지만 성인 남성인 내가 끝자락에 서도 끄떡없을 만큼 균형을 이룬다. ‘부라스크’ 조명도 여기서 출발했다. 2011년 프랑스 리옹에서 선보인 것은 전자 발광(electroluminescent, EL)을 이용한 에디션이었고, 이번 것은 압출 성형한 알루미늄 안에 LED 조명을 설치해 끝이 휜 얇은 아크릴이 플라스틱과 양피지에 빛을 전하는 방식이다. 한 장 한 장 런던 스튜디오에서 손으로 제작했다.

근래 작품을 보면 브라스, 코퍼, 스틸 등의 재료를 주로 사용했는데 작업하기 좋아하는 재료가 있나?

좋아하는 재료는 것은 없다. 좋아하는 아이디어만 있을 뿐이다. 요즘은 컴퓨터랑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고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시대다. 디자인 프로토타입도 그렇다.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고 시뮬레이션 프로세스를 거치고 3D 프린터가 사물을 만들어낸다. 자연히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공정은 점점 줄어든다. 요즘 시장에 나온 ‘한정판’이라 불리는 것은 이제 수제로 제작한 것을 의미하게 됐다.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직접 내 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내 손으로 모든 재료를 직접 느껴보고 실험하는 과정을 반드시 고수할 것이다.

‘포이즈드 (Poised)’, 2013년 사진 마크 콕세지 2013년 10월 뉴욕에서 열린 첫 개인전 <포착Capture>에서 10개 한정판으로 선보인 미니멀한 테이블로, 철저한 수학적 계산 끝에 찾은 균형감을 부각시켰다.
빛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인가?

우선 모든 것은 빛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빛 없이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색상과 질감도 없다. 내가 하는 모든 작업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빛이다. 또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하는 내게 빛은 신비롭고 무한한 가능성, 새로운 발견 거리가 무궁무진한 대상이다. 예술가, 디자이너, 대중에게도 호소력이 있는 빛이란, 상업적인 조명 박람회나 나이트클럽에서 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빛이 아니다. 화려한 기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맥락이 있는 대상을 삶과 연결시키는 조형물, 빛으로 소통하는 작품을 만드는 데 흥미를 느낀다.

요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

바로 이 주스다!(그는 카페에서 과채 주스를 두 잔째 들이켜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육식 섭취를 줄이는 일, 나아가 좀 더 윤리적이고 건강한 식습관에 관심이 생겼다. 같은 맥락에서 과도하게 소비하고 쉽게 폐기하는 전자 기기에 대한 고찰도 하게 됐다. 며칠 전 홍콩 애플 매장에 들렀는데 크리스마스 시즌 한정판을 사기 위해 개점 시간 전부터 줄지어 선 들뜬 행렬이 인상 깊어 내 휴대폰에 담았다. 이 기기가 어디서 왔고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생각은 덮어두고 말이다. 우리 주변은 온통 쇼핑센터로 둘러싸여 있고, 시민들은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삶에는 애플보다 더 중요한 게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거기 있던 소비자 중 한 사람이었고,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도움이 필요하다.

젊은 나이에 성공한 디자이너로서 사회 적으로 어떤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선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 전체를 놓고 볼 때, 내가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물론 디자이너가 만드는 무엇인가가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이들이 행복하다면 다행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성실하게 열정과 창의력을 담아 나의 흥미를 탐구하고 어떤 유혹과도 타협하지 않는 것, 그래서 궁극적으로 누군가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