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에 능한 디지털 디자인 전략가 김승언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시장의 판도를 날카롭게 읽어내는 이 디지털 디자인 전략가는 늘 몸을 낮춰 겸손을 표하지만 타고난 승부사 기질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20세기 말 불어닥친 닷컴 열풍은 수많은 온라인 벤처 기업을 잉태했다. 열정과 패기 넘치는 젊은 사업가와 개발자, 디자이너들이 시장에 뛰어들어 무한의 바다를 빠르게 잠식해나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성공의 영광이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디지털 시장의 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화되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디지털 기업은 쉽게 도태되고 말았다(야후의 몰락을 떠올려보라!). 남들보다 한 수 앞서 내다보고 한발 앞서 행동할 수 있는 인물이 절박한 상황에서 국내 제1의 인터넷 서비스 네이버는 김승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벌써 15년째 네이버에 몸담고 있는 그는 2014년부터 설계 조직(구 네이버 디자인센터)의 수장이 되어 회사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네이버 디자인의 중추로서 자리 잡아가던 시절은 디지털 시장의 헤게모니가 PC에서 모바일로 변화하고 있던 상황과 정확히 맞물린다. 이에 걸맞은 새로운 디자인 언어가 필요했고 김승언은 언제나 유효 적절한 해답을 찾아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시장의 판도를 날카롭게 읽어내는 이 디지털 디자인 전략가는 늘 몸을 낮춰 겸손을 표하지만 타고난 승부사 기질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인터뷰: 최명환 기자, 사진: 김혁
MH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디자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디자이너를 꿈꾸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SE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다지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고에 진학했어요. 경찰이셨던 아버지는 제가 검사가 되길 바라셨지요. 처음에는 순수 예술에 더 관심을 가졌지만 점차 제 성향이 디자인에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려서부터 제품 패키지 디자인이나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대학 졸업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보다는 취업해서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었죠.
MH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 이미 디지털 에이전시에 근무하며 디지털 디자인계에 뛰어든 것으로 압니다.
SE 맞습니다. 먼저 컴퓨터와 친해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네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형이 군대를 가면서 낡은 컴퓨터 한 대를 물려줬어요. 그 컴퓨터를 벗 삼아 독학으로 그래픽 프로그램을 조금씩 연마했는데 당시 대학교에서 디지털을 베이스로 한 디자인 자체가 많지 않았고 다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안 돼 금세 ‘컴퓨터 잘 다루는 애’로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시절 학보사에서 편집 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룬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사실 대학 시절에는 방송국 PD를 꿈꿔 학생 기자로 활동했어요.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다가 차츰 아르바이트생들이 하던 조판이나 그래픽 파트까지 맡게 됐고 나중에는 신문 삽화까지 직접 그렸죠. 당시 쿽(Quark) 같은 편집 프로그램을 익혔는데 학보사 컴퓨터가 디자인과 컴퓨터보다 사양이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이렇게 교내에서 소문이 나다 보니 대학교 2학년 때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아르바이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회사를 소개해준 분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한 스튜디오 fnt 이재민 실장님이었어요.
MH 2000년부터 약 3년간 프리챌에서 근무했는데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기획·제공했다는 점에서 여느 디지털 에이전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을 것 같아요.
SE 2000년 당시 프리챌은 굉장히 잘나가던 벤처 기업이었습니다. 근무 기간이 길진 않았지만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말 그대로 닷컴 열풍의 중심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디자인에만 중점을 두는 에이전시와 달리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일하는 방식 전반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교훈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있었어요. 2002년을 전후로 회사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인재들과 개발 역량이 집중되어 있는 회사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죠.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제 개인만 놓고 봤을 때는 이른 나이에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실패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셈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또한 값진 공부였던 것 같아요.
MH 2003년 NHN(현 네이버)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네이버가 최초로 야후를 누르고 검색 부문 1위로 올라선 해이기도 했죠. 초창기 회사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SE 제가 입사했을 땐 전 직원이 400명 정도였고 디자이너는 한게임, 네이버를 합쳐 40여 명밖에 되지 않았어요. 사실 네이버도 프리챌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힘든 고비를 겪었는데 제가 입사할 때쯤 겨우 한시름 놓은 상황이었어요.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이지만, 전임자들이 한참 고생해서 겨우 로켓을 발사대에 올려놓고 막 하늘로 쏘아 올릴 찰나 탑승한 셈이었습니다. 그 시절 대부분의 닷컴 기업이 엔지니어 중심의 회사였기 때문에 디자인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네이버가 디자인을 강화하는 전략을 세우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로서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죠.
MH 네이버의 가파른 성장기를 함께한 셈이군요.
SE 그렇습니다. 조직과 개인이 모두 성장한 시기라고 봅니다. 성장이란 것이 개인의 특출함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더군요. 주변 환경이 팽창하면서 그 안에 있던 나도 함께 큰 것이었죠. 인간은 결국 환경의 동물이니까요. 2000년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가 제게 꼭 그런 시기였습니다. 회사가 점차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새로운 사람을 영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회와 성공의 경험이 늘어났습니다. 이때 조직에 소속된 개개인이 달라지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봤어요. 이미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큰 회사가 한 번 더 도약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잖아요? 아무래도 안정적인 방향을 추구하게 되니까요. 그에 비해 작은 회사에서 큰 회사로 발전하는 중간 단계를 겪었다는 것이 제겐 정말 값진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하라’고 조언합니다.
MH 네이버 초창기 서비스 구축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나요?
SE 초기에는 블로그, 카페 같은 커뮤니티 서비스를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물론 당시 제 비중은 낮았습니다. 서비스 특성상 여러 팀원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마련인데 마치 제가 모든 일을 도맡아 진행한 것처럼 비칠까 조심스럽기도 하네요. 가장 먼저 주도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를 꼽자면 사내 명함과 서식 디자인 리뉴얼을 들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때 네이버 명함이 너무 촌스러웠거든요.(웃음) 자발적으로 나서서 명함 디자인을 바꿔보겠다고 했고 이를 계기로 BX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오프라인 업무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MH 회사에서 젊은 축에 속했을 텐데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았네요?
SE 워낙 다방면에 호기심과 관심이 많다 보니 먼저 나서서 회사에 이런저런 제안을 했습니다. JOH 대표이기도 한 카카오 조수용 부사장이 당시 디자인팀장으로 부임해 네이버 디자인의 본격적인 틀을 갖춰나가던 시기였는데 저는 포스터나 사이니지 디자인, 플래시 디자인 등 온·오프라인 업무를 닥치는 대로 하던 때여서 ‘꽤 쓸모 있는 녀석’ 정도로 비쳤던 것 같아요. 조직이 완전히 틀을 갖추고 있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제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쉽게 말해 먼저 손 들고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임자였던 거죠. 돌이켜보면 궂은일도 가리지 않고 앞장섰던 것이 제가 가장 잘했던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인트라넷 관리처럼 티 안 나는 일에도 언제나 최선을 다했죠. 이런 일이 시시하다고 생각하고 티 나는 일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 조직에서 오래 버티질 못하더군요. 이런 마인드 덕분에 미국 지사 파견 디자이너로도 발탁됐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많은 수의 직원을 보낼 수 없을 땐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회사 입장에서 유리하니까요.
MH 미국에 간 것이 2006년쯤이었죠? 당시 경험을 들려주세요.
SE 네이버와 한게임이 NHN이라는 이름 아래 한솥밥을 먹고 있었고 게임 사업으로 해외 진출을 꾀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NHN U.S.A에서 한국 게임의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팀에 속해 미국에 갔던 것이고요. 글쎄요, 솔직히 미국에서 대단한 서비스의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약 1년간 준비하고 서비스를 오픈했는데, 이후 1년쯤 지나 서비스가 좀 더 자리 잡기도 전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에 간 첫 1년은 흥분되고 설레었습니다. 그때 회사가 구글 본사가 있는 실리콘밸리 베이 에어리어 지역에 있었는데 순수 국내파가 미국으로 넘어갔으니 당연히 모든 게 새로웠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하지만 1년쯤 지나니까 점점 익숙해지면서 그만큼 시시해 보이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고요. 결국 2년 남짓한 미국 생활을 스스로 정리하고 귀국했습니다. 그때는 20대의 젊었던 때라 해외 경험 기회가 또 있을 거라고 좀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그 기회가 제게 굉장히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되어 아쉽기도 하고, 짧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지금 저에게 많은 자산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MH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SE 2007년 말 한국에 돌아왔을 때 설치형 디스플레이, 뉴미디어 아트 등을 접목한 뉴미디어 디자인이 활성화될 조짐이 보이더군요. 온라인 서비스에서도 점점 이런 디자인이 강화되고 있었고요. 이 분야를 선행적으로 연구할 팀이 있어야 했는데 제가 자원해서 미디어 디자인팀 팀장이 됐습니다. 아무래도 당시에는 게임 쪽 UI가 조금 더 인터랙션이 화려했는데, 미국에서 게임 서비스를 경험하고 온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초기에는 인터랙션, 플래시, 영상을 담당하는 팀원들을 중심으로 꾸리다가 차츰 활동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특정 서비스에 국한하지 않고 마치 용병처럼 여러 부서의 디자인 업무에 관여하게 된 것이죠. 이후 영상 서비스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사내에 영상 디자인팀이 만들어졌고 두 팀을 묶은 멀티미디어디자인 실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이렇게 매년 조금씩 새로운 일을 맡으며 조직의 세가 확장됐는데, 나중에는 마케팅 부서와 브랜딩 및 오프라인을 담당하던 팀까지 흡수하며 BX(Brand Experience)실이라는 거대한 브랜딩 조직이 탄생했습니다.
MH BX실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나요?
SE 내부적으로 회사가 의욕 충만한 시기였고 덕분에 정말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네이버의 그린 윈도를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고 네이버 스토리의 온라인 브랜딩을 담당하기도 했죠. 네이버 뮤직의 리브랜딩도 진행했고요. 지금 사용하는 네이버 스포츠 로고도 당시 디자인한 것입니다. 사옥인 그린팩토리를 지을 당시에는 여러 단계에서 디자이너들이 동참했는데 건물 이름에 걸맞게 루버 시스템을 적용할 때 관여하거나 지하층 내지 계단 공간에 청각을 활용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반영한 것이 그 예입니다. 당시엔 지우개나 연필도 하나하나 내부에서 만들었는데 그만큼 새로운 디자인을 할 만한 여지가 많았고 지원도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참, 네이버 나눔 글꼴을 제작, 배포한 일도 빼놓을 수 없죠.
MH 당시 네이버의 한글 캠페인이 많은 화제를 낳았죠.
SE 개인적으로 사용자의 기대치보다 딱 한 단계 더 들어가는 게 바로 네이버다운 태도라고 생각해요. 사용자의 눈높이로 디자인하되 기대하는 것보다 하나를 더 생각하는 거죠. 한글 캠페인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 전용 서체를 만드는 것으로 출발했던 것 같아요. 기업이 시스템을 갖춰가며 전용 서체를 제작하는 일은 사실 그리 드문 일이 아니죠. 그런데 디자인 부서에서 ‘일반 사용자들은 굴림체나 돋움체같이 한정된 서체만 사용하는데 우리끼리만 예쁜 서체를 사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이의를 제기한 겁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서체를 만들게 됐죠. 네이버다움에서 비롯한 또 다른 프로젝트로는 최근에 진행한 지하철 노선도 리디자인이 있습니다. 지자체나 도시철도공사가 제공하던 기존 노선도가 너무 낡거나 사용성이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진행한 것인데, 거기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완성된 디자인으로 사내 테스트를 진행하던 중 회사 내부에도 색각 이상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를 계기로 ‘색각 이상자용 지하철 노선도’까지 디자인하게 됐습니다.
MH 네이버라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PC에서 모바일로 시장이 급변하던 2000년대 말은 큰 전환점이 됐을 것 같은데요.
SE 2009년 11월 아이폰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출시되면서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회사 전체에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크나큰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던 때였으니까요. PC 기반에서는 국내 최고의 플랫폼으로 이미 자리를 굳힌 뒤였지만, 모바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휴대폰 제조사도 아니고 자체 OS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은 네이버가 생존하려면 전략 자체를 새롭게 구축해야 했습니다. 저희는 네이버 앱을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했어요. 지금은 안드로이드폰 95%에 네이버 앱이 깔려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앱 설치 자체가 생소하던 때라 직접 밖으로 나가 사용자들의 휴대폰에 앱을 깔아주는 앱 스퀘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택배를 받을 때의 즐거움과 유사한 기쁨을 선사해주자는 뜻으로 공간 자체를 거대한 종이 상자처럼 꾸미고 내부 구조물과 오브제도 모두 종이로 제작했습니다. 이외에 라인, 캠프모바일의 밴드 같은 서비스의 초기 세팅을 돕기도 했습니다. 당시 두 회사 모두 큰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초기 브랜드 세팅을 지원한 거죠.
MH 초창기 네이버 앱은 서비스마다 자기만의 색깔이 강했습니다. 디자인, GNB(글로벌 내비게이션 바), 로고도 제각각이었는데, 의도한 전략이었나요?
SE 초창기에는 모바일 시장에서 어떤 전략이 통할지 전 세계 어떤 회사도 장담할 수 없었어요. 그때 저희는 속도전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PC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브랜딩이나 마케팅 모든 면에서 충분히 심사숙고할 수 있었고,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공개하기까지 최소한 6개월 이상 시간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시장에서는 동일한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대신 소규모 팀을 중심으로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서비스별 팀원들의 기호나 성향에 따라 네이밍, UI, 브랜딩이 개별적으로 나오게 된 겁니다.
MH 2015년부터 제각각 흩어져 있던 앱을 하나의 브랜딩으로 통합해나갔습니다.
SE 처음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는 기기 자체가 워낙 새롭고 희소성이 있어서 사용자들이 좀 더 능동적으로 서비스에 반응했습니다. 이것저것 다양한 앱을 깔아보고 용도를 살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마트폰이 삶의 일부로 자리 잡다 보니 꼭 필요한 앱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게 됐어요. 실제로 사용자 대부분이 하루 평균 5~10개의 앱만 사용한다고 해요. 물건을 구매하고, 궁금한 것을 찾아보고, 게임이나 음악을 즐기고, 친구랑 대화하고…. 이처럼 평소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앱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고사하거나 소수의 사람만 쓰게 된 것입니다. 저희 역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여러 앱을 쓰는 것 자체가 사용자 입장에서 불편한 행위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국 위챗(WeChat, 웨이신) 같은 서비스를 보면 메신저 기능뿐 아니라 결제, 커뮤니티, 오픈 마켓 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치 스마트폰 전체가 앱 하나에 다 들어가 있는 느낌이죠. 이처럼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하나의 서비스가 웬만한 기능을 다 커버하고 심화된 서비스가 필요할 경우에만 다른 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사람들은 블로그, 카페, 쇼핑 앱을 따로 구분 지어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네이버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인지하죠. 내부에서는 팀도 다르고 담당자도 다르지만, 실제 사용자에게 그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네이버 스퀘어’라는 디자인 가이드를 만들어 이를 강력한 하나의 브랜드 아래 모으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때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할 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용성을 연결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MH 그래픽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SE 모바일 시장 공략 초기에 네이버는 PC 시장과 동일한 디자인 전술을 취했습니다. 풍성하고 완성도 높은 그래픽은 네이버의 가장 큰 장점이었으니까요.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이 대세였던 터라 수준 높은 비주얼의 앱을 많이 출시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트렌드가 플랫 디자인으로 고착화되면서 저희도 변화를 모색해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화면의 조형적 완성도나 레이아웃이 중요했어요. 모니터가 넓고 마우스라는 정밀한 도구를 사용하는 PC에선 다양한 인터페이스 실험이 가능했죠. 새로운 UI에 대한 사용자들의 관용도도 높은 편이었고요. 즉 당시 사용자들은 사용성이 다소 떨어져도 비주얼이 아름다우면 충분히 감내했습니다. 플래시를 기반으로 제작한 영화 홍보 웹사이트 같은 것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빠를 거예요. 사실 이런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취하기는 어렵거든요. 그래도 사용자들은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죠. 이때는 페인팅에 강점을 지닌 디자이너들이 각광받았습니다. 보여주는 방식이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바뀌었다뿐이지 전통 그래픽 디자인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하지만 화면이 작고 상대적으로 조작이 불편한 모바일 환경에선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화려한 그래픽 효과에 일일이 감탄하기에는 스마트폰 자체가 사람들의 일상과 너무 밀접해졌습니다. 그런 것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더 이상 책상이나 무릎 위에 두고 집중해서 사용하는 환경도 아닌 거죠. 거리를 걷거나 버스를 기다리거나 혹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과 맥락, 사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멋진 그림을 그리는 디자이너보다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 더 유리해졌고요. 결국 기술의 변화에 따라 디자인의 양상이 바뀐 것이죠.
MH 기술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요즘 떠들썩한 4차 산업혁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한쪽에선 과장 혹은 허구라는 비판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날 거란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SE 사용자의 욕구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일반적인 정보를 능동적으로 찾아보았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개인화된 정보가 자기에게 찾아와주길 바라죠. 이건 인간이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화두로 떠오른 것은 결국 이런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기술혁명의 시대가 오더라도 결국 본질은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MH 디자이너 역시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겠군요.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할까요?
SE 먼저 디자이너들은 큰 그림 안에서 미래를 그려갈 줄 알아야 합니다. 일례로 네이버가 지난해 오디오클립이란 서비스를 론칭했는데 서비스 담당 디자이너들은 그 안에서 음성을 연구했어요. 어떤 데시벨의 음성이 듣기 편한지, 음성 변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말이죠. 디자이너들이 이런 것을 공부하면서 서비스가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어요. 과연 이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 음성을 연구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환경이 변함에 따라 디자이너의 역할도 달라집니다. 더 이상 화면을 멋지게 그려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거죠.
과거에는 기획자가 기획을 전담했지만 요즘에는 디자이너에게 기획 영역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어 업무를 수행하라는 것이죠.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가 떠오른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대표적으로 예전에 저와 함께 일했던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를 들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지만 사업가의 눈도 갖춰야 합니다. 그러려면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해요.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늘려야 하고요. 자기 디자인을 대변하는 수준의 커뮤니케이션만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사용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디자이너만큼 사용자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봐요.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해석해서 서비스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실제로 저는 네이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모바일과 PC 메인 페이지를 담당하고 있어요. 특정 부서에서 이 서비스를 담당하면 균형점이 치우칠 수 있기 때문이죠. 특정군이 아닌 절대 다수의 사용자들을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 다방면에 호기심을 갖고 파고드는 능력, 결국 이것이 오늘날 세상이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덕목이 아닐까 싶네요.
MH 디자이너가 풀어야 할 숙제가 더 많아진 기분입니다.(웃음) 이 숙제를 풀기 위한 아이디어나 영감을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SE 저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여러 사람과 대화하면서 그들을 이해해보는 거죠. 단,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붙습니다. 디자이너가 아닌 전혀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같은 영역에 있는 사람이라면 확률적으로 성향이나 관심사, 유형 등이 비슷할 가능성이 높아요. 이질적 배경의 사람들과 삶을 나눌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영감을 얻는 노하우에 대해 묻는다면 개발자나 기획자 혹은 소설가 친구를 사귀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어린 조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고요. 인맥이 넓을수록 습득하는 지식의 폭 또한 넓어집니다. 그리고 이때는 경청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의 에고(ego)에 고착되는 순간 도태되어버립니다. 결국 막힘 없이 잘 받아들이는 디자이너가 롱런하고 유연하게 변신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MH 확실히 디지털 시장 자체가 이전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쉽게 도태되고 말고요. 최근 미국의 최대 통신사업자 버라이즌에 인수된 야후가 그 예인 것 같습니다.
SE 네이버 스스로 과거의 영광에 안주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 지난해까지 저와 회사의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의 황금기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란 착각이 우리의 가장 큰 적이었죠. 네이버처럼 10여 년간 큰 실패 없이 꾸준한 성장을 이룬 회사일수록 이를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최근 네이버디자인센터는 조직명을 ‘설계’로 바꿨는데요, 영어로 보면 같은 의미지만, 회사 내부에 디자인이라는 말의 어감이 기획자가 짜놓은 틀을 받아 시각화한 뒤 개발자에 넘겨주는, 일종의 프로세스의 중간 과정만 담당하는 것이라는 과거의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모바일 시장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나 마음가짐,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름을 바꾼 겁니다. 실제로 ‘뼈를 깎는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만큼 변화를 위해 부단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특성상 저희보다 훨씬 큰 회사도 순식간에 외면받고 사라져버려요. 최소한 네이버 같은 회사에서는 ‘느리게 걷는 삶’이 통하지 않습니다. 내가 걸어도 주변에서 모두 달리고 있으니까요.
MH 2013년에는 NHN엔터테인먼트 마케팅·디자인실 이사 겸 실장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SE 당시 NHN이 몇 개 회사를 분사하는 시점이라 자연스럽게 조직을 옮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전부터 포털 서비스뿐 아니라 게임 사업에도 관여했기 때문에 큰 거부감은 없었어요. 오히려 모바일 게임이 부상하던 때라 그 시장을 깊게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컸고요. 분사되는 회사의 규모가 꽤 컸는데 사명이나 조직 문화 등을 완전히 새롭게 세팅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정말 새로 회사 하나를 창업하는 기분마저 들더군요. 아이덴티티, 사이니지, 회사 인테리어를 두루 경험할 수 있어서 한 번 더 그린팩토리를 세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흔해졌지만 업계 최초로 게임 광고에 빅 모델을 기용하자고 제안한 것도 저였어요.(웃음) 이 외에도 신규 브랜드 론칭, 마케팅 조직 및 디자인 조직 구성, 게임 스튜디오 업무 등등에 전반적으로 관여했는데 짧지만 매우 값진 경험이었죠.
MH 2014년 8월 네이버 디자인센터장1)이 되었습니다. 당시 시가총액 기준 국내 10대 기업 중 최연소 임원이 되어 이슈가 됐죠. 이 자리 역시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질 것 같은데요.
SE 나이나 배경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회사 분위기가 한몫했다고 봐요. 젊은 수장을 앞세워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많이 산출했으면 하는 바람도 반영된 인사라고 봅니다. 제 존재 가치를 입증하려면 계속 변하고 각성해야겠죠. 솔직히 부담되어 죽겠습니다.(웃음) 임원이 되고 나서 한동안 잠자리를 설칠 정도였죠. 과장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자리는 회사뿐 아니라 디자인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책임감이 어마어마하죠.
MH 햇수로 15년째 한 회사에 몸담았다는 것도 대단한 일 같아요. 그런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SE 철저하게 실력으로 평가받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어요. 솔직히 좀 냉정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지만.(웃음) 그래도 이 조직에 완전히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은 것도 이런 풍토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곁에서 많은 가르침을 준 경영진의 영향도 큽니다. 먼저 지금의 네이버가 존재하게 만든 이해진 창업주가 있습니다.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기획자로서도 언제나 굉장한 인사이트를 보여주셨죠. 조직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다음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모습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고요. 현재 네이버를 이끌고 계신 한성숙 대표님은 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고 디자인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네이버 메인의 ‘디자인 주제판’ 역시 한 대표님이 제안한 아이디어였어요.
MH 지난해 신설한 네이버 디자인 주제판의 경우, 전문가들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디자인을 불특정 다수가 보는 포털 사이트의 메인 서비스로 삼았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SE 앞서 이야기했듯이 네이버는 디자인계에 일종의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네이버 자체가 닷컴 기업 중 선도적으로 디자인을 핵심에 둔 회사이기도 하고요. 내부적으로 디자인과 대중이 좀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네이버를 통하면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나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한성숙 대표님과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님, 그리고 제가 만나 이야기를 나눴죠. 다른 주제판들이 사용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반영한 서비스라면 디자인 주제판은 디자인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서비스입니다. 월간 〈디자인〉이 그랬던 것처럼 디자인 주제판을 통해 스타 디자이너들이 배출되고 디자인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도 커졌으면 합니다. 그런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면 서비스에 참여한 디자이너로서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네요.
MH 센터장이 되어 진행한 프로젝트 중 대표할 만한 서비스 몇 가지만 꼽는다면요?
SE 브이 라이브 앱 서비스가 기억에 남습니다. 셀러브리티들이 직접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팬들과 공유하는 서비스인데 10대가 중심이 되는 서비스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일부러 가장 젊은 디자이너들로 구성했어요. 당시 스타들의 셀카 속 제스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V자 손동작을 키 비주얼로 삼아 디자인했습니다. 이 앱은 2년 만에 다운로드 횟수가 3500만을 넘었고 월간 사용자가 2000만 명이 넘습니다. 새로운 라이브 플랫폼으로 완전히 자리를 굳힌 거죠. 이 밖에 아까 말한 브랜딩 통합 작업과 오랜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였던 PC 메인 화면 리디자인도 생각납니다. 올 상반기에 진행한 프로젝트인데 디자이너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했기 때문에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또 모바일 검색 화면도 리디자인했는데요, 동선을 최소화하고 검색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기본 정보를 상단에 세팅하고 부가 정보를 편하게 볼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늘 보던 화면이라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실 대대적인 리디자인 프로젝트였습니다.
MH 최근에는 네이버가 후배 디자이너 양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UXDP를 개편해 디자인 펠로십과 인턴십을 진행했고 8월에는 디자인 콜로퀴움이란 행사도 연 것으로 알고 있어요.
SE 디자인 펠로십과 인턴십은 10년 이상 진행했던 UXDP를 좀 더 캐주얼한 버전으로 진행해본 것입니다. 10박 11일 동안 숙박하면서 집중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상시 형태로 전환시켜 기회의 폭을 넓힌 거죠. 8월 23일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리는 디자인 콜로퀴움은 IT업계에 관심 있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데 저희가 지금까지 일하면서 고민했던 것 혹은 노하우를 가감 없이 공개하려고 합니다.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저희의 고민을 통해 더 훌륭한 결과물로 발전시켰으면 합니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부터 5위까지 기업이 모두 IT 기업인데 아직 한국의 디지털 인재 풀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UXDP의 경우 처음부터 취지 자체가 인재 채용보다는 저변 확대에 있었어요. 네이버, 카카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외에도 훌륭한 중소기업이 많이 생겨나야 해요. 최근 중국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졸업 후 가장 하고 싶은 게 IT 회사 창업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고 해요.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회사를 롤모델로 삼고 있고요. 네이버는 지금 우수한 인재들을 교육시켜 시장에 파종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네이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작지만 탄탄한 기업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또 유능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결과적으로 저희에게도 이득이라고 보는 거죠.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목적이 네이버 입사에 맞춰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희망입니다.
MH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SE 일단 저로 인해 네이버가 젊어지고 과감해졌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그리고 이것은 계획이라기 보다는 희망에 가까운데요, 주변의 많은 분들이 제 빠른 승진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만큼 두려움이 큽니다. 제 크리에이티비티가 그만큼 빨리 소진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죠. 최연소 임원이라는 타이틀은 불과 1~2년만 지나도 의미 없어지는 거잖아요. 전 그냥 지금의 젊은 감각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늙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웃음) 익숙하고 편해지면 빨리 늙어버릴 것 같아서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않도록 늘 긴장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려고 합니다.
디지털 디자이너 김승언의 앱 관리법 3
1 시간 날 때마다 앱스토어 혹은 플레이스토어에 접속해 신규 앱을 다운받는다.
2 서비스나 UI 측면에서 참고할 부분이 있으면 캡처를 하고 바로 삭제하지만 좀 더 사용해볼 필요가 있을 때는 네다섯 번째 페이지로 옮겨놓는다. 총 두 페이지만 운영하기 때문에 가장 필요 없는 앱을 하나씩 삭제한다.
3 이후 계속 사용할 앱이라고 생각되면 카테고리 폴더로 옮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