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공간 그리고 관객의 접점, 김용주
그리 길지 않은 국내 전시 디자인의 역사에 김용주의 행보는 국내 전시 디자인을 탄탄하게 만드는 디딤돌이 되고 있으며, 그녀를 통해 전시 디자인이라는 영역은 더욱 활짝 피어오르는 중이다
‘공간 디자인’ 하면 우리는 집이나 카페, 호텔, 상점 등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공간 디자이너라고 부르는 이들 또한 이 범주의 영역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공간의 영역이 이것뿐일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디자이너 김용주 역시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다. 그녀는 전시를 매개체로, 작품과 오브제를 소재 삼아 전시를 보고 즐기는 방식을 제안한다. ‘한 나라의 수준을 보려면 그 나라를 대표하는 뮤지엄을 가보라’는 말은 전시 문화가 가진 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뮤지엄 건축의 수준과 가치를 평가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전시를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결정하는 전시 ‘디자인’ 또한 콘텐츠이자 문화로 인식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가 입는 옷도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라 말하는 김용주에게 공간은 무궁무진한 환경 그 자체다. 그리 길지 않은 국내 전시 디자인의 역사에 김용주의 행보는 국내 전시 디자인을 탄탄하게 만드는 디딤돌이 되고 있으며, 그녀를 통해 전시 디자인이라는 영역은 더욱 활짝 피어오르는 중이다.
EK 대학에서 공간 디자인을 전공하고 설계 사무소에서 일한 적도 있는데 전시 디자이너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YJ 원래 전시 디자인은 전혀 생각지 않았고, 그런 영역이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대학 졸업 후 설계 사무소를 2년 정도 다녔어요. 주택이나 종교 시설 프로젝트를 주로 맡았고요. 실은 자동차 프로모션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어요. 자동차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설계 사무소를 그만두고 석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자동차 쇼룸이나 프로모션 공간 기획, 공간 퍼포먼스 등을 공부하다가 전시 디자인 영역이 있다는 걸 알았죠. 굉장히 흥미롭더라고요. 주변에서 제가 전시 쪽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도 했죠.(웃음)
EK 전시는 무척 복합적인 영역입니다. 시각 아이덴티티와 문화 상품 등 전시를 위한 다양한 디자인 영역이 존재하고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팀의 디자이너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YJ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전시팀 내에 그래픽팀, 문화상품팀, 공간팀이 함께 있어요. 문화상품팀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단에서 자체 진행하면서 업무 협업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죠. 그래픽팀은 전시뿐만 아니라 미술관 브랜딩부터 프로그램 연계 행사의 시각 작업을 맡고요. 공간팀은 전시 연출을 비롯해 작품을 거는 방식, 분위기, 작품 보호 영역까지 맡습니다. 저는 미술관 소속이기 때문에 미술 전시를 주로 하지만 전시 디자이너는 브랜드 쇼윈도나 패션쇼 런웨이 디자인으로도 확장할 수 있고, 전시에서 약간의 움직임이 가미되면 무대 디자인까지도 넘나들 수 있습니다. 각각 전문성은 있지만 전시 디자인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은 생각보다 다양해요. 광고에도 공간 디자인이 필요하고, 플래그십 스토어나 테마파크 공간 구성도 있고요. 무엇을 다루느냐에 따라 구분할 뿐 ‘보여주는 방식에 대한 고민’과 ‘콘텐츠 분석’이라는 큰 줄기는 동일하지 않나 싶어요.
EK 현대미술 전시에서 큐레이터와 전시 디자이너를 혼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미술관에 시각 디자인을 담당하는 디자이너는 있었지만 불과 5~6년 전만 해도 전시 디자이너라는 개념조차 무척 생소했습니다. 연구원이나 큐레이터의 몫이거나 필요에 따라 외부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방식이었고요.
YJ 최근 들어 전시 디자이너의 중요성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어요. 큐레이터는 어떤 콘텐츠를 전시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을 합니다. 그리고 작품을 얼마나, 어떻게 나누어 보여줄지를 구성하죠. 이때 전시 디자이너가 함께 공간적 구성을 하게 됩니다. 전시 디자이너는 ‘보여주는 방식’을 기획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EK 공간을 전공한 전시 디자이너는 최초라고 들었습니다. 박물관 쪽에 전시 디자인에 대한 수요는 있었지만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지요.
YJ 명칭이 좀 다르더라도 전시 디자이너를 처음 채용한 곳은 국립중앙박물관, 민속박물관이었어요. 아마 국립중앙박물관이 공무원 직책의 디자이너를 뽑은 건 처음일 거예요. 그것도 별정직으로 뽑았죠. 타 기관에도 전시 디자이너가 있긴 했지만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처음일 거예요. 입사했을 때만 해도 공간 전공자가 왔다는 것에 다들 의아해했어요. 박물관은 유물이나 자료 그 자체가 맥락적 구성이 필요한 콘텐츠로서 전시 기획을 통해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현대미술은 작품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EK 해외 미술관의 경우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YJ 해외는 국내보다는 이미 상용화되어 있는 편이에요. 모마나 구겐하임 미술관은 하나의 프로젝트에 전시 디자이너가 5명씩 투입되는 경우도 있어요. 국내의 경우는 레퍼런스가 거의 없다 보니 스스로도 전시 디자이너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하고 있는 역할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되고요. 해외에 나가 일해보겠다는 생각도 그런 고민에서 시작되었죠.
EK 민속박물관에 근무하다가 미국 보스턴에 있는 피보디 에식스 박물관에서 일했는데, 이곳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YJ 보스턴이 학문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집약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피보디 에식스 박물관은 동시대 미술과 유물, 동서양의 다양한 콘텐츠를 다루는 곳이에요. 이력서만 낸 상태로 답변이 확실치도 않았는데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박물관을 찾아갔습니다.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저에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반드시 그곳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사전 약속도 없이 몇 번을 찾아갔더니 어느 날 ‘온 김에 면접 보고 갈래?’ 하는 거예요. 그리고 채용됐죠.
EK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나요?
YJ 워낙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다루는 곳이어서 다양한 전시 기회를 얻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허드렛일만 시키기도 했고, 서러운 일도 많았어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패션 아이콘인 아이리스 아펠(Iris Apfel)의 주얼리 전시를 준비할 때였는데, 공간에 혼자 있을 때면 CCTV가 저를 계속 따라다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기계 자체를 사람이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처음에는 설마했어요. 혼자 있는 제가 보석류 전시품을 잘못 만지기라도 할까 봐 계속 저를 좇은 거예요. 이런 일들을 겪으며 이런 게 차별이구나 싶어서 서럽고 자존심이 상했어요.
EK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여전히 잘못된 편견이 존재했던 거네요.
YJ 그날 집에 가는 길에 마음이 정말 복잡하더라고요. 그들 상당수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동남아시아 어디쯤에 있는 나라 정도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지했고, 그래서 허드렛일만 할 때는 제가 한국의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했다는 경력도 의미가 없는 건가 싶기도 했어요. 이대로 돌아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 정말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그들이 나를 붙잡게 해야겠다고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나중에는 제가 제안한 기획안도 수정 없이 통과시킬 만큼 인정받았어요.
피보디 에식스 박물관에서 몇 년간 근무하던 중 김용주는 비자 문제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우연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디자인 채용 공고를 보게 된다. ‘우연히’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전에 한 방송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배순훈 관장의 인터뷰를 보고 그가 전시 공간에서 디자인의 필요성을 강조한 점을 인상 깊게 보았다고 했다. 아마 그때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원 마감이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행히 포트폴리오를 실은 화물선이 일찍 도착했고, 덕분에 기한 내에 무사히 지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녀가 입사한 2010년 즈음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전시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전시 디자인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때였다. 우연 같지 않은 우연이 이어지면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그녀는 자연스럽게 현대미술 분야에서 국내 전시 디자인의 물꼬를 틔우기 시작했다. ‘김용주라는 전시 디자이너가 들어온 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가 달라졌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EK 국내 미술관의 전시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더욱 널리 알린 계기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전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일이었을 거예요.
YJ <한국의 단색화>전시 디자인으로 국제 어워드에 처음 도전했어요. 이전까지는 이 분야가 너무 알려지지 않았고 또 현대미술, 특히 회화 전시로 상을 받은 건 이례적인 일이었어요. 사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는 전시 디자인 카테고리가 따로 없고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포함돼요. 쟁쟁한 브랜드의 프로모션 디자인 출품작과 경쟁한 터라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죠.
EK 저도 수상 소식을 이메일로 받은 기억이 납니다. 직접 메일을 주셨죠. <한국의 단색화>전은 어떤 점이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나요?
YJ 전시를 보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했다고 생각해요. 공간 자체를 입체적으로 구성했는데, 예를 들면 벽을 뚫고 창을 내서 그 안에서 다른 작가의 그림을 보여주는 식으로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을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도록 했거든요. 공간의 깊이감을 통해 회화를 3차원으로 보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이러한 소식이 잡지에 조그맣게나마 실리는 일 또한 현대미술에도 전시 디자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편집장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지요.
EK 전시 작가들의 반응도 궁금해요. 전시 디자이너는 관객뿐 아니라 작가의 입장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 같거든요.
YJ 작가들은 이미 해오던 방식이 있고 이미 작품으로서의 온전한 조형성을 가지고 있어서 접근이 조심스럽죠. 하지만 설득이 필요한 경우에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여드려요. <한국의 단색화>전의 경우 거장 31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는 전시였고, 각각의 작품이 독립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오프닝 날 전시에 참여한 한 작가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더니 “저 작가도 참으로 수고로운 삶을 살았네”라고 말씀하시는데 왠지 뿌듯하더라고요. 기자 간담회에 갔는데, 모든 작가분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쳐주셨어요. 전시 디자인이 작가들에게도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기뻤죠.
EK <한국의 단색화>로 전시 디자인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수상한 것 외에 또 어떤 전시가 기억에 남나요?
YJ 전시 디자인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또 다른 전시가 2014년 <최만린>전이에요. 작가님이 ‘전시를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인스톨레이션으로 풀었으면 좋겠다’는 의견 외에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디스플레이와 인스톨레이션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디스플레이는 결과만 놓는 방식이고 인스톨레이션은 과정이 보여지는 방식’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남기셨죠.(웃음) 이후 오프닝 전에 한 번 들러보신 게 전부였어요. “이렇게 보니 내 작품도 쓸모 있게 보이네”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최만린 작가님이 대단하셨던 것 같아요. 이름도 처음 듣는 사람이 당신 인생의 방점을 찍는 전시를 맡겠다고 하는데 그냥 100% 믿어주신 거니까요. 이 전시는 후에 굿 디자인 어워드 재팬(2014)을 수상했고 일본 학회에서 소개도 했어요. 한국에도 현대미술을 연구하는 전문 디자인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알린 계기가 된 것 같아요.
EK 언급한 전시 외에 <올해의 작가상>으로 iF 디자인 어워드와 독일 디자인 어워드를, <그림일기-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전으로 독일 디자인 어워드를 받았죠. 최근 진행한 과천관 개관 30주년 특별전 <상상의 항해>전(2017) 또한 iF 디자인 어워드에 이어 독일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했고요.
YJ 조각, 회화, 설치, 건축 아카이브 등 장르별로 전시를 해석하는 방식을 검증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능한 한 동일한 작품을 여러 어워드에 출품하지 않아요. 다관왕이 목적이라기보다는 국제 무대에서 디자인적 가치를 인정받으면 좋겠다는 거죠.
EK 어워드는 참가비도 꽤 드는데, 그러면 이제는 미술관의 지원을 받나요?
YJ 수상을 하면 수상비는 지원을 받아요. 하지만 출품할 때는 자비로 출품하는 경우가 많아요. 미리 말하면 어워드 결과가 좋지 않은 징크스가 있거든요.(웃음) 여가 생활에 투자했다고 생각하죠. 사실 개인 시간이 없다 보니 지출이 그다지 많지 않기도 하고요.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꽤 되거든요. 집에 꼭 일거리를 가져가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는데, 자료라도 한 번 읽고 자게 되니 보통 4시간 반 이상 자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지난 9월 1일부터 내년 2월 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은 2012년 <그림일기-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에 이은 두 번째 건축 아카이브 전시다. <종이와 콘크리트>전은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현대건축 운동사에서 가장 활발했던 10년간의 건축 자료와 연구를 조망하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전시는 청년건축인협의회, 건축운동연구회, 4.3그룹, 서울건축학교 등 시대와 함께한 건축 그룹과 이들의 고민, 이를 통한 한국 건축의 발전사를 집약적으로 담아냈다. 전시는 복잡한 전시 내용을 일목요연한 사이니지와 이미지, 영상 구성이 잘 집약된 건축 도서관을 연상케한다.
EK <종이와 콘크리트>는 아카이브형 전시입니다. 전시 디자이너 입장에서 조각이나 회화 같은 순수 장르 전시와 아카이브 전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YJ 순수 장르 전시처럼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은 경우는 개입의 밀도를 좀 느슨하게 둡니다. 어떤 경우는 작품 자체로만 보여주는 것이 최적의 방식일 때도 있거든요. 아카이브 전시는 내용과 형식의 밀도가 훨씬 높아요. 기획자의 개입이 없으면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힘들거든요. 누군가의 자료로만 보이는 이 대상을 어떻게 구성해서 보여주느냐가 전시 디자이너의 몫이죠.
EK 이번 <종이와 콘크리트>는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했나요?
YJ 사실 아카이브 전시는 기분 전환을 위해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에게는 무겁게 느껴지기 쉬워요. 그래서 <종이와 콘크리트>는 활자보다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전시장을 크게 두 영역으로 나누어 3 전시실은 콘크리트, 4 전시실은 종이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담았어요. 종이는 지식을 생산하는 매체를 대표하는 도구이고, 콘크리트는 건축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이름이지요. 보통은 전시실에서 심층적인 아카이빙을 선보이고 마지막에 영상이나 이미지를 선보이는데 일부러 반대로 구성했어요.
EK 특히 3 전시실 상부의 압도적인 매스가 건축을 주제로 한 전시와도 잘 어울렸고, 상·하부 공간이 골고루 사용된 인상이에요. 영상이나 이미지 외에 특히 음악에도 신경을 쓴 느낌이었지요.
YJ 최근에는 특히 음악 역시 관람에서 중요한 체험이에요. 음악은 ‘도슨트’라는 팀이 맡아서 진행했어요. 또 말씀처럼 가장 신경 쓴 부분이 공간의 높이였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층고가 5m, 7m로 꽤 높아요. 그래서 수직적 구조로도 기획을 했죠. 하부는 연극 무대를 생각하고 테이블만 두었어요. 보통 연계 토크나 세미나는 전시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는데 <종이와 콘크리트>는 전시실 안에서 할 생각이에요. 전시실이 또 다른 무대가 되고 토크나 세미나와 함께하는 행위 자체도 전시가 되는 거죠. 그래서 바닥에 지시선을 표시했고 가구에는 바퀴를 달았고요. 연극 무대에서 관객이 가구 배치를 통해 장소를 인식하듯이 지시선에 따라 가구 배치를 바꾸면서 공간의 역할도 바뀌도록 의도한 거예요. 이를 통해 아카이브 전시가 자료를 정리하거나 회상하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 우리와 함께하는 전시임을 보여주고 싶어요. 처음 시도해보는 방식이라 저도 어떨지 궁금해요.
EK 예산은 어떻게 집행되는지도 궁금해요. <종이와 콘크리트>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신다면?
YJ 예산은 프로젝트마다 따로 받아요. 전시마다 예산이 천차만별인데, 사실 전시 디자인에 많은 비용을 쓰기는 어려워요. 보통 전시에 필요한 벽체 비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종이와 콘크리트> 전시에는 벽을 두지 않았고, 대신 가구 제작 비용이 좀 들었죠. 저희 팀에서 자체 제작했어요. 이 가구들은 나중에 신진 디자이너나 다른 갤러리에 양도하는 식으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실제로 전시에 사용된 가구에 대해 문의하는 갤러리나 디자이너도 있거든요. 그렇게 계속 활용하면 가구도 생명력을 갖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아요. 2012년 정기용 전시에 사용했던 테이블은 지난 4~5년간 계속 활용했어요.
EK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한 방식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화이트 큐브 안으로 들어온 콘텐츠는 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YJ 전시 디자인 이론서에 따르면 중학교 2~3학년 수준에 맞추라고 해요. 하지만 우리 중학생들이 그리 평이한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웃음)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게 보여주는 기획이 답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경우 전달력을 잃거나 무색무취해지기 쉬워요. 그렇다고 정보를 강요하거나 마음먹고 와야 하는 전시가 되는 것도 좋은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EK 전문성과 대중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서 장르별, 작가별 특성을 가진 갤러리나 미술관이 존재하는 것일 테고요. 그런 의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두 가지를 담보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할 것 같아요.
YJ 기획은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호불호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의 입맛이나 취향이 평이할 거라고 단정하는 것도 사실 편견이죠. 대중 가운데에는 마니아도 있고 전문가도 있으니까요. 난해해 보이는 콘텐츠도 대중문화에 포함되고, 단 10%가 향유하는 것도 대중문화라고 생각해요. 대중은 차이가 많은 집단이라고 인식하면 다른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EK 전시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다른 이의 창작물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해요. 디자이너라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 그 점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YJ 처음에는 없지 않았죠. 당연히 모든 디자이너는 자신의 결과물이 알려지기를 바라니까요. 하지만 전시 디자인은 전시 디자이너가 드러나기보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드러날 때 성공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전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최근에는 점차 ‘전시가 좋았다’가 아니라 ‘전시 디자인이 좋았다’고 콕 집어 말해주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전시 디자이너만의 스타일이 분명히 보인다고도 하고요.
EK 그럼 김용주만의 스타일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YJ 제가 디자인한 전시 공간을 보고 남자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종이와 콘크리트>에서처럼 보여지듯 덩어리를 상부에 매다는 것 같은 굵은 터치나, 전시를 위한 오브제를 큼직하게 다루는 성향 등이 그렇죠. 이름을 보고도 대부분 남자인 줄 알아요. 어렸을 때는 중성적인 이름이라 참 싫었는데 일하는 입장에서는 성별을 모르는 상황에서 결과물로만 판단하게 되니 오히려 좋더라고요. 하지만 스타일이 콘텐츠보다 앞서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주의하려고 하죠.
EK 전시는 보여줘야 하는 콘텐츠가 명확히 주어지지만 그래서 제약도 많을 것 같아요.
YJ 그래서 전시 디자이너는 관람객, 학예사나 큐레이터, 작가 각각의 입장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 사이에서 접점자 역할을 해야 해요. 전시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관람할 때의 분위기나 경험, 인상도 함께 기억하기를 원해요. 특히 기획전이나 특별전의 경우 전시 기간이 짧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거든요. 그럴 때 연구적 가치와 부딪히는 경우가 있죠. 연구자적 관점에서는 작품 자체와 시대적 배경 등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표현하고자 하는 지점이 다를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어두운 공간에서 집중적 조명 방식을 통해 전시 공간 자체에도 강약을 주기를 원하는데 큐레이터나 작가는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에 조도를 원만하게 맞춰주기를 바라기도 해요.
EK 전시 디자인을 할 때 특별히 지키는 원칙이 있나요?
YJ 전시 디자이너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해요. 보여주는 방식에 따라 누군가 스타가 되기도 하고 그 사람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요. 담백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하다 보니 디자인이 더 어렵고요. <정기용 건축전>을 준비할 때 그런 고민이 가장 많았던 것 같아요. 정기용 선생님의 동료 건축가가 전시 디자인을 맡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국립현대미술관 소속 전시 디자이너가 맡는다는 얘기에 많은 건축가들이 의아해했어요. 그때 책상에 정기용 선생님 사진을 조그맣게 붙여놓고 ‘제가 당신의 삶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라고 자주 물어봤어요. 동료 건축가가 아닌 나는 정기용 건축가의 어떤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리고 건축가 이전에 한 인간의의 가치관과 모습을 보여주자는 데에 이르렀죠.
EK 전시 디자이너는 기자 역할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기자에 따라 같은 주제도 다른 관점으로 표현하듯이 전시 디자이너의 해석에 따라 작품과 작가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네요.
YJ 맞아요. 제가 항상 예를 드는 것 중 하나가 TV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이에요. 같은 주제를 던져도 전시 디자이너에 따라 분명 다른 해석이 나올 거예요. 그래서 더욱 핵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연구를 계속해야죠. 흔히 디자인은 단순히 장식하거나 포장하는 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디자인에는 계획과 연구의 개념이 포함돼요. 디자이너는 전달력을 지닌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기보다 콘텐츠와 주변을 누구보다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요.
EK 이제는 경력이 10년 넘은 베테랑이니 조금은 일이 수월할 것 같기도 한데요?
YJ 제가 전시 디자인을 1년에 10개 정도 한다고 보면, 10년 정도 지난 지금 100개에 가까운 전시를 한 셈이 돼요. 장르도 유물 전시부터 현대미술, 동서양을 막론하죠. 하지만 일이 익숙해지거나 경력이 쌓이는 것과 일이 쉬워지는 건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경력이 쌓였다는 건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이 커지는 것일 뿐 일이 쉬워지는 건 아니지 싶어요. 지금도 전시 준비하면서 잘할 수 있을지, 대중은 재미없어하지 않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요. 잠도 잘 안 오고요.(웃음)
EK 오랜 경력의 그래픽 디자이너는 컴퓨터와, 제품 디자이너는 제품과 대화한다고 하죠.(웃음) 전시 디자이너도 그런 경험을 하나요?
YJ 전시 오픈 전날, 전시실 불을 끄고 나가면서 항상 “내일 잘해”라고 말해요.(웃음) 아이를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아이 소풍 보낼 때의 걱정 반 설렘 반의 기분 같아요. 전시실에도 표정이 있어요. 오픈 후 약 일주일 정도는 전시실이 왠지 어색해하는 느낌이 드는데, 한 달 정도 지나면 전시실 스스로 관객과 이야기도 하고, 또 자신을 잘 펼쳐 보이는 여유가 보이기도 해요. 전시가 모두 끝나고 철거하기 전에는 괜히 미안한 마음도 생기고요.
EK 인터뷰를 하다 보니, 전시 디자인 자체가 생소한 분야였고 그만큼 쉽지 않았을 텐데 이쪽에 발을 들인 이후 다른 분야로 가야겠다거나 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던 것처럼 보여요. 계속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느낌이랄까요?
YJ 저도 신기해요. 그동안 “미술관 가서 뭐 하려고?”, “미술관에서 무슨 디자인을 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한 번도 제가 하는 일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처음 걷는 길이다 보니 앞뒤를 다 살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혼자 가는 느낌이 아니라 항상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었고요. 그래서 놓을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이제 선배가 된 입장에서 후배들이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제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되죠.
EK 이제 전시 디자인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더욱 그런 목소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YJ 아직도 전시 디자인을 전문성 있는 분야로 인정하기보다는 ‘없으면 외부 디자이너에게 맡기지’, ‘큐레이터가 하면 되는 거 아냐?’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굳이 내부에 정규직으로 둘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그래서 학문적 분야로서도 전문 분야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해요. 전시 디자이너도 더욱 전문성을 갖춘 존재가 되어야 하고요. 대체되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이 아니면 이게 안 될 것 같아’가 되어야죠. 소속이 있더라도 ‘어디에 소속된 누구’ 라는 기관 이름에 기댄 소극적 주체가 아니라 능력의 필요성이 인식되는 주체여야 한다는 거예요.
김용주는 전시 이후에도 어워드 출품과 함께 학술 발표를 통해 기록을 남기는 한편, 학회를 통한 네트워크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전시 A-Z>(한언)이라는 책도 공저로 발간했다. 국내에는 번역서 외에 전시 디자인 관련 책이 거의 없었기에 이런 기록과 자료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필드를 떠난 이후에 이 직업이 스리슬쩍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연구자 성향의 디자이너라고 말했지만, 그녀에게서는 탐험가이자 개척자적 기질이 엿보였다. 그 모습은 여성스러운 라인의 원피스를 입고 굵직한 남성용 시계를 착용한 그녀의 상반된 스타일, 부드럽고 예의 바르지만 단호하면서도 맺음이 정확한 그녀의 말투와도 왠지 모르게 겹쳐졌다.
EK 전시 디자인의 매력은 뭔가요?
YJ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를 만난다는 것이죠. 매번 다른 장르가 주어지고 에너지가 충만한 작가들을 만나고요. 가장 감사한 부분은 한 사람의 인생을 볼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이에요. 작품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전시 공간에 펼쳐놓고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낼 기회가 생기니까요. 전시 디자이너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인 것 같아요. 사실 일이 많을 때는 해치운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럴 때 작가들을 만나고 나면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죠. 작가에게는 그 전시가 인생의 이벤트이자 사건인데, 제가 허투루 할 수 없잖아요. ‘그만할까’, ‘대충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런 사명감이 계속 저를 여기까지 밀고 온 것 같아요.
EK 국내에도 해마다 많은 전시가 열리고, 또 사람들도 점차 전시를 일상에서 향유하는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전시는 우리에게 어떤 이벤트일까요?
YJ 전시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지점이에요.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펼쳐지는 하늘의 노을처럼 나에게 감정적 부분을 건드려주는 신(scene)이 있다면 그 또한 전시죠. 본래 전시(展示)의 한자가 ‘펼쳐서 보여준다’는 의미지만 건축가이자 전시 기획자인 이재준 소장님의 말을 빌리자면 ‘펼칠 전(展)’이 아니라 ‘새길 전(鐫)’을 쓰고 싶은 거죠. 펼쳐 보여주는 것 중에 내 마음에 새겨지는 한 장면, 감동적인 주변 상황도 전시일 수 있어요.
EK 최근 전시 방식의 특별한 추세나 경향이 있나요?
YJ 장르나 메시지별로 워낙 다르기 때문에 특정 추세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최근에는 이미지를 중시하다 보니 공간 자체가 SNS에 올리기 좋은 용도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대중이 좋아하고 SNS에 많이 노출되어 좋은 점은 있지만 막상 전시를 보면 과연 표현 방식이 적합한가 하는 의문이 생기거든요. 요즘 남발되는 용어 중 하나가 ‘큐레이터’, ‘전시 디자인’인데, 이를 단순한 콘텐츠의 조합이나 예쁘게 실내를 장식하는 개념으로 보고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콘텐츠를 보여주기 위한 분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죠.
EK 가장 인상 깊게 본 전시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YJ 독일 뮌헨의 모던 피나코테크(Neue Pinakoth)의 상설 전시실은 전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에요. 공간에 장식은 하나도 없고 하얀 벽체만 있는데, 저는 거기서 디자인의 정수를 느꼈어요. 상설 전시실은 보통 지루하기 마련인데 그 안에 전시 디자인의 핵심이 있었어요. 어릴 때 봤다면 대체 무엇을 디자인한 건가 싶었겠지만, 10년 정도 전시 디자인을 해온 입장에서 보니 콘텐츠를 이미 다 소화해서 뱉어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놀라우면서도 질투가 나기도 했어요.
김용주는 보통 3~4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릴 <신여성, 도착하다>전(12월 20일~2018년 4월 1일)과 과천관에서 열릴 <리처드 해밀턴>전(11월 3일~2018년1월 21일) 그리고 내년 오픈 예정인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개관 전시를 준비 중이다. 스스로 ‘멀티플레이어가 힘든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김용주는 그래서 하나하나 깊이 파고드는 자신의 성향에 관해 ‘다행히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또 재미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전시를 위한 크고 작은 과정 하나하나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건 작가와 관객을 비롯해 비영리 목적의 미술관, 특히 한 나라의 대표 미술관 소속 디자이너로서의 책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 전시 준비 중 시공 현장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얼굴이 부어오르는 상황을 감수하면서도 전시장에 서 있는 이유다. 그녀에게 최근 주어진 또 하나의 큰 프로젝트는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의 한국관 전시 디자인이다. 정림문화재단 박성태가 예술 감독으로, 김용주가 전시 디자이너로 함께할 예정이다.
EK 과거 인터뷰에서 종종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을 디자인해보고 싶다고 언급했는데 꿈을 이룬 셈이네요.
YJ 한국에서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의 시대적 이슈를 건축이 어떻게 투사하고 있는지 다루려고 합니다. 일단 한국관의 공간과 컨디션부터 다시 파악할 생각이에요.
EK 전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높아졌습니다. 관심을 갖는 학생도 많아졌고요. 앞으로 전시 디자이너의 가능성을 어떻게 얘기해주고 싶은가요?
YJ 앞으로 미술관은 더 많아질 거예요. 소수만이 누리는 문화로 여겨지던 미술관 콘텐츠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점차 대중화되고, 그럴수록 박물관의 전시 방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죠. 특히 디지털의 발전과 더불어 가상현실이나 온라인 전시도 성장할 거예요. 하지만 그럴수록 오프라인의 공간적 경험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는 작품 하나를 본다는 개념이 아니라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얻는 총체적 경험이니까요. 그래서 전시 디자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거예요. 더디지만 지속적으로 상승 곡선을 그릴 거라고 봐요.
EK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YJ 영화나 연극, 뮤지컬을 많이 봐요. 청각적 요소나 색감, 구도를 통해 어떻게 감정이 배가되고 표현이 달라지는지를 느끼죠. 예를 들어 영화 <화양연화>에서 거울을 통해 주인공의 표정을 잡아내는 방식은 정말 흥미롭잖아요. 그 시선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EK 개인적으로 전시해보고 싶은 콘텐츠나 주제가 있나요?
YJ 박동우 무대감독님을 무척 좋아하는데, 언젠가 그분의 작품으로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명성황후>에서 상·하부의 공간 활용을 통해 조선인의 갈등을 그린 점도 그렇고, <메디아>는 작은 무대인데도 조명의 높낮이를 통해 공간감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죠. 특히 무대 중간에 위치한 원기둥을 통해 효율적이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잘 표현했어요.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장면 전환이나 표현이 놀라울 때가 많아요.
EK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뤄진 것처럼 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또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요?
YJ 단테의 <신곡>을 무대에 올려보고 싶어요. 벽 3개만 두고 천국과 지옥, 연옥을 추상화시켜서 접근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현직에서 물러나면 불합리한 시스템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동안은 성과를 통해 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는데 결코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도를 불평하기보다 이를 바꿀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전시 디자이너 김용주의 ‘잊히지 않는 영화·연극의 탁월한 미장센’
1 뮤지컬 <영웅>(연출 윤호진, 무대 디자인 박동우, 주연 정성화·양준모 등)
이토 히로부미를 기차에서 암살하려다 실패한 설희가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결하는 장면과 독립군과 일본 순사의 추격 장면은 물리적으로 한정된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관객을 당시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2 영화 <야연>(감독 평샤오강, 주연 장쯔이·오언조 등)
장면마다 펼쳐지는 컬러 대비와 자연과 인공 구조물의 스케일 대비, 그 속에서 연기자의 의상과 디테일한 소품, 안무가 곁들여진 움직임은 눈 깜빡임이 아까울 정도로 탁월하다.
3 영화 <글래디에이터>(감독 리들리 스콧, 주연 러셀 크로·호아킨 피닉스 등)
주인공 막시무스(러셀 크로)가 검투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눈을 감고 생각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갈대숲은 색감과 갈대의 흔들림, 배경 사운드가 조화를 이루며 흙냄새와 피 냄새, 불 냄새가 천천히 그리고 깊게 다가온다.
4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연출 이윤택, 무대 디자인 이태섭, 주연 백석광·이자람 등)
조선왕실의 비극적 역사와 그 가운데 한 사람의 고뇌, 사랑, 증오, 그리고 죽은 자와 산 자의 교차적 상황 등을 장면 전환 없이 변화무쌍하게 담아낸다. “틀렸다. 다 틀렸다. 늬놈들의 붓끝에 놀아나는 세상, 나는 미친 광대였구나.”라는 연산의 대사를 시각적으로 펼쳐놓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