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디자인 듀오의 서바이벌 가이드 M/M Paris

전시를 하루 앞둔 11월 23일, 이번 전시를 위해 내한한 M/M 파리 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Mathias Augustyniak)에게 그 생존 비결에 대해 물었다.

이 디자인 듀오의 서바이벌 가이드 M/M Paris
M/M 파리의 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
M/M 파리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 출신인 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와 미카엘 앙잘라그 (Michael Amzalag)가 1992년 결성한 디자인 듀오. 기호나 패턴, 상징적 이미지의 함축적 의미를 조합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는 이들은 2001년 매거진 <V>를 위해 디자인한 알파벳 연작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보그> 파리와 <인터뷰>의 아트 디렉터를 역임했고 에르메스, 요지 야마모토, 마크 제이콥스 등 패션 브랜드의 그래픽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다. 또한 비요크, 카니예 웨스트, 마돈나 등의 앨범 커버 워크를 디자인했는데 이 중 비요크의 2013년 앨범 <바이오필리아Biophilia>로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 부문을 수상했다. 파리 퐁피두 센터, 뉴욕 드로잉 센터, 런던 빅토리아 & 앨버트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 M/M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www.mmparis.com

2001년 인류는 세 번째 밀레니엄을 맞이했고 세상은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감에 차 있었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그해 1월 위키피디아(Wikipedia)가 시작됐고 3월에는 애플이 완전히 새로워진 OS X를 발표했다. 2001년은 프랑스의 그래픽 디자인 듀오 M/M 파리가 알파벳 연작을 발표하고 <보그> 프랑스의 아트 디렉터로 임명된 해이기도 했다(회사가 아닌 디자인 듀오가 아트 디렉팅을 맡는 것은 당시에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일은 당시 그래픽 디자인 분야가 얼마나 생동감 넘쳤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곳곳에서 실험적인 디자인 스튜디오와 듀오가 등장했고, 지적이고 추상적인 작품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미래처럼 보였던 수많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는 하나둘 문을 닫았고 의욕 충만했던 젊은 디자이너들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상황이기에 M/M 파리의 행보는 한층 더 빛을 발한다. 바이레도(Byredo), 아크네(Acne), JW 앤더슨(JW Anderson), 로에베(Loewe),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부터 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 비요크(Bjork)의 앨범 디자인까지, 20세기 끝자락에서 피어나 21세기를 관통해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인 이들은 ‘그래픽 디자인 분야는 유독 세대교체가 빠르다’는 통설이 무색하게 만든다. 그러니 분명 이들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 특별한 비결이 있으리라. 지난 11월 24일부터 3월 18일까지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는 M/M 파리의 국내 첫 개인전 <M/M 사랑/사랑>이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전시를 하루 앞둔 11월 23일, 이번 전시를 위해 내한한 M/M 파리 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Mathias Augustyniak)에게 그 생존 비결에 대해 물었다. 글: 김지석(미스터존스 어소시에이션), 담당: 최명환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Citronnier au Laurier’. 실험적인 설치물이다. 여러 개의 레몬 눈이 달린 이 나무는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M/M 파리가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린 2000년대 초는 말 그대로 그래픽 디자인계의 황금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 분야에서는 지적이고 추상적인 담론이 활발하게 오갔죠. 그러나 이후 많은 스튜디오가 시대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M/M 파리가 25년이라는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행운과 직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미카엘은 1967년, 1968년에 각각 태어났습니다. 유토피아적 낙관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였죠. 인간이 처음 달에 착륙하는 것을 목격했고 레코드 패키지, 영화 포스터, 올림픽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담긴 아름다운 디자인이 등장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래픽 디자인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졌던 모든 문화와 영역을 관통하는 언어였습니다. 행운과 직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그 시기에 그래픽 디자인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거겠죠. 하지만 우리는 세상이 언제나 쉬지 않고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한때 ‘그래픽 디자인’이라고 불렀던 분야가 언제든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오늘 유효했던 어떤 것이 당장 내일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자신이 유용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고요. 이런 변화를 읽고 유연하게 대처했던 것이 저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일 겁니다.

M/M 파리를 디자이너가 아니라 아티스트로 보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도 같은 이유일까요?

어쩌면요. 우리는 디자인할 때 그것이 특정 제품이 아닌 문화를 알리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죠. 그 방법은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때론 저희의 방법론이 그래픽 디자인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을 겁니다(그들은 무대를 디자인하고 카펫, 네온사인, 설치 작품, 가구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피카소나 마티스 같은 아티스트를 보세요. 그들은 시기별로 완전히 다른 작업을 보여줍니다. 아티스트에게 이런 방식은 매우 자연스럽죠. 삶의 사이클이 변하듯 우리의 작업도 거기에 맞춰 변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죠. 통상 그래픽 디자인이라고 하면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문 서비스업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때론 클라이언트가 이미 원하는 답까지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죠. 당신은 다른 인터뷰에서 클라이언트를 ‘협력자’라고 말하고 ‘맞는 대답을 찾아주는 것보다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도 M/M 파리만의 원칙이나 방법론이 있나요?

패션 분야를 예로 들어보죠. 처음 M/M 파리가 패션 하우스와 일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그래픽 디자이너와 패션 디자이너의 관계는 매우 1차원적이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팔고 싶은 상품이 있었고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그걸 홍보할 방법을 찾아주는 식이었죠. 우리가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들 사이에 새로운 협업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들이 예전에 기대하던 것 이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거든요. 즉 이제 패션이 단순히 옷을 홍보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헬무드 랭(Helmut Lang) 그리고 초기의 프라다 같은 브랜드를 (단순한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같은 철학을 공유한 협력자였다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과는 이전에 미처 문화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을 건드리며 패션 하우스의 진화에 앞장섰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JW 앤더슨 같은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이러한 진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뮤지션들과의 협업에서도 M/M 파리가 그러한 진화에 앞장섰다고 생각하나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 했던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뮤지션들은 더 큰 변화를 겪었죠. 2~3년에 한 번씩 앨범을 내고 그 앨범을 몇백만 장씩 팔아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비요크는 물론 재능 있는 아티스트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녀의 음악이 의미를 가지려면 앨범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스스로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하죠. 카니예 웨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요크나 카니예 웨스트 같은 아티스트들은 본능적으로 이 시대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렇기에 훌륭한 협력자라고 할 수 있죠.

비요크의 싱글 앨범 <크리스털라인Crystaline>의 커버 디자인. ‘우주, 은하’를 콘셉트로 한 신비로운 느낌의 비주얼이 특징이다. M/M 파리는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비요크와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브랜드나 아티스트로부터 협업 제안을 많이 받을 텐데 특별히 파트너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얼마나 관계가 장기적으로 지속적일 수 있는지를 살핍니다. 저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함께 일하는 협력자가 저희와 동등한 선상에 있길 바랍니다. 여기서 동등하다는 것은 일종의 권력 관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협업을 원하는 파트너가 저희를 힘으로 제압하려 든다면 그 관계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막다른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관계는 우리의 몸값을 크게 불려서 최고로 비싼 비용을 받아내기 위한 관계 이상은 될 수 없어요. 우리가 25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우리만큼 강하고 동시에 우리를 존중하는 협력 관계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6~7년, 길게는 20년씩 지속된 관계 말이죠. 이런 장기 프로젝트는 서로를 존중하고 자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고 그 바탕에는 동등한 관계가 존재합니다. 이런 신뢰가 있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요.

M/M 파리는 문화·예술계를 이끄는 지적이고 감각적인 이들과 함께 협업하기로 유명합니다. 만약 맥도날드나 이케아 같은 거대 기업이 프로젝트를 제안한다면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접근할 건가요?

저희는 모든 프로젝트가 지적이고 섬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특정 소수만을 위한 디자인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대중은 우매하다’는 발상을 매우 혐오합니다. 대중은 똑똑합니다. 단지 이들을 우매하다고 간주해버리고 그렇게 다루는 사람들 때문에 우매하게 보이는 것뿐이죠. 대중을 우매한 대상으로 간주하고 메시지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대중을 위해 지적이고 섬세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은 거대 기업의 담당자들입니다. 필요하다면 그들을 설득하거나 싸울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물론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합니다. 그들이 우리가 하려는 일이 너무 복잡하거나 어렵거나 대중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할 때 말이죠. 우리는 우리의 방법이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결과로 증명했고요. 대기업일수록 (급진적인 방식에) 더 많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안심시키고 새로운 방향으로 밀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애플을 생각해보세요. 대중을 스마트한 대상으로 바라보면서도 얼마든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요? 이들이 파는 제품은 철저하게 추상적이고 우아합니다. 마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올 법한 디자인이죠.

그게 증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렇습니다! 얼마든지 대중을 똑똑하게 다루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죠. 우리가 만드는 어떤 것도 인간만큼 복잡할 수는 없습니다. 대중을 지나치게 단순한 존재라고 간주하고 일일이 설명하려고 든다면 결코 흥미로운 해결책을 낼 수 없어요. 지나치게 단순한 것은 절대 매력적일 수 없습니다. 한눈에 알 수 없는, 어느 정도 미스터리한 요소가 있어야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M/M 파리의 모든 디자인에는 어느 정도의 복잡함과 그것을 시각화한 미스터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게 없으면 지루할 뿐이니까요. 그리고 지루함은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최근 라코스테와 협업해 완성한 2017 홀리데이 컬렉터 에디션. L, A, C, O, S, T, E 7개의 알파벳을 이용해 악어 형상 로고로 재탄생시켰다.
마지막으로 내일(11월 24일)부터 열리는 <M/M 사랑/사랑>전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M/M 사랑/사랑>전은 지난 25년간 진행한 우리의 주요 작품을 전시하는 회고전입니다. 전시명은 우리의 이니셜 M의 프랑스식 발음이 ‘사랑’을 뜻하는 ‘Aime’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지하 2층은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의 공식을 따라 구성했는데, 식사로 치면 일종의 애피타이저라고 볼 수 있죠. 반면 지하 3층은 본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상상의 정원’을 콘셉트로 전시장을 연출해보았습니다. 작품 사이를 지날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즐겨도 좋고 잠시 멈춰 이 공간을 만들기까지 오간 수많은 대화를 상상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치 고고학자가 된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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