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많은 영화 포스터, 영화 〈기생충〉을 둘러싼 디자인

영화 〈기생충〉만큼이나 〈기생충〉을 둘러싼 모든 것이 흥미로운 요즘이다.

할 말 많은 영화 포스터, 영화 〈기생충〉을 둘러싼 디자인
디자인 라 보카, laboca.co.uk

“우리는 영화가 가진 다채로운 층위와 기호를 통해 여분의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이를 즐겼다. 비록 내러티브 자체는 그렇게 즐겁지 않지만, 밑바탕에 깔려 있는 어두운 유머 감각을 표현하고 싶었고 영화 속 세세한 부분을 가능한 한 많이 묘사하는 동시에 아주 단순한 스타일로 만화책의 예술을 연상시키고 싶었다. 영화에서는 건축, 특히 계급 구조를 유추할 수 있는 계단에 대한 아이디어가 중요했기 때문에 디자인의 시작점은 건축과 계단으로 잡았다(개인적으로 영화 속에서 사회적 지위를 이렇게 간단한 장치로 표현했다는 것에 감동받았다). 포스터에서는 영화의 주제를 압축하는 수많은 상징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테이블 밑에 숨겨진 오스카 트로피는 우리가 추가로 포함시킨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영국 개봉에 맞춰 포스터 작업을 한 디자인 스튜디오 라 보카La Boca의 스콧 벤달Scot Bendall이 밝힌 디자인 스토리다. 아카데미가 열리기 며칠 전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그는 〈기생충〉을 세 번 봤고, 그 횟수는 계속 더해질 것이라고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지금, 라 보카가 또 다른 버전의 포스터를 발표한다면 이젠 그 속에 3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더 숨겨야 할 것이다. 2020년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이 수상한 부문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4개에 달하니까 말이다.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기생충〉에 대한 수많은 찬사와 평은 생략하고 포스터를 둘러싼 이야기만 한다 해도 이번 기사의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월간 〈디자인〉은 일찍이 〈기생충〉 국내 개봉 당시 화제가 된 포스터 디자인을 다뤘다. 금방이라도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의 현장 속, 눈을 가린 등장인물들이 불길한 예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그 포스터 말이다. 이를 디자인한 영화감독 겸 그래픽 디자이너 김상만은 당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며 구체적인 해석을 피했다. 이후 세계 각국에 〈기생충〉이 개봉될 때마다 새롭게 선보이는 포스터 역시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이를 해석하는 디자이너들의 감각과 아이디어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 역시 높아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배급사인 조커스 필름The Jokers Films의 의뢰를 받아 일러스트레이터 마리 버거롱Marie Bergeron이 선보인 포스터 역시 화제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 사이의 구분이 주요 개념이었다”는 그녀의 말대로 포스터는 한 건물에 존재하지만 극명하게 다른 위(박 사장네 집), 아래(기택이 사는 반지하)의 집을 보여준다. 같은 세계에 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앤드루 배니스터Anrew Bannister는 라 보카와 마찬가지로 ‘계단’을 주요한 모티프로 삼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불가능한 형태의 펜로즈Penrose 계단을 중앙에 두고 이를 경계로 절반은 부유한 박씨 일가가 오르는 장면을, 나머지 절반에는 김씨 가족이 어두운 지하 공간에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포스터에서 위아래 구분은 중요하지 않으며(180도 회전해서 걸어도 무방하다) 두 가족의 모습을 담은 지면 역시 대칭을 이루듯 균등한 비율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에서 이 두 가족은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지만 실은 매우 닮은 모습이기에 포스터 안에서는 평등하게 그리려 했다”는 설명이다. 〈기생충〉의 제목으로 처음 지은 것이 ‘데칼코마니’였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기생충〉은 세계 여러 나라의 아티스트들이 팬 아트로 제작하는 한편, 북미 배급사 네온Neon에서는 티셔츠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굿즈도 나오고 있다. 네온은 영화를 넘어서 봉준호 감독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며 토론토의 디자인 스튜디오 팬텀 시티 크리에이티브Phantom City Creative에 의뢰해 이에 대한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만큼이나 〈기생충〉을 둘러싼 모든 것이 흥미로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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