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몸짓이 디자인이 된다, 피나 바우슈+페터 팝스트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난 피나 바우슈는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무너뜨린 ‘탄츠테아터(Tanztheater)’라는 장르를 통해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녀의 몸짓이 디자인이 된다, 피나 바우슈+페터 팝스트
올해 3월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스위트 맘보>. 흰 천과 물로 슬픔과 기쁨 같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했다.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난 피나 바우슈는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무너뜨린 ‘탄츠테아터(Tanztheater)’라는 장르를 통해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새로운 시도는 늘 대중의 극렬한 거부감을 먼저 대면하기 마련인가 보다. 바우슈의 첫 번째 안무작 <프리츠Fritz>(1974)의 새로움은 당시 독일 평단과 관객들에게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댄서들의 움직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충격을 준 건 무대였다. 바우슈의 1970년대 초기 주요 작품의 무대와 의상을 디자인했던 롤프 보르지크(Rolf Borzik, 1944~1980)는 바우슈와의 첫 협업 작품 <프리츠>에서 일상생활을 무대로 끌어들인다. 자신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무대’라는 공간에 대해 가지고 있었을 신성성에 대한 모독과도 같았을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반응은 일견 수긍이 된다. 이후 바우슈는 조금 더 고전적인 소재인 글루크의 오페라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1974),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 케>(1975)를 택한다. 무대로 일상을 끌어들이는 ‘새로운 자세’는 여전히 유지한 채 말이다. 그리고 관객이 그녀의 작품을 보기 전에 갖는 안무에 대한 호기심은 동시에 무대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했다. 바우슈의 삶의 동반자이기도 했던 보르지크는 바우슈의 완벽한 협력자이자 함께 무대 철학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리고 1980년 보르지크 사망 후 바우슈는 보르지크의 친구였던 페터 팝스트(Peter Pabst)에게 탄츠테아터 부퍼탈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한다. 이후 팝스트는 30년간 총 26편의 무대 디자인을 하며 바우슈와 함께했다. 바우슈 작품 창작의 시작에는 아이디어와 주제만 있다. 당연히 작품 초기에는 어떤 공간적 상상을 할 수 없다. 바우슈 무대에서 드러난 팝스트의 특징은 공간 자체보다 최소한의 장치를 통해 응축된 시적 정서를 드러내는 것이다. <마주르카 포고Masurca Fogo>에 등장하는 높은 바위 절벽, <탄츠아벤트2Tanzabend 2>에서 소금으로 표현한 눈이 쌓인 풍경, <풀 문Full Moon >의 쏟아지는 물 등 바우슈 공연에서 선보인 팝스트의 무대는 인위성을 최대한 배제한 채 이러한 자연현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하지만 극장 밖에서는 그냥 바위였던 존재가 극장 무대 위로 올라가면 응축된 상징으로 청중의 상상력을 풀어 헤치게 만든다. 팝스트의 무대는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오브제가 중심이 되고 그 의미의 확장이 사람, 즉 댄서와 물리적으로 부딪힌다. 그리고 부딪히는 동안 서로 변형을 받아들이며 공존을 추구한다. 그에 따르면 자연만큼 풍부한 영감을 주는 것은 없다. 그것이 공간과 자연 상호 간의 관계를 통한 자극을 만들고 또 그것이 다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그의 무대는 때론 모호하고, 달리 보면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것은 바우슈가 추구하는 안무 철학과 그대로 맞닿는 지점이다.
글: 황보유미(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Interview
페터 팝스트 무대 디자이너
“피나와의 작업은 늘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지난 3월 <스위트 맘보Sweet Mambo> 공연에 맞춰 방한한 페터 팝스트를 만났다. 약 한 시간에 걸쳐 그는 피나 바우슈와 함께한 30여 년의 시간을 이야기했다.

<풀 문>의 한 장면. 댄서들이 바닥이 흥건한 물 위에서 춤을 춘다.
바우슈의 무대에는 꽃이나 물, 모래, 바위 같은 자연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무대에서 구현하기 특히 까다로운 소재인데 어려움은 없나?

극장에 따라 소재 선택이 많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일본 국립극장은 물이나 흙 같은 자연 소재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럼에도 자연 소재를 시도하는 이유는 무대라는 인공적인 공간에 놓였을 때의 마찰과 대립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 소재는 따뜻하고 감성적이며 무제한적으로 변형이 가능하다. 물론 복잡한 기계 장치가 많은 공연장에 이런 소재를 사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물을 사용할 때는 감전 위험이 있고, 잔디를 무대에 깔았을 때는 계속 가꾸고 물도 줘야 한다. 매번 다른 방식 때문에 스태프들도 힘들어하지만 결국 좋은 무대가 나온다.

바우슈는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오페라나 연극 등 다른 무대 작업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안무와 음악, 무대, 의상 등이 어떤 프로세스로 이루어졌는지도 궁금하다.

연극이나 오페라는 매우 조직적이다. 특히 오페라는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비교적 엄격하고 본래 잘 짜인 시나리오가 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제약도 있다. 반면 바우슈와의 작업은 모든 요소를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다. 텍스트도 음악도 안무도 디자인도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녀는 심지어 무대 세트를 잘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무대 이미지가 오히려 그녀의 작품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심하게 “작품의 콘셉트는 뭔가?”라거나 “무대가 어땠으면 좋겠나?”라고 몇 년을 물어봤지만 명확한 답을 들은 적은 없다. 지금껏 했던 26편의 바우슈 작업은 안무, 무대, 음악, 텍스트 같은 요소가 동시에, 또 별도로 이루어진다. 댄서들이 물을 이용해 무언가를 연습한다면 그건 무대를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바우슈조차도 장면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태이고, 나는 여러 모형을 만들어 바우슈가 괜찮다고 하는 것을 골라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팔레르모 팔레르모> 무대를 만들 때는 부퍼탈에 있는 옛날 극장 벽이 계속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나중에 바우슈와 나란히 앉아 댄서들이 춤추는 것을 한참 보다가 벽을 세워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와 나누는 이야기(사실 우리는 대화도 많이 하지 않았다)와 감정, 생각이 곧 무대의 시작이다

한국을 주제로 한 공연 <러프 컷Rough Cut>. 바위와 물 등 자연에서 가져온 배경 속에서 댄서들이 뒹굴고, 청소하고, 기어다닌다.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과 소통에 대한 열망을 담았다. 무대를 덮은 암벽에는 공연 내내 등산객이 올라가 있다.
다양한 무대장치나 소재를 사용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

배우 혹은 댄서다. 특히 바우슈의 무대는 물이나 바위 등 춤을 추기 비교적 힘든 소재가 많은데, 댄서들은 한 번도 ‘여기서 못 추겠다’거나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탄츠아벤트 2> 공연에서는 눈이 쌓인 언덕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 위에 소금 10톤을 뿌렸다. 댄서들이 밟는 소금의 질감 때문에 독특한 춤이 나왔다. 춤을 추다가 소금이 입에 닿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직접 먹어보면서 테스트하고, 약국에서 100g 단위로 파는 중성 소금을 사다 날랐다.

무대 디자인의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만나는 사람, 먹는 음식, 지나치는 풍경 등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이다. 집에 책도 가득하지만 거의 읽지 않는다. 사실 잘 건드리지도 않는다.(웃음) 책을 읽거나 전시를 가거나 영화를 보는 건 개인적인 흥미일 뿐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미지나 텍스트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카네이션>에서는 무대 위를 카네이션으로 가득 뒤덮어놓고 전쟁, 권력, 갈등, 사랑과 희망 등을 표현한다.
무대 디자인을 할 때 디자이너는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까?

무대는 복합 예술이다. 다른 디자인 영역보다도 관대함이 필요하다. 모든 무대가 작품의 하나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의상이나 소품 등의 분야도 이런 점을 이해해야 가능한 작업이다. 초창기에 무대 의상 작업을 할 때 대놓고 의상이 돋보이도록 만든 적이 있다. ‘의상이 훌륭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생각해보면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의 일상복처럼 보여야 잘 만든 의상인 것이다. 의상이나 무대는 되도록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무대 디자인을 하면서 ‘공연은 별로였는데 무대는 최고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당신에게 무대는 어떤 의미인가?

무대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나는 극장에서 하는 ‘백스테이지 투어’ 같은 이벤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대는 마법이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곳이어야 하는데 그 노하우를 보여주는 건 무대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발트프라이덴 조각 공원에서 열린 페터 팝스트의 설치 작품전 (2014). 댄서가 빠진 피나 바우슈의 무대를 설치미술 형태로 보여주었다. ⓒSuleyman Kayaalp
무대 디자이너로 바우슈와 30여 년간 함께 일했다. 그녀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바우슈의 작업은 내 전체 작업의 25% 정도다. 하지만 그녀를 만난 일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녀의 무대는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공연 3주 전에 무대 세트를 짓기 시작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첫 공연이 의상 리허설인 적도 있었다. 공연 직전에 안무를 전부 바꿔 댄서들이 한 시간 동안 다시 연습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힘든 일이었지만 이는 곧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관객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우슈의 공연은 무대, 춤, 음악, 소품 등 많은 요소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그 때문에 나 역시 바우슈의 공연을 볼 때마다 다른 요소가 보이고, 10년이 지나서 다시 보면 또 다른 시각이 생긴다. 그것은 바우슈의 무대를 함께하는 모두에게 특권이자 행운이다.

인터뷰: 오상희 기자, 인물 사진: 김규한 기자

의상 제작 견습생으로 처음 무대 관련 일을 시작한 이후 보훔 테아터(Bochum Theatre)의 연출가 페터 자데크(Peter Zadek)를 만나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일했고, 극작가 한스 노이엔펠스(Hans Neuenfells), 연극 연출가 루크 본디(Luc Bondy), 영화감독 요하네스 샤프(Johannes Schaaf)와 같은 독일 거장들과 일하며 연극, 오페라, 영화의 의상과 세트 디자인을 맡았다. 바우슈와는 30여 년간 함께 일하며 <스위트 맘보> <천지> <네페스> <풀 문> <팔레르모 팔레르모> <카네이션> 등 26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팝스트는 3년 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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