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이 들려주는 ‘상상 사용법’ CEO 클라우디오 루티, 디자이너 피에르 리소니

지난 9월 13일, 카르텔과 협업해온 세계적 디자이너 40여 명의 2700여 점의 제품, 가구, 조명, 그래픽, 사진을 아우르는 전시 <판타스틱 플라스틱: 상상 사용법>의 오프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카르텔 CEO 클라우디오 루티(Claudio Luti)와 카르텔의 대표적인 협업 디자이너 피에르 리소니를 만났다.

카르텔이 들려주는 ‘상상 사용법’ CEO 클라우디오 루티, 디자이너 피에르 리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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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뮤지엄 전시장 입구에서 카르텔 회장 클라우디오 루티(오른쪽)가 디자이너 피에로 리소니(왼쪽)와 협업한 피우마 체어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지금 한남동 디뮤지엄에서는 디자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재 플라스틱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기적의 소재로 불리는 플라스틱이 어떻게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다채롭게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발상의 전환을 이끈 소재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21세기 디자이너 열전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협업 디자이너 라인업이다. 필립 스탁(Philippe Starck), 론 아라드(Ron Arad), 리처드 섀퍼(Richard Shapper),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안토니오 치테리오(Antonio Citterio), 피에로 리소니(Piero Lissoni), 파트리샤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 요시오카 도쿠진(Tokujin Yoshioka), 넨도(Nendo) 등 당대를 대표하는 슈퍼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반짝이는 플라스틱으로 해석해냈다. 눈을 뗄 수 없는 판타지 가득한 전시 디자인 또한 이미 알고 있던 카르텔의 조명과 가구에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는다. 지난 9월 13일, 카르텔과 협업해온 세계적 디자이너 40여 명의 2700여 점의 제품, 가구, 조명, 그래픽, 사진을 아우르는 전시 <판타스틱 플라스틱: 상상 사용법>의 오프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카르텔 CEO 클라우디오 루티(Claudio Luti)와 카르텔의 대표적인 협업 디자이너 피에르 리소니를 만났다.
글: 김은아 기자, 인물 사진: 김정한(예 스튜디오), 자료 제공: 디뮤지엄

클라우디오 루티 카르텔 설립자인 줄리오 카스텔리와 안나 카스텔리 페리에리의 사위로 1988년 가족 경영권을 이어받은 후 현재까지 카르텔 수장으로 일하며 이탈리아 가구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카르텔 회장이 되기 전에는 베르사체(Versace) 설립 파트너이자 매니징 디렉터로 패션 분야에 몸담았으며, 카르텔의 경영난이 제기되던 시점에 합류해 필립 스탁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오늘날 카르텔의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킨 인물로 통한다. www.kartell.com

클라우디오 루티
“카르텔의 디자인 스타일은 없다. 전략만 있을 뿐이다.”

피에로 리소니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밀라노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이탈리아 주방 가구 브랜드 보피(Boffi)에서 디자이너 겸 아트 디렉터로 일했다. 1986년 건축 회사 리소니 아소시아티를 설립한 이래 카시나, 카르텔 등의 브랜드와 협업하며 다양한 가구를 선보였고, 예루살렘 마밀라 호텔, 암스테르담 컨저버토리움 호텔, 한국 신라스테이 등의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www.lissoniassociati.com

피에르 리소니
“어떤 기업이 꾸준히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 뒤에 얼마나 많은 ‘우주’가 뒷받침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는 전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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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기술의 발달로 컬러감과 모듈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가구를 제작하기 시작한 1960~1970년대의 플라스틱 가구. ©D MUSEUM
카르텔은 2019년이면 70년 역사의 브랜드가 된다. 오래도록 변치 않는 카르텔의 원칙과 최근 달라지고 있는 내부적인 변화가 있다면?

(루티) 전략적 관점에서는 변한 것이 없다. 내가 1988년 회사 경영권을 맡으면서 채택한 주요 전략이자 목표는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유행을 타지 않으며 오래가는 최고의 디자인을 대량생산하는 것이었다. 세계 최고의 도시에 단독 매장을 열어 브랜드를 알리는 것도 전략 중 하나다. 예전보다 제품 수가 더 늘어난 점, 온라인 숍으로 리테일 영역을 대폭 확장한 점, 호텔 등에 직접 공급하는 비율 또한 늘어난 것이 내부적 변화라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서 피에르 리소니에게 카르텔은 어떤 의미인가?

(리소니) 카르텔은 이탈리아 브랜드로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를 아우르는 디자인 역사에 남을, 현대 디자인을 대표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건축학도 시절에도 카르텔은 나에게 중요한 영감을 주었고, 어렸을 적부터 집에서 다양한 카르텔 제품을 보고 직접 사용하면서 자랐다.

피에르 리소니의 피우마(Piuma) 체어의 경우 탄소섬유 플라스틱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해 초경량화를 구현하는 데 3년 이상 걸렸다고 들었다. 과정은 어떠했나?

(루티) 피우마 체어는 혁신적인 산업 제품을 만드는 과정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소재를 찾아냈을 때 이것으로 가벼운 의자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디자이너와 함께 매달린다. 파일럿 테스트용 몰드를 만들어서 실험하는 것만 해도 몇 달씩 걸린다. 해당 소재로 의자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 다음에는 다시 얼마나 튼튼한지 확인을 하고, 본격적으로 생산용 몰드를 제작한 뒤에도 다시 한참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이런 과정이 너무나도 길고, 비용에 대한 리스크도 크고, 에너지와 노력도 많이 들지만 이것이야말로 카르텔이 디자인계에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보통 연간 20개 정도 새로운 컬렉션을 내놓는데 다행히 그것들이 다 피우마 체어처럼 고난도 기술을 요하지는 않는다.

카르텔은 다수의 디자이너와 협업했는데 어떤 디자이너를 선호하나?

(루티) 사실 아주 많지는 않고, 가만 돌아보면 지난 30년 동안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웃음) 우리는 산업 디자인을 잘하는 디자이너, 한 번이 아닌 지속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디자이너를 선택한다. 미니멀하거나 바로크적이거나 스타일에 대한 제한은 없다. 카르텔 자체의 디자인 스타일은 없다. 전략만 있을 뿐이다.

클라우디오 루티를 ‘플라스틱을 명품화한 경영자’라고 평하는데 이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나?

(루티) 일단 명품화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카르텔의 기존 제품을 한 차원 더 높이고자 했다. 제품 각각에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부여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내가 이 목표를 세운 1990년대 초를 기점으로 1970년대와 1990년대의 카르텔 제품을 비교해보면 언뜻 같은 플라스틱으로 보여도 원료와 공장이 다르고 자연히 품질도 확연히 다르다. 품질 향상은 대도시에서 단독 매장을 여는 데 도움을 줬고 새로운 유통 구조를 구축하는 데에도 자연스레 영향을 미쳤다. 바뀐 유통 구조는 결국 더욱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야기해 카르텔이라는 브랜드가 재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디자이너로서 주변을 관찰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리소니) 늘 공부하고, 산다(기자 주: 이탈리아어로 ‘산다’는 ‘경험한다’라는 뜻도 있다).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길 가는 여자를 쳐다보는 것 좋아하고, 종종 쫓아가기도 하고.(웃음)

카르텔은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인간의 생활 환경을 바꿨다. 플라스틱 다음의 또 다른 새로운 재료는 어떤 것이 될까?

리소니) 중요한 것은 플라스틱이라는 소재가 아니라, 당시 카르텔이 머리를 써서, 즉 인간의 지능을 활용해 주어진 소재를 가구에 접목했다는 데 있다고 본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한 투명한 나일론도 그렇고, 탄소섬유를 사출 몰드에 찍어내는 방식처럼 무엇이든지 인간의 지능을 사용해서 기능적이고 효율적이고 오래가는, 그야말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카르텔이 초기에는 자동차 액세서리로 시작해 현재는 가구를 다루게 되었듯, 앞으로 카르텔은 어떤 영역까지 확장될까?

(리소니) 솔직히 정확하게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루티와 종종 즐기는 체스 게임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체스 판 위에 많은 아이디어와 소망을 올려놓고, 개중에는 20년 전부터 이야기하던 것도 있고, 계속해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이 바뀌면 몇 개를 내려놓고 다시 또 새로운 몇 개의 말을 올리듯이 말이다. 시장이 뭘 요구하는지를 궁금해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의 체스 판 위에는 이번에는 카르텔이 ‘소파가 필요하다’, ‘의자가 필요하다’ 하는 어젠다를 올려놓을 뿐이다. 결국 이것은 리더십의 문제라고 본다. 카르텔이 어떤 의자를 기획하고 디자인한다면 그것이 바로 모두가 원하는 새로운 의자가 되는 것 아닐까? 필립 스탁의 ‘루이 고스트’를 발표한 후 한동안 의자 하면 ‘카르텔’을 동의어처럼 취급하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전시를 둘러본 소감은 어떤가? 전시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리소니) 카르텔과 디자인 역사에 아주 중요한 전시다. 어떤 기업이 꾸준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 뒤에 얼마나 많은 ‘우주’가 뒷받침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기업을 360도 각도에서 조명하는 이번 전시 방식은 역사와 기술, 혁신, 스타일이 어떻게 맞물려 하나의 브랜드를 이루는지를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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