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서 미래를 감지하는 진지한 광대, 하이메 아욘(Jaime Hayon)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바쁜 디자이너 가운데 한 사람인 그가 4월 27일부터 11월 17일까지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전통에서 미래를 감지하는 진지한 광대, 하이메 아욘(Jaime Hayon)
아욘의 그림자 극장’에서.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전시 공간이다.

소재의 연금술사, 지중해의 디지털 바로크주의자, 창의적인 르네상스형 디자이너…. 모두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에너지 넘치고 창의적이며 유머러스한 조형 언어, 장인과 협업해 이룬 최고의 완성도 등은 글로벌 디자인 신에서 변방으로 물러나 있던 스페인 디자인의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 <월페이퍼Wallpaper>는 2007년 그를 ‘최근 10년간 영향력 있었던 크리에이터 100인’ 중 한 사람으로 꼽았고 <타임>은 2014년 ‘가장 창의적인 아이콘’으로 하이메 아욘의 이름을 올렸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바쁜 디자이너 가운데 한 사람인 그가 4월 27일부터 11월 17일까지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초현실적이면서 유쾌한 작품을 선보여온 하이메 아욘의 디자인 세계를 일곱 가지 스토리텔링과 결합해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의 디자인만큼이나 그는 시종일관 유쾌함이 넘쳤다.

가구가 반짝이는 푸른 밤 섹션. ‘폴트로나 위드 커버Poltrona with Cover’를 비롯한 하이메 아욘의 대표 가구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하이메 아욘 1974년생.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으로 밀라노 소재의 유럽디자인종합학교Instituto Europeo di Design와 파리의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Arts Decoratifs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다. 패션 브랜드 베네통 그룹의 커뮤니케이션 연구 센터 파브리카Fabrica의 최연소 책임자를 역임했으며 2001년 아욘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후 가구, 조명, 생활용품, 장난감, 인테리어, 패션 등의 분야에서 전방위로 활동하며 스페인 디자인의 간판스타로 성장했다. BD 바르셀로나 디자인BD Barcelona Design, 프리츠 한센, 마지스Magis 등과 협업하는 한편 런던 디자인 뮤지엄, 네덜란드 흐로닝어르 뮤지엄 Groninger Museum, 뉴욕 아트 앤드 디자인 뮤지엄Museum of Arts and Design 등에서 전시 및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hayonstudio.com

한국에서 열리는 첫 번째 개인전이다. 먼저 소감을 듣고 싶다.

최근 상하이, 타이베이, 애틀랜타, 밀워키, 파리 등 여러 도시에서 전시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중에서도 이번 서울 전시는 내게 의미가 각별하다. 이 도시의 음식과 문화, 사람들을 정말 사랑하니까. 또한 새로운 형식으로 내 작품을 소개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작품에 내재된 판타지에 초점을 맞춰 일곱 가지 테마로 전시를 구성했는데 방대한 물성과 소재를 대림미술관에서 잘 정리해주었다.

명실상부 스페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스페인이라는 배경이 당신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국적에 국한해 나의 디자인 세계를 규정 짓고 싶진 않지만, 답변은 ‘그렇다’이다. 스페인의 에너지와 다양한 컬러, 오픈 마인드가 나의 디자인 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내가 태어날 즈음 스페인의 악명 높은 독재자 가 죽었는데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스페인에 원래 좀 별난 사람이 많지 않나. 가우디, 달리, 피카소, 루이스 부뉴엘….(웃음) 물론 감히 그들과 나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자기만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는 데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작품에서 엿보이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도 바로 그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인가?

글쎄, 나의 뇌가 8살짜리 아이와 같아서 그런 게 아닐까?(웃음) 그만큼 나는 재미와 자유를 추구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0에서부터 시작한다’라고 되뇐다. 아이처럼 유연한 태도를 갖는 것이 나의 개성이자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디자인은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것은 유서 깊은 브랜드와 협업할 때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에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가치를 묵직하게 담아내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마냥 진지하기만 한 태도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진중함에 압도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까? 프리츠 한센Fritz Hansen을 예로 들어보자. 덴마크라는 배경 때문인지 사람들은 이 브랜드가 마냥 진지하고 다소 건조하다고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에그 체어를 출시한 게 바로 프리츠 한센이다. 이것은 바우하우스나 브라운으로 대변되는 미니멀리스트 디자이너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브랜드에 대한 진지한 접근도 필요하지만 유머와 활기, 재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디자인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기제로 유머라는 코드를 활용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재미’가 결코 값싼 품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전시의 영문 제목은 ‘Serious Fun’이다. 즐거움과 경쾌함을 잊지 않되 최상의 소재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나의 디자인이다.

개성 강한 디자인을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디자인에 개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강력한 감정적 연결 고리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나의 디자인을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신념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도 있고. 하지만 묵묵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보면 하나둘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평판이 쌓이는 것이다.

강한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협업하는 브랜드 고유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를 위해 스스로 세운 원칙이 있다면?

그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사람(브랜드)인지 경청하는 것, 이것이 나의 첫 번째 규칙이다. 디자이너든 아티스트든 유명해질수록 이 규칙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청할 수 있는 사람이고, 다른 이와 협업할 때는 ‘진짜’ 협업을 한다. 내 뜻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특히 초기 작품에서는 세라믹 소재가 자주 눈에 띈다.

솔직히 초창기에 세라믹을 자주 사용한 것은 제작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웃음) 세라믹은 저렴한가격에 비해 비싸 보이는 효과가 있어 많이 사용했다. 평소 다양한 스케일의 작품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데 볼륨감 있는 작품을 만들 때 세라믹은 무척 유효한 소재다. 나는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재료를 탐색하고 다양한 장인과 협업한다. 새로운 기법과 전통 기법을 결합하는 것이다.

장인들과의 협업은 바로 그러한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나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장인과 함께 일했다. 일본의 도자기 장인, 이탈리아의 세라믹 장인, 프랑스의 크리스털 장인 등. 그들의 손길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것이 곧 21세기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방식이자 공예의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젊은 세대 또한 전통적인 방식을 배우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일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버튼만 누르면 제품이 나오는 시대라고 하지만 개성 있고 섬세하고 독창적인 오브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다.

영역을 구분 짓지 않고 전방위로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글쎄, 나의 경우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배운 교훈을 다른 디자인의 디딤돌로 삼는다. 예를 들면 호텔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면서 그 안에 들어가는 회화나 조각에서 영감을 받고 이를 원천으로 다른 분야에 접목시키는 식이다. 분야는 제각각이지만 이 모든 것이 종국에는 하나로 연결되어 나만의 디자인 언어가 완성되는 것 같다.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나?

영감을 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잃어버린 세계들과 자연에 매료되어 있고, 민속 문화에서 자주 영감을 받는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내가 이끌리는 주제를 정하는데, 이것은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몽키 테이블이나 일본 게이샤의 꽃꽂이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화병이 대표적이다. 나는 끊임없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이것은 언제나 나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 흥미롭게 바라보는 분야가 있다면?

솔직히 말하면 디자인 자체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대신 연극이나 영화, 음악, 퍼포먼스 등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디자인 분야에서 관심을 끄는 분야가 있다면 인테리어 디자인 정도인데 그 자체가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적 연결 고리와 경험을 선사하는 디자인이라면 뭐든 나의
흥미를 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92호(2019.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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