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프 너머의 진짜 폴 스미스, 폴 스미스 & 데얀 서드직
“Every day is a new beginning.” 6월 6일부터 8월 25일까지 열리는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Hello, My name is Paul Smith>전(이하 <폴 스미스>전) 한편에 적혀 있는 이 글귀는 72세의 백전노장이 치열한 패션계에서 수십 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Every day is a new beginning.” 6월 6일부터 8월 25일까지 열리는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Hello, My name is Paul Smith>전(이하 <폴 스미스>전) 한편에 적혀 있는 이 글귀는 72세의 백전노장이 치열한 패션계에서 수십 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DDP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전시는 2013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순회 중이며 방대한 오브제를 통해 그의 디자인 세계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폴 스미스와 디자인 뮤지엄의 데얀 서드직Deyan Sudjic 관장을 만나 스트라이프 너머 ‘진짜’ 폴 스미스를 알아봤다.
각각 전시의 주인공과 기획자로서 이번 전시를 열게 된 소감을 듣고 싶다.
폴 스미스(이하 스미스) 사실 나의 시작은 초라했다. 이번 전시는 볼품없었던 나의 시작이 차차 어떤 가치 있는 것으로 발전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한다. 보통 패션 전시라고 하면 결과물인 옷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전시는 나의 시작과 과정, 작업 방식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데얀 서드직(이하 서드직) 폴 스미스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옷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옷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폴 스미스의 생각과 철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패션계 종사자뿐 아니라 패션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폴 스미스의 가치와 철학이 전달될 것으로 믿는다.
<폴 스미스>전은 런던의 디자인 뮤지엄 역사상 가장 많은 관람객을 동원한 전시로 알려져 있다. 전시를 열게 된 계기와 성공 비결이 궁금하다.
서드직 사실 그 기록을 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웃음)
스미스 1995년에 열린 <진정한 영국인True Brit>전을 통해 디자인 뮤지엄과 처음 연을 맺었다. 당시 전시가 수많은 차세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후 부임한 데얀 서드직 관장이 한 번 더 그 같은 전시를 열어보자고 제안해 전시를 열게 됐다.
서드직 성공한 전시는 대개 다루는 주제나 인물의 성격과개성이 잘 녹아 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폴 스미스는 기본적으로 자기 표현에 거침이 없는 사람이고 패션의 세계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쉽고 능숙하게 풀어내는 데 재능이 있다. 이런 점을 효과적으로 반영한 것이 성공 요인이다.
폴 스미스의 그러한 면면을 드러내기 위해 활용한 장치가 있다면?
서드직 폴 스미스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예를 들어 거울과 오디오 비주얼 콘텐츠로 이뤄진 전시 섹션 ‘Inside Paul’s Head’의 경우, 말 그대로
폴 스미스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 코벤트가든의 사무실을 재현한 전시 공간도 마찬가지다. 작업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는 하나의 음반과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운드트랙을 들었을 때 뮤지션의 음악 세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듯이 모든 섹션을 둘러보아야 비로소 그의 디자인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데얀 서드직이 본 폴 스미스는 어떤 사람인가?
서드직 항상 호기심을 갖고, 항상 질문하며,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 첫 전시가 열리고 6년이 흘렀다. 그사이 폴 스미스의 디자인 세계도 상당히 넓어졌을 것 같은데.
스미스 물론이다. 이것으로 열한 번째 순회전을 갖게 됐는데 전시와 전시 사이에 새롭게 선보인 컬렉션 중 일부를 추가해 넣는다.
서드직 <폴 스미스>전은 역사가 아닌 과정에 관한 전시다. 전시의 기본 틀은 동일하지만 그 안의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세계 각국의 폴 스미스 매장을 소개하는 섹션도 그때그때 새롭게 추가하고. 트라이엄프 모터사이클과 협업해 만든 바이크는 이번 서울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가장 영국적인 디자인을 한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서드직 ‘영국적인 디자인’이라는 표현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영국은 현재 브렉시트 등의 이슈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지만 문화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글로벌한 관점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 나라다. 현재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을 찾고 또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무대로 삼고 있다.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용광로 같은 나라인 셈이다.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 태생이지만 영국에서 활동했다. 반면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디자인한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영국 태생이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선까지 ‘영국 디자이너’ 혹은 ‘영국 디자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이들 모두라고 할 수도 있다. 인종과 결과물의 형태, 건축물이 들어선 지역은 각각 다르지만 이면에 흐르는 본질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글로벌 브랜드가 그러한 것처럼 디자이너들 또한 오늘날의 ‘국제적인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데 한몫하지 않나 생각한다.
스미스 물론 초창기에는 트위드 패브릭이나 컨트리스타일 패브릭 같은 영국적인 소재를 주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경계 없이 다양한 섬유를 사용한다. 솔직히 진정한 의미에서 ‘영국적인 디자이너’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세상이 좁아졌고 모든 브랜드가 글로벌한 취향을 지향하는 만큼 좀 더 글로벌한 관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현재 총 73개국에 제품을 유통시킨다. 특정 지역이 아닌 전 세계인의 테이스트를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문제는 많은 브랜드가 세계화를 획일화로 잘못 이해한다는 데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세계화는 무엇인가?
스미스 매장 운영에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모토로 삼고 있다. 지역성을 반영하는 것 또한 세계적인 브랜드가 갖춰야 할 요건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유지하는 한편 각 지역 사람들이 어떤 배경과 취향을 갖고 있는지 면밀히 관찰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인이 스포츠웨어를 선호하고 이탈리아나 프랑스인은 조금 더 클래식한 패션을 즐겨 입는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글로벌이라는 프레임 위에 지역 색깔을 정교하게 올려놓는 것인데 전 세계 폴 스미스 매장의 인테리어가 각기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4월에는 서울을 방문해 직접 도시 곳곳을 촬영한 영상 <12 Hours in Seoul>을 공개하기도 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미스 나는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그 지역의 새것과 옛것을 머금고 있는 지역들을 둘러본다. 새로운 것을 표방하는 지역에서는 글로벌한 감성을 느낄 수 있고 오래된 것들이 남아 있는 지역에서는 그 도시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서울은 이 두 가지 매력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익선동이라는 지역이 인상적이었다.
브랜드 폴 스미스의 또 다른 특징은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점이다. 여타 브랜드가 한 시즌에 600여 개의 아이템을 선보이는 반면 폴 스미스는 1600개 이상의 아이템을 소량으로 제작한다. 생산 단가 면에서 보면 그리 효율적인 방식이 아닌데 이런 전략을 고수하는 이유는?
스미스 물론 그런 생산 방식을 취함으로써 우리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철학이다. 나는 매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그저 옷만 구매하고 돌아가길 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간접적으로 창조성을 경험하길 바란다. 결국 적게 벌어도 창조성은 극대화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좀 구식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커리어를 시작한 20대 초반부터 언제나 지갑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출발하려고 노력해왔다.
특별히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스미스 전시는 내가 처음 커리어를 시작한 21살 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를 통해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비록 시작이 변변치 않더라도 결코 열정과 인내심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또 자신만의 독창성과 스토리를 갖추라는 메시지도 전달되었으면 한다. 트렌드를 좇지 못하는 낡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요즘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과하게 집착하고 지나치게 다른 이의 기호를 신경 쓴다. 빠르게 트렌드를 캐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조금 느리게 걷더라도 자신만의 철학과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최명환 기자 인물 사진 박순애(스튜디오 수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