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각하는 디자이너 장우석

네덜란드에 거주 중인 서체 디자이너 장우석은 지난해 〈한글 레터링 자료집 1950- 1985〉(2014)의 개정판 〈한글 레터링 자료집〉1950-1989(이하 〈한글 레터링 자료집〉)을 제작했다. 서체가 다양하지 않던 1950년대부터 한글 환경이 식자로 대체되기 시작한 1980년대까지 한글 레터링이 전성기를 맞았던 시절을 조명한 책이다.

복각하는 디자이너 장우석

네덜란드에 거주 중인 서체 디자이너 장우석은 지난해 〈한글 레터링 자료집 1950- 1985(2014)의 개정판 〈한글 레터링 자료집〉1950-1989(이하 〈한글 레터링 자료집〉)을 제작했다. 서체가 다양하지 않던 1950년대부터 한글 환경이 식자로 대체되기 시작한 1980년대까지 한글 레터링이 전성기를 맞았던 시절을 조명한 책이다. 그는 프로파간다 김광철 편집장의 제안으로 오래된 신문 아카이브를 리서치해 레터링을 복각하는 작업을 했다. 초판에 비해 더 많은 레터링을 면밀히 선별하고 추가한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아카이브는 유의미한 논점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필요가 아닌 필수라고 생각한다는 장우석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장우석

서울과 암스테르담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활자 디자이너로 활동한다.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에서 시각 디자인, 헤릿 리트펠트 아카데미(Gerrit Rietveld Academie, Amsterdam)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2011년 ‘에프에프’라는 그룹으로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했다. 2013년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헤르쯔’ 공동 대표를 지냈으며 오렌지슬라이스타입의 전신인 에스에프(SF)를 운영하고 있다.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Werkplaats Typografie)에서 타이포그래피 석사과정을 밟았다.

한글 레터링 자료집프로젝트를 소개해달라.

이번 개정판에서는 당시의 신문, 잡지, 인쇄물, 간판, 포스터 등을 장식했던 레터링을 추가로 수집했다. 새로운 레터링 100여 개를 발굴하고 초판에 실은 작품을 일부 삭제해 총 389점의 레터링을 수록했다. 수집 범위를 1989년까지 넓혔으며, 영화나 음반 타이틀의 비중을 높인 게 특징이다. 그뿐만 아니라 개별 레터링에 대한 해설을 더해 글자 하나에 담긴 기술적 설명 외에 레터링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배경도 함께 다뤘다.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 등 국가 이벤트의 상황 속에서 글자 환경이 급격히 현대화되는 과정을 더 선명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레터링을 적용한 원본과 이것을 사용한 용례를 제시해 초판보다 이해도를 높이고자했다. 레터링 리서치와 복각 작업에만 1년 넘게 소요됐다.

그리드가 연상되는 표지가 인상적이다. 활자에 관한 서적인 만큼 제호 디자인에 큰 공을 들였을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레터링은 원래 손으로 작도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드 요소를 활용해 레터링의 제작 방식을 암시하고자 했다. 특히 표제에 사용한 레터링은 책에 수록한 자료를 기반으로 새롭게 그린 글씨다. 레터링 복각 작업을 400개쯤 했으니 책을 만든 디자이너의 레터링 실력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요즘은 스스로 활자 디자이너라고 소개하기도 해서 새롭게 그린 글자를 꼭 넣고 싶었다.

내지 구성이나 형식, 디자인에서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자료를 대하는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구성이 지루하지 않도록 작업했다. 〈한글 레터링 자료집〉은 원본이 매체에 게재된 연도와 날짜 순서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야기 중심의 책이 아니기 때문에 흐름을 크게 고려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수록한 자료에는 시간이라는 절대적 기준이 있어서 배열이 수월했다. 레이아웃 작업에서는 이 책을 아카이브 목적으로 제작했다는 것에 집중했다. 레터링 간에 위계를 두거나 별도의 분류 기준을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신 레터링의 디테일, 메시지 등이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보이도록 레이아웃을 구성했다.

오래된 자료를 이용해 작업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주로 신문을 활용했는데 대부분 오래된 자료를 사용해서 원작자를 찾기 불가능하거나 원본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자료를 기반으로 전부 새로 작업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판단이 중요했다. 글자 끝부분이나 면이 교차하는 부분을 날카롭게 표현할지 둥글게 표현할지에 관한 고민부터 과거의 자료를 현대의 기준에 맞춰 어떻게 복각할 것인지에 관한 고심이 있었다.

“누구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손 놓고 있다면 유의미한 자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장우석
지난해 11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이하 모던 데자인)전의 일환으로 로고 아카이브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전시의 한 섹션인 로고 아카이브 50~60s, 회사 로고의 탄생과 성장을 위해 웹사이트도 개설했다.

웹사이트의 기획과 디자인을 맡았다. 비슷한 종류의 자료가 한국에 미미하다는 점이 작업 동기가 된 프로젝트였다. 레터링이나 로고를 모은 자료집이 풍성한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한국의 상황은 열악하다. 대의적 차원에서 개인이 시작할 수는 있어도 결국 시간과 비용 면에서 더 의미 있는 산출물을 내기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국가나 학회, 교육기관의 지원이 있다면 조금 더

유의미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산발적으로 퍼져 있는 자료를 모으는 일은 우리가 했으니, 맥락을 도출하는 일은 범국가적 차원에서 맡아주면 좋겠다는 기대도 있다. 한국전쟁 직후에 만든 로고나 레터링은 사실 원작자를 알기도 어렵고 단기간에 제작 배경을 알아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손 놓고 있다면 유의미한 자료를 놓치게 될 것이다.

한글 레터링 자료집외에 다른 아카이빙 관련 활동을 하는지도 궁금하다.

〈모던 데자인〉전에서 선보인 로고와 관련된 자료를 토대로 프로파간다 출판사와 함께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전시에서 보여주지 못한 자료를 더해 새롭게 정리했다. 개인적으로 비디오게임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프로젝트를 통해 이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다.

왜 디자인에 아카이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아카이브의 유무는 해당 문화 발전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아카이빙은 단순한 수집 행위가 아니라 의미 있는 담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필요를 넘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맥락 없이 느낌과 감각만으로 업을 이어나가는 것은 좋은 방식이 아니다. 구심점 없이는 어떤 비판이나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발단이 될 시작점과 그것을 지속할 기준점을 세우면 어떤 작업이더라도 즐겁고 의미 있을 것이다. 디자인계에서도 아카이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