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이 아니라 미래를 디자인한다, 퓨즈프로젝트
제품 디자인 전문 기업으로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퓨즈프로젝트(fuseproject),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디자인의 힘에 주목해보자.
국가 정상과 기업 대표들이 모이는 다보스 포럼(Davos Forum). 2009년 열린 이 정상급 모임에서 굿 디자인과 경제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인 디자이너 이브 베하(Yves Béhar). 그만큼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커졌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을 의미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품 디자인 전문 기업으로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퓨즈프로젝트(fuseproject),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디자인의 힘에 주목해보자.
제품 디자인 영역에서 명성을 얻은 퓨즈프로젝트는 이제 더 큰 세상을 디자인한다. 덴마크 황실의 후원으로 ‘착한 디자인’을 뽑는 인덱스 어워드(INDEX Award)에서 ‘삶을 향상시키는 디자인(Design to Improve Life)’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2007년 네크로폰테와 함께한 100달러짜리 저가 노트북 OLPC(One Laptop Per Child)와, 2011년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위한 맞춤형 안경 프로젝트 ‘잘 보이면 더 잘 배운다(The See Better to Learn Better)’의 수상은 이들이 꿈꾸는 디자인의 방향을 보여준다. 이 두 프로젝트를 통해 200만 대의 노트북이 전 세계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전달되었고, 인체 공학적이고 튼튼한 안경이 35만 8000명의 멕시코 어린이에게 전해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퓨즈프로젝트가 디자인한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제품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라는 점이다. 퓨즈프로젝트의 디자인은 상업과 비상업을 구분하지 않는다. 푸마의 새로운 신발 박스 디자인 ‘현명한 작은 백(The Clever Little Bag)’은 푸마의 전체 생산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푸마 생산 과정에서 8500톤의 종이, 2000만 메가 줄의 전기, 100만 리터의 오일, 100만 리터의 물, 그리고 275톤의 플라스틱을 절약할 수 있다는 퓨즈프로젝트의 말을 들어보면, 이브 베하를 다보스 포럼에 부른 이유가 자연스럽게 납득된다. 이처럼 퓨즈프로젝트의 디자인에서는 따뜻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소망하는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이는 1999년 설립 이후 비교적 짧은 기간에 150개가 넘는 수상 실적을 올리며 명성을 쌓아왔다는 점이나, 세계 각지의 유명 미술관에 수많은 작품이 영구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허먼 밀러, 삼성, GE, 푸마, 스와로브스키 등의 거대 클라이언트를 두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어쩌면 더 눈에 띄는 일이다. 이브 베하는 퓨즈프로젝트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퓨즈프로젝트와 자신을 움직이는 주문이 있는데, 그것은 “디자인은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한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퓨즈프로젝트의 디자인에는 언제나 기능과 미학 그리고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생각을 뒤집는’ 아이디어를 감성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고 이를 통해 기술적 혁신까지 이루어내는 탁월한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이다.
허먼 밀러의 리프 램프(Leaf Lamp)와 아데아 램프(Ardea Lamp)는 그런 특징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잎사귀 형태에서 따온 리프 램프와 사냥하기 위해 목을 움직이는 왜가리의 형상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아데아 램프의 독특한 조형은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이 디자인이 유니버설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용성을 높였다는 기술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친환경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모습은 더욱 인상 깊다. 그리고 이렇게 맺은 허먼 밀러와의 인연은 사일(SAYL) 의자의 개발로 이어졌다. 가볍고 인체 공학적인 형태는 이브 베하의 집 근처에 우뚝 솟아 있는 금문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의자 등받이 부분을 ‘틀이 없는(unframed)’ 형태로 디자인한 것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여 최상의 품질과 미학을 제공하겠다는 이브 베하의 신념이 표현된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숨겨진 의미는 “가능성과 표현을 틀에 가두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이 진보한다”라고 말하는 그의 메시지다.
이처럼 이브 베하는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세상이 끊임없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낙관주의자다. 그리고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스토리텔러이기도 하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21세기 전반기에 퓨즈프로젝트가 쓰고 있는 디자인의 미래는 따뜻하고 감성적이며 타인을 향해 적절한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이들이 이끌어나가는 따뜻한 미래를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