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그래픽의 신화 하비에르 마리스칼
1950년 스페인 지중해 연안 지방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다. 1970년부터 바르셀로나에서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엘리사바(Elisava) 디자인 학교 재학 시절부터 전문적으로 만화를 그렸다.
하비에르 마리스칼
1950년 스페인 지중해 연안 지방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다. 1970년부터 바르셀로나에서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엘리사바(Elisava) 디자인 학교 재학 시절부터 전문적으로 만화를 그렸다. 1979년 ‘Bar Cel Ona’라는 글자를 이용해 만든 로고로 이름을 알렸으며, 1980년대에 가구 디자인에까지 손대면서 바르셀로나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다. 뭐니 뭐니 해도 그를 전 세계적으로 알린 작업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코비다. 픽토그램의 정의를 흔들 정도로 파격적인 작업이라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 마스코트는 여전히 경제 가치가 있는 작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1989년 스튜디오 마리스칼(Estudio Mariscal)을 설립, 다양한 로고와 캐릭터 작업에서 건축과 인테리어로 영역을 넓혀가며 멀티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신발 브랜드 캠퍼(Camper), H&M 등의 그래픽 디자인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쌓은 그는 평생 그려온 그림을 책으로 엮어내 작가로도 인정받았다. 2010년 <치코 & 리타Chico & Rita>라는 그래픽 소설을 출간한 후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현재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대표적인 가구 회사들과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재치 있는 작업을 열정적으로 쏟아내며 거장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중이다.
예전에 미국 TV 프로그램에서 앤디 워홀의 인터뷰를 봤는데, 말을 심하게 더듬고 인터뷰어의 질문 자체에 대답하기 곤혹스러워하던 게 기억난다. 아마 워홀 못지않게 인터뷰하기 어려운 사람이바로 스페인 그래픽 디자인계의 대가라 칭송받으며, 우리에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 코비(Cobi)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하비에르 마리스칼(Javier Mariscal)일 것이다. 인터뷰하기로 한 날 그의 비서는 인터뷰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인 양 미리 보낸 질문지를 훑어보지도 않았다며 귀띔해주었는데, 역시나 인터뷰에 흥미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답조차 궁했다. 2003년에도 한 번 인터뷰한 적이 있던 터라 이번이라고 다를 것이라 기대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질문지 앞에서 무기력한 표정을 한 채 개미처럼 점점 작은 목소리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 눈에 띌 정도가 되었을 때는 인터뷰를 시작한 지 고작 15분가량 지난 뒤였다.
1시간 이상 인터뷰를 진행한 듯 괴로워하는 그와의 대화는 이쯤에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일반적인 인터뷰 방식으로 그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사실 마리스칼은 유머 감각이 넘치고 대화의 반이 농담인 사람이다.) 녹음 기능을 끄지 않은 스마트폰에 의지한 채 질문지와 볼펜을 던져두고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그제야 그의 눈빛이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염색을 하지 않아 백발이 성성한 그가 스페인 최고의 그래픽 디자이너란 수식어를 넘어 악동 디자이너로 되돌아온 것이다.
마리스칼 아 라 페드레라(Mariscal a La Pedrera). 가우디의 건축물 카사 밀라는 ‘돌의 집’이라는 뜻의 ‘페드레라’로 불리기도 한다. 2010년 이곳에서 마리스칼의 40년 디자인 활동을 기념하는 전시가 열렸다. 전시장 밖에서부터
그의 전시를 안내하듯 마리스칼의 작업들이 놓여 있었다. 손으로 쓱쓱 그린 듯한 화풍은 어김없이 그의 것이다.
21세기 들어 마리스칼은 더 이상 그래픽 디자인계의 대가라는 호칭만으로 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골판지 상자 집, 호텔 디자인부터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그의 행보는 꾸준히 호평을 받아왔다. 그의 끊임없는 에너지와 반짝임의 원천은 아이처럼 생각하는 태도에 있다. 구태여 태도나 자세를 거론하지 않아도, 그에게는 유년 시절부터 함께한 피터 팬이 그림자처럼 착 달라붙어 있다. 어린 시절 마리스칼은 글을 읽고 쓸 수 없는 난독증을 앓았다. 다른 사람과 글로 소통할 수 없어 그림으로 대신 마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는 그림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풀어낸다. 그에게 장애가 되었던 병이 큰 자산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펜으로 쓱쓱 그린 아이들 낙서 같은 그림은 아르테미데(Artemide) 조명등이 되고, 방카하(Bancaja) 은행의 로고가 되었으며, H&M 패션 브랜드의 캠페인 이미지로 변신했다. 그건 누가 보아도 마리스칼만의 그림이었다. 친절하고 장난기 넘치며 친근한. 담아낸 그릇은 제각각이어도 그의 정서는 동일했다. 하나의 디자인 철학과 콘셉트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의 이 천진난만한 디자인은 여전히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방카하 로고. 스페인 은행 방카하 CI 작업. 캐릭터화한 심벌을 마리스칼 특유의 밝은 색상으로 표현했다. 기존 은행의 딱딱한 매뉴얼에서 벗어나 쉽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이미지는 은행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설명한 것이다.
메트로폴 로고. 빌바오 구겐하임 건너편에 있는 고급 호텔인 실켄 그란 호텔 도미네 빌바오(Silken Gran Hotel Domine
Bilbao) 안에 있는 카페의 로고 디자인. ‘모더니즘’을 콘셉트로 기하학적으로 디자인했다.
스튜디오 마리스칼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각물과 산업 디자인을 진행한다. 제품 디자인, 인테리어, 웹 디자인, 애니메이션도 제작한다. 우리 스튜디오는 모든 작업의 이름과 성격을 그래픽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색과 그래픽으로 작업에 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스튜디오 마리스칼의 강점은 무엇인가? 또한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해 말해달라.
내 그림으로 개성 있는 디자인 콘셉트와 시각 작업을 만드는 것이 강점이다. 내 그림은 우리가 진행하는 모든 디자인과 프로젝트 뒤에 놓여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대표이니 당연한 이치다.
로텍(LoTek). 이탈리아 조명 회사 아르테미데를 위해 디자인한 로텍. 로테크(low-tech)와 비슷한 발음으로 이름을 지었다. 20세기에 디자인된 조명등의 꺾이는 부분을 관절처럼 표현했다.
어릴 때 글을 쓸 수 없었던 당신은 대신 그림을 그렸다고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의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그림을 통해 이루어졌다. 어릴 때부터 그림으로 대화를 하고 설명을 하다 보니 여전히 그 방법이 편하고 익숙하다.
그림이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내게 그림은 현실을 붙잡는 도구다.
당신을 유명하게 만든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코비. (이후 침묵)
코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로 마리스칼을 전 세계에 알린 작업이다.
코비가 탄생하기 전부터 비슷한 캐릭터를 그렸나?
원래 만화를 그렸기 때문에 코비와 유사한 캐릭터를 참 많이도 그렸다. 동물이나 사물에 사람의 성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그래도 코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지 않은가?
당연하다. 지금까지 코비처럼 나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준 프로젝트는 없다. 코비는 매우 중요하다. 세상의 모든 매체가 관심을 가지고 이슈화한 프로젝트를 두 번이나 작업한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코비는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당시 코비는 혁명과도 같았다. 최근 프로젝트를 설명해달라.
아르테미데과 협업해 로텍 조명등을 디자인했고, 바르셀로나의 한 쇼핑센터를 다시 디자인했다. 당신은 스페인에서 나고 자랐다.
스페인이란 지역이 당신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나?
디자인은 전 세계적인 언어다. 딱히 스페인적인 어떤 것이 내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라별로 디자인을 규정하는 방식도 맘에 들지 않는다. 이탈리아 디자인, 일본
디자인, 한국 디자인 등 국가적인 아이덴티티로 디자인을 구분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있는가. 세상의 모든 것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 (한참 침묵 후) 그래도 꼭 대답해야만 한다면 마티스(Matisse), 피카소(Picasso), 팝아트라고 말하겠다. 또한 1950년대 가구 디자인 스타일과 그래픽 디자인도 내게 영향을 줬다. 프랑스에서 만든 ‘집시들(Gitanes)’이라는 담배 케이스 디자인은 나를 놀라게 한 이미지다. 광고나 영화, 타이포그래피 등도 내게 풍부한 영감을 준다. 물론 만화도. 스페인에 살면서 받은 지역적 영향은 ‘빛, 풍경, 날씨’다. 빛은 내 작업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스페인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이런 규정 자체가 새빨간 거짓말이다. 가령 이탈리아 디자인 회사에서 다양한 국적의 디자이너들이 일한다. 이를 이탈리아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디자인 자체가 이제 세계적인 언어로 통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스페인 디자인의 현재 위치는 어디쯤이라고 보나?
그런 건 없다. 다만 유럽 디자인이 뭉쳐서 더 강한 디자인 역사를 만들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오길 바란다.
당신은 오랫동안 디자이너로 일했다. 디자이너는 어떤 자세를 유지해야 할까?
우선 궁금증을 품어야 한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쉽게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콘셉트도 중요하고,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또다시 침묵) 나는 매우 직관적인 사람이라 이런 질문에 논리적으로 잘 대답하지 못한다. 디자인을 심벌이자 언어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디자인 업무에 임할 때 당신의 자세는 어떤가?
나는 고객이 우리가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돈을 준다고 생각한다. 마리스칼 스튜디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게임을 즐기듯 놀면서 일한다. 모든 사람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을 통해 기쁨과 만족감을 얻을수있어야한다.
일을 놀이처럼 즐기리라 짐작했다. 당신의 디자인에서 그런 게 묻어난다.
나는 아이들의 놀이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어렸을 때 조약돌 하나 들고 ‘이게 비행기라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한 적도 있다. 아이들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유년 시절 경험과 놀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다. 어린이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방법이 디자이너에게도 필요하다. 유머와 상상력은 기본이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나?
아직 없다. 최근 한국 작가가 그린 만화를 읽었는데 인상적이었다. 집에 가면 그 책이 있는데, 지금은 제목도 작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의 할머니가 일제강점기에 겪은 이야기를 흑백으로 그린 그림책인데 간결하고 감동적인 구성이 눈에 띄었다. 단순한 그림 안에 한국 역사를 녹여냈다. 한국 사람들이 가족적이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12월에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행사 때문에 한국에 가는데, 그 방문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