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디자이너, 설은아

출발부터 홈런을 날린 그는 ‘포스트비쥬얼’이라는 회사 이름처럼 다음 시대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끊임없이 제시해왔다. 모든 게 디지털이 된 지금, 그는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의 화두가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디자이너, 설은아

1999년 ‘설은아’라는 이름을 내걸고 만든 웹사이트 ‘설은아닷컴’은 텍스트 중심의 평면적인 사이트와는 달리 플래시를 이용해 다양한 인터랙션의 가능성을 시도한 실험적인 사이트였다. 정보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성을 표현했다는 점도 기존 사이트와 달랐다. 출발부터 홈런을 날린 그는 ‘포스트비쥬얼’이라는 회사 이름처럼 다음 시대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끊임없이 제시해왔다. 모든 게 디지털이 된 지금, 그는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의 화두가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그가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소통이자, 스스로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러’라고 말하는 이유다.

원래 사학을 전공하다가 다시 미대에 들어간 걸로 압니다.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공은 생각지도 않고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러고는 우연히 미술 학원 광고를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서 그날 바로 등록했어요.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수업 시간에 강의도 듣지 않고 미술 학원 숙제를 할 정도였어요.알고 보니 제가 다니는 곳이 입시 미술 학원이더라고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친구랑 같이 등록했는데 내가 친구보다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웃음) 그래서 2학년 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재수를 했어요. 4수생과 같은 나이로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해서 97학번 왕 언니가 됐죠. 사실 그때도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고요. 미대를 가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미대생이 되고 싶은 게 전부였어요.

그렇게 들어간 미대는 어땠나요?

1학년 때는 연애에 전념했습니다.(웃음) 한창 PC통신을 하던 때였는데, 그때 통신을 하면서 이정원 대표님을 만났어요. 연애는 후회 없을 만큼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디자이너의 꿈을 꾸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선배네 회사에 놀러 갔다가 선배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동안 사무실을 지켰어요. 그런데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한 거예요. 모니터를 봤더니 물방울 하나가 그려져 있더라고요. 마우스를 살짝 건드렸는데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거예요. 그때 정말 놀랐어요. 지금이야 인터랙션이 워낙 흔하지만, 그때는 컴퓨터란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했지, 마우스 반응을 알아챈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거든요. ‘내가 뭘 잘못했나?’ 걱정하다 선배들한테 물었더니, 플래시라는 프로그램으로 사이트를 만든 거라고 하더군요. 인터랙션이라는 개념 자체가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플래시라는 프로그램에 푹 빠져서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했어요.

1999년 개인 웹사이트 설은아닷컴으로 주목받으면서 유명해지셨지요?

설은아닷컴을 만든 게 대학 3학년 때였습니다. 플래시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된 후 프로그램 자체가 재밌어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이 프로그램으로 만든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플래시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 플래시를 이용해 만든 작품을 올리는 해외 사이트를 알게 되고 거기에 완전히 빠져서 매일 들락거렸습니다. 그때 눈에 띄는 사람이 딱 2명 있었는데, 미국 디자이너 힐먼 커티스(Hillman Curtis)와 일본 디자이너 나가후지 간와였어요. 플래시에 영상미를 담아낸 힐먼 커티스의 스타일이 정말 좋았습니다.또 저보다 한 살 많은 나가후지 간와가 만든 ‘나가후지닷컴’은 질투도 나고, 제 작업이 쓰레기 같아 보일 정도로 잘한 거예요. 당시 그런 사이트들은 자기 프로필을 플래시로 얼마나 멋지게 구현해내느냐를 뽐냈는데, 나가후지닷컴은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그날 ‘설은아’라는 이름을 걸고 사이트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해서는 더 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전혀 다른 콘셉트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 국가, 나이 같은 정보는 하나도 넣지 않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플래시라는 툴을 어떻게 해석하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사이트를 만들었어요. 그게 바로 설은아닷컴(www.seoleuna.com)입니다. 당시 이정원 대표가 옆에서, 요즘은 다들 홈페이지를 만든다는데 너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부추기기도 했죠. 어떤 기대를 하고 만든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한 거예요. 과제랑 상관없이 방학 때 즐겁게 만들었어요. 사이트를 만든 다음 배낭여행을 갔다가 돌아왔더니 갑자기 유명해져 있더라고요. 평범한 학생에서 관심의 대상이 됐어요. 마침 제1회 국제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대상을 받았습니다. 타이밍이 좋았어요.

보통 디자이너들이 회사에서 포트폴리오를 쌓아가며 이름을 알리는 것에 반해 대표님은 시작부터 대단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디자이너로서 조금 특별한 출발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설은아닷컴으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일상이 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었어요. 회사를 알아보기도 했는데 일단 작업실부터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4학년 12월, 컴퓨터 한 대로 8평짜리 사무실에서 포스트비쥬얼을 시작했어요. 세무서에 가니 5분 만에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주더라고요. 설은아닷컴이 그랬던 것처럼 감성적으로 소통하는 상업 사이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일에 대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포스트비쥬얼은 무슨 의미인가요?

처음 포스트비쥬얼을 만들고 나서 제 꿈은 새로운 비주얼을 보여주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시각 디자인’을 영어로 하면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이잖아요. 회사 이름에 비주얼이라는 단어는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의 비주얼이 아니라 다음 단계, 새로운 시대의 비주얼에 관심이 있다는 의미를 담아 포스트비쥬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회사의 성격은 그때와는 또 달라졌어요. 현재 포스트비쥬얼은 단순한 디자인 회사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포스트비쥬얼의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이름으로 사명을 바꾸려고도 생각 중이에요.

설립 초기에는 <엽기적인 그녀> <4인용 식탁> <주홍글씨> 등 화제를 모은 영화 웹사이트 디자인을 많이 했습니다. 포스트비쥬얼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엽기적인 그녀>였습니다. 영화 사이트 작업은 정말 즐거워요. 지금도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 자체의 스토리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주제인데,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는 텔링만 하잖아요. 사람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 다들 다른데 말이죠.영화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그런 점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영화 전문 디자인 회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주홍글씨>를 마지막으로 영화 웹사이트 작업은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처럼 정해진 스토리텔링보다는 더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때부터 다른 클라이언트를 찾으면서 확장했습니다.

현재 포스트비쥬얼의 성격이 초반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설립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바뀌어왔나요?

초기의 포스트비쥬얼은 웹 디자인 회사였습니다. 영화부터 기업, 브랜드의 웹사이트 작업을 하는 제작 중심의 웹 에이전시였어요. 그 당시 진행한 나이키, 팬택앤큐리텔, LG 싸이언, 기아자동차의 작업은 스토리텔링이나 콘셉트, 브랜딩에 강했어요. 우리의 이런 장점을 클라이언트도 알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캠페인 관련 의뢰가 많이 들어왔어요. 하나의 브랜드에 대해 콘셉트를 만들고 제작부터 광고까지 맡아 하는 일이 우리가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분야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디지털을 중심으로 하는 온라인 광고 대행사의 길로 접어들었죠. 웹 에이전시와 온라인 광고 대행사의 역할을 함께 했어요. 콘셉트 잡는 것부터 제작까지 하는, 크리에이티브에 강한 온라인 광고 대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이제 디지털은 시대의 한 분야가 아니라 패러다임이에요. 세상 자체가 디지털입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법도 달라져요. 포스트비쥬얼은 디지털 패러다임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어요. 디지털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크리에이티브를 할 수 있는 거죠. 예전에는 TV 광고는 TV, 지면 광고는 지면이라고 미디어를 먼저 정하고 그다음에 어떤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했지만, 이제는 크리에이티브를 중심으로 미디어를 선택합니다. 어떤 목표에 제일 적합한 미디어를 선택하는 거죠. 덕분에 기존 광고 대행사처럼 TV 광고를 해온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 미디어를 다루면서도 충분히 TV 광고와 인쇄 광고까지 다 할 수 있게 됐어요.앞으로는 디지털적인 사고로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회사로 나아갈 계획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디지털 시대의 통합 광고 대행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회사가 성장하면서 대표님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설은아닷컴을 선보였을 때는 웹 아티스트였어요. 그러다 웹 디자이너가 됐고, 또 아트 디렉터가 됐다가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하죠. 하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건 제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러(interactive storyteller)라는 거예요. 사실 저의 최종 목표는 디자이너가 아닙니다. 디자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보면서 ‘내가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을까?’,‘내가 정말 저렇게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렇지 않았어요. 내가디자인을할수는있지만최고가될수는없겠다싶더라고요. 하지만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러라는 이름으로는 최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이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저만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해요.

2010년 웰콤 부사장이었던 이지희 대표가 합류했습니다. 새롭게 얻게 된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통합 광고 대행사로 가기 위한 모든 노하우를 갖추게 됐어요. 기존업계의흐름이라든가관행등시장과멀리떨어져있을때는 모르는 여러 가지를요. 디지털의 흐름이 급변하고 통합되면서 디지털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좀 더 큰 범위의 본질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새로운광고를하자는게이지희대표님과저의공통된 생각이었죠. 저희가 기대하는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데 이지희 대표님과 함께하면 조금 더 빨리,단단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요.광고 영역부터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브랜드를 만드는 영역까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의 기반이 갖춰졌다고 볼 수 있어요.

디지털 미디어 분야의 경우 디자인 전문 회사 스스로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고 지향하는 곳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게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크리에이티브를 갖춘 회사들은 광고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R/GA나 AKQA 같은 회사가 대표적인 예인데, 포스트비쥬얼의 롤모델입니다. R/GA나 AKQA는 광고 회사의 구조를 갖췄어요. 전략 기획부터 제작, 개발까지 직접 합니다.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크리에이티브는 머리만 가지고는 되지 않거든요. 어떻게 개발하는지, 어떤 논리 구조로 실행되는지 디테일하게 알아야 크리에이티브가 가능합니다. 이걸 제대로 모르면 딴 나라 얘기가 돼요. 사용자와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미묘한 것까지 신경 써야 해요. 전문적인 디지털 기술을 갖춘 회사는 그런 장점을 무기로 오프라인 대행사들과 경쟁합니다. 최근 국내 최고의 오프라인 광고 대행사들과 경쟁해서 프로젝트를 따냈어요. 최종 프로젝트를 우리가 진행하게 됐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통합 광고라면 디지털 미디어와 TV 등을 아우르는 건가요? 현재 포스트비쥬얼이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브를 대표할 만한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세요.

현재 ‘쁘띠첼’이라는 디저트 브랜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쁘띠첼 하면 제일 먼저 아이들이 먹는 젤리를 떠올리는데, 젤리 외에 푸딩, 케이크를 묶어 디저트 브랜드로 만들려고 해요. ‘2529 여성들의 쿨한 디저트 브랜드’를 만드는 게 미션이었습니다. 일단 디저트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크리에이티브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가장 적합한 매체를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디저트를 ‘기분+음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디저트는 배부르려고 먹는 게 아닌, 기분에 따라 먹는 음식이니까요. 2529 여성들의 감성을 녹여내는 데 중점을 두고 생각해낸 테마가 ‘쁘띠첼 디저트 심리학’이에요. 갑자기 휴대폰 컬러링을 바꾼다든가,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든가, 머리를 자른다든가 여자들의 심리를 드러내는 행동이 디저트와 어떤 관계가 있는 듯 관계맺기를 해준 것이죠. TV 광고를 만들어야겠다, 지면 광고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 자체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든 거예요. 그 브랜드만의 콘텐츠를 갖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풀 수 있어요. 광고를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브랜드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는 거예요. 카카오톡에는 심리학 강의를 개설하고, 영화관 앞에는 디지털 인스털레이션을 설치했어요. 하나의 콘셉트가 TV 광고, 지면 광고, 웹사이트, 모바일 사이트, 카카오톡, 페이스북까지 이어지는 거죠.

예전에는 디지털 광고를 한다고 하면 웹사이트가 기본이었는데, 요즘은 대부분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같은 SNS 채널을 활용합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브랜드 웹사이트 이용에 이전처럼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웹사이트의 경우 인터랙션은 거의 없이 훨씬 단순해졌어요. 제가 볼 때 웹사이트는 2008년이 정점이었던 것 같아요. 웹상에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때 다 나왔어요. 정말 ‘이게 종결자구나’ 싶을 정도로요.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만 정보를 얻는 게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 채널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잖아요. 최종 목표는 우리가 타깃으로 하는 사람의 페이스북 혹은 트위터 같은 SNS 채널에 우리가 진행하는 캠페인이 올라가게 하고, 그곳을 들끓게 하는 겁니다. “Will you send it?”이라는 질문으로 항상 마지막 점검을 해요. 혼자만 보고 끝나는것이아니라다른사람과공유할수있도록하는거죠. 거기까지 가야 좋은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던진 화두로 사람들이 소통의 대화를 시작하는 거니까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미디어만 다를 뿐 똑같은 광고예요. 소비자들을 한번 보세요. 이미 우리 일상에서 온·오프라인이 경계 없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는데 광고가 기존의 관행 때문에 일부러 구분해 진행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 같아요. 브랜드의 미션과 타깃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해답을 내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평소 스토리텔링과 인터랙티브를 강조하셨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소통’은 무엇인가요?

2~3년 전에 제가 생각하는 소통에 대해 정리해봤어요. 스스로에게 ‘네가 말하는 소통은 뭐야?’라고 물어본 거예요. 일단 디지털이 무엇인지 정리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디지털은 패러다임 그 자체입니다. 패러다임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요. 첫째는 이용자 중심의 패러다임이에요. 예전에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방식이 크리에이티브의 핵심이었어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얼마나 잘 표현됐는지가 중요했죠. 그런데 지금은 듣는 사람이 내가말한걸어떻게활용하는지,내이야기를듣고얼마나 공감했는지, 이용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스토리 이네이블링(enabling)이라고 말합니다. ‘enalble’이 무엇을 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들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리고 둘째는 상생 공존의 패러다임입니다. 10년 전 망해가던 애플이 시가총액 1위가 된 이유는 애플이 선보인 제품이 독자적이기도 했지만 앱스토어라는 소프트웨어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는 앱스토어에는 상생 공존의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점점 상생 공존의 법칙을 적용하는 브랜드에 큰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이게 지금 시점에서 제가 생각하는 소통이에요.

나이키와 오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결이 궁금합니다.

‘Just do it’이라는 말에도 나타나지만 나이키는 도전과 혁신을 추구합니다. 저희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과 같아요. 포스트비쥬얼은 기존의 소통 방식에 대한 도전,가장 혁신적인 소통 방식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서로 추구하는 기본 가치가 맞아떨어지는 게 나이키와 함께 가면서 프로젝트를 잘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아닐까 해요.

디지털 미디어 분야는 가상의 세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실체가 없어 디자인하기 힘든 점이나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크게 아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장점이 훨씬 크거든요.새로운 걸 쉽게 시도해볼 수 있고,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수정해도 바로 실현할 수 있고,지금 만든 걸 해외에서 바로 볼 수도 있고요.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 마케팅하고 광고를 만드는 만큼 트렌드에 민감해야 할 텐데 평소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얻나요?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니 이제 트렌드를 공부해야 할 때가 있어요. 직원들이 모두 20대다 보니까 평소에 어떤 옷을 입는지,어떤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 잘 알긴 하는데,그래도 한 카테고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얘기하면 다르더군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하잖아요. 저도 20대 때는 나름 전문가였는데 말이죠.(웃음) 저는 직원들에게 제일 많이 배워요. 같이 밥 먹고 얘기하면서요. 일단 안테나 걸들을 불러서 집중적으로 물어보고, 직원들이 추천해주는 잡지 등 여러 가지 것들을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때그때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공부하지만, 최대한 일상에서 느끼려고 해요.

개인적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하시나요?

트위터는 안 하고 페이스북은 가끔 해요. 예전에 블로그는 열심히 했어요.요즘은 모든 걸 보여주면서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을 알리는데, 저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제가 있고, 또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제가 있고, 그냥 나 자신으로의 제가 있는데, 페이스북에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어요. 하긴 하는데 열심히 하지는 않아요. 직업적으로는 열심히 연구하지만요.

인터넷은 하루에 몇 시간 하세요?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집에서는 완전히 디지털에서 벗어난 생활을 해요. 집에는 컴퓨터도 없어요. 매일 최첨단 속에서 일하니 집에 가면 땅 파고 꽃 심고 싶어요.(웃음)

최근 몇 년간 디자인계에 인문학 공부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어떤가요?

유행이라 그런 게 아니고, 원래 책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이 낳고 나서 인생의 사춘기를 겪었어요. 회사 설립 후 10년 정도는 일밖에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왔죠.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니 인생 자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어요. 그 전에는 업무에 도움이 되는 책만 읽었는데 그때부터 세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하면서 문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호기심이 생겨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통해서 제가 궁금해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게 정말 즐거워요. 결국 제가 하는 일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나중에 더 나이 들어서 깊이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하지만 그것 때문에 하는 건 아니에요. 책을 읽는 건 제가 크리에이터가 아니더라도 계속 좋아할 겁니다.

디자이너로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회사 대표로서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희생하는 과정이 싫어요.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열심히 바쁘게 생활하다가 가끔 ‘내가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내가 원하는 삶과 현재 삶의 괴리가 커지면 어느 순간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지금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히 확인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포스트비쥬얼은 처음에 작은 규모로 시작한 회사예요. 느리게 성장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컸어요. 처음부터 성장을 위한 성장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루를 살아도 행복해야죠. 그리고 저는 일을 하면서도 가정에 소홀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대부분 성공한 여성들은 집안에 신경 못 쓰는 경우가 많았잖아요.저는 아이들 키우는 게 정말 기쁘고 좋아요.균형 있게 일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저 스스로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을 말씀해주세요.

포스트비쥬얼은 아직 업계에서 도전자의 입장이에요. 실패를 하더라도 저희가 바라는 방향으로 갈 거예요. 성공을 위한 실패를 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포스트비쥬얼 디렉터로서의 꿈은 디지털 시대의 통합 광고 대행사로 위치를 공고히 하는 거예요. 그다음은 다른 게 있겠지만 지금은 거기까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꿈은 웃으면서 죽는 거예요. 제가 그리는 죽음의 장면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는 모습이에요. 살아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하면서요.그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잘 살고 싶어요.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07호(2012.05)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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