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의 나이에 80대 노인으로 변장한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가 말하다

미국의 산업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는 그래서 직접 노인으로 변장하고 생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1979년부터 1982년까지 80대 노인으로 살았다. 그때의 경험은 디자이너인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26세의 나이에 80대 노인으로 변장한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가 말하다

나이 들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는 디자이너도 나이가 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노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죽었다 깨나도 모를 수 있다. 나중에 나이가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국의 산업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는 그래서 직접 노인으로 변장하고 생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1979년부터 1982년까지 80대 노인으로 살았다. 그때의 경험은 디자이너인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1979년부터 3년 동안 80대 노인으로 변장하고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불편을 겪는지 직접 체험한 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생산된 제품과 디자이너는 노인을 얼마나 고려했나요? 산업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노인과 노인의 삶에 대해 연구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의 사무실에서 일할 때 상사에게 야단맞던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가장 어린 디자이너였고 유일한 여자 디자이너였습니다. 나는 근력이 약한 노인들도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는 냉장고 손잡이를 디자인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야”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충격적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이라니요. 레이먼드 로위 같은 디자이너가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디자인은 도대체 누가 해야 할까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나이 든 분들이 많은 동네에서 자라온 저는, 전문가들이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유지하는걸 소홀하게 여기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고요.

노인들에게 질문하고 듣는 방식으로 조사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직접 체험하기로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1979년 소위 ‘노인 감정 이입 체험(elder empathic experience)’을 시도했을 때, 그 주된 목적은 나이를 많이 먹었을 때 경험하게 되는 질병이나 만성질환의 의학적인 치료를 위한 것이었어요. 당시는 건축이나 디자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노인은 소비자가 아니라는 잘못된 시각이 있었죠. 근본적으로 노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관찰이나 설문 조사 같은 방법도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충분히 소통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나 그 친구분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굉장히 잘못된 디자인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편으로는 한 개인이 과연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도움으로 나 자신이 완벽하게 80대 노인의 모습을 재현하게 되면서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79년 5월부터 1982년 10월까지의 여정을 통해 나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에서 노인으로 살아가는 게 어떠한 것인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26살이었는데 80대 노인으로 분장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당시 26살이던 내 모습을 노인처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영화에서 특수 분장을 하는 게 익숙하고거의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지만 그땐 젊은 사람이 노인처럼 분장하고 나오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젊은 더스틴 호프먼(Dustin Hoffman)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 1970년에 나온 영화 <작은 거인Little Big Man> 정도를 들 수 있지요. 분장 전문가의 도움 없이 내 모습을 완벽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TV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신체적인 분장은 물론이고 인공 기관을 이용해 청력, 근력, 시력까지 노인 수준으로 낮췄어요. 지팡이와 보행기, 휠체어를 사용해 불편한 움직임도 경험했습니다. 다양한 의상을 준비해 집 없는 거지 노인, 하녀를 거느린 부잣집 노인 등 9명의 노인으로 변장했습니다. 얼굴을 노인으로 바꾸는 게 가장 힘들었는데, 보통 2~3시간은 걸렸고, 분장하는 동안 나는 그날 있을 여러 가지 일을 예상하곤 했지요.

80세 노인으로 분장하고 어떤 활동을 했나요?

그날의 역할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어떤 날은 아주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인으로, 또 어떤 날은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 보행기에 의존한 노인으로 행동했습니다. 어떤 날은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다니기도 했고요. 하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활동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아주 작은 마을부터 큰 도시까지 총 116개 도시를 다녔습니다. 버스, 지하철, 택시, 기차, 비행기도 탔지요.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기도 했고, 영화나 연극도 보러 다녔습니다. 그러는 과정에 친구도 생겼고 또 그 친구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나이나 신체적인 능력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려고 노력했어요.

어떤 점이 불편했는지 궁금합니다. 신체적으로 불편한 것도 그렇고 심리적으로 불편한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노인 분장을 하고 거리에 나간 첫날부터 평소에 노인들이 얼마나 생활하기 힘든가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6살의 나였다면 불과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가는데도 노인의 모습으로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어요. 결국은 택시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빈택시들이나를보고도못본척지나가는거예요.나중에알고보니 택시 기사들이 나이가 많은 승객을 불편해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래도 결국 마지막에 나를 태운 택시 기사는 직접 차에 내려서 내가 타는 것을 도와줄 정도로 친절했어요. 공항으로 가는 내내 그 기사는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했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 존경심과 사랑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택시 기사들은 그렇지 않았죠. 가게 점원이나 사무를 보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인에게 친절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반반 정도였던 것 같아요. 일반인과 다른 취급을 받는 건 당연하고, 어떤 때는 아예 무시당하기도 했어요. 집 없는 거지 노인의 모습으로 공원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경멸감도 느꼈습니다. 불편하고 추운 것은 물론이고 공포감까지 느꼈어요. 반면에 우정과 사랑, 즐거움도 느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공원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서 아주 즐겁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반면에 놀리고 돌을 던지는 아이도 있었지만요. 디자이너로서 나를 돌아보게 만든 경험은 아주 간단한 일도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였습니다. 디자이너가 노인을 고려하지 않고 디자인한 것들 때문이었지요. 식당 문을 열 때나 식품점에서 시리얼 상자를 꺼낼 때 등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이 디자이너로서의 생각을 바꾸게 했습니다.

이후 노인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인에 대한 인식과 실제로는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노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건축가, 디자이너, 그리고 엔지니어에게 노인들이 자신의 일상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해야만 하는 나이가 되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존엄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한 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이가 드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우리는젊을때즐기던것을나이들어서도즐기고싶어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느냐는 디자인의 몫이지요. 나는 지금까지 자신의 독자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노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특히 베이비 붐 세대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고자 하는 욕구가 아주 강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건축가, 디자이너, 엔지니어, 정치가, 그리고 서비스에 관련된 사람들이 도와줘야 하지요. 노인에 대해 공부하고 난 후에 이전과 생각이 달라진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디자인의 기준이 바뀌었다거나,새로운 걸 볼때 어떤 걸 유심히 보게 되었다든지, 그런 게 있나요?

디자이너와 노인학자로서의 경험은 나의 자세와 신념을 재확인시켰습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불구자 또는 장애자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여전히 확고하고요. 디자이너는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디자인해야 해요 세계적으로도 성별, 인종, 종교 등의 차이에 따른 편견이나 선입견을 없애려 하고 있잖아요. 연령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아직도 우리 모두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에는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 많아요.


박스터 헬스케어(Baxter Healthcare), 헤리티지 헬스케어 (Heritage Healthcare) 같은 건강관리 회사, 윌풀(Whirlpool),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같은 가전 회사, 옥소(Oxo),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 킴벌리 클락(Kimberly Clark) 같은 생활용품 회사에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정부와 산업계가 디자인으로 포괄성과 보편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참 보람 있는 일입니다. 피닉스(Phoenix) 경전철을 처음 타는 사람들이 경전철의 디자인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이야기하는 것을들을때마다정말기쁩니다.휠체어를탄사람들이쉽게타고 내리는것을보거나,시력이좋지않은사람들이쉽게길을찾는것을 볼때는가슴이벅찰정도예요.내가디자인한것덕분에다른사람들의 삶이 좋아지는 걸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요. 40년 정도의 경험으로봤을때,가장눈에띄지않는것이가장큰영향을준다는 점을말하고싶습니다.쉽게열고닫을수있는패키지,쉽게읽고 이해할수있는라벨,의학적인단점을가려주거나독자적인삶을살수 있도록만들어주는해결책,소중한생명을구할수있는진단기구,이 모든 것이 내게는 소중합니다. 디자인이야말로 가장 궁극적인 도우미인 셈이지요.

유니버설 디자인모두를 위한 디자인으로 젊은이와 늙은이, 혹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고령화 시대에는 노인만을 위한 디자인도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는 옥소의 창업자인 샘 파버(Sam Farber)와 그의 부인 베시(Betsey)와 함께 옥소 굿 그립(Good Grips)을 만들었습니다. 옥소의굿그립이관절염때문에기존의감자깎는칼을사용하기 어려운 부인을 위해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지요. 손이 불편한 사람은 물론이고 평범한 사람들도 사용하기 편리한 옥소의 굿 그립은 대표적인 유니버설 디자인입니다. 우리는 항상 특정한 문제에 대해 가장 적합한 디자인 해결책을 원합니다. 하지만 훌륭한 디자인의 핵심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기능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이나 능력, 어디에 중점을 두든 상관없이 디자인의 목적은 그 제품의 가장 중요한 요건을 만족시켜야합니다.그리고그제품을필요로하는가능한한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하죠. 어떤 사람에게는 ‘있으면 더 편안하고 좋은 것’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생아나 유아를 제외하고는 각각의 연령대에 맞는 디자인을각각별도로할수도없고또해서도안된다고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나이가 그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를 결정한다기보다는 각 개인의 능력 차이가 필요의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기능적인 적합성 외에 어떤 측면이 노인들을 위한 디자인에서 중요한 요소일까요?

나이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직접 선택하기 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인을 위한 좋은 디자인 사례를 말씀해주신다면요?

스마트 하우스 기술의 개발이 가장 중요한 디자인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협받는 일입니다. 평생을 보장해줄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각국정부가당면한가장큰문제입니다.만약이문제를해결하지 못한다면 세계 경제까지 마비될 겁니다. 눈에보이는디자인외에디자이너가노인을위해서어떤일을할수 있을까요?
제대로 디자인된 공간이나 제품은 연령과 능력 수준에 상관없이 각자가 선호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디자이너는 각각의 환경, 제품, 서비스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삶’이라는 양탄자를 완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각 요소가 평형을 이루도록 디자인한다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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