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대안 학교 ‘파티’ 여는 안상수

익대 시각디자인과의 상징이기도 했던 그가 30여 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제2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포부를 밝힌 그의 프로젝트는 바로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디자인 대안 학교 ‘파티(PaTI, Paju Typography Institute, 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를 세우는 일이다.

디자인 대안 학교 ‘파티’ 여는 안상수

지난 8월 22일 안상수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의 퇴임식이 있기 이틀 전의 일이다. 8월 24일 안상수 교수의 퇴임식 ‘날개.훨훨.기림.잔치’가 저녁 9시에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갑작스레 퇴임 날짜를 알린 이유는 혹시나 참석이 어려울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핑곗거리를 만들어주려는 그의 배려였던 것.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의 상징이기도 했던 그가 30여 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제2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포부를 밝힌 그의 프로젝트는 바로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디자인 대안 학교 ‘파티(PaTI, Paju Typography Institute, 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를 세우는 일이다. 디자인이 사람, 평화, 삶 등 지구적 가치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기 위해 계획한 것이라고. 새롭게 시작할 디자인 인생을 준비하는 안상수 교수에게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8월 24일 30여년 동안 재직해 온 홍익대에서 퇴임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적잖이 놀랐어요.

달리는 KTX에서 내려 스마트(벤츠가 만든 초소형 자동차)로 갈아탔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제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편안한 기차에서 내렸습니다.사실 지난해 3월에 그만두겠다고 과 교수들에게 말해두었지요. 그동안 주변 정리를 하며 내년 2월 말 파주에서 문을 열 ‘파티’를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하면 안상수 교수님을 떠올릴 만큼 상징적인 역할을 하셨는데요, 교직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전임 교수로 보낸 21년, 강사 생활 9년까지 합치면 홍대와 30년 세월을 함께 했네요. 제가 70학번이니 학교를 다닌 것까지 치면 40년 이상을 홍대 근처에서 살았어요.
제 약력에서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홍대 사람’이란 건 늘 따라다니겠지요. 가장기억에남는건제가20여년동안 매일 아침 9시면 학교에 출근을 했다는 것입니다. 수업이 있든 없든, 매일 그 시간에 출근을 했어요. 아마 이 사실은 함께 생활한 조교 빼고는 아무도 모를 거예요. 교수로서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정말 즐거워서 매일 학교에 갔습니다. 특히 문과대 교수들과 함께 어울리고 식사도 하면서 나눈 이야기가 즐거운 추억으로 남습니다.

준비하고 계신 타이포그라피 대안 학교 ‘파티’에 대한 얘기 좀 들려주세요.

2013년 2월 25일 파주출판단지에서 정식으로 문을 엽니다. 지금껏 저는 철저하게 제도권 교육 속에서 자라왔던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그 교육의 단점 또한 잘 알고 있고요.단점을 개선해 좀 더 다른 교육을 실현해보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렵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예전부터 구상해온 작은 학교를 세우려고 합니다. 그게 바로 대안적 네트워크 학교예요. 디자인이 서구 문화에서 생겨났으니 당연히 디자이너의 인식 밑바탕에는 서구적인 것이 깔려 있었을 거예요. 이제 그것은 충분히 소화했으니 ‘우리의 제다움’을 갖는 배움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명, 평화 등 지구적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디자인 학교를 꿈꿉니다.

파티는기존 디자인대학과 어떤 점이 가장 다를까요?

저는 세종이도가 우리겨레,나아가 온누리에서 가장 큰 디자이너라고늘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제다움을 위해서라도 학교 자체가 세종 정신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인의 등뼈이고, 타이포그래피의 바탕에는 글자가 있죠. 그 글자의 중심에 창의적인 한글이 있으니 세종 정신은 우리의 디자인 정신의 핵심입니다. 파티는 4년 과정의 큰 배움터와 대학원 과정이라 할 수 있는 2년짜리 높은 배움터로 나뉘는데, 각 과정당 10명씩, 20명의 학생으로 시작할 거예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할 것이고요. 그리고 학교의 사유 재산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학교가 돈을 벌면 버는 만큼 학교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통장 잔고를 ‘0’으로 만들거예요. 학생이나 스승이 함께 자율적 공생을 목표로 하고 스스로 즐겁게 생활하면 좋겠어요.

학교에 대한 그림이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것 같은데, 캠퍼스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파티가 문을 여는 파주출판단지는 제본소, 인쇄소, 영화관, 게스트 하우스, 출판사 등의 시설 자원과 편집자와 디자이너, 필자, 마케터 등 우수한 인적 자원이 풍부합니다. 파티 바로 옆에는 활판 공방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가 있어요. 열화당 도서관도 있는데 그곳을 파티의 도서관으로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 근처에 있는 마로니에북스의 타셴 책방 역시 도서관으로 활용할 겁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납활자 인쇄가 가능한 활판 공방은 파티의 중요한 실기실이 됩니다. 한마디로 파주출판단지 전체를 캠퍼스로 활용하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파티를 파주출판단지의 디자인 허브로 만들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파티를 필두로 건축 학교, 영화 학교, 사진 학교, 전통 장인 학교 등 여러 분야의 대안 학교와 연대할 계획입니다. 연대할 학교가 더 늘어날 수도 있고요.알고 보니 제 뜻과 같은 사람이 주변에 많더라고요.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건축 학교를 계획 중이고요, 이기웅 파주출판도시 이사장이 사진 대안 학교를,이은 명필름 대표가 영화 학교를, 신연균 아름지기 이사장은 전통 장인 학교를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스위스 바젤디자인대학(The Basel School of Design)과도 협업하며 공동 학위 문제까지 함께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중국 중앙미술학원(China Academy of Fine Art, CAFA), 네덜란드 타이포그래피 공방(Werkplaats Typografie) 등 국외로 네트워크를 더욱 넓혀나갈 예정입니다.

어떤 분들이 수업을 진행할지도 궁금합니다.

수업은 프로젝트 중심의 워크숍으로, 블록식으로 진행할 거예요. 개교 첫 수업에는 자신이 파티에서 공부하는 동안 사용할 책상과 의자를 학생들이 직접 만들 거예요. 학교 실내와 가구 디자인 지도는 노네임노샵의 김건태 씨가 맡고, 재활용 목공 작업은 하자센터 목공방의 박활민 씨가 맡을 겁니다. 또 김두섭, 민병걸, 이용제, 박우혁, 김영나, 크리스로, 최준석, 이재철, 강준모 등의 스승들이 수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해외에서 하라 켄야, 카렐 마르텐스(Karel Martens), 볼프강 바인가르트(Wolfgang Weingart), 마이클 레너(Michael Renner),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 등 거장 교수들이 저희를 지지하고 있어요. 저희는 담임제를 실시할 겁니다. 대학에도 담임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여행입니다. 여행은 ‘길 위의 디자인’ 커리큘럼으로,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정말 중요하죠.

한국 사회는 여전히 대학 졸업장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오래 몸담으셨던 학교 역시 디자인계에서그런 권력을 가진 대표적인 대학이고요. 교수님이 구상하는 교육 방식은 기존 대학에 대한 도전이자 실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게 아마 대안 학교를 준비하는 저에게 큰숙제가될것같아요.하지만10년뒤를 예측하기 힘들어요. 미래에 과연 어떤 학위가 필요할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안이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학교는 물론 디자인과 예술 분야를 비롯해 사회 전체가 건전하고 튼튼해지려면 우선 교육에 대한 선택의 폭이 지금보다 더 넓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대안적인 시도가 더 늘어나야 하고요. 사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렵기는 하지만 그 두려움이 저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해보고 싶다는 즐거운 긴장감으로 느껴져요.

기존 교육 체계에서 많이 벗어난, 이상적인 디자인 교육을 꿈꾸시는 것 같네요. 입시 방법도 다를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을 뽑을 생각인가요? 파티에서 그리는 인재상이 궁금합니다.

당장의 실기 능력은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입시미술을열심히한친구가 불리할지도 모르죠. 2월 말 개교를 목표로 하는데 1월 중순에 지원자들을 데리고 2박 3일 워크숍을 통해 학생을 뽑을 예정입니다. 며칠동안함께생활하며한명한명 지켜볼 거예요. 어떤 사람이 파티에 잘 어울릴지 보는 거죠. 현재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은 성적순이잖아요. 이 방식을 달리 보면 평균적인 사람을 고르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공정성을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놓고 학생을 뽑다 보니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평가 방법이 개발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을 평가하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방법이 있겠어요. 창의 지수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건 단순 시험으로 가릴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고 봐요. 시험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현행 제도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으로만 평가를 하기에, 결국엔 평균적인 사람을 고를 수 밖에 없지요. 기존 미대 입시 제도의 특징은 정해진 틀 안에서의 단순 경쟁이지요. 경쟁이 창의성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건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파티는 다른 기준으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서 사람을 가리겠다는 거예요. 이것은 작으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선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이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에요. 그저 파티의 성향과 맞지 않을 뿐, 자신에게 맞는 더 좋은 곳을 찾아갈 수 있게 해야죠.

파티에서 꿈꾸는 대안 교육을 기존 대학에서 시험해볼 순 없었나요?

안타깝게도 현 대학 체제 안에서 디자인과 하나만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대학 안에는 디자인과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과목 하나만 해도 톱니처럼 물려 있어요. 인문대, 공대, 경영대 등 전체 학교의 운영 시스템과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 시스템은 전산화로 점점 더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지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지요.

그렇다면 지금의 대학들은 기존 교육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기차가 달리다가 갑자기 길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홍익대에 재직하며 교수로서, 디자이너로서 많은 혜택을 받았어요. 제가 지금의 자리에 있게된것도제힘만이아니라디자인계와 학교 선후배들의 지원과 성원 덕이죠. 제가 받은 것을 나눠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제 나이 예순 된 올해를 제 삶의 전환점으로 삼으려 합니다. 파티는 그 실천입니다. 사람의 힘이 한평생 가지 않을 것이고 체력, 기억력 등이 점점 떨어질 텐데, 남아 있는 힘이 있을 때 저의 재능을 나누려 해요. 많이 나눌수록 오히려 저의 생명력은 길어질지도 몰라요.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로서 30여 년간 열정적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한글 디자이너로서, 예술가로서의 면모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보고서\보고서> <마당> 등에서는 아트 디렉터로서의 능력을, 문화 기획자, 안그라픽스 설립자 등 디자이너라는 시작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셨어요. 올해 초에는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이라는 역할까지 추가했습니다.

제가 박원순 시장에게 재단 이사장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가족, 친구 등과 먼저 상의를 했죠. 저는 거절하려 했어요. 그중 친한 벗이 저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더군요. “그 제안을 거절하면 당신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 일을 안 한다면 당신이야 하고 싶은 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좋겠지만, 지금껏 디자인계가 당신을 키워준 걸 생각해봐라. 이제야말로 당신이 공공을 위해 봉사해야 할 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만을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돌려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죠. 좋다, ‘공익 근무’ 하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또 박원순 시장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기도 했고요. 희망제작소를 운영할 때부터 자신을 던져가며 사회 혁신을 위해 일하는 투철한 시민운동가라고 생각해왔거든요. 디자인을 좋아하고 또 디자인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기도 하고요. 명함에 ‘소셜 디자이너’라고 새겨 다니는 분이잖아요. 이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켜보겠다는 꿈을 디자인이라는 낱말로 함축시킨 것, 멋지지 않나요? ‘디자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화두를이사회에던졌다는것자체가 좋았어요.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으로서 하는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가장 즐겁게 일하는 부분이 페이스북을 활용해 시민들, 디자이너들과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제가 “디자인이 서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페이스북에 던지면 모두 같이 생각하며 인터넷 공간에서 의견을 소통하는 것이지요. 이곳에 모인분들이1만명을넘었어요.이를통해 좋은 생각을 모으고, 서울디자인재단 사업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2주일에 한 번 사람들의 의견을 요약한 보고서가 시장 책상 위에 놓입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13호(2012.1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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