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컨택트적 아카이브 시점 레벨나인

지난 3월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추자 뮤지엄을 비롯한 각종 문화 시설도 ·문을 닫았다. 대신 온라인 채널을 강화하는 식으로 관람객과의 접점 만들기를 서둘렀다. 공개된 온라인 전시는 구글 스트리트 뷰처럼 클릭과 드래그로 전시장을 성큼성큼 옮겨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온라인에 적합한 디지털 콘텐츠를 선보인 것이 아니라 실제 공간을 촬영한 3차원 지도의 수준이었다. 아날로그 물질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동일시한 온라인...

언컨택트적 아카이브 시점 레벨나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미디어월 ‘시간의 벽’.

지난 3월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추자 뮤지엄을 비롯한 각종 문화 시설도 ·문을 닫았다. 대신 온라인 채널을 강화하는 식으로 관람객과의 접점 만들기를 서둘렀다. 공개된 온라인 전시는 구글 스트리트 뷰처럼 클릭과 드래그로 전시장을 성큼성큼 옮겨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온라인에 적합한 디지털 콘텐츠를 선보인 것이 아니라 실제 공간을 촬영한 3차원 지도의 수준이었다. 아날로그 물질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동일시한 온라인 전시를 보면 오늘날 뮤지엄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업로드하는 데 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문득 삼국 시대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보고 켜켜이 쌓인 역사적 시간과 선조의 지혜에 감응하고 싶어졌다고 치자. 그러면 온라인 전시 링크에 접속해 (긴장감 없는) 1인칭 슈팅 게임의 플레이어처럼 공간을 헤집어가야 한다(100번 클릭). 마침내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앞에 도착해 화면을 당긴다. 과연 그 조각에서 미륵의 인생무상을 느낄 수 있을까?(인생무상 같은 것은 온라인 전시장에 접속하는 순간 이미 느꼈을 거다). 아마도 예술적 감응보다는 이 게임과도 같은 가상 공간에서 미륵반가사유상을 얼마나 빨리 찾아냈는가 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편이 낫다. 온·오프라인 콘텐츠는 목적과 목표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점점 읽기보다는 보기를 원하고 보기보다는 사진 찍기를 원한다. 오늘날 뮤지엄은 더 이상 그 존재만으로 위엄을 갖는 수장고가 아니며 소장품을 비롯한 각종 문헌 자료와 영상, 소리 등의 아카이브가 이제는 연구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각 기관이 전시를 뒷받침하고 오래된 문서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경험을 개발하는 것에 애쓰는 이유다. 이러한 뮤지엄 경험과 디지털 아카이브에 대해 남다른 접근법을 보여주는 디자인 스튜디오 레벨나인은 최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상설 전시 〈대한민국의 시간을 만나다〉에서 에필로그 프로젝트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바로 이곳의 소장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한 미디어월 ‘시간의 벽’과 ‘일력 만들기 키오스크’다. 관람객은 키오스크에서 색, 도형, 단어를 선택하고 대한민국의 시간이 담긴 유물과 자료 이미지를 받는다. 그 위에 각자 원하는 표현을 얹어 한 장의 일력을 완성하면 갤러리에 저장되는데, 다른 관람객이 만든 일력과 함께 거대한 타임라인의 일부가 된다. 레벨나인은 이렇게 아카이브 자료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월부터 전시, 공간, 체험, 그리고 키오스크로 계속 분화되는 결과물을 선보인다. 문학평론가 임태훈은 컴퓨터 모델을 사용해 방대한 문헌과 역사를 네트워크로 엮고 비교하는 것은 곧 ‘마음의 역사’를 발굴하는 공정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축적된 수많은 자료와 문헌을 현재의 방법으로 재해석하고 보여주는 일은 혼돈 속에 질서를 만드는 일, 카오스모스Chaosmos다. rebel9.co.kr

국립국악원 국악 아카이브월.

mini interview
레벨나인 김정욱 실장

레벨나인은 주로 어떤 일을 하나?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 기성의 형태를 거부하는 저항자 정신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주제로 융합적인 창작 활동을 전개한다. 시작은 뮤지엄의 아카이브 연구와 시스템에 대한 작업이었다. 뮤지엄 같은 문화 기관을 확장하면 ‘기억 기관’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기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프로젝트는 기억에서 출발한다. 또한 합정동에 위치한 예술 공간 엘리펀트 스페이스를 운영하며 미디어 기반의 전시를 기획하고 ‘프로젝트레벨나인’이라는 창작 그룹으로도 활동한다. 기획자,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 공간 디자이너,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인터랙션 개발자, 뮤지엄 연구자, 아카이브 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하고 있다.

프로젝트마다 효과적인 보기 방식을 제안하며 뮤지엄 경험의 새로운 측면을 제시했다. 아카이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서 주안점은 무엇인가?

우리 프로젝트는 늘 ‘자산’을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유물, 자료, 파일, 문서, 책 등 아카이브가 무엇이건 간에 소통하고 싶은 매개물에 대한 이해와 분석으로 시작한다. 최근 많은 문화·예술 기관에서 디지털 자산 축적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보존과 기록이라는 측면 외에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지점에서 레벨나인은 운이 좋게도 다양한 기관과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 아카이브와 국립국악원 아카이브월이 대표적이다. 신라실 프로젝트의 경우 황금을 테마로 한 장신구가 주된 자료였기에 UHD 이상의 고화질 자료를 탐색하는 것이 골자였고, 후자는 시청각적 체험을 우선시했다. 아카이브 특성과 정보 전달의 지향점을 고려한 것이다. 결국 무엇을 매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고민해보면 동일한 미디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역서울 284의 공간 투어를 위한 도슨트 미디어도 디자인했다. 공간을 안내하는 일반적인 키오스크와는 차별화된 점이 많다.

이 특별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에 물리적 경험을 동반하는 인터페이스가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구 서울역에 있었던 그릴, 시계탑 등 공간 요소를 3D 오브제로 제작해 스크린을 작동시키는 인터페이스를 완성했다. 터치스크린으로 정보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아날로그적 경험이 이 장소와 더 잘 어울릴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또한 운영하는 측면을 고려해 키오스크가 한 장소에 고정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도록 카트 형태로 만들었다. 카트 디자인은 COM, 3D오브제는 서울과학사와 함께 했다.

지난해 라이즈호텔에서 열린 손과 기술에 대한 전시 〈손의 발전〉에서 미래적인 키오스크 ‘사용자’를 선보였다.

우리는 미디어를 디자인할 때 흔히 사용성, 인터페이스, 사용자 경험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용자User’는 지금보다 진화한 미래에도 과연 위 조건이 유효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즉 “인터페이스를 작동시킬 때 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면 관람객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조작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사용자가 손을 뻗어 화면의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지거나 보려고 하면 컴퓨터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더lidar 센서가 그 손짓을 인식한다. 이 미디어는 사용자와의 물리적 접촉이나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계속해서 도망가는 감각들 사이에서 사용자와 인터페이스 사이의 감각은 완전히 다른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상업 공간, 공공 공간을 불문하고 비대면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키오스크나 각종 미디어 인터페이스는 다양해지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생각해봐야 할 점은 무엇인가?

앞으로 키오스크의 모습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인터페이스 기술과 미디어 발전이 그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사용자의 변화에 있다. 텍스트를 덜 읽으려는 사용자, 정해진 이야기는 덜 들으려는 사용자,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무엇이든 덜 만지려는 사용자가 등장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매개로 관람객과 대화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글 유다미 기자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