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 멜릭서 대표 (MELIXIR)

건강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라

이하나 멜릭서 대표는 치열한 글로벌 뷰티 산업에서 경험한 노하우를 비건 화장품 브랜드에 쏟아부었다. 자신의 피부 고민의 해결책을 비건 화장품에서 찾았고, 비거니즘의 가치를 브랜드를 통해 전달하면서 건강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하나 멜릭서 대표 (MELIXIR)
이하나 멜릭서 대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순수 미술과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한국과 미국의 화장품 및 소비재 회사의 사업 개발과 전략 부서에서 경력을 쌓은 후 2018년 비건
스킨케어 브랜드 멜릭서를 설립했다.

멜릭서는 2018년 론칭한 국내 최초의 비건 스킨케어 브랜드다. 비건 화장품이란 동물성 성분을 배제하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에 적용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멜릭서는 제품의 성분만으로 비거니즘을 입증하는 화장품 브랜드는 아니다. 용기, 패키지, 협력 업체를 정하는 데에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한다. 한 사람의 가치 소비가 타인의 건강, 지구 환경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하나 멜릭서 대표는 치열한 글로벌 뷰티 산업에서 경험한 노하우를 비건 화장품 브랜드에 쏟아부었다. 자신의 피부 고민의 해결책을 비건 화장품에서 찾았고, 비거니즘의 가치를 브랜드를 통해 전달하면서 건강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하고 예전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창업과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었다. 졸업하기 직전에는 학교의 창업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해외 탐방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스타트업을 주제로 실리콘밸리에 다녀오기도 했다. 디자인 싱킹과 스타트업 문화에 매료되어 있었던 때다. 유튜브로 와이콤비네이터 대표인 폴 그레이엄을 비롯해 스타트업 대표들의 영상을 보곤 했다.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스타트업이란 고객이 원하고 필요한 것에 집중하여 이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비지니스를 만들어내는 조직을 의미한다. 당시 나는 작가나 디자이너가 어떻게 하면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모아 결과물을 만들고, 그것을 지속 가능한 모델로 만드는 디자이너의 일이 비즈니스와 맞닿아 있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이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면 창업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 것이다.

첫 직장은 와이콤비네이터의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국내 최초로 선발된 뷰티 커머스 기업이었다. 미국 지사에서 인턴 디자이너로 시작해 3년 만에 글로벌 사업부장까지 승진한 일화가 유명하다.

해외 탐방 프로그램과 일정이 겹쳐서 입사 일정을 조율하던 시기였다. 회사가 와이콤비네이터 지원 프로그램에 선발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에 함께 가서 근무하고 싶다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말했다. 실리콘밸리는 내가 동경하던 스타트업의 도시였으니까. 결국 대표를 비롯해 CTO, 마케팅 매니저, 그리고 인턴 디자이너였던 나까지 4명이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됐다. 정예 인원이었기 때문에 디자인뿐만 아니라 이커머스 운영 업무도 맡았다. 1년쯤 지났을 때 이제는 중국 사업부 개발을 맡아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경영이 적성에 맞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했다. 이후로 글로벌 사업부장을 맡아 미국, 중국, 홍콩 등에 지사를 만들어 매출을 견인하는 일을 했다.

멜릭서는 이하나 대표가 뷰티 커머스 스타트업에서 보낸 6년간의 경험을 그대로 녹여 만든 브랜드다. 고객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시장 분위기를 파악하는 일이 지금 일의 씨앗이 됐다. 일례로 미국 고객으로부터 ‘너희 화장품은 동물실험을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기 시작하면서다. 비건이 식습관뿐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의 태도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질문들이었다. 이후 비거니즘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브랜드 철학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창업 아이템으로 비건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화장품 산업에 종사하면서 늘 좋은 화장품 브랜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라이탁, 파타고니아 등 좋은 브랜드 철학을 가진 브랜드가 패션계에는 많지만 화장품 브랜드 중에는 정말 드물다는 것이 아쉬웠다. 대부분의 화장품 회사는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에 초점을 맞춰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추구한다. 나는 우리 세대가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좋은 화장품 브랜드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단순히 예뻐지는 것을 강조하기보다는 정말 나은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내가 응원하고 싶은 브랜드를 떠올리면서 사업의 방향을 잡았다. 사회적 기업까지는 아니어도,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을 향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다 비거니즘을 브랜드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만들어가기로 했다.

이하나 대표의 실제 경험이 녹아 있는 브랜드라는 생각이 든다.

비건 화장품을 만들기로 한 결정적 계기는 식물성 화장품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것 때문이었다. 당시 화장품을 좋아해서 정말 많은 종류의 화장품을 사용했는데 피부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실제로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많은 나라에 제품을 유통해야 하기 때문에 화학 방부제를 많이 사용한다. 보통 3~5년 정도 사용할 수 있으니 파라벤과 같은 화학 방부제 또한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사용하던 제품을 모두 중단하고 식물성 화장품만 사용했더니 확실히 개선되는 것을 경험했다. 식물성 화장품은 자극이 덜한 만큼 피부가 스스로 튼튼해지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러한 경험이 좋은 성분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따라서 비거니즘이라는 것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대안만이 아니며, 피부에 좋은 성분의 효과가 증명된 제품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일단 비건 화장품의 개념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부터 큰 어려움이었다. 당시 해외 사례도 많지 않고 국내에서는 전혀 없는 첫 시도이다 보니 제조사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열 군데 넘게 찾아다니다 처음에는 유기농 화장품을 만드는 곳에서 시작했다. 이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제조사인 코스맥스에서 기술 투자를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전됐다. 멜릭서가 기존 화장품 산업의 문제를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결해나가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투자가 진행된 것이다. 식물 재료를 추출할 때 유효 성분이 나올 수 있게 하는 플랜트프로세싱plant-processing이라는 식물 추출 과정을 거친다. 재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정말 효과적인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비건 화장품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상황임에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목표액 대비 6400%를 달성했다. 이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비건 화장품이라는 개념을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거라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크라우드 펀딩은 성공적이었고 이를 통해 제품의 첫 생산비를 마련했다. 또 하나 의미 있는 건 이를 통해 비건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기 고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멜릭서의 방향을 잡아가는 소중한 기회였다.

디자이너의 역량이 사업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

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을 하는 경우 디자인 역량은 특히 유용하다. 내가 생각했던 브랜드, 내가 원했던 콘셉트를 반영해 직접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반에는 멜릭서의 로고와 패키지, 사진, 브랜드를 설명하는 콘텐츠 모두 직접 디자인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브랜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인 내가 디자인 결과물까지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디자이너에게는 창업가의 기질이 잠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업을 하면 무수히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디자이너의 일이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

비거니즘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 보니 고려해야 할 것이 정말 많았다. 예를 들어 패키지를 만들 때도 디자인과 비용, 제작 조건 등만 따지는 게 아니다. 사용하려는 종이부터 잉크, 용기 성분 등 살펴봐야 할 것이 정말 많다. 그뿐만 아니라 협력 업체와 일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포장재를 쓰려고 보니 거래처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종이였다. 원하는 종이를 사용하기 위해서 협력 업체를 설득해야 했다. 사소한 일 같지만 기존 산업에서 하지 않던 일을 했다는 점에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배우 임수정과 협업한 비건 릴리프 크림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다.

코스맥스의 기술 투자로 함께 만든 첫 제품이다. 임수정 씨가 오랫동안 채식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데, 건강한 삶을 제안하는 우리 브랜드 철학에 공감하여 협업이 이루어졌다. 비건 릴리프 페이셜 크림은 녹차잎과 햄프 시드로 만든 식물성 크림이다. 임수정씨가 사용자 관점으로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해주었고 민감한 피부를 위한 식물성 수분 크림을 완성했다.

이하나 대표는 멜릭서를 운영하는 과정에 대해 ‘스스로 한계를 시험하고 넘어서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채식 문화조차 정착되지 않은 국내 환경에서 비건 화장품을 선보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 금액을 6400%나 달성시키며 비건 화장품에 대한 기존의 니즈를 증명한 것이다. 최근에는 아마존 초이스에도 선정됐다. 제품에 대한 평가는 물론 가격, 유통 등을 기준으로 우수한 제품에 부여하는 배지다. 업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20년 150억 달러(약 17조 원)에 달하고 오는 2025년에는 41% 증가한 200억 달러(약 24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 시장과 온라인 유통에 중점을 두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무래도 미국의 비건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시장 기회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미국 시장을 중점에 뒀다. 온라인 유통은 아마존과 자체 몰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비건 화장품이라는 아이템의 특성상 타깃팅을 명확하게 해야 하고, 결과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퍼포먼스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는 어떻게 이뤄지나?

미국에서는 아마존을 통해 더 많은 고객을 만나고 있다. 미국은 국토가 매우 넓어 자체적으로 상품을 배송했을 때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경험을 전하기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아마존의 물류 창고를 거점으로 배송하는 아마존 FBA(Fulfillment by Amazon)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을 배송한다. 현지 물류와 운영을 아마존에 맡기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인 마케팅과 세일즈 계획에만 집중한다.

온라인 유통이 가져오는 효과는 무엇인가?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 채널에 집중하면 우리의 메시지와 고객의 의견을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대한 자사 몰로 유도하는 것도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꼼꼼히 살펴보기 위함이다. 반영할 수 있는 의견은 최대한 반영하려고 한다. 예컨대 멜릭서의 패키지는 론칭 이후 20번 넘게 바뀌었다. 컬러 코팅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견, 배송받는 박스의 비닐 테이프가 거슬린다는 의견 등을 모두 수렴해 조금씩 고쳐나갔다. 한번은 멜릭서를 자주 이용하는 고객이, 구매할 때마다 제품 소개서가 들어 있는 것도 낭비라고 말해주었다. 이후 브랜드 미션이나 메시지는 택배 박스에 적용하고, 콩기름 잉크를 사용하기로 했다. 지금으로서는 유통 채널을 늘리는 것보다 고객의 의견을 듣는 것이 장기적으로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멜릭서는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 삶의 방식을 건강한 방법으로 이끌 수 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스킨케어뿐 아니라 운동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각자의 피부 타입에 맞게 화장품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계획이다. 단순히 화장품 브랜드에 머무르지 않고 건강한 방법으로 고객의 삶을 한 단계 높여주는 특별한 브랜드가 되고 싶다.
글 유다미 기자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07호(2020.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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