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예술의 접점에서 벌어지는 스펙타클사일로랩

2020년 10월 16일부터 2021년 2월 21일까지 담양군 담빛예술창고 2관에서 미디어 아트 그룹 사일로랩의 〈풍화, 아세안의 빛〉전이 열린다.

기술과 예술의 접점에서 벌어지는 스펙타클사일로랩
2019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사일로랩의 전시 〈아세안의 빛〉.

2020년 10월 16일부터 2021년 2월 21일까지 담양군 담빛예술창고 2관에서 미디어 아트 그룹 사일로랩의 〈풍화, 아세안의 빛〉전이 열린다. 사일로랩의 대표적인 두 작품 ‘풍화風火’와 ‘묘화妙火’로 구성한 이 전시는 2019년 한·아세안 30주년을 기념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시 〈아세안의 빛〉으로 처음 선보이며 큰 호응을 이끌었다. 이후 2020년 부산 아세안문화원에서도 전시를 진행했으며, 이번에 세 번째 도시인 담양에서 선보이는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300여 개의 빛나는 풍등이 공중을 오르내리며 공간을 장악한다. 마치 바람에 의해 일제히 떠오르는 듯한 작품 ‘풍화’다. 전시장 저편에서는 백열전구가 음악에 맞춰 점멸한다. 사일로랩의 시그너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묘화’다. 거대한 수조의 잔잔하게 흔들리는 물과 전시장을 둘러싼 거울에 투영된 빛으로 인해 어두운 공간이 사방으로 확장하는 느낌을 준다.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두 작품은 사일로랩이 추구하는 동양적 요소와 백열전구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키네틱 요소로 이뤄져 있다. 즉 사일로랩의 아이덴티티를 전적으로 드러내는 전시다. 이는 여느 미디어 아트와 사뭇 다르다. 화려한 기술적 표현에 매몰되기보다는 빛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비롯해 리듬과 온도, 향까지도 감각할 수 있도록 섬세한 체험을 유도한다는 점에서다. 사일로랩은 2013년 이영호, 박근호를 주축으로 설립한 미디어 아트 그룹이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이영호는 영상과 라이브 컨트롤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미디어 아트 영역으로 이어졌고, 현재는 기획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한편 미디어 공학을 전공한 박근호는 탄탄한 기술 베이스로 사일로랩의 작품을 안정적으로 완성해낸다. 이들의 파트너십은 영상, 라이팅, 키네틱, 인터랙티브 기술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몰입형 경험을 제시한다. 이들은 빛과 소리, 움직임을 제어하면서 자연으로부터 영감받은 인터랙티브 환경을 제안하며 미디어 아트 영역에서 빠르게 주목받았다. 그뿐 아니라 나이키, 포르쉐, 벤츠, 한화갤러리아, 현대백화점, 현대자동차, 젠틀몬스터, 아모레퍼시픽 등 유수의 굵직한 브랜드가 협업하고 싶어 하는 크리에이터로도 유명하다.

이영호, 박근호
사일로랩 대표
“최신의 기술이 최고의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일로랩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2013년 미디어 아트에 관심 있는 친구들끼리 모여 망원동에서 작업실을 함께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각종 전선과 장비가 즐비한 공간이 마치 무기 창고 같아서 팀 이름을 ‘사일로랩’이라고 정했다. 당시 멤버들과 LED로 빛을 가지고 노는 영상을 온라인에 업로드했는데, 그것을 계기로 갤러리아백화점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됐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인터랙티브 라이팅 기술을 접목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우리의 공식적인 첫 프로젝트였고 이어서 다양한 브랜드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2014년 젠틀몬스터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 ‘묘화’는 사일로랩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묘화’는 그리드 조형물에 백열전구를 설치하고 빛을 제어하는 작품이다. 이를 통해 미디어 아트 그룹이라는 존재감을 갖게 되어 의미가 크다. 이후 상황에 맞게 조금씩 변화시키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에너지 효율과 환경적 측면에서 백열전구가 퇴출당하고 있지만 한 시대를 밝힌 근대의 산물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또 백열전구는 LED에서 느낄 수 없는 특유의 색감과 빛이 발하는 느낌이 특별해서 애착을 갖고 있었다. ‘묘화’라는 제목은 국내에 처음 전기 회사가 생기고 나서 경복궁에 처음으로 가로등이 설치되었는데, 당시 고종이 가로등을 보고 “묘한 빛이로구나”라고 말했다는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2017년 덕수궁에서 열린 전시 〈LIGHTSCAPE, 明〉에도 참여했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3D 매트릭스 구조로 LED를 설치해 우주의 별을 표현한 ‘잔별’.
2019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사일로랩의 대표 작품인 ‘묘화’에 풍등을 접목한 키네틱 작품 ‘풍화’를 더해 전시를 열었다.

‘풍화’는 수백 개의 풍등이 공중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키네틱 작품이다. 아시아 문화권의 등불 축제를 모티브로 했다. 보통 강이나 호수, 바다 같은 수변 지역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물과 거울을 함께 설치해 공간을 조성했다. 풍등의 시초는 삼국시대 제갈공명이 전시에 위험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다. 이후 소통의 수단이자 염원을 담은 놀이로 중요한 문화가 됐다. 사일로랩의 ‘풍화’는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품을 구상하고 설치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장소에 따라 대응한다. 예를 들어 ‘묘화’ 시리즈는 전시장뿐 아니라 삼성전자 플래그십 스토어에 설치하기도 했고, 설화수 광고 영상을 위해 세팅하기도 했다. 테마에 맞는 음악을 먼저 만든 뒤 빛의 움직임을 디자인하는데, 노하우가 쌓이다 보니 커다란 연출은 미리 기획하고 디테일한 것은 현장에서 조절하는 편이다. 다만 브랜드와 협업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안전과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둔다.

현대차의 넥소 광고 영상의 배경이 되는 ‘잔별’이 인상적이다.

어두운 우주에 자잘하게 눈부시는 빛으로 가득한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LED를 입체적으로 연출한 라이팅 작품이다. ‘묘화’와 ‘풍화’가 따듯한 빛을 다루는 작업이라면 ‘잔별’은 차가운 빛이 특징이다. 이는 라네즈와 함께한 전시 〈라이프 오아시스〉에서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잔별’의 후속작인 ‘윤슬’은 투명 LED 패널과 물을 통해 햇빛이나 달빛이 잔물결에 비치는 모습을 구현한 것이다. 이렇게 각각의 작품을 다양한 장소에 적용하면서 점점 발전시킬 생각이다.

변화하는 기술 미디어 트렌드가 사일로랩의 작업에도 영향을 주나?

트렌드를 예민하게 주시하기는 하지만 작업의 맥락에 맞지 않는 기술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신 기술보다는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 의도에 더 집중한다. 최신 기술이 최고의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사용하는 제어 기술도 처음 구현하던 당시에는 매우 생소하고 가장 앞선 기술이었다.

포르쉐코리아 홀로그램 아트워크.
몰입형 공간 경험을 만들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작품과 상호작용하는 과정과 분위기다. 특히 역동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그 에너지와 신체적 경험이 작품에 반영되었을 때 좋다. 예컨대 2018년 ‘나이키 에픽 리액트 플라이니트’ 이벤트를 나이키 글로벌과 디렉팅했는데, 러닝머신으로 게임을 작동시킨다든가, 전광판 위치에 위치 감지 센서를 달아 신발의 쿠셔닝을 경험할 수 있게 구현했다. 또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도록 시각적인 공간 디자인에도 신경 썼다. 몰입 환경을 위해서는 복합적인 부분에서 분위기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정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즐기는 모습을 보고 기뻤다.

최근 포르쉐코리아와도 협업해 홀로그램 아트워크를 선보인 바 있다.

포르쉐코리아가 첫 번째 전기차 타이칸 출시를 앞두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기업 제이포디J4D와 함께 서울 곳곳에서 홀로그램 아트워크를 선보였다. 761마리의 말이 서울 시내를 달리는 콘셉트였다. 대형 트레일러에 투명 스크린을 설치하고 홀로그램 기술로 말이 달리는 모습을 구현하면 자연스럽게 도시 풍경과 합성되는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협업했는데, 어려운 기술은 아니지만 효과적으로 적용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또 스케일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였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 것을 구상 중이다. 아주 깊은 바닷속, 넓은 호수, 울창한 숲, 구름이 가득한 하늘, 별이 빛나는 우주 등 자연을 모티브로 한 공간과 스토리가 골자다.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사일로랩만의 방법으로 자연에 대한 경험을 새롭게 선보이고자 한다.
글 유다미 기자 인물 사진 이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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