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림픽의 주변부에서 도시, 환경, 건축, 사물, 이미지 전반에 걸쳐 공명했던 시대적 변화상을 살펴보는 기획이다.

국립현대미술관〈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진달래&박우혁의 〈마스터플랜: 화합과 전진〉. 올림픽 경기장처럼 육상 트랙을 그린 바닥 라인과 벽면 그래픽, 구조물, 디지털 영상, 사운드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이다. 대칭의 공간 속에 비대칭적으로 배치된 타이포그래피와 영상은 부여된 질서에서 자꾸만 벗어나려는 탈주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1981년 9월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서울을 88올림픽 개최지로 발표했을 때 전국은 그야말로 축제의 도가니였다. 1983년 가수 정수라가 부른 ‘아 대한민국’의 가사처럼 하늘엔 조각구름이, 한강엔 유람선이 떠 있는 아름다운 서울로 탈바꿈하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타자화된 욕망이 서울을 훑으면서 그동안 익숙했던 거리 풍경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2018년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88/18〉은 올림픽을 앞두고 호텔 내실과 옥상 가시권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 속에서 인근 판자촌에 살던 이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장면을 비춘다.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달라지고 사무실에 PC가 깔리기 시작했다. 디자인실에는 어도비와 CAD 프로그램이 도입되면서 제도판이 치워졌다. 여전히 손으로 그리는 것에 익숙했던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였다. 이들의 손에 자와 각도기 대신 키보드와 마우스가 쥐어진 시기였던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에서 지난 12월 17일 오픈한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전은 단순히 88서울올림픽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올림픽의 주변부에서 도시, 환경, 건축, 사물, 이미지 전반에 걸쳐 공명했던 시대적 변화상을 살펴보는 기획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근대적 국가라는 거대한 청사진을 그린 디자이너와 건축가 집단이 있다. 삼성, 기아자동차에서 각각 디자이너로 근무한 정국현과 구상, LG(당시 금성사)에서 독립해 디자인 전문 회사 212 컴퍼니를 설립한 은병수, 산돌 석금호 등 당시 활약했던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은 시대를 읽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스케치, 도면, 기사, 카탈로그 등 풍부한 아카이브와 함께 전시된 가전제품과 디자인 도구는 1980~1990년대 디자인 문화를 충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천재적인 예술가로서의 디자이너가 아닌, 사무 자동화 기술이 도입되는 시대에 기업의 조직 시스템 안에서 일했던 디자이너들의 역할과 실천을 탐색했다는 점에서 전시는 디자인과 시대를 읽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한편 전시는 아카이브를 모아놓은 차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를 재해석하기 위해 동시대 작가들을 초대했다. 이들의 작품은 40년이라는 시간을 가로지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그중에서 선우훈의 〈모듈러라이즈드 1988〉은 디자인을 둘러싼 사건들과 함께 확장되는 도시의 변화상을 기록한 디지털 드로잉 맵이다. 마치 게임 속 시뮬레이션 공간처럼 도트로 추상화한 서울의 모습을 1년 단위로 분절해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캐릭터라이즈드〉는 마치 웹툰처럼 캐릭터로 변신한 디자이너들이 등장해 마우스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타임라인순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작품은 연표와 미시사 자료를 밀레니얼 세대의 눈높이로 접근하기 쉬우면서 흥미를 가질 만한 디지털 미디어의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전시는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으며, 유튜브와 웹 세미나를 통해 대중과 만난다. 다음 웹 세미나는 2월 27일 ‘88서울올림픽 전후 한국 건축과 디자인 실천들’이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3부 ‘시선과 입면’ 전경. 올림픽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을 재현한 기흥성의 건축 모형과 2020년 현재의 시점에서 도시의 표면을 포착한 최용준의 건축 사진을 함께 전시해서 비교해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 기간
2020년 12월 17일 ~2021년 4월 11일
전시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전시실 및 중앙홀
전시 기획
이현주, 정다영
참여 작가
게리 허스트윗, 구본창, 권민호, 다이아거날 써츠(김사라), 서울과학사, 서울스테이지, 선우훈, 이만익, 진달래&박우혁, 최용준, 텍스처 온 텍스처
협력
SPACE(공간), 월간 〈디자인〉
포스터 디자인
홍박사
온라인 프로젝트
seoulstage
mmca.olympic

“변화를 이끈 생산의 주체인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의 계획과 실천에 주목했다.”

이현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들려달라.

올림픽 전후인 1980~1990년대를 고도로 산업화된 토대가 구축된 시기로 보고 여기서 파생한 시각 문화, 사물, 도시, 건축과 기술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그 변화를 이끈 생산의 주체인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의 계획과 실천에 주목했다. 따라서 이 전시에서 올림픽은 디자인과 건축 분야의 중첩된 면모를 살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기능한다.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아카이브와 함께 전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공개된 아카이브의 수집만큼 관련된 자료를 해석하고 시각화하는 영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시 이야기가 과거의 것에 머무는 게 아니라 동시대적 관점으로 보이길 원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탁월하게 펼칠 수 있는 작가들을 전시에 초대했다. 특히 작가이면서 계획과 설계라는 디자인 분야의 문법을 이해하는 이들을 위주로 섭외했는데 결과적으로 기획 의도를 명확히 읽고 각자의 조형 언어로 확장한 작업이 나왔다.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전시 포스터.
전시에서 꼭 보길 추천하는 작품이 있다면?

정다영 조찬원 소장(현 빌딩스마트협회 기술연구소장)의 포트폴리오 자료를 추천한다. 1980년대 중반 한국 건축 설계에서 초기 CAD 도입과 수용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이현주 한글 레터링 설계도와 원도, 당시 설계 도구, 그리고 1980년대 후반 개인 컴퓨터가 도입, 확산되던 시기의 컴퓨터용 서체 개발과 관련된 자료를 추천한다. 도구의 변화가 계획과 설계의 과정·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기시키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글 서민경 기자 사진 촬영 ©최용준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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