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잊지 않는다, 마초의 사춘기 김광수 대표
플랜테리어 디자인 그룹 ‘마초의 사춘기’ 대표 김광수는 공간 장식의 역할을 다한 식물이 계속 살아 있도록 또 다른 브랜드 가든 어스를 만들었다.
‘보기 좋은 것’에서 만족하고 끝날 수도 있었다. 플랜테리어 디자인 그룹 ‘마초의 사춘기’ 대표 김광수는 공간 장식의 역할을 다한 식물이 계속 살아 있도록 또 다른 브랜드 가든 어스를 만들었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인 김광수 대표가 이끄는 마초의 사춘기는 설립 3년 만에 플랜테리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은 식물을 단순한 공간 연출 도구로만 여기지 않는다. 김광수 대표가 운영하는 또 다른 브랜드 가든 어스는 이런 진정성을 잘 드러낸다. 사실 사람과 식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고, 그걸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사람, 식물에 진심이다.
브랜드 경험을 통해 식물을 상품이 아니라 반려 대상으로 인지시키는 것이 목표다.”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구호‘KUHO’의 파리 컬렉션 팀에서 4년간 일했다. 타 분야에 몸담았던 경험이 ‘마초의 사춘기’의 디자인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플랜테리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 그러니까 조경 회사라는 단어가 익숙하던 시절엔 조경 설계를 공부한 사람들이 이 분야의 주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시장을 이끈다. 마초의 사춘기 역시 14명의 구성원 중 절반 이상이 시각 디자인, 가구, 패션 등 디자인 전공자 출신이다. 디자이너가 모든 부분에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쩌다 ‘옷’에서 ‘식물’로 방향이 바뀌었나?
식물에서 정신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패션 일을 할 때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고, 집에선 지쳐 잠만 자는 삭막한 날이 반복됐다. 어느 날 우연히 집에 식물을 들이게 됐는데,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이 행복하더라. 주말엔 농장에 가서 어떤 걸 사 올까 생각하면서 주중의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었고. 회사를 그만두면 의류 브랜드를 하려고 했는데 여느 때처럼 식물 시장에 갔다가 ‘나 이거 해볼까?’ 싶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즐거운 취미 정도로 여겼는데 지속하다 보니 예상보다 큰 반응을 얻어 본업이 됐다.
조경 관련 전문 지식에 대한 목마름도 있었을 것이다.
마초의 사춘기를 막 시작하던 때 한국어로 된 관련 지식을 구할 수가 없었다. 답답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 서적을 많이 찾아보며 혼자 공부했다. 그리고 그렇게 습득한 지식을 1년간 정리해 교본을 만들었다. 마초의 사춘기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든 가든 어스의 가드너든 이 교본을 한 달간 꼭 숙지해야 하며, 실습 테스트도 거친다. 사실 인건비와 시간이 많이 드는 단계라 이런 식의 운영이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식물을 다루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마초의 사춘기에서는 디자이너면서 가드너가 되어야 한다.
실내공간을 장식할 식물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실내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의 종류와 조건에는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 이 식물들에게 어느 자리를 내줄지 정하고, 위치를 정한 후에는 자라면서 공간의 느낌이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구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별히 더 애착이 간 프로젝트를 꼽아보자면?
‘일상비일상의틈’이 기억에 남는다. 프로젝트를 맡고 길 건너편에서 건물을 바라보다 그 건물 앞에만 가로수가 없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일상비일상의틈’을 하나의 가로수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가로수는 사계절 내내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내부에도 계절감을 부여해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1ㆍ4층은 봄이고, 2층이 여름, 3층은 가을, 5층은 겨울, 이렇게 테마를 잡았다. 관리가 힘들다 보니 종종 클라이언트의 요구로 조화를 사용할 때도 있는데 이곳만큼은 600여 종의 살아 있는 식물로만 채웠다. 이 식물을 하나도 죽이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그걸 지키기 위해 공부도 정말 많이 했다. 1년 가까이 ‘일상비일상의틈’의 식물을 관리하면서 얻은 인사이트를 다른 작업에서도 많이 사용했다.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또 그만큼 많이 배운 곳이다.
마초의 사춘기는 플랜테리어 프로젝트다. 별개로 식물도 판매한다. 그리고 초반에는 선인장이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식물 가격은 정보 비대칭이 심한 편이었다. 하루는 아는 농장에서도 파는 선인장을 동네 꽃집에서 아주 비싸게 파는 걸 봤다. 당장 이익을 좀 더 낼 수는 있겠지만 사람들이 식물에 접근하고 기르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가격 거품을 낮추고 재미있는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된 식물을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선인장도 그런 의도로 준비한 식물이었다.
경영자로서 디자인 실무를 진행할 때와는 또 다른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모든 디자인 기획에 참여했는데, 점점 회사가 커지고 직원 수가 많아지니까 운영과 관리에 쏟는 시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무언가를 만드는 게 너무 좋으니까 디자이너들이 일하는 걸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래도 가든 어스로 식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을 ‘장식에서 생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가든 어스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달라.
가든 어스는 마초의 사춘기에서 공간을 꾸미고 남은 식물에 대해 고민하다 만든 서비스 브랜드다. 플랜테리어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기존 식물은 버리고 새로운 식물로 채우는 때가 많다. 식물을 통해 얻은 치유의 감각을 전달하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한 공간의 연출을 위해 많은 식물이 버려지는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으니 버리겠다니, 이런 방식으로 운영해도 괜찮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만약 식물이 아닌 동물이었다면 더 큰 이슈가 됐을 것 아닌가. 이런 문제의식을 환기하고 싶어 만든 것이 가든 어스다. 작업 후에 남은 식물을 모두 수거해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일종의 순환이 이뤄지도록 했다.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으로 “식물 가져가실래요?” 하고 가볍게 신청을 받았다. 남는 화분이 있으면 거기에 식물을 심어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다 원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지금은 AK플라자 분당점 가든 어스 매장에서 ‘플랜트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가드너들이 고객에게 식물을 추천해주는 컨설팅으로 시작해 반려식물을 심을 흙, 마감재, 중간석까지 함께 고르고 분갈이까지 해서 준다. 아픈 식물을 데려오면 집중적으로 관리해 회복시키기도 한다. 현재는 호텔 외에 플랜트 라이브러리와 플랜트 편의 시설도 운영한다. 브랜드 경험을 통해 식물을 상품이 아닌 반려
대상으로 인지시키는 것이 목표다.
플랜트 편의 시설은 어떤 서비스인가?
GS칼텍스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다. 주유소에 플랜트 편의 시설을 마련해 식물 중고 거래가 이뤄지도록 했다. 집에서 방치해둔 식물을 이곳에 가져오면 포인트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런 식물은 우리가 다시 잘 관리해 원하는 사람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입양을 보낸다. 내부에 마련한 간단한 간식 코너에는 비건 또는 친환경 제품을 비치해두었다.
가든 어스 연희대공원점을 플랜트 라이브러리로 운영한다. 혹시 지식을 얻기 위해 사방으로 찾아다니던 때의 경험이 반영된 걸까?
맞다. 브랜드 운영 방식은 내가 식물을 경험한 수순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식물을 잘 몰랐지만 키우면서 관심이 커지고, 하나라도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나온 것이 플랜트 호텔이고, 책을 읽으며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경험에서 플랜트 라이브러리가 만들어진 거다. 사람들이 식물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버리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가든 어스 연희점은 식물 관련 정보에 관한 양질의 책들이 준비되어 있다.
마초의 사춘기와 가든 어스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사람들이 식물을 많이 접하고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환경과 식물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왔고 살아 있는 생물이다. 그러니까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식물을 집에 들였다면 애정을 많이 쏟았으면 좋겠다. 마초의 사춘기로 플랜테리어만 할 때는 시장에서 일등이 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지금은 전혀 그런 마음이 없다. 대신 가든 어스를 통해 식물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은 정말 많은데 키우는 걸 어렵게 생각한다. 흔히들 ‘스투키도 죽여본 나, 식물 키워도 괜찮을까?’ 이런 걱정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내세운 슬로건이 ‘Don’t Worry. No Die’다. 걱정 마, 죽지 않게 우리가 도와줄게, 이런 의미를 담았다. 직원들에게도 항상 하는 말인데 지금 당장 큰돈을 버는 것보다 우리가 꾸준히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식물과 친해질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고 그럴 기회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그러기 위한 작업으로 비주얼을 담당하는 게 마초의 사춘기이고, 그러한 비주얼로 전달되는 식물의 아름다움이 건강하게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가든 어스다.
사람과 식물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자 부단히 움직이는 마음이 느껴진다. 혹시 식물과 관련해 또 다른 이색 공간을 기획한다면?
식물원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한다. 신구대학교 식물원이나 서울식물원 같은 곳도 물론 멋있지만, 사람과 식물의 경계를 확 낮춘 식물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함께 식물을 심으면서 만들어가거나, 식물원에 있는 식물을 캐서 집에 가져가 키울 수도 있는 그런 체험형 식물원, 언젠가 꼭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