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로 통하는 관문 2021 런던 디자인 비엔날레
지난해 3월 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굳게 닫혔던 유럽의 전시와 행사가 재개되고 있는 가운데 제3회를 맞이한 2021 런던 디자인 비엔날레 (이하 LDB)가 지난 6월 1일부터 27일까지 서머싯 하우스Somerset House에서 열렸다.
지난해 3월 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굳게 닫혔던 유럽의 전시와 행사가 재개되고 있는 가운데 제3회를 맞이한 2021 런던 디자인 비엔날레 (이하 LDB)가 지난 6월 1일부터 27일까지 서머싯 하우스Somerset House에서 열렸다. ‘공명’을 주제로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디자인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38개 국가와 도시가 위기에 대한 디자인적 해법과 실마리 등을 제안하는 파빌리온으로 답했다. 서머싯 하우스 안뜰은 평소 야외 부스나 인스털레이션이 설치되거나 겨울이 되면 야외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하는 곳인데 이번 비엔날레 기간에는 거대한 숲이 들어섰다. 바로 ‘글로벌 목표’ 파빌리온으로 〈변화를 위한 숲Forest for Change〉이라는 전시로 400그루의 나무를 심고 중앙에는 UN이 발표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17개의 목표’를 적은 기둥 17개를 세웠다. 이 파빌리온의 기획자이자 올해 LDB 아티스틱 디렉터인 에스 데블린Es Devlin은 “(규정상) 나무 심는 것만 빼고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주최 측의 말을 듣고 역으로 숲을 만들기로 했다고. 예술가이자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데블린의 역량은 숲속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걸음을 늦추도록 폭신한 나뭇조각을 숲길에 깔거나 피톤치드 향으로 긴장을 완화시키고, 그래픽과 음향을 활용한 신선한 방식으로 설명 위주의 따분한 전시 형태를 탈피했다는 평이다. 한편 238개의 파빌리온 외에도 대학, 문화 기관 등과 협업한 부대 행사가 동시에 열려 눈길을 끌었다. 영국 싱크 탱크인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채텀 하우스Chatham House’는 50개 국가로부터 ‘위기의 시대 속 디자인’에 대한 500건의 아이디어를 신청받았고 그중 300개를 인쇄해 모형을 제작했다. 대학과 갤러리가 참여한 ‘지속 가능성 & 이노베이션’ 부문에서도 글로벌 위기를 타개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전시장을 채웠다. 올해 행사의 화두였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디자인’은 그다지 새롭지 않은 개념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은 위기에 대한 동시대적 물음을 던졌고, 참여 디자이너들이 진지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그 답을 모색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데블린이 “팬데믹은 관문이다(The pandemic is a portal)”라고 언급한 인도 소설가 아룬다티 로히Arundhati Roy를 인용한 부분은 이번 행사에서 특히 유효했다.
2021 런던 디자인 비엔날레
기간 6월 1~27일
장소 서머싯 하우스, somersethouse.org.uk
기획 에스 데블린, esdevlin.com
그래픽 디자인ㆍ아이덴티티 펜타그램, pentagram.com
웹사이트 londondesignbiennale.com
올해 LDB에서 눈에 띈 파빌리온 8곳
디자인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삶을 변화시키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한다. 이를 엿볼 수 있었던 파빌리온 8곳을 소개한다.
1 이스라엘, 〈보일러 룸The Boiler Room〉
세계화와 민족주의 사이의 긴장 관계가 어떻게 촉발되는지를 붉은 보일러 룸을 통해 보여주는 전시다. 관람객이 스위치 전원을 수동으로 켜고 끌 수 있는데, 그 아래에는 #anti-environmentalism (안티-환경주의) #globalcooling(글로벌쿨링) sciencepropaganda(사이언스 프로파간다) blockchain(블록체인)처럼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사회·정치·경제·환경적 이슈를 빼곡히 적어놓았다.
디자인 리오르 칸토르Lior Kantor, 릴라 솔로몬 Lealla Solomon, 오셔 라피드Osher Lapid, 노아 카르미 Noa Karmi, 바락 위즈만Barak Weizman, 로이 리빈 Roi Levin, 오렌 엘갈리Oren Elgali
2 폴란드, 〈클로즈드 홈The Clothed Home〉
폴란드관은 전기가 가정에 보편적으로 공급되기 이전, 직물을 활용해 계절을 났던 선조들의 지혜를 끌어왔다. 면, 울, 리넨을 공간과 공기 순환 경로, 기후에 맞게 적절히 배치하면서 냉난방기 없이 친환경적 삶을 사는 방법이다. 전시 제목 그대로 ‘옷을 입은 집’처럼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화려한 색상과 다양한 질감의 직물은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최 아담 미츠키에비치 인스티튜트The Adam
Mickiewicz Institute, iam.pl
기획 알렉산드라 K 지오레크Aleksandra K
dziorek, olakedziorek.com
참여 작가 알리차 비엘라프스카Alicja Bielawska
전시 디자인 첸트랄라Centrala
비주얼 아이덴티티 안나 쿨라헤크Anna Kulachek
그래픽 디자인 피오르트 후흘라Piort Chuchla
3 아프리칸 디아스포라African Diaspora, 〈PoAD〉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라고둥과 조개껍질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 폴리형 파빌리온이다.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집단적으로 거처를 옮기는 현상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를 형상화했다. 자신이 태어난 뿌리, 다른 세계로의 확산, 그 과정에서의 다양한 목소리와 지속적인 여정을 상징한 전시였다.
디자인 이니 아치봉Ini Archibong, archibongheritage.org
4 독일, 〈스푼 아키올러지Spoon Archaeology〉
유럽 전역에서 오는 7월 3일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이에 독일관은 인류가 손 대신 스푼이라는 도구를 사용한 이래 일회용 스푼이 위기를 맞이한 지금까지 일종의 스푼 변천사를 뮤지엄 아카이브 콘셉트로 소개했다. 이를 통해 팬데믹 이후 증폭된 환경 보호,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다.
기획 토마스 A. 가이슬러Thomas A. Geisler
디자인 페터 에카르트Peter Eckart, 카이 링케Kai Linke
포스터 헬레나 라인슈Helena Reinsch
5 홍콩, 〈샌드테이블Sandtable〉
관람객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이를 기록하는 장치로 모래사장을 고안한 전시다. 영국 식민지를 거쳐 중국으로 재편입되기까지 홍콩을 다문화적 결합의 장이자 공명하는 그릇으로 묘사했다. 관람객이 홍콩의 과거, 현재, 미래와 얽힌 직간접 경험을 이 아날로그 장치 위에 그리면 샌드테이블은 이것을 디지털로 아카이빙하는 동시에 벽면에 이를 투사한다.
기획 홍콩 디자인 히스토리 네트워크
Hong Kong Design History Network, hkdhnet.com
디자인 아오나Aona, K2, 트릴링구어Trilingua
6 아르헨티나, 〈몬테 아비에르토Monte Abierto〉
자연, 장인, 디자이너의 협업을 보여주는 파빌리온이다. 작품 소재인 덤불은
아르헨티나 계곡에서 자란 것으로 여름에는 가축용 먹이로,
겨울에는 건조시켜서 공예 재료로 활용한다. 디자이너와 장인이
협업해 제작한 덤불 공예품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 정신을
저장하고 후대에 전달하는 매개체의 의미를 담고 있다.
기획 프랑카 로페스 바르베라Franca Lopez Barbera, frannnca.com
디자인·아티스틱 디렉션 크리스티안 모아데드Cristián Mohaded
공예 로렌소 레예스Lorenzo Reyes
조명 디자인 아르투로 페루소티Arturo Peruzzotti
그래픽 디자인 마르코 모아데드Marco Mohaded
7 핀란드, 〈엠퍼시 에코 체임버Empathy Echo Chamber〉
우리가 실제로 서로를 마주하고 지긋이 바라본 것은 언제가 마지막인가? 엠퍼시 에코 체임버는 정보화 시대의 양극화, 고립, 소통의 결여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로, 서로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4분간의 경험을 제공한다. 공기 순환 시스템을 갖춘 은색의 박스 안에서 상대방과 2분간 말없이 바라보고 2분간 대화를 나누는 전시.
디자인 엔니쿠카 투오말라Enni-Kukka Tuomala,
ennikukka.com
8 과테말라, 〈노스탤지어Nostalgia〉
과테말라관은 물이라는 천연자원의 중요성에 집중했다. 전시 작품으로 비를 기원하는 악기인 레인스틱 수십 개를 연결해 마치 물결처럼 흔들리며 요동치도록 했다. 이는 자연 속에서 물이 순환하며 흘러야 함을 의미한다. 전시장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사운드는 자원 고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요소로 활용했다.
주최 주영 과테말라 대사관, embassyofguatemala.co.uk
기획 세실리아 산타마리나 데 오리베Cecilia Santamarina de Orive
디자인 마리아 아델라 디아스Maria Adela Díaz
사운드 디자인 호아킨 오레야나Joaquin Orellana
글 신정원 객원 기자 담당 서민경 기자 사진 Ed Ree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