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도쿄가 함께 입는 부산 티셔츠 발란사 김지훈 대표
소년은 20대 후반의 청년이 되어 바이닐뿐 아니라 자신의 취향대로 고른 장난감, 카세트테이프, 각종 빈티지 소품 등을 파는 숍을 시작한다. 숍 이름은 발란사.
부산 남포동의 레코드 숍에 자주 드나들던 한 소년은 음악을 좋아하고 멋을 알았다. 소년은 20대 후반의 청년이 되어 바이닐뿐 아니라 자신의 취향대로 고른 장난감, 카세트테이프, 각종 빈티지 소품 등을 파는 숍을 시작한다. 숍 이름은 발란사. ‘밸런스’를 뜻하기도 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곳’을 뜻하기도 하는 이 빈티지 셀렉트 숍은 이제 전포동에서 부산의 서브컬처를 대표하며 서울에 두 번째 매장도 오픈했다. 희귀 앨범의 성지인 ‘디스크 유니온Disk Union’, 언더그라운드 레이블 재지 스포츠 같은 일본 음악 신과 활발한 협업을 펼치며 생소하지만 매력적인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컬처를 국내에 소개하기도 한다. 티셔츠에 쟁쟁한 브랜드의 로고와 나란히 ‘부산’이라는 글자를 올렸을 때 이렇게 ‘힙’할 줄 누가 알았나. 발란사 대표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디렉터 김지훈은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며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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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사를 처음 시작한 게 2008년이라고 들었다.
자부하는데, 나는 수집 경력만 30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주신 우표를 모으기 시작했고 파나소닉의 카세트 플레이어 ‘쇼크 웨이브’를 구매한 후부터는 카세트테이프를 열심히 모았다. 여기에 CD, 장난감, 피겨 등 이제껏 모은 것을 한자리에 모은 편집숍을 내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 발란사의
시작이다.
처음과 지금을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졌나?
사실 발란사는 처음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혼자 시작했다가 지금은 직원이 4명이라는 것, 서울 발란사가 생겼다는 것 정도.
서울 발란사 스토어는 부산과 어떻게 다른가?
굳이 부산 매장과 차이점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도 내가 직접 고른 빈티지 소품, 발란사가 디자인한 컬렉션을 선보인다. 다만 우리가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교류할 때, 브랜드가 서울에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니까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생기는
부담감이 조금 줄었다.
최근에는 태극당, 시몬스 같은 브랜드와도 협업했다.
태극당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개업 이후 패키지에 큰 변화를 준 적이 없는 곳이다. 우리와 컬래버레이션으로 ‘발란사라다’ 빵을 만들면서 포장지에 변화를 시도했다. 시몬스는 작년에 하드웨어 스토어를 발란사 매장에서 팝업 스토어로 열면서 인연을 맺었다. 올해도 시몬스가 해리단길에 연 팝업 스토어에서 협업으로 만든 롤업 팬츠를 만날 수 있다.
컬래버레이션할 때 기준이나 규칙 같은 걸 정한 게 있나?
기준은 세 가지다. 멋있거나, 돈이 되거나, 친하거나.(웃음) 이 세 가지 중 적어도 하나는 해당되어야 한다. 제안이 들어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지만, 켄 가가미와의 작업 같은 경우는 내가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다. 비교적 복잡한 과정 없이 제안과 수락이 이루어졌다는 건 그동안 프로젝트가 잘 쌓인 덕이라고
생각한다.
발란사가 일본의 다양한 서브컬처 기반의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그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교토 기반의 브랜드 프로 클럽Fro Club과 협업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국내에서도 재밌다는 반응이 있었다. 매일 목욕탕을 간다는 콘셉트가 흥미로워 온천에서 사용하는 라커 룸 키로 키링을 디자인하고 수건, 티셔츠, 모자 등을 제작해 스몰 컬렉션을 만들었다.
해리단길의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라인인 ‘사운드샵 발란사’로 음악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사운드 딜러 유니버시티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가상의 음악 학교를 만들어서 이 학교의 졸업식이라는 콘셉트로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다. 졸업 사진 촬영도 하고 수료증도 줬다. 취지는 음악과 패션으로 드러나는 어떤 정서를 공유하는 데 있다. 얼마 전 서울의 레코드 숍 웰컴 레코즈가 해방촌에 오픈했을 때도 졸업식을 진행했고, 도쿄에서 언더그라운드 레이블 도쿄비타민Tokyovitamin, 야기Yagi와 함께 전시 형태의 행사도
열었다.
발란사가 부산에 있는 건 장점일까, 단점일까?
부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정체성이고, 또 왕성한 협업을 하는 일본과도 가깝기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옛날 부산의 시장들도 오사카와 후쿠오카를 왔다 갔다 하는 상인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1980년대에도 남포동에는 일본에서 들여온 음반이나 가전제품, 옷이 많았던 덕분에 이 지역엔 멋쟁이가 많다. 남이 쓰던 것, 즉 빈티지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편이기도 하고.
태국의 스트리트 편집숍 덴 수브니어와의 협업으로 선보인 스트링 캔버스백과 인센스 버너.
발란사에는 항상 ‘부산의 서브컬처 신의 중심’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서브컬처가 대체 뭘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서브’고 ‘메인’인가? 어쨌든 발란사에 한 번 들르는 사람과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다를 것이다. 계속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작게든 크게든 비슷한 관심사라는 공통분모가 있을 테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서로 연결되고, 음악이든 패션이든 무엇인가를 같이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걸 서브컬처라고 부른다면, 발란사가 그 중심에 있다는 이야기는 반갑다.
만약 누군가 발란사 같은 브랜드이자 스토어를 시작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요즘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아티스트이고 DJ이고 디자이너인 세상인데 조언 같은 걸 하면 꼰대처럼 보이지 않을까.(웃음) 어쨌든 버텨야 한다. 뭘 해도 어설프면 안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도쿄의 레코드 숍 디스크 유니온과의 컬렉션 중 후디.
발란사 디렉터 김지훈이 그리는 미래는?
예전부터 장난감 회사를 꼭 하고 싶었다. 발란사 초기에 피겨 브랜드 손오공에 협업을 제안하는 메일을 쓴 적도 있다. 그땐 무모하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혹시 또 모른다.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세컨드랩과 테디 베어도 만들었으니까. 60살까지는 발란사를 계속할 예정이다. 그 이후에는 앤티크 숍을 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글 박슬기 기자 인물 사진 정승룡(아잉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