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침묵을 깨고 공예가 말을 걸다 서울공예박물관

지난 7월 공예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최초 공립 박물관인 서울공예박물관이 사전 관람을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오랜 침묵을 깨고 공예가 말을 걸다 서울공예박물관
기획 전시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

지난 7월 공예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최초 공립 박물관인 서울공예박물관이 사전 관람을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서울시가 공예 문화 부흥을 위해 안동별궁이 있던 구 풍문여고 자리에 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기본 계획을 수립한 지 무려 7년 만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모습을 드러낸 서울공예박물관은 담장을 없애고 문턱을 낮춰 접근성을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별도의 주 출입구 없이 길과 자연스럽게 맞닿은 지점에 4개의 출입구가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거대한 대문과 위압적인 파사드 없이 앞마당을 활짝 열어두고 지나가는 이들을 초대하는 박물관인 셈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은 ‘모두의 공예, 모두의 박물관(Craft for all, museum for all)’을 슬로건으로 공예가 지닌 가치를 복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역동적인 플랫폼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전통 공예와 현대 공예를 모두 품은 상설전과 기획전은 서울공예박물관의 이러한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공예마을을 콘셉트로 공방을 조성한 어린이 박물관과 공예 재료로 쓰이는 나무 수종을 관찰할 수 있는 공예숲도 흥미롭다. 이제 오랜 기다림의 시간만큼 밀도 있는 콘텐츠를 보여주기 위해 전력을 다한 서울공예박물관이 보여주는 공예를 만나볼 차례다.

외벽에는 강석영 작가가 제작한 4000여 개의 도자 타일 위로 박물관 로고를 부착했다.

기획·운영 서울시, 서울공예박물관
건축 설계 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대표 한규철),
haenglim.com, 송하엽, 천장환
MI 켈리타앤컴퍼니(대표 최성희), kelita.co.kr
조경 오피스박김(대표 박윤진·김정윤), parkkim.net
조명 캔델라조명연구소(대표 백승주)
사이니지 시그램(대표 류원상), sigram.kr
시공 아이엠유건설(대표 김충호)
웹사이트 craftmuseum.seoul.go.kr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전.
사진 제공 서울공예박물관

길을 걷다 마주치는 공예, 상설 전시
서울공예박물관의 상설 전시는 ‘역사’와 ‘직물’이라는 2개의 키워드로 크게 나뉜다. 먼저 공예 역사 전시 중 〈자연에서 공예로-장인匠人, 공예의 전통을 만들다〉전은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금속공예와 도자공예, 나전칠기와 옻칠공예를 보여주는 자리다. 고려 시대 불교 미술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향로와 동종,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금속 장신구를 포함해 고려 청자, 현존하는 장인들이 재현한 보물 제1975호 ‘나전경함’ 레플리카까지, 손에서 손으로 내려온 장인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그 뒤로 경복궁 일대에서 조선 왕실에 최상급 공예품을 납품하던 경공장 및 규방과 선비 문화에 주목한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전, 개항 이후 대한제국 시기에 제작된 공예품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공예, 근대의 문을 열다〉전,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 시기까지 경성에서 생산하고 유통했던 공예품을 콘텐츠로 다룬 〈공예, 시대를 비추다〉전이 이어지는데 서울을 배경으로 한 공예의 지난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이 흥미진진하다.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힘겨루기 속에서 대한제국을 알리고자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공예품, 서구식 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규격화를 시도했던 20세기 공예품과 같이 일반 박물관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사료도 만날 수 있다. 일련의 전시가 열리는 상설 전시관은 기존 학교 건물 구조를 고스란히 살렸다. 자칫 협소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박물관은 골목길’이라는 콘셉트를 부여해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일례로 김정화 초대 관장은 “건물의 구조적 한계를 이기는 방법은 이것을 역으로 안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촌의 골목길이 건물 안에 스며든 느낌을 연출해 길을 거닐다가 공예품과 마주치게 만들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구성 방식은 공예가 저 멀리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건넨다. 한편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 관장이 살아생전 기증한 자수, 보자기, 복식 등 유물 5000여 점은 서울공예박물관의 자랑거리다. 한국자수박물관의 헤리티지를 고스란히 이어받았기에 서울공예박물관이 〈자수, 꽃이 피다〉전과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전으로 전시3동 건물을 다 채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같은 건물에는 직물보존연구센터와 함께 ‘보이는 수장고’도 있어 유물의 보존 처리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최성희 켈리타앤컴퍼니 대표
“서울공예박물관의 역사성과 건축의 특성을 한글 자모 형태로 재해석해 심벌을 도출했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콘셉트를 담은 뮤지엄 아이덴티티는 세계 속에 한국 공예의 본질과 미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서울공예박물관의 비전을 보여준다.”

박윤진·김정윤 오피스박김 대표
“안동별궁과 구 풍문여고 운동장 자리에 남은 과거의 물성을 동시대적으로 재현해 모두에게 열린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미세한 레벨 변화를 준 바깥마당 자리에서 도시의 비움이 만들어내는 경관 효과를 극대화했고, 은행나무가 위치한 안마당에는 도시 안의 지형 경험과 수평적 확장성을 구현했다.”

시각장애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촉각 전시를 위해 실제로 만져볼 수 있는 모형을 곳곳에 설치했다.

공예의 오늘을 조망한 기획 전시
외벽 장식부터 안내 데스크, 실내외 휴게 공간에 놓인 스툴과 벤치, 안내동 천장에 달린 유리 오브제까지 박물관 곳곳에서 비범한 예술성이 느껴진다. 사실 이 시설물들은 공예가들이 완성한 ‘오브젝트 9’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지명 공모를 통해 총 9명의 작가를 선정했는데 도자공예가 강석영·김익영·이강효·이헌정, 아트 퍼니처의 대가 최병훈, 유리공예가 김헌철과 석공예가 이재순, 죽공예가 한창균, 레진을 소재로 활용하는 박원민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박물관에서 지정한 장소에 기능적으로 꼭 필요하면서도 사용성과 심미성을 겸비한 오브젝트를 제안했다. 1년 동안 준비 기간을 마치고 박물관에 모습을 드러낸 각 작품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한 아카이브 팀은 공예가들의 제작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이를 콘텐츠로 재가공해 지금까지 총 3권의 소식지를 발간했다. 또 박물관 한편에 공예가들의 도구와 도면, 영상과 이미지를 아카이빙한 〈오브젝트 9〉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형 건축물을 지으려면 법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공공 조형물이 그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켜볼 때 이 프로젝트는 장소성과 맥락을 고려한 조형물의 모범 사례를 제시한다. 작품 안에 담긴 공예가들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전시와 도록, 소식지 등의 콘텐츠를 기획했다는 점에서 관람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박물관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최병훈 작가의 ‘태초의 잔상’. 4m 길이의 원석을 가공한 안내 데스크와 벤치, 스툴, 원목 수납장을 제작했다.

한편 현대공예가들이 대거 참여한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전에서는 로에베 공예상 수상자들의 작품을 비롯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달항아리와 소반, 3D 테크놀로지로 만든 공예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총 1, 2부로 나누어지는데 도자공예, 목공예, 유리공예 분야를 총망라한 전시가 10월 24일까지 열리며, 이후로는 섬유공예와 금속공예 분야 작품으로 큐레이션한 2부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 밖에 지역 공예를 테마로 서울시 무형문화재의 작품을 선보이는 〈손끝으로 이어가는 서울의 공예〉전, 여성 장신구 작가들이 참여한 〈귀걸이, 과거와 현재를 꿰다〉전이 개관 특별전으로 준비되어 있다. 전시장 밖을 오가는 사람들도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한 〈크래프트 윈도우 #1 공예오색五色〉과 해외에 소장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기록물을 소개하는 〈아임 프롬 코리아〉전이 열리는 아카이브실도 서울공예박물관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참고로 〈크래프트 윈도우 #1 공예오색五色〉 기획에는 다다손손이, 아카이브실 브랜드 디자인에는 오디너리피플이 참여했다. 그야말로 수많은 창작자들의 협업으로 완성된 박물관인 셈이다.

김정화
서울공예박물관 초대 관장
“공예가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재료를 고르고 기법을 고민해 제작하는 모든 과정이 ‘공예’다.”

오랜 준비 끝에 박물관이 일반에 공개됐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개관 준비를 위한 총감독으로 1년 3개월을 일했고 공모를 거쳐 관장직에 올라 2년 임기를 채웠다. 총 3년 3개월 동안 개관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온 셈이다. 실시 설계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소장품을 수집하는 일부터 해야 했다. 한창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코로나19의 습격으로 일정에 차질이 빚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한바탕 전쟁을 치른 느낌이다.

개관전을 준비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공예란 무엇이다’라고 딱 잘라 정의하기보다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오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21세기 박물관은 이 목소리, 저 목소리가 다 들리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료에 근거해 공예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각종 문헌에 남아 있는 공예의 흔적을 찾아 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대중들이 공예가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보도록 했다. 다시 말해 해석은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몫인 셈이다.

김헌철 작가의 ‘시간의 흐름’. 170여 개의 유리 오브제를 천장에 설치했다.
상설 전시에서 현대 공예가 다소 소홀하게 다뤄진 것은 아닌지?

아직 현대 공예 소장품이 많지 않아 별도로 상설전까지 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동시대 작가를 더 발굴하고 소장품을 확충해 현대 공예까지 상설전으로 아우르는 부분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본다. 사실 전통 공예와 현대 공예라는 구분 자체는 현대에 이르러 생겨난 개념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학문의 영역에서 경계가 생겼지만 사실 전부 공예라는 큰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본다.

전시 공간 곳곳에 비치한 디지털 패드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디지털 정보와 문화의 접점을 마련하는 게 내 전공 분야다. 박물관 디지털 전략을 세우면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정보 DB를 구축해 사람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네트워크망을 만드는 것이었다. 웹사이트에서 소장품, 아카이브, 전시 이력 정보를 전부 연결하는 일은 간단해 보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웹상에 제각각 존재하는 정보를 마치 뇌 신경 구조처럼 통합시켜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원하는 자료에 손쉽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시스템을 우리는 CRMS(Craft Resource Management System)라고 부른다. 웹사이트와 미디어월, 상설 전시 안내용 모바일 패드 ‘크래프트 아이’에 CRMS를 모두 적용했다. 한편 우리는 일상 속 공예품을 메타버스 세계 안으로 확장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아마 내년 초쯤에 결과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브젝트 9〉전.
디자인누하와 김상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아카이브 팀으로 참여했다.
촉각을 활용한 전시 콘텐츠도 디지털 전략만큼 흥미롭다.

공예의 핵심은 손이다. 공예품을 손으로 만드는 것처럼 손으로 공예품을 느낀다. 전시장에 공예품의 사이즈와 촉감, 형태를 느낄 수 있도록 제작한 3D 프린팅 모형은 비단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콘텐츠인 셈이다. 이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다른 박물관에 가보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전시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한구석에 위치해 소외감을 준다. 나는 모든 전시는 모든 사람이 대화하면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상설전에서 음성 가이드는 물론이고 작품 안내용 점자도 작품 캡션과 동일하게 기재해 정보의 불균형을 없앴다. 마찬가지로 미디어월에도 휠체어를 탄 이들이 쉽게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하단부에 빈 공간을 마련했다.

9명의 공예가들과 오브젝트 9 프로젝트를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 공간에 잘 녹아든 공예품도 볼거리지만 이 과정을 아카이빙해 더욱 뜻깊다.

나는 공예가 9명과 프로젝트 전 과정을 함께한 아카이브 팀을 늘 열 번째 작가라고 부른다. 1년 동안 공예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인터뷰도 했다. 이를 기반으로 소식지와 도록을 출간했고 전시3동 1층에서 도면과 작업 도구 등을 전시한 기획전도 열리고 있다. 공예는 동사다. 공예품과 공예라는 용어를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다른 개념이다. 공예가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재료를 고르고 기법을 고민해 제작하는 모든 과정이 공예다. 공예품은 그 결과물인 것이다. 이런 공예의 동적 개념을 기록하자는 취지에서 아카이빙에 심혈을 기울였다.

안동별궁의 얕은 구릉을 복원한 안마당에는 바닥에 라인을 넣어 경사면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사진 제공 오피스박김
서울공예박물관의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말해달라.

역사와 일상을 공예로 조망하고자 한다. 공예가 가진 공工·용用·예藝·지智, 즉 기술, 실용, 예술, 문화의 가치를 지키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예술과 생활을 잇고 세계를 연결하는 소통하는 박물관이 되는 것이다. 공예에 담긴 정신으로 우리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그로 인해 세계관이 달라지는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예가들에게 어떤 박물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가?

공예가들에게 든든한 울타리 같은 곳이 되기를 바란다. 공예가들이 작품 활동을 잘 하고 공예 연구자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글 서민경 기자 사진 이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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