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과 규칙의 무한한 변주, 빠빠빠탐구소 빠키
빠키 작가의 빠빠빠탐구소는 언어 없이도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따라 아기가 ‘빠빠빠’하고 옹알이를 시작하는 것처럼 원초적인 패턴과 움직임이 있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영상과 아트 사이언스를 공부하고 대기업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비주얼 아티스트로 전향했다.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티스트가 되겠다고 그만둔 것은 아니다. 2012년 본격적으로 빠빠빠탐구소를 시작하기 전부터 주말과 퇴근 시간을 활용해 꾸준히 VJ로 활동하면서 작업을 선보였다. 그때는 주로 공연이나 콘서트, 패션쇼에서 LED와 그래픽 영상을 활용해 공간을 채우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디지털 파일은 아무리 공들여 작업한 것이라도 컴퓨터 휴지통에 넣으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지 않나. 그런 허무감 때문인지 비물질성에 대한 탐구에서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옮겨가게 되었다.
빠키의 작품 영역은 그래픽, 설치, 영상, 키네틱 아트, 퍼포먼스에 걸쳐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다음 행보가 더 궁금해지는 듯하다.
주위 사물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즉흥성을 이끌어내는 뮤직비디오 시리즈 ‘빠빠빠 비디오 댄스’는 영상 안에서 설치, 이미지, 퍼포먼스를 다 보여주는 기획이다. 내가 선보이는 작품은 명확하게 장르 간 경계가 나누어져 있기보다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순환하는 쪽에 가깝다. 하나의 매체에서 다른 형태의 작업을 계속해서 파생시키면서 변주한다고 보면 된다. 이미지화된 평면 작업이 입체화된 설치물로 변신하기도 하고 디지털과 현실 세계를 오가기도 하기 때문에 내 작업 영역을 한 가지로 정의 내리고 싶지 않다.
얼핏 시각적 흥미를 자극하는 그래픽 패턴 작업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철학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순환하는 에너지’, ‘윤회 사상’, ‘회귀’ 같은 키워드가 불교 철학을 떠올리게 만든다.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우주의 기초 원소는 요소가 아닌 ‘관계’라고 강조했다. 즉 실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고유한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존재하며 사건들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사건이 나타난다고 본 것이다. 그러한 그의 철학은 우주 만물이 인연에 따라 존재한다고 믿는 불교의 연기 사상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나 또한 관계성을 화두로 다양한 매체를 오가면서 새로운 놀이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또 내 작품에서 발견되는 그래픽 언어는 우리 주변의 사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관계성을 선과 면, 컬러를 활용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재해석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같은 노란색이라도 그 옆에 빨간색을 배열하느냐, 파란색을 배열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굉장히 달라진다. 이런 감각은 바로 관계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 ‘불안전한 장치’ 2015년 대림미술관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열린 개인전에 설치한 작품으로 대림문화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번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작품도 놀이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형식인가?
그렇다. 무질서한 상태에서 놀이라는 장치를 통해 규칙을 만들어낸다는 콘셉트로 ‘불규칙한 기하학의 관계’라는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나에게 놀이란 규칙을 만들어나가는 의식(ritual)적인 행위나 다름없다. 인과 관계 속에서 탈구된 추상적 패턴을 가지고 원의 회전 운동에서 순환-반복-무한함을 거쳐 다시 원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통해 유희를 만들어간다. 즉 시작과 끝이 없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시공간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비엔날레 주제인 ‘디-레볼루션’과 연관 지어 봤을 때 관계성이 ‘혁명’과 ‘진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우리 개개인은 점과 같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조우를 하고 협업을 통해 세상을 탐구하면서 한 걸음씩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생생한 체험 요소를 살리기 위한 장치로 ‘의상’을 마련했다.
작품이 설치되는 곳이 ‘진화가 되는 혁명(d-Revolution for
Evolution)’을 주제로 한 체험관이기 때문에 작품의 패턴을 적용한 의상을 함께 전시했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자유롭게 로브 가운을 입고 작품 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는데 이들은 일종의 자발적 퍼포먼서인 셈이다. 즉 공간 안에서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 사이로 운동성을 배가시키는 인체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으로 완성하는 총체적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관람객은 작품을 관조하는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생동감 있는 경험을 통해 관람객들도 유희적으로 전시를 즐겼으면 한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선보이고 싶나?
최근 NFT 플랫폼에 진출할 기회가 있었다. 기하학적 패턴을 캐릭터로 조합해 일명 ‘빠키의 친구들(Vakki’s Friends)’ 시리즈를 선보였다. NFT가 아티스트에게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거래 방식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도였고 실제 판매로도 연결되었다. 평소 새로운 매체가 나타날 때마다 늘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해보는 편이다. 화이트 큐브 형태의 미술관이 아니라 메타버스 안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프로젝트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빠키의 작업이 디지털에서 시작해 물리적 형태로 옮겨갔다가 다시 디지털로 회귀하고 순환하는 과정, 그러나 새로운 매체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한다는 점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글 서민경 기자 인물 사진 한도희(얼리스프링)
갓 태어난 아기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옹알이를 반복하면서 감정을 표현한다. 빠키 작가의 빠빠빠탐구소는 언어 없이도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따라 아기가 ‘빠빠빠’하고 옹알이를 시작하는 것처럼 원초적인 패턴과 움직임이 있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에게 작품 활동은 비주얼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운 놀이에 가깝다. 설치, 영상, 퍼포먼스, 그래픽, 키네틱 아트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빠키표 작품은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하고 도발적이다. 이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체험관에서 빠키는 신작 ‘불규칙한 기하학의 관계’를 통해 사물과 사람의 에너지를 탐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