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로 지속하는 건축적 실험 스튜디오 바래

‘공기’라는 무형의 재료를 ‘어셈블리(조립)’라는 건축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스튜디오 바래의 지속적인 실험은 건축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분명 일조하고 있다.

공기로 지속하는 건축적 실험 스튜디오 바래

지난해 6월 조립식 이동형 음압 병동 내부를 관찰하러 공릉동 한국원자력의학원 앞 공터에 사람들이 모였다. 급증하는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스튜디오 바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협업해 마련한 에어빔 파빌리온AirBeam Pavilion이 약 6개월 동안 맡은 임무를 다하고 철거되기 이틀전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다.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은 이 파빌리온을 설계한 스튜디오 바래는 2014년 전진홍과 최윤희가 결성한 리서치 기반의 건축 스튜디오다. 이들은 치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도시 환경과 시간에 조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전에서 선보인 ‘새로운 유라시아 파빌리온’, 2018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에서 전시한 ‘꿈 세포(Dream Cells)’ 등 실험적인 작품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 공개한 에어빔 파빌리온 또한 스튜디오 바래의 철학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가로 15m, 세로 30m 크기의 거대한 공기 구조물을 세우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 긴박한 재난 상황에 필요한 임시 건축물이었기에 ‘속도’는 중요한 키워드였다. 약 1m 지름의 에어빔 30개를 지퍼로 연결하고 공기를 주입해 구조체를 세우는 방식이라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스튜디오 바래는 파빌리온의 내피를 한 겹 더 싼 구조로 단열 효과를 높였는데 설치 시기가 한겨울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또 꼭대기에는 30개의 에어빔을 가로지르는 작은 공기 구조물을 하나 더 넣어 눈의 무게로 인해 무너지는 것을 방지했다. 눈이 쌓이면 이 부분에 공기를 주입해 흘러내리게 하는 원리다. 모듈식으로 제작한 에어빔은 압축하면 부피가 작아져 운송이 용이하고 사용 후 100% 재활용이 가능해 철거 과정에서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우리의 관심사는 건축 행위 이전과 이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 있어요. 설계에서 준공까지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전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의 주제에 몰입해 작품을 선보이고 나서 다음 작품을 새로 구상하기보다는 기존 작품에서 사유를 확장시킨 연작을 발표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스튜디오 바래의 이러한 관점은 에어빔 이전에 발표한 ‘에어 캡Air Cap’과 이후에 발표한 ‘에어 빈Air Bean’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6 디자인 위크인 대구에서 전시한 ‘에어 캡 파빌리온’은 재난 시 머리에 착용하는 안전모 역할을 하는 에어 캡을 하나씩 연결한 작품으로 에어빔 파빌리온의 모태가 됐다. 한편 지난 7월 팩토리2에서 열린 〈어셈블리 오브 에어Assembly of Air〉전에는 공기를 주입한 쿠션을 연결해 만든 가구 형태의 에어 빈을 설치했다. 이와 함께 에어빔 파빌리온에서 영감을 받은 여러 작가들의 사운드, 식물, 비디오 영상, 사진과 한데 어우러져 특별한 시노그래피를 완성했다. 하나의 공기 모듈이 의복에서 가구, 나아가 임시 건물로 무한하게 변주할 수 있는 이들의 혁신적인 작품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소장되었다. ‘공기’라는 무형의 재료를 ‘어셈블리(조립)’라는 건축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스튜디오 바래의 지속적인 실험은 건축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분명 일조하고 있다. 글 서민경 기자

건축 큐레이팅 컬렉티브 씨에이씨CAC가 기획한 〈어셈블리 오브 에어〉전. 에어 빈과 함께 장성건 작가의 사운드, 배한솔 작가의 비디오그래피, 정성규 작가의 식물을 전시했다. 특히 에어빔 파빌리온에 들어섰을 때 마치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간 느낌을 받은 장성건 작가는 고래의 노래를 사운드로 제작해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사진 ©배한솔

영국 AA 건축 학교에서 만난 전진홍(사진 오른쪽)과 최윤희는 졸업 후 국내외 유수 건축사 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4년 스튜디오 바래를 열고 리서치 기반의 건축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2018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을 비롯해 다수의 전시에 참가했고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전의 큐레이터를 공동으로 맡았다. 이들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용산역사박물관에서 최근 이들의 작품을 소장했다. bare.kr

디자이너가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

전진홍 가족, 그리고 유년 시절 접했던 진귀한 시계와 귀금속.
최윤희 고가구.

AI 디자이너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실수 혹은 망각, 그리고 데이터 없이 마음으로 움직이기.

요즘 가장 좋아하는 곳

학생들과 지난 3년간 모빌리티를 주제로 탐구한 내용을 담아둔 디지털 아카이브(uakarts. kr/gsua2021).

2016 디자인 위크 인 대구에서 선보인 ‘에어 캡 파빌리온’. 지진 같은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머리를 보호하는 꼬깔 모양 에어 캡을 제안했다. 에어 캡을 여러 개 연결하면 재난 구호소에서 사용할 침낭이나 파빌리온을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사진 ©신경섭
2022년 활약이 기대되는 디자이너 또는 디자인 스튜디오는?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전에 참여한 최지수 일러스트레이터.

최근 거슬리기 시작했거나 지긋지긋한 단어가 있다면?

효율.

올해 새로운 다짐

‘더 작게, 더 느리게, 더 가깝게’ 기후시민 3.5 실천(climatecitizens.org).

디자인업계에서 고쳐야 할 관행이 있다면?

정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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