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9월 14일부터 10월 17일까지 열리는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이하 타이포잔치 2021) 포스터는 동양의 세계관 속 십장생에 포함되는 동물, 거북이와 두루미로 ‘문자와 생명’이라는 주제를 알리고 있다.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박삭···.’ 읽기만 해도 저절로 리듬과 음율이 떠오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은, 한 부부가 5대 독자인 아들의 장수를 기원해 지었다는 우스갯소리에서 시작되었다. 성경 속 가장 오래 산 인물 므두셀라나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장수의 도상들로 이뤄진 챈트chant 라고 할 수 있다. 9월 14일부터 10월 17일까지 열리는 ‘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이하 타이포잔치 2021) 포스터는 동양의 세계관 속 십장생에 포함되는 동물, 거북이와 두루미로 ‘문자와 생명’이라는 주제를 알리고 있다. 7회를 맞이한 이 시각예술 행사는 문자라는 넓은 정원에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 현대미술, 공예, 사진 등 시각예술 전반을 모았다. 그동안 문학, 도시, 몸, 사물 등과 타이포그래피 사이의 역학 관계를 깊이 있고 흥미롭게 다룬 비엔날레가 순환하는 생명의 관점에서 문자 문화를 바라본 점이 흥미롭다. 이번 타이포잔치 2021에서는 아티스트 54팀이 선보이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연계 행사 중 특별히 한글날 공개하는 서체가 있다고 해 더욱 기대를 모았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매력적인 영감의 장이 되어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를 주요 키워드별로 소개한다.

기원과 기복

아주 크게 자란 나무가 사람을 맞이한다. 오행 중 나무는 계절로는 봄을, 생명 순환의 과정에서는 출생과 시작을 뜻한다. 생명의 나무 혹은 서낭당의 나무를 연상시키는 설치 작품 ‘기도들’에는 다양한 나라의 문자와 메타포의 작품들이 걸려 있다. 이 중 디자인 스튜디오 ‘보이어’의 이화영은 ‘나무 아래 쥐부터 구름 아래 돼지까지’라는 작품으로 육십갑자를 재조명했다. 육십갑자는 ‘갑자(나무 아래 쥐)’부터 ‘계해(구름 아래 돼지)’까지 60간지로 동양에서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는 시스템이자 인간의 운명을 해석하는 방법이었다. 이 작품을 지나면 스튜디오 씨오엠이 제작한 ‘행운의 집’이 관객을 기다린다. 지혜와 출세를 상징하는 원숭이 모양의 어린이 책장, 상판 위의 수석, 가정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이불과 베개 등 인간의 보편적인 염원과 욕망이 담긴 물건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참 좋은 아침’은 가족이 모인 휴대전화 단체 대화방에서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에 착안한 작품이다. 마치 차례상을 연상시키는 이곳에는 메시지를 담은 타이포그래퍼들의 서체와 사진가들의 이미지를 띄운 낡은 브라운관이 놓여 있으며 그 뒤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문자도들을 병풍처럼 설치했다. 텍스처 온 텍스처의 문자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에는 ‘소불근학노후회’(젊을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늙은 뒤에 후회한다)’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각종 밈으로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어른들의 ‘안부짤’을 떠올리게 하며, 덕담과 잔소리의 경계를 오가는 가족 간의 애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기록과 선언

인간이 자연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지금을 ‘인류세’라 부른다. 그렇다면 지구 입장에서 문자는 인간이 남긴 흔적이 아닐까? 그런데 흔적으로서의 문자가 꼭 글일 필요는 없다. 장한나 작가의 ‘뉴 락 표본 2017-2021’은 해변에서 채집한 플라스틱 컬렉션이다. 작가는 자연의 대척점으로 여겨지는 플라스틱이 아주 오래된 암석 모양인 것에 착안해 이를 ‘뉴 락(New Rock)’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5년간 플라스틱을 수집한 작가는 발견 지역, 시기, 크기, 무게 등의 정보를 적어 공개했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 작가는 새로운 암석을 환경 문제로 고발하는 주제가 아닌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인간이 자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생겨난 새로운 생태계의 증거로 제시한다. ‘생명 도서관’에서는 기존의 북 디자인 문법을 탈피해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약 60권을 만날 수 있다. 6699프레스에서 기획하고 큐레이션한 이 도서관은 문자가 책을 통해 기록과 저장의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보았을 때, 존재하는 방식의 다른 기준을 제시하는 책들을 한데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교적 형식이 자유로운 이미지 중심의 작품집이나 독립 출판물은 피하고 ISBN을 발급받은 출판물 중에서 선정했다.

계시와 상상

2층에 들어서면 마치 현대미술관에 들어온 것처럼 거대한 설치 작품과 미디어 아트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밈의 정원으로 마련한 이곳은 인터넷 세상에서 매일 사용되는 기호와 이미지인 밈을 새로운 문자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메탈처럼 보이는 거대한 나이키 로고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 이는 속도감이 돋보이는 조각을 주로 만들어온 작가 강재원의 작품 ‘스우시’다. 작가는 한정판 스니커즈를 사기 위해 편집매장 앞에서 밤새워 기다렸다 구매하고 이후 한참 부풀려진 가격으로 재판매하는 현상을 유심히 살폈다. 이를 세속적 욕망이 밈처럼 퍼져나가는 것으로 해석한 작가는 속이 텅 빈 풍선을 만들어 허무한 물질주의를 꼬집었다. 이 작품은 반사되는 소재로 되어 있어 가까이 다가가면 관객의 모습이 표면에 비치도록 했다.

존재와 지속

타이포잔치 2021은 다시 한번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이름을 각인시킨다. 뚜까따의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박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바둑이는 돌돌이’를 모두 핸드메이드 머티리얼로 만들었다. 이 굿즈들은 귀여운 형태지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오래된 욕망을 담고 있다. 전시를 상징하는 커다란 거북이와 두루미 인형까지 지나면 다시 입구다. 이미주 작가의 ‘여래신장’이 환영과 작별의 인사를 동시에 맡고 있다. 부처의 손바닥은 인사처럼 보이기도 하고, 생명을 관장하는 동시에 초월한 관찰자의 시선이기도 하며,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재생을 염원하고 상징한다.

“타이포그래피에 동양적 세계관을 부여하고 싶었다.”


이재민 타이포잔치 2021 총감독
이번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는 주제 문자와 생명과 어떤 관련이 있나?

여전히 로마 알파벳이 중심인 타이포그래피에 동양적 세계관을 부여하고 싶었다. 동양에서 생명은 오행 속에서 순환하는 것으로, 죽음도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인식한다. 거북이와 두루미는 십장생에 포함되어 잘 알려져 있는데, 넓게 보면 문자처럼 그림 속에서 하나의 기호로 사용되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 그리려는 서양의 투시법, 원근법과는 다른 은유와 상징으로의 접근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욕망, 이를테면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다닌 것처럼 자연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생명체에 투영된 것이다.

포스터에서도 직관적으로 동양적인 느낌을 읽을 수 있다.

표현하고 싶은 게 명확했다. 이번 행사가 타입 디자이너만의 잔치가 아니고, 타이포그래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글보다 글자가 직관적이고 쉬우니 기호로서, 아이콘으로서의 문자에 접근해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다만 거북이와 두루미가 전통 민화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어 배경을 형광 컬러로 설정했다. 포스터 속 글자는 영어와 한글, 한자가 모두 표기되어 있는데 로마 알파벳은 태생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성이 정해져 있고 아시아 문자는 배치가 다소 자유로운 점 등이 잘 비교되어 나타난다. 포스터의 거북이와 두루미의 일러스트를 그린 김미키는 타투이스트이기도 한데,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그림을 새기는 작가인 만큼 주제인 생명과도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오행의 시작처럼, 타이포잔치 2021도 나무로 시작한다.

목화토금수로 순환하는 오행 사상은 인간의 생과 닮았고, 인간의 발명품인 문자 또한 이러한 구조로 생과 사를 경험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전시 동선도 이에 착안해 구성했다. 그래서 이번 타이포잔치 2021은 나무로 시작해서 풀로 끝난다. 생장하는 식물을 나타내는 작품을 전시장 안에 수미상관 구조로 배치해 순환을 표현한 것이다.

타이포그래피 행사인데 글자보다 그래픽과 설치 작품, 미디어 아트가 훨씬 많다.

타이포그래피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석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올해는 정말 잔치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잔치라는 게 원래 잘 모르는 사이도 밥 먹으러 오고, 격 없고 친근한 행사이지 않나. 그런 점에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 글씨 또는 문자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가장 일상적인 문자는 메시지로서의 문자일 것이다. 카카오톡을 사용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글자만 쓰지 않는다. 이모지 하나로 표현하기도 하고, ‘짤’을 보내기도 하고, ‘ᄏᄏᄏ’만 쓰는 시대에 오직 글자만 타이포그래피라고 할 수 있을까? ‘타이포그래피’가 아니라 ‘타이포그래피에 해당하는 활동’으로 보았을 때 개념은 학제적으로도 넓어지고, 매체로서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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