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건축가’ 폴 케홀름 국내 첫 회고전, 프리츠한센
철재와 목재, 건축 하드웨어가 만나 가구로 거듭나는 여정
프리츠한센이 덴마크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폴 케홀름의 한국 첫 회고전 자리를 마련했다. 덴마크 디자인사 흐름을 따라 폴 케홀름의 생애를 조명하며, 그의 작업을 크게 '요소(ELEMENTS)' '유형(TYPES)' '구성(COMPOSITION)'으로 나누어 심도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로 마련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폴 케홀름의 가족과 덴마크 프리츠한센 본사는 그와 관련된 아카이브 자료 및 디자이너 생전에 소량 제작되어 단종된 희귀 제품을 제공했다. 폴 케홀름을 단독으로 소개하는 전시는 프리츠한센 글로벌에서도 최초로 진행되는 자리로, 올해 하반기에는 일본에서 동일한 주제의 전시가 진행될 예정. 현대 디자인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케홀름의 작품 세계를 따라가 보자.
폴 케홀름은 누구인가
폴 케홀름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덴마크 캐비넷메이커의 전통을 현대의 기술로 재해석한 인물로, 가구의 조형에서 구조와 만듦새를 드러내는 독자적인 작업 언어를 구축했다. 목재 중심이었던 당시의 덴마크 가구 시장에 스틸 가구 컬렉션을 제시하며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이기도 하다. 숙련된 가구 제작자였던 그는 가구가 공간 경험과 디자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건축가라고 여겼다. 그는 특히 건축 소재에 관심이 많았고, 스틸이 나무와 같이 예술적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재와 형태, 기능에 대한 높은 이해를 가졌고 스틸에 위커, 목재, 캔버스, 가죽, 대리석, 유리와 같은 전통적인 소재를 접목해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컬렉션을 선보인 인물로 폴 케홀름이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로서 첫걸음을 내디딘 1950년대는 ‘디자인의 황금기’ 그 자체였다.
1929년 덴마크 북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폴 케홀름은 캐비넷메이커 훈련을 받으며 목공 기술을 연마했고, 카레 클린트의 기능주의 이념을 바탕에 둔 덴마크 응용예술학교에서 가구 디자인 교육을 받았다. 1952년 졸업 작품으로 한 판의 스틸을 구부려 만든 ‘엘레멘트 체어(PK25)’를 선보였는데 스틸이 가진 구조적 특성과 미적 가능성을 보여준 디자인이었다. 이 의자를 계기로 그는 프리츠한센에서 1년간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목재 실험을 하며 짧은 기간 많은 양의 디자인을 구상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당시 대량 생산의 상업성이 보장되어 있던 아르네 야콥센의 ‘앤트체어’에 우선순위가 밀려나면서 프리츠한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케홀름은 가구 유통사인 에빈드 콜드 크리스텐센과 뜻을 모아 작업하며 가구 컬렉션 ‘PK 시리즈’를 만들어 나갔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PK25, PK22, PK0, PK24, PK80, PK61, PK65 등이 있다. 1982년 그가 작고하고 2년 후, 케홀름 가족과 에빈드 콜드 크리스텐센은 케홀름의 디자인을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는 파트너로 프리츠한센을 떠올렸고 PK컬렉션의 제작과 판매 권한을 위임하게 된다. 프리츠한센은 오늘날까지 케홀름 가구만의 까다로운 재료 선정과 정교한 제작 방식을 통해 그의 가구를 선보이고 있다.
폴 케홀름의 작업 준칙
폴 케홀름의 디자인은 ‘재료’와 ‘구축 방식’이 중심을 이룬다는 것이 대표적 특징이다. 그 원천은 한스 J.베그너로부터 배운 목공의 태도와 네덜란드 데 스테일(De Stijl) 그룹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게리트 리트벨트의 작품을 보며 익힌 건축가의 언어에 있었다. 데 스테일 그룹은 1917년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예술 및 공예 운동으로 신조형주의를 주도한 인물로 피에트 몬드리안, 테오 반 데스부르흐가 있는데, 장식적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특정 미술 양식과 연관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조형 언어를 기반으로 미적 양식을 구조적인 질서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양식이다. 케홀름은 리트벨트의 디자인 중 모든 요소가 시각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면서 뚜렷한 구조적 논리가 드러나도록 설계된다는 것에 영향을 받아 사물의 가독성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가구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이는 케홀름이 합리적인 생산 방식을 개발하는 데에도 해결책이 되었다. 케홀름은 가구의 구조적 요소들을 독립된 개체로 고안하여 단일 재료로 만들고, 스틸은 최고의 금송공에게, 목재는 최고의 목공에게, 가죽은 최고의 가죽공에게 제작을 나누는 분업 체제를 통해 가구의 품질을 최고로 끌어올려 산업화하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관을 엿볼 수 있도록 전시장 1층에서는 PK0, PK22의 요소를 분해하고 해체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완전한 피스에서 분리되었지만 각 개체만으로도 완전한 모습을 띄고 있다. 피스 하나 하나에 들인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가구 분류 시스템
가구 디자인사의 전례야말로 현대 가구 제작에 풍부한 영감을 준다고 믿었던 폴 케홀름. 스승 한스 J.베그너의 가르침을 물려받았고 베그너는 카레 클린트로부터 사상을 물려받았다. 클린트는 가구를 유형으로 이해하는 유형론을 펼치며 모든 가구는 시대나 문화에 따라 재료와 기술의 차이만 있을 뿐 보편적인 규칙에 따른 형태를 갖춰야 한다고 믿었다. 케홀름 역시 이러한 사상을 이어받아 자신만의 가구를 분류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컬렉션을 완성했다. 이러한 특징을 조명하는 ‘TYPES’ 섹션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조병수 건축가의 손길로 완성된 유스퀘이크 공간 속 폴 케홀름의 가구가 빛을 발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의 프리츠한센이 있기까지 수많은 디자이너, 건축가와 함께 했듯 그중 한 명의 디자이너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에 대해 프리츠한센 코리아 이수현 지사장은 “제가 덴마크 가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0년도 초기였는데, 프리츠한센의 다른 디자이너와 제품들과 달리 폴 케홀름과 그의 제품에 대한 설명이 한정적이어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폴 케홀름의 제품을 소비하고 좋아하시는 분들이 국내에도 많아진 만큼, 폴 케홀름이 어떠한 디자이너였는지 많은 분들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소감을 전했다.
이번 전시를 기념하며 폴 케홀름의 아들 토마스 케홀름이 전시장을 방문해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소비자와 만남의 자리를 갖기도 했다. 평소 PK시리즈를 관리하고 있는 토마스 케홀름은 자신의 아버지 폴 케홀름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다. “PK4 체어는 무한한 호기심으로 연구에 몰두했던 아버지의 실험적 디자인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는 PK25 및 이후 출시된 PK22 체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기도 합니다”
재료와 도구를 소중히 다루고, 재료와 과정의 진화로 디자인을 해석하며 기술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내비친 폴 케홀름. 최상의 재료와 섬세한 디테일을 추구한 그의 디자인 원칙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우리 일상에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남아 함께 하고 있다. 비율과 형태에 고유한 시선을 반영하고,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공간을 정의하는 가구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일대기와 디자인 가치관을 집약한 이번 전시는 7월 7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