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hiin), 남편이 만든 나무 도구와 아내가 만든 흰 물건들
즐거운 주방 생활을 권하는 다정한 살림가게
처음 ‘숙희’에서 산 행주를 삶으며, 나도 이제 살림 좀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았던 기억이 있다. 그 살림가게 ‘숙희’에서 ‘숙’을 담당했던 신동숙 대표가 지난 5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투마이베이비’와 ‘숙희’를 거쳐 그가 눈과 마음으로 발견하고 만들어낸 하얀 것들을 모아 운니동 가든타워 17층에 ‘흰(hiin)’이라는 문패를 내걸었다.
Interview
신동숙 흰 대표
이 단정한 행주들을 다시 만나 반가워요. 대표님께서 새로운 브랜드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정해둔 건 없었지만 마지막을 생각했을 때, 하얀 것만 만들어 파는 숍을 운영하는 게 저의 꿈이었어요. 원단도, 그릇도, 항상 아무것도 없는 흰색과 함께했을 때 더 빛나고 예뻐 보였거든요. 나중에 아이들이 독립하면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서 저는 작고 흰 물건을 만들고, 목공을 취미로 하던 남편은 도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기가 조금 빨리 왔어요. 제가 숙희를 접은 시기와 남편이 퇴직한 시기가 맞물리며 더 마음먹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름이 ‘흰’이었군요. 색을 배제하고 형압으로 인쇄된 로고, 흰토끼와 꽃 요소들도 너무 예뻐요.
희고 깨끗한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주변에서도 여러 의견을 주셨는데 딱 마음에 드는 건 없었어요. 그런데 교토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오래되어 낡은 간판을 발견했어요. ‘hyn’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예쁘다, 싶었죠. ‘흰’을 읽히는 대로 써보자. 그렇게 ‘흰(hiin)’으로 정했습니다. 토끼는, 제가 워낙 토끼를 좋아했어요. 토끼띠이기도 하고요. (웃음) 흰과 어울리는 꽃 패턴은 물론 로고 디자인까지 모두 스튜디오 신설화의 신설화 디자이너가 작업해 주었어요.
“남편이 만들어준 나무 살림들과 제가 만든 하얗고 흰 애정 어린 물건들”이라는 소개 글을 보았어요. 물건의 면면을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제가 주방에 있는 걸 좋아해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심지어 설거지도 좋아하고요. 그러다 보니 행주나 수세미, 조리 도구에 관심이 많고 민감하죠. 그래서 많이 모았고, 만드는 일을 해오게 된 거예요. 지금까지 우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적은 없어요. 개인적으로 쓰는 도구들은 남편한테 부탁해서 만들어 사용했지요. 써보니까 좋아서 다음에 우드 제품을 만들게 되면 여기서 조금 변형해서 이런 구성이 나오면 좋겠다, 이런 도마를 팔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반영된 제품입니다.
흰을 시작하며 원단도 직접 제작하셨어요.
하얀 면 원단들이 다 같아 보이지만 짜임이 다 달라요. 용도에 따라 촘촘한 것도 있고 성성한 것도 있죠. 후가공에 따라 종류가 나뉘기도 하고요.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데, 제가 진짜 좋아하고 갖고 싶은 것들은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1~2마씩 사서 재봉틀로 만들어 쓰던 원단이에요. 저희 아이들이 아기 때 쓰던 수건 같은 거죠. 지금은 어디에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헤진 것들을 지금까지 모아 놨어요. 그걸 들고 저와 오랫동안 일한 사장님께 부탁드렸죠. 이것저것 찾아보며 시행착오를 겪는 것보다 직접 만드는 걸 선택한 거예요. 그렇게 직접 짠 원단이 두세 가지 정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가든타워를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라고 생각하는데요.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 자체도 근사하지만 곳곳에 숨은 숍들과 디자인 스튜디오도 흥미롭거든요. 그래서 흰에 오는 길이 더 즐거웠어요.
원래 이 건물에 관심이 있었어요. 같은 층이라도 호수마다 구조가 다르고 창덕궁이 보이는 뷰도 좋지요. 그런데 쉽게 자리가 나는 곳이 아니잖아요. 사실 더 쉬려고 했는데, 우연히 지금 여기에 있던 숍에 놀러 왔다가 2월에 이사 갈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바로 계약을 했죠. 그때가 10월이었는데도요. (웃음) 본격적인 공사는 2월부터 했어요. 원래 바닥에 깔려 있던 카펫을 뜯어내고 벽도 다시 흰색으로 칠하고요.
사무실 한 켠을 쇼룸으로 꾸미며 어떤 공간을 만들고자 했나요?
처음부터 매장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원단 제품은 만져보고 구매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요. 고민하다 일주일에 이틀만이라도 열어볼까 하며 공간을 나눴죠. 살림하는 분들이라면 집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실 텐데요. 요즘에는 집에 초대하는 일이 드물잖아요. 누군가의 주방에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이 공간에 있는 하얀색 장을 제외하고 다 남편이 만든 가구고요. 이전에 있던 제 작업실의 소품들을 가져와 꾸몄어요.
흰은 좋은 삶의 가치를 공유하는 브랜드인 것 같아요. 소소하지만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물건들이잖아요.
저는 살림하고 애들도 키우면서 일도 계속해 왔잖아요. 이렇게 일을 끝내고 집에 가면 또 집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말로는 지겹다고 하지만 집안 살림을 하면서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힘듦이 해소되는 것 같아요. 결국 좋아서 하는 일인 거죠. (웃음) 싫은 거, 못하는 거를 억지로 하면 안 돼요. 정말로 안 되는 사람은, 하면 안 되는 게 맞죠. 그렇지만 그런 분들께도 이렇게 하면 재밌어, 행주라도 이런 거 쓰면 즐거워, 이렇게 하면 편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친정 언니나 엄마 같은 마음으로요. 끝까지 정말로 손 놓지 않게요. 앞으로도 즐거운 부엌살림, 즐거운 집안 살림을 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주방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행위를 하는 곳인지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 안에서 필요하여 쓰이는 도구들을 소개하고 유용한 하나하나를 모으고 모아서 여러분의 살림에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먹는 것에 대한 소중한 의미와 그걸 만드는 시간의 즐거움, 그런 모든 것들을 기록하여 기억하는 소중한 시간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_ 흰을 준비하며 신동숙 대표가 쓴 글
5월 21일 온라인 숍을 오픈했고, 지난주 쇼룸의 문을 열었어요. 앞으로 나올 제품과 흰이 펼쳐 나갈 일들이 궁금해요.
흰을 시작하며 저와 약속한 게 매주 한두 가지씩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서 보여드리는 거예요. 조금 새로운 행주, 조금 다른 디자인을 너무 급하지 않게 계속해 나가려고 해요. 그리고 제가 즐겁고 행복하게, 이런 마음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희 남편도 다치지 않고, 두 사람 모두 일에 치이거나 쫓기지 않도록 조화롭게 잘 보여드리고자 하는 게 흰을 운영하는 저의 첫 번째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