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는 기획자들의 새로운 공간, 뉴 로파 쇼룸
이왕 사는 거라면 더 즐겁게, 더 진정성 있게!
로파서울이 세 번째 쇼룸을 공개했다. 무가지를 콘셉트로 한 공간을 기획한 배경부터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브랜드를 소개한다.
아트·디자인·공예를 중심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로파서울(LOFA Seoul)이 지난 5월 신용산에 세 번째 쇼룸을 오픈했다. 일명 ‘뉴 로파 쇼룸’은 2021년 서소문에서 운영한 첫 번째 쇼룸, 신용산의 두 번째 쇼룸에서 경험한 아쉬움에서 비롯됐다. 특히 두 번째 쇼룸은 현재 공간에서 불과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했는데 5층 건물 꼭대기에 자리한 탓에 접근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물리적 공간 제약으로 로파 서울이 소개하고 싶은 브랜드를 미처 다 선보이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내부에서 대두됐고, 단순히 온라인에서만 소비자를 만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쇼룸에서 고객과의 접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로파서울이 사물을 둘러싼 흥미로운 소재들을 수집하고 자유롭게 소개하는 곳이었다면, 세 번째 쇼룸의 로파서울은 스스로를 ‘라이프스타일숍’으로 재정의합니다.”라며 뉴 로파 쇼룸이 본격적인 라이프스타일숍 운영의 시작임을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그만큼 쇼룸에 임하는 각오와 자세도 남달랐다고. 공간 콘셉트부터 시공, 동선 기획, 제품 디스플레이, 가구 디자인까지 모두 로파서울 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새로운 신호탄에 맞춰 힘차게 출발한 뉴 로파 쇼룸을 만나보자.
무가지가 콘셉트인 쇼룸
뉴 로파 쇼룸의 공간 콘셉트는 ‘무가지’다. 2000년대 중후반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무료로 배포하던 신문이나 잡지를 일컫는 무가지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차츰 그 모습을 감췄다. 비록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곤 하나 무가지가 없어진 건 아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무가지 특유의 자유로운 성격은 오늘날 서브컬처, 출판, 창작 등 크리에이티브 신에서 독립적인 편집물로 재해석되어 소개돼 곤 한다.
로파서울은 바로 이 무가지가 가진 자유로움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이들은 무가지를 자체적으로 제작해 고객과 소통하는 창구로 활용했는데 이는 편집숍의 핵심 역할을 ‘좋은 상품을 발견하고, 브랜드와 제품에 담긴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이다. 로파서울이 만든 무가지 1호 <준비, 탕!>의 주제는 ‘시작’이다. 쇼룸의 큐레이션을 한 층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도록 주요 제품, 브랜드, 크리에이터를 소개한 아티클을 여럿 담았다. 매장 내 큐레이션이 바뀌면 무가지의 콘텐츠도 새롭게 담아 정기적으로 발행할 예정이다. 한편 카운터 공간 디자인에도 무가지 콘셉트가 적용됐다. 역 근처에 자리한 신문 가판대를 연상시키는 구조와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스(WORKS)가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하며 디자인한 ‘로파(Lofa)’로고도 눈길을 끈다.
편집숍이 자체 상품을 만드는 이유
뉴 로파 쇼룸 공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입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바로 ‘로팩토리(LOFACTORY)’ 존이다. 로팩토리는 로파(LOFA)와 팩토리(Factory)의 합성어로 편집숍인 로파서울이 자체적으로 양산하는 PB 상품이다. 쇼핑 및 유통 업계에서 일컫는 PB 상품과 차이점이 있다면 작가 또는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라는 것. 이는 로파서울이 작가, 브랜드, 소비자를 둘러싼 창작 환경의 내일을 고민하는 방식의 일환이기도 하다. 로팩토리는 한 회 당 한 명의 작가를 조명한다. 국내외 선구적인 작가를 발견하고, 그들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와 창작의 가치를 대중에게 양산품으로 전달하는 것에 주력한다. 산업 디자이너 출신의 김영지 대표의 풍부한 제품 양산 경험과 제작 공장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로파서울만의 제조 유통 시스템이 힘을 더했다.
로팩토리에서 처음 소개한 창작자는 도자 작가 윤지훈이다. 그는 도자 기법으로 조명을 제작한다. 도자와 조명, 공예와 제품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독특한 조합은 작가의 개인 성향에서 비롯됐다고. 평소 타인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성격 때문에 조도가 낮은 환경에서 도자 작업을 했는데 이 경험이 곧 자신의 작품 아이덴티티가 된 셈이다. 특히 윤지훈 작가의 조명은 ‘스포트라이트’가 특징이다.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로파서울과 윤지훈 작가는 이러한 작품 오리지널리티를 해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양산에 적합한 기준점을 잡기 위해 제품 개발에 1년이 넘는 시간을 할애했다. 무엇보다 도자는 고온에 구워지며 그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선 양산에 적합한 수준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랜 노력 끝에 선보인 로팩토리의 첫 제품의 이름은 ‘Mini-Lamp’. 핀칭기법으로 남긴 창작자의 손 흔적과 이중 시유로 작업해 빈티지한 도자의 느낌을 골고루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한편 로팩토리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바로 창작자의 작품이 굿즈처럼 보이지 않는 것인데 이를 위해 창작자의 대표 장르에서 벗어나 일종의 변주를 주기도 한다. 오는 7월 소개할 두 번째 제품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전통 침선 기법 중 하나인 바대가 가진 조형성을 다룬 섬유공예·디자인 작업을 하는 김영은 작가와 함께 가구를 출시할 예정인데 평면의 패턴이 어떻게 적용될지 기대를 모은다.
뉴 로파 쇼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브랜드?
뉴 로파 쇼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브랜드도 있다. 국내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처음으로 단독 소개하는 유약 브랜드 ‘오드포뮬라‘가 대표적이다. 공예 전공 8년 차인 신가은 대표가 설립한 브랜드다. 오드포뮬라는 그간 정확한 컬러 기준 없이 뉘앙스로만 유통 및 판매되어 온 유약 시장에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한다. 쉽게 말해 유약판 팬톤인 셈이다. 아울러 이곳에서 판매하는 오드포뮬라가 특별한 건 대량 판매 위주로 구매가 어려운 소비자층을 위해 100ml 단위의 소량 제품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60여 종의 유약과 함께 컬러의 중첩에 따른 색감 차이를 확인할 수 있게 제작한 시편(샘플)도 로파서울에서만 소개한다.
쇼룸 공간 안쪽 끝에 자리하는 ‘서적&그래픽’ 존에서는 로파서울만의 시선으로 큐레이션 한 해외의 진(Zin)을 만날 수 있다. 대형서점의 카테고리와 니치 한 취향을 겨냥한 독립서점의 중간 지점을 고민한 티가 역력하다. 프랑스 파리 소재의 ‘Obed Books’, 일본의 ‘ISI PRESS’를 아웃소싱해 선보이는데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크리에이터의 작품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러스트를 예술의 반열로 올린 작가 키네(KYNE), ‘네오 망가’로 이름을 알린 요코야마 유이치, ‘타이드(TIDE)’로 알려진 이데 타츠히로, 콜라주 아티스트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카와무라 코스케의 작품집 4종은 각 작가의 작품 도록과도 다름없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서적&그래픽’ 섹션 옆에 자리한 ‘원 앤 온리’ 존은 말 그대로 오직 하나인 작품을 소개해 더욱 특별하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정물화 같은 도자 작업을 하는 고승연 작가, 자연물의 비정형적 형태를 세라믹으로 표현한 강류 작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페이퍼프레스의 아트워크 등을 만날 수 있다.
한편 평일 낮 시간대에 쇼룸을 방문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마련한 픽업 존도 뉴 로파 쇼룸만의 특징이다. 입구 앞에 자리해 가장 먼저 손님을 반겨주는 공간이자 24시간 운영되는 공간으로 시간을 쪼개어 빠르게 제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성향을 파악한 결과물이다. 뉴 로파 쇼룸은 평일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주말은 오후 12시부터 저녁 7시까지 운영한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니 참고해 방문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