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에 모인 디자이너들?

영화제에서 열린 〈디자이너 토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전주국제영화제는 디자인 관점에서도 각별하다. 매년 상영작 중 100편을 선정해, 100명의 디자이너가 자유롭게 포스터를 창작하는 〈100 Films 100 Posters〉(백필백포) 프로젝트가 2015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4월 30일 팔복예술공장에서 진행된 〈디자이너 토크〉 프로그램 현장을 소개한다.

전주국제영화제에 모인 디자이너들?

지난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이 영화제는 세계 곳곳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장인 동시에, 디자인 관점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품는 행사다. 영화제가 2015년부터 이어온 〈100 Films 100 Posters〉(이하 백필백포) 프로젝트가 디자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

ⓒ designpress

백필백포는 100명의 디자이너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다. 매년 상영되는 영화 중 100편을 선정해, 100명의 디자이너가 자유롭게 포스터를 창작하는 방식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영화제처럼, 백필백포 역시 전주 거리 곳곳을 장식했다.

〈100 Films 100 Posters〉 전시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디자인프레스는 올해 백필백포의 큐레이션을 맡은 디자인 스튜디오 포뮬러를 인터뷰한 바 있다. 그에 이어 4월 30일 팔복예술공장에서 진행된 〈디자이너 토크〉 프로그램 현장을 기사로 소개한다. 현장에서는 영화를 규격화된 종이 위에 비주얼화한 창작자들의 작업 방식과 영화제의 전체 아이덴티티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디자이너 토크〉는 1부와 2부로 구성됐다.

다른 창작자, 다른 디자인 방식

1부: 100 Films 100 Posters 디자이너 토크

​1부에서는 올해 백필백포에 참여한 정미정 디자이너(스튜디오 미정), 정진수 감독(비주얼스프롬), 전채리 디자이너∙홍기웅 포토그래퍼(스튜디오 CFC)가 각각 맡은 포스터 디자인 과정을 들려주었다.

1. 정미정 디자이너

스튜디오 미정

영화 〈체다를 만드는 법〉(How to Make Cheddar, 2023, 감독: 안현송)

정미정 디자이너의 작업은 영화 제목을 훑으며 ‘시각화 가능한’ 것을 찾는 일부터 시작됐다. 그는 시놉시스를 거의 보지 않고 제목을 훑으며 시각화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았다. 그런 면에서 〈체다를 만드는 법〉은 꼭 알맞은 제목이었다. 고양이 ‘체다’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포스터 디자인: 정미정

정 디자이너는 이 영화를 선정한 데 대해 “클라이언트 작업의 경우 보통 주제가 매우 복잡하거나, 추상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내야 하는 등의 과제가 있다. 백필백포처럼 자유도가 높은 작업에서는 명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아시아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한 ‘치즈’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냉장고에서 찾기 쉬운, 사각형의 슬라이스 체더치즈를 선택했다. 알파벳 모양으로 치즈를 자르고 스캔해 이미지를 만든 덕분에 포스터 속 이미지에서는 양감이 느껴진다. 제목 텍스트 밑에 배치된 사각형 치즈 역시 실제 슬라이스 치즈를 스캔한 것. 낮은 해상도를 보완하는 한편 보다 인상적인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로 후반 작업을 해 완성했다.

정미정 디자이너 토크 현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2. 정진수 감독

비주얼스프롬

영화 〈토리와 로키타〉(Tori and Lokita, 2022,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이번 백필백포에서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참여 창작자의 활동 분야가 그래픽 디자인뿐 아니라 사진, 회화, 일러스트, 영상, 3D 등으로 확장되었다는 것. 뮤직비디오부터 사진,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만드는 비주얼 창작 집단 ‘비주얼스프롬’이 올해 백필백포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다. 비주얼스프롬의 정진수 감독은 백필백포 작업을 위한 영화를 선정할 때, 그저 마음에 드는 영화 세 편을 골라 추렸다고. 평소 다르덴 형제를 좋아해 이들이 감독한 〈토리와 로키타〉를 골랐는데,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돼 막중한 부담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포스터 디자인: 비주얼스프롬

포스터 작업 방식은 복잡하지 않았다. 우선 꼭 넣어야 하는 것을 넣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로고를 먼저 배치했다. 그리고 다른 요소의 자리를 잡아 나갔다. 정진수 감독이 떠올린 건 영미권의 책 표지들이었다. “책 제목보다 작가 이름이 더 크게 쓰여 있는 표지들이 있는데, 그 느낌을 반영하고 싶었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지 않나.” 장 피에르와 뤽 다르덴이라는 이름을 하단 중앙에 비교적 크게 배치한 이유다.

정진수 감독 디자이너 토크 현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위의 사각형 안에는 〈토리와 로키타〉라는 영화 내용을 표현했다. 영화는 ‘토리’와 ‘로키타’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므로, 두 사람의 이름을 사각형 양극단에 각각 배치했다. 이민자, 국경, 경계 같은 키워드를 품고 나아가는 영화이기에 두 인물의 이름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경계가 있다’라는 슬로건 문장을 세 가지 언어로 쓴 후 사선으로 이었다. 불어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국가 벨기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어서 불어와 네덜란드어, 그리고 국제적인 언어인 영어를 선택했다. 정진수 감독은 슬로건을 떠올린 데 대해 “오래된 포스터를 보면 슬로건이 꼭 있다. ‘20세기 최고의 액션!’ 같은. 그걸 읽는 맛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토리와 로키타〉라는 작품을 보여주는 슬로건은 무엇일까 고민해 봤다.”라고 말했다.

〈100 Films 100 Posters〉 전시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3. 전채리 디자이너∙홍기웅 사진가

스튜디오 CFC

영화 〈밤 산책〉(Night Walk, 2023, 감독: 손구용)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CFC의 전채리 디자이너와 홍기웅 사진가는 함께 영화 〈밤 산책〉의 백필백포 포스터를 만들었다. 하나의 작업물을 두 사람이 협업해 만드는 과정은 어땠을까? 〈밤 산책〉이라는 제목과 짧은 시놉시스에 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요소가 있었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밤의 풍경과 드로잉, 조선시대 문인의 시詩로 이루어진 풍경 영화’. 홍기웅 사진가는 ‘밤의 풍경’이라는 단어에, 전채리 디자이너는 ‘시’라는 단어에 이끌렸다. 홍기웅 사진가는 평소에도 밤의 풍경을 자주 찍는 사람이었고, 전채리 디자이너는 필연적으로 글씨와 연관성이 있는 ‘시’를 두고 타이포그래피로서 해석하는 방식을 떠올린 것.

포스터 디자인: 전채리, 홍기웅

두 사람은 밤의 풍경을 매우 정적으로 담아낸 영상 위로 드로잉이나 조선시대 문인의 시가 입혀지는 영화를 보고, ‘촬영-드로잉’이 겹쳐진 레이어링 상태에 집중한다. 전채리 디자이너는 “홍기웅 사진가가 사진을 촬영하고, 나는 그 위에 그래픽과 글자를 더하는 방식으로 이 영화가 구현하는 레이어링을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홍기웅 사진가가 촬영한 밤의 풍경 중에서 바람이 느껴지는 듯한 나무의 사진을 선택한 후, 전채리 디자이너의 작업이 시작됐다. 전채리 디자이너는 이 사진에서 화가 몬드리안의 초기작인 나무 시리즈를 떠올렸다. “그래픽적인 모던한 작품으로 몬드리안을 아는 분이 많지만, 초창기 몬드리안 작품은 인상주의적인 화풍을 띠고 있다. 구상적인 작업이 점차 추상적인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홍기웅 작가의 사진이 나무를 직접적으로 담아낸 구상 작업이라면, 그 위에 레이어링하는 그래픽은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생각했다.”

홍기웅 〈newcolor hanriver〉 ⓒ 홍기웅

이렇게 완성된 포스터 속 하단의 사진과 상단의 그래픽은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인다. 나뭇가지와 잎 같은 그래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Night Walk’라는 글자를 발견할 수 있다. 협업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든 경험은 어땠을까? 홍기웅 사진가는 “사진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지만, 또 다른 표현 방식을 시도하며 경계를 확장하는 작업”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채리 디자이너는 “영화감독이 의도한 바를 한 번 해석하고, 그 영화를 본 홍기웅 작가의 작업을 또 한 번 해석해야 했다. 해석에 해석을 더해 그래픽과 사진을 결합하는 작업이 흥미로웠다.”라고 말했다. 작업자에게도 관람객에게도 협업의 힘과 가능성을 제시한 포스터다.

전채리 디자이너, 홍기웅 사진가 디자이너 토크 현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긍정적 기운 가득한 축제 만들기

2부: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페스티벌 아이덴티티 디자이너 토크

2부에서는 디자인 스튜디오 MHTL의 맛깔손, 박럭키 디자이너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아이덴티티 작업 과정을 들려주었다.

야외공간의 대형 조형물,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로 제한됐던 상황이 해제된 후 처음 열리는 것이었으므로, 영화제 측은 아이덴티티 역시 밝고 경쾌하며 긍정적인 기운을 풍기도록 구현하고자 했다. ‘디자인을 매개로 대중과 교류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모으고 퍼트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는 스튜디오 MHTL(모어히트댄라이트)은 이 작업에 꼭 알맞은 창작자였다.

맛깔손, 박럭키 디자이너 토크 현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맛깔손, 박럭키 디자이너 토크 현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MHTL은 이번 아이덴티티 작업을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진행했다. 맛깔손 디자이너에 따르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아이덴티티 방향성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페스티벌 무드를 높이는 것. 즉 전주라는 지역을 더욱 축제의 장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든 아니든 이 축제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완성하려 했다.

디자이너 토크 현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디자이너 토크 현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디자이너 토크 현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두 번째는 더 유연할 것. 영화제는 2020년부터 전주Jeonju의 이니셜 ‘J’를 모티프로 삼아 디자인으로 변주하고 있다. MHTL은 J를 좀 더 유연하고 움직이는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는 세 번째 방향성인 무빙 퍼스트Moving First와도 연결된다. 아이덴티티는 포스터나 초대장, 현수막은 물론이고 상영 전 스크린 화면이나 SNS 등 모든 부분에 활용되므로, 다채롭게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RGB 컬러뿐 아니라 별색까지 사용하며 색을 다양화했을 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 J의 모양을 이루는 요소들이 크기를 달리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베리에이션했다. 특히 릴스와 같은 세로 영상을 소비하는 시대에 맞춰, 세로축이 긴 형태로도 변하도록 하는 등 온라인에 보이는 요소에도 공들였다고.

​맛깔손 디자이너는 “베리에이션이 매우 많았던 데다, 이제껏 쓰이지 않았던 별색을 사용하거나 음악가와 협업하는 등 쉽지 않은 도전을 이어간 작업이었다.”라며, “그런데 끊임없이 상상했던 것이 거리의 현수막이나 포스터로, 스태프의 목걸이나 관람객의 굿즈로 구현된 모습을 보니 너무 뿌듯해서 힘든 걸 다 잊었다.”라고 전했다. 또한 “영화제 공식 인스타그램에 ‘뭐야 전주가 힙해졌어!’라고 남긴 관람객의 피드백이 무척 재미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디자이너 토크 현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100 Films 100 Posters〉 전시장.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임효진

2023년 〈100 Films 100 Po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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