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ays of Design 2024 리뷰

3 Days of Design은 이제 명실상부 북유럽의 대표 디자인 페어로 성장했다. 코펜하겐 전역에서 진행한 전시와 행사 중 유독 눈길을 끌었던 프로젝트를 선별해 소개한다.

3 Days of Design 2024 리뷰

시작은 단출했다. 현 3 Days of Design(이하 3DD) 대표 시그네 뷔르달 테렌시아니(Signe Byrdal Terenziani)는 몬타나(Montana)의 마케팅 매니저 재직 시절, 몬타나를 포함해 에리크 예르겐센(Erik Jørgensen), 앵커 & 코(Anker & Co), 크바드랏(Kvadrat) 네 브랜드를 모아 연합 디자인 이벤트를 기획했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지금 3DD는 250여 개의 브랜드가 참여해 11개의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걸쳐 500여 개의 전시와 토크, 액티비티 등을 진행하는 명실상부 유럽의 대표 디자인 페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책임감 있는 디자인이 돋보인 노르드하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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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가 만든 거대한 문어 형태의 설치물. 재활용 패브릭으로 제작했다. ©Benjamin Lund

2013년 첫 행사가 열렸던 노르드하븐(Nordhavnen)에는 초창기부터 행사를 함께 해온 크바드랏과 구비가 여전히 터를 지키고 있다. 인근에는 올해 포스터를 디자인한 건축 회사 BIG 본사와 비트라 쇼룸도 자리하고 있다. 코펜하겐이 항구도시임을 지각할 수 있게 하는 이곳에선 오가는 선박과 상업용 컨테이너를 풍경 삼아 덴마크의 현대건축과 가구를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올해 크바드랏은 5명의 큐레이터를 지명하고 전 세계 12명의 디자이너를 초대해 책임감 있는 디자인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전시 〈ReThink〉를 열었다.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Patricia Urquiola)가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만든 재활용 패브릭으로 거대한 문어 형태의 설치물을 만들었으며, 영국 디자이너 맥스웰 애시퍼드(Maxwell Ashford)는 브랜드가 디자인 페어마다 기념 토트백을 제작하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기업의 그린 워싱을 이슈로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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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 애시퍼드의 설치 작품.

피에르 폴랑(Pierre Paulin)은 구비에서 단연 돋보이는 이름이었다. 1960년대에 출시한 F300을 재해석한 암체어를 올가을 출시할 예정인데, 완벽하게 재활용 가능한 중합체(polymer)로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장에는 피에르 폴랑의 또 다른 디자인이자 유니세프 기부 캠페인용 제품인 파샤(Pacha)가 곡선을 강조한 다른 구비 컬렉션과 대조를 이루며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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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의 전시장.노르드하븐에서 선보인 구비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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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폴랑의 암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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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샤. 피에르 폴랑이 구름을 상상하며 만든 라운지체어다. 구비는 유니세프를 위해 이 의자를 100점 한정 제작했다. 판매 수익금은 100% 부르키나파소, 미얀마, 수단 등의 어린이를 위해 사용한다.

디자인 역사에 대한 존중, 콩겐스뉘토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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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식스와 협업한 헤이의 컬렉션.

콩겐스뉘토르브(Kongens Nytorv) 지역은 시내 중심가답게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디자인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밀집해 있다. 가구뿐 아니라 패션, 카페, 다이닝, 갤러리 신 등 글로벌부터 로컬 브랜드까지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헤이(Hay)는 아식스와 협업해 론칭한 트레이너를 선보이는 한편 매장 한 층을 헤이 제품과 가구로 채운 다이닝 공간으로 꾸며 몰입도를 높였다.

앤트래디션(&Tradition)의 전시는 뮤지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채로운 콘텐츠로 채워졌다. 자국 외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앤트래디션 컬렉션에 포함된 로빈 데이(Robin Day)를 기리는 전시와 안데르센 & 볼(Anderssen & Voll)과의 협업 10주년 기념 전시, 이번 3DD에서 가장 위트 넘치는 장면을 연출한 루카 니체토(Luca Nichetto)의 전시 등이 줄을 이었다. 한국의 서정화 작가가 참여한 하이브리드 아트 디자인 전시 〈Studies of a Bench〉 역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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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H 암체어 등 영국 디자이너 로빈 데이의 가구를 선보인 앤트래디션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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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니체토의 위트 넘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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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화 작가가 〈Studies of a Bench〉전에서 선보인 실린더 시리즈.

이 지역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건 디자이너와 건축가, 또 그들이 디자인한 제품의 탄생을 기념한 행사가 곳곳에서 열렸다는 점. 카를 한센 & 쇤(Carl Hansen & Søn)은 한스 베그네르 탄생 110주년을 맞아 어린이용 CH24 위시본 체어를 출시하고 관련 전시를 열었으며, 하우스 오브 핀 율(House of Finn Juhl)은 치프테인 체어(Chieftain Chair) 출시 75주년을 맞아 토크 세션과 이벤트를 진행했다. 베르판(Verpan)은 베르너 판톤의 딸 카린 판톤(Carin Panton)과 토크 행사를 기획했으며, 25주년을 맞이한 노만 코펜하겐 또한 브랜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의하는 디자인 철학과 소재를 주제로 전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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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프테인 의자를 전시한 하우스 오브 핀 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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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만 코펜하겐의 전시.

단단한 창조성의 집결지, 마르모르키르켄 & 홀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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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라의 조명. 덴마크 디자이너 모겐스 라센(Mogens Lassen)의 증손녀인 나디아 라센(Nadia Lassen)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브랜드다.

마르모르키르켄(Marmorkirken) 지역에서는 소규모 로컬 디자인 브랜드와 스튜디오를 만나볼 수 있다. 누라(Nuura)는 북유럽의 자연과 빛에 대한 경외감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조명을 선보였다. 수공예가 가미된 타일과 텍스타일, 페인트를 제공하는 브랜드 파일 언더 팝(File Under Pop), 스웨덴의 럭셔리 베딩 브랜드 덕스(Dux) 등의 브랜드도 단체전을 열며 컨벤션 전시의 효율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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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리빙의 리플 글래스Ripple Glass.

300년 이상 덴마크 왕립 해군 부지로 쓰다가 비교적 최근에 개발한 홀멘(Holmen) 지역에는 펌 리빙(Ferm Living), 루이스 폴센(Louis Poulsen)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브랜드들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십분 살려 덴마크식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쇼룸을 운영하는데 하나같이 심플하고 여유가 넘치며, 기능적인 동시에 우아하다. 프리츠 한센은 실내를 하이메 아욘과 세실리 만스의 신제품으로 꾸미고, 외부에는 아웃도어 가구를 전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올해 처음 3DD에 참가한 데니시 아트 워크숍(Danish Art Workshops)도 감도 높은 아트 오브제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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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시 아트 워크숍.

3 Days of Design의 허브, 레프샬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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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텐트 안에서 이케아와 진행한 ‘Common Ground 심포지엄’.

올해 3DD가 허브로 삼은 레프샬뢰엔(Refshaleøen)은 한때 공장이 즐비하던 산업 지대로, 아직까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곳에선 지금 가장 뜨는 코펜하겐 크리에이티비티를, 가장 날것의 형태로 즐길 수 있었다. 시그네 뷔르달 테렌시아니는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작은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고, 참관객들이 여유가 느껴지는 장소에서 토론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랐다”라고 말했다. 신진 디자이너의 경우 완제품보다 콘셉트 디자인을 들고 나오는 일이 많은데, 번화가에서는 이들이 피드백을 받고 더 나은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가 좀처럼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 아직 정비가 덜 된 이곳이 신진 디자이너의 성장을 도모하는 데에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외에도 3DD는 이곳에서 이케아와 텐트 안 침대에 누워 즐기는 토크 행사를 열었다. 또한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를 엿볼 수 있는 레스토랑 노마(Noma)는 노마 프로젝트를 선보였으며 단체전 〈트랜스센덴스(Transcendence)〉에서는 소재의 다양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체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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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열린 레프샬뢰엔에서는 신진 디자이너의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3DD는 지난해 소프트 론칭으로 이 지역의 잠재력을 보고 올해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번화가에서 자전거로 불과 10분 거리라는 것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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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센덴스〉전. ©Marielle Lindhansen

“밀라노는 너무 광범위하고, 스톡홀름은 너무 춥다.”관계자들은 3DD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입을 모았다. 물론 헤리티지와 규모를 생각할 때 앞선 두 행사의 영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디자인 페어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긴밀한 네트워킹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하면서 3DD가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3DD 주최 측 또한 인기와 수요만 좇아 규모의 확장에 연연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해가 갈수록 참가 희망 브랜드에 거절 메시지를 보내는 횟수가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결단조차 상업성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미래에 가치를 두는 덴마크식 가치 판단이 깃들어 있다.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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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네 뷔르달 테렌시아니 3 Days of Design 설립자 겸 매니징 디렉터
3DD를 시작하고 어느덧 11년이 흘렀다.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엄청난 성장을 이뤘고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전에는 각자 경쟁하기 바빴던 브랜드와 참관 업체들이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든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단순히 제조자, 판매자, 소비자의 관계에 그치지 않고 과잉 생산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환경을 위한 개선점은 무엇인지 같은 더 확장된 세계를 바라보고 질문하며 답을 구하는 디자인 페어다. 초기에는 제품의 미적 형태와 기능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스토리텔링에 더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주제가 ‘Dare to Dream’이다.

매년 시의성에 맞는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정말 많이 공부한다. 좋은 메시지를 만들어야 이 플랫폼을 활용해 토론하고 무언가 좋은 것을 서로 나눌 수 있지 않겠나. 플랫폼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공유하고 함께할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지난해 주제를 ‘Where Would We Be without You?(여러분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었을까요?)’로 정한 이유다. 올해는 전쟁, 기후변화 등의 이슈가 대두되었고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와중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면 무언가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변화 없이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방식으로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을 멈추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은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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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건축 사진가 라스무스 요르초이(Rasmus Hjortshøj), 2022년 루카 니체토에 이어 올해 포스터는 건축 회사 BIG가 맡았다.

크리에이티브 정신만 있다면 전공이나 국적에 연연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야르케 잉엘스(Bjarke Ingels)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 능력이 있는 크리에이터라고 판단했다. 충분히 포스터 디자인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이케아와의 협업은 어떻게 성사됐나?

글로벌 보이스가 필요했다. 이케아는 전 세계인이 아는 브랜드이지 않나. 레프샬뢰엔에서 깊이 있고 독특한 토크 세션을 하나쯤 열고 싶었는데 경제적 지원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케아가 우리의 취지를 이해하고 도움을 줘 토크 프로그램 ‘Common Ground 심포지엄’을 진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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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ays of Design 로고.
지속 가능성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덴마크 디자인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다.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면서 많은 이들이 지속 가능성의 중요성을 피부로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소비자들은 이제 기업의 재무 보고서만큼 환경 평가서를 보기를 원한다. 환경에 좋지 않은 접착제를 사용하는 제조업체에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아주 긍정적인 변화다. 제품 구매에 대한 태도만큼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도 재고해봐야 한다. 단둘이 사는 집에 정말 이렇게 큰 TV 스크린과 소파가 필요한가? 차라리 각자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는 것이 낫지 않나? 지속 가능한 측면에서 말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3호(2024.07)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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