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고민 담은 그래픽 디자인 ①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어떤 고민을 들어드릴까요? 스튜디오 고민.
위트를 잃지 않는 자유분방함
스튜디오 고민은 10년차 스튜디오다. 인디 밴드의 앨범이나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부터 아이돌의 앨범과 포토북, 김밥레코즈의 김밥진, <1.5℃> 매거진, 표기식 사진집까지, 음악이나 영화, 사진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그래픽 디자인과 잡지나 단행본류의 출판물 그래픽 디자인을 주로 해왔다. 평온하면서도 자유분방한 특유의 디자인은 시선을 장악해 강타하는 화려한 디자인과 달리 눈과 마음에 안식을 준다.
스튜디오 고민의 사무실은 팝업과 트렌드의 중심인 성수동에 있다. 서울숲 역 인근의 성수동 지식산업센터 16층 모퉁이다. 2면이 통유리로 된 이 아담한 사무실에는 유리창의 면적보다 햇살이 더 가득 들어찬다. 멀리 옛 이마트 성수점과 경동초등학교, 성수역 인근의 카페거리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갤러리처럼 단정하고 정리 정돈이 잘 된 사무공간에 푸른 식물이 단조로움을 잊게 해준다. 편안하고 따뜻하면서도 세심한 공간이다. 스튜디오 고민의 작업도 그렇다. 따뜻하면서도 섬세한 디테일, 그러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드러난다.
Interview with
안서영, 이영하 디자이너
식물을 사무실에서 직접 기르시네요. 스튜디오 고민과 잘 어울려요.
이영하 디자이너(이하 이). 오래된 취미는 아니에요. 최근 우리가 식물에 관심이 커지면서 반려 식물을 기르는 초보 ‘식집사’가 됐죠. 그런데 여름이라 사무실 온도가 너무 올라가서 최근에 어려움을 좀 겪었죠.
그러고 보니 인스타그램 계정(@studiogomin)에서 식물 관련한 디자인 작업을 최근 봤어요.
안서영 디자이너(이하 안). <취미는 식물>이란 책이죠. 서울숲 인근에 메쉬커피라는 이 동네 터줏대감 같은 카페가 있어요. 메쉬커피 대표인 김기훈 로스터가 ‘김반장스튜디오’라는 출판사를 열었어요. 그러면서 책 디자인 작업을 몇 번 맡은 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죠. 김 대표의 아내이자 ‘위드플랜츠’ 대표인 권지연 대표의 책이에요. 그녀는 조경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한장짜리 무크지를 만들었대요. 직접 쓰고 만든 그 콘텐츠로 단행본을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마침 우리도 식물에 관심이 많을 때였거든요. 식물의 특성과 키우는 방법, 식물 관련 에세이를 담은 책으로 발전시켰죠. 책이 나오고 나서 더 유용해요. 우리가 키우는 식물 정보도 있어서 관리 소홀로 잎이 시들시들할 때 책을 보면 원인과 처방이 다 나오거든요.
두 분이 스튜디오 고민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 계원예술대학교 그래픽 디자인과 캠퍼스 커플이었어요. 지금은 5년 차 부부죠. 대학 시절부터 과제나 작업을 함께 하면서 언젠가 같이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졸업 후 프리랜서로 꾸준히 활동했어요. 안서영 디자이너는 스튜디오 문화를 선호해서 직장을 졸업 후 직장을 택했죠. 제가 혼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힘에 부친 상황이 와서 합류하면서 순풍을 탔어요. 의뢰가 연이어 들어왔거든요. 정식으로 사업자를 내고 시작한 건 1~2년 뒤인 2013년부터고요. 스튜디오 고민을 시작한 지 10년을 다 채워 가네요.
스튜디오 고민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안. 고민고민하다가 둘 다 고민이 많아서 고민이 됐어요. 생각이 많고 내향적인 부분이 공통점이거든요. 고민을 담아서 작업하자는 의미도 있어요. 본질을 드러내는 개념적인 작업은 우리 팀의 차별점이자 특성이기도 해요.
초창기 작업의 형태가 궁금하네요.
이. 사무실 벽면에 붙은 포스터가 김밥레코즈와 함께 했던 초창기 작업들인데요. 베니 싱스Benny Sings, 요 라 탱고Yo La Tengo, 휘트니Whitney, 앤디 쇼프Andy Shauf 같은 인디 밴드나 뮤지션 내한공연 포스터 작업을 주로 했어요. 인디 레이블인 일렉트릭 뮤즈의 앨범이나 김밥레코즈와도 협업 작업도 있어요. 뮤지션인 강아솔의 2집 앨범 작업이 기억에 남는데 최근에 10주년을 기념해서 다시 앨범이 나왔어요. 우리가 콘셉트부터 사진 촬영까지 직접 했어요. 연필과 종이를 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가사와 곡을 연필로 쓰는 작업을 좋아하다는 데서 착안했죠.
안. 강아솔의 아솔이 아기 소나무라는 뜻이래요. 거기에 본인을 깎아서 곡을 만든다는 의도도 중첩했죠. 우리가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작업이었어요. 바이닐이 재조명 받던 시기인데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나중에 몇십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초창기부터 음악과 인연이 깊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이. 일렉트릭 뮤즈는 우리가 그 레이블의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서 인연이 시작됐어요. 브랜드와 어떻게 일이 시작되는지 알 수 없었던 시기였죠. 공연을 보러 갔다가 일렉트릭 뮤즈와 일하고 싶어서 용기 내서 메일을 보냈죠. 우리는 이런 음악 이런 디자인을 하고 싶다. 혹시 의향이 있냐? 일렉트릭 뮤즈 김민규 대표님도 디자이너가 굉장히 필요하던 참이었다며 반갑게 연락을 줬어요. 그 인연이 이어졌고, 2017년에는 우리가 리뉴얼한 일렉트릭 뮤즈 아이덴티티가 코리안디자인어워드 아이덴티티 디자인 부문을 수상했죠. 굉장히 뿌듯했던 기억이 나네요.
안. 당시에는 우리의 모토나 접근법도 인디 밴드 같은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작업을 눈여겨본 SM엔터테인먼트나 하이브HYBE 같은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도 의뢰가 들어왔죠. 콘서트 위주의 작업을 했어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나 규현, 태연의 포토북이나 앨범 디자인도 했네요.
명징한 문구와 강력한 일러스트로 표현한 1.5도씨의 위기감
매거진 디자인 작업도 눈에 띄어요. 기후 위기 대응 매거진인 <1.5℃>나 직방의 <디렉토리>를 했네요. <1.5℃>는 iF 디자인어워드에서 수상도 했어요.
이. <1.5℃>는 소울에너지와 볼드피리어드가 협업한 잡지예요. 우리가 창간호부터 4권의 아트 디렉팅을 맡았어요. iF 디자인어워드 본상은 <1.5℃>가 가진 아이덴티티로 수상했어요.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그중 일부인 편집 디자인을 맡았죠. <1.5℃>는 클라이언트의 입장이 명확했어요. 기존 환경 관련 미디어나 콘텐츠는 재활용에 초점을 맞추거나 녹색을 메인 컬러로 사용해 친근하고 편안한 형태로 접근했지만, 소울에너지와 볼드피리어드는 1.5도씨가 올라가면 지구가 종말한다는 내용을 강력하게 보여주길 원했어요. 세기말이나 아포칼립스, 프로파간다 같은 분위기를 요구했죠. 우리는 명징한 문구와 강력한 일러스트의 향연으로 위기감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매 페이지 흥미를 돋우는 비주얼을 만들자는 목표로 일본 애니메이션인 <아키라> 같은 세계관을 설정했죠.
안. 그에 맞춰 강렬한 색감이나 일러스트, 글자체, 폰트 디자인을 구성하고, 발문 시스템을 굉장히 크게 크게 넣고, 그리드나 레이아웃 배치도 굉장히 아슬아슬한 느낌을 추구했어요. 매호 주제를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제안하고 섭외해서 <1.5℃>의 세계관을 더 강화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들의 메시지와 인터뷰도 담았고요.
<1.5℃>가 환경에 대한 디자인이라면 환경을 위한 디자인 작업도 고민하나요.
안. 우리가 웹 디자인이 아니라 인쇄물 기반의 디자인 팀이잖아요. 종이 기반이다 보니 환경과 밀접한 작업을 진행하는 경향이 있어요. 한솔제지의 친환경 용지 키트나 친환경 용지를 활용한 캘린더 같은 작업이죠. 재생 펄프를 사용한 종이의 질이 상당히 좋아지면서 친환경 용지는 인쇄 질이 떨어진다는 것도 이제는 편견이에요. 아직은 수입에 의존하지만 페이퍼 스프링 같은 부자재도 나와요. 기업 수요가 늘어날 거라고 예상해요.
맞아요. 요즘처럼 기후가 매일 머릿속에 각인이 되는 시기라면 더욱 그렇겠죠.
안. 그나마 종이는 친환경적인 소재라 기존 소재를 종이로 대체하는 디자인 수요가 늘었어요. 아이돌 앨범의 경우 예전에는 특이하거나 눈에 띄기 위해 플라스틱을 사용하거나 홀로그램이 들어가는 디자인을 선호했어요. 요즘 아이돌 앨범이나 관련 디자인을 의뢰할 때 소재를 종이로 제한하는 형식으로 친환경 요소를 엔터테인먼트사 내부적으로 고민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수량이 몇십에서 100만까지 되니까 꽤 긍정적 신호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