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오지 못한 300개의 건축 프로젝트
〈Atlas of Never Built Architecture〉
예술 전문 출판사 파이돈의 책 〈Atlas of Never Build Architecture〉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노먼 포스터 등 유명 건축가들의 실현되지 못한 건축 프로젝트 수백 가지를 지역별로 소개한다.
우리가 잘 아는 도시들의 풍경은 어쩌면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 책에 소개된 프로젝트들이 성공했다면 말이다. 예술 전문 출판사 파이돈의 책 〈Atlas of Never Build Architecture〉는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끝내 실현되지 못한 건축 프로젝트들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노먼 포스터, 르 코르뷔지에, 자하 하디드 등 유명한 건축가들의 프로젝트들을 포함해,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계획만 된 채 실제로 지어지지 못한 건축물들의 사례 수백 가지를 지역별로 소개한다.
책에 실린 프로젝트들이 무산된 이유는 다양하다.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낮은 설계인 경우도 있고, 건축주의 경제적 상황이나 계획이 바뀐 경우도 있다. 때로는 자연 재해, 인명 사고, 세계 경제 위기, 쿠데타 등 외부 요인에 의해 건설이 중단됐다. 건축 전문 작가 샘 루벨과 그렉 골딘은 방대한 취재와 연구 끝에 건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한 미완성 건축 프로젝트 350개를 마치 ‘보물 찾기’ 하듯 직접 선정하고 정리해 이 책에 담았다. “우리가 실제로 사는 현실 세계와 우리가 바라는 세계의 격차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라는 것이 저자들이 말하는 책의 매력이다. 책은 또 자신의 아이디어를 선보일 기회가 사라진 건축가들의 재능을 소개하고자 한다.
포트 홀리데이(Port Holiday)
건축가 스미스 앤 윌리엄스 (1963년)
스미스 앤 윌리엄스(Smith and Williams)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를 기반으로 건축가 휘트니 스미스와 웨인 리처드 윌리엄스가 함께 운영한 건축 회사다. 1963년 당시 전직 배우로 부동산 개발에 투자하던 제이 칼튼 어데어는 네바다 주 미드 호수 인근에 있는 자신의 사유지를 레저 복합 단지로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스미스 앤 윌리엄스에 설계를 의뢰했다. 스미스 앤 윌리엄스는 어데어의 구상에 따라 사막 위 약 20여 킬로미터에 걸쳐 화려한 시설들을 설계했다. 인공 호수와 함께 리조트 호텔, 18홀 짜리 골프 코스, 수상가옥, 동물원, 그리고 이곳의 시각적 상징이 될 만한 거대한 돔형 구조물과 그 아래를 지나가는 공중 트램까지 포함된 디자인이었다. 주정부에서 승인하고 기업 투자자들도 참여했던 대규모 개발 계획은 1972년 어데어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파산을 선언하면서 무산되었다. 독특한 돔형 구조물은 없지만, 1991년 어데어의 구상과 비슷하게 인공 호수인 라스베이거스 호수와 함께 이를 둘러싼 럭셔리 리조트 단지가 만들어졌다.
스톤 타워스(Stone Towers)
건축가 자하 하디드 (2009년)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2009년 뉴 카이로 외곽의 고급 주택가인 카타메야에 대규모 주상 복합 단지를 만드는 계획에 참여했다. 약 4 에이커의 거대한 부지에 5성급 호텔, 아파트, 오피스 건물들 18개동이 들어서는 계획이었다. 하디드는 생전에 이 ‘스톤 타워스’에 대해 “고정된 건물 덩어리들의 획일적 반복”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책의 저자들은 ‘직선이 있을 법한 곳에 소용돌이치는 강렬한 곡선이 있다’며 이 실루엣이 단조롭기는커녕 독특하며 전복적이라고 평가한다. 곡선의 형태는 고대 이집트 조각의 형상, 그리고 물체가 물에 반사되었을 때 물결의 주름에 따라 휘어져 보이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몇 년 후 개발업체가 이곳의 테마를 지중해 느낌으로 변경하면서 하디드의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부르키나파소 국회의사당(Burkina Faso National Assembly)
건축가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 (2015년)
2022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Diébédo Francis Kéré)가 모국인 부르키나 파소에 직접 제안한 수도 와가두구의 국회 건물 설계도다. 그는 27년간 부르키나 파소를 독재 통치한 블레즈 콩파오레 전 대통령이 시민들의 저항으로 5연임에 실패하고 사퇴한 직후 이 설계를 제안했다. 케레는 부르키나파소 정치사의 전환점이 될 새 국회 건물 디자인에 시민이 접근 가능한 공간을 포함시킴으로써 독재에 저항한 시민 정신을 담고자 했다.
이 설계의 핵심은 계단식 피라미드 구조의 지붕이다. 이 지붕 계단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개방 공간이다. 시민들은 넓게 그늘진 휴식 공간에서 모임을 가질 수도 있고, 좀 더 올라가 6층 높이의 전망대에서 도시의 풍경을 즐길 수도 있다. 곳곳에 도시농업을 위한 농작물이나 관상용 식물을 심은 정원 등 녹색 공간도 있다. 지상층에는 갤러리와 상점가 등 시민들이 평소에 이용할 문화시설과 편의시설을 배치했다. 설계를 공개한 당시 케레는 “모든 것을 갖춘 공공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라며 “단순한 국회 건물 이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부르키나 파소에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지면서 아직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이 밖에도 책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단된 건축 프로젝트들이 실려있다. 두 개의 타워가 60미터 높이에 바깥쪽으로 각도를 튼 채 다리로 연결되는 형태의 고층 건물 프로젝트 ‘코펜하겐 게이트(Copenhagen Gate)’는 2007년 스티븐 홀(Steven Holl)의 작품으로, 이듬해인 2008년 금융 위기로 인해 보류되었다가 그대로 중단된 사례다.
1956년, 89세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시카고에 528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을 세우는, 당시로서는 너무 야심찬 설계안을 공개했다. ‘마일 하이 타워(Mile-High Tower)’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강철 강화 콘크리트 코어를 지하 깊이 묻어두는 기술을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 했다. 프랑스 건축가 안드레 브루예레(André Bruyère)는 1969년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설계 공모전에 거대한 달걀 모양의 구조물을 제출했다. 유리 등의 외장재를 덮은 약 104미터 높이의 달걀과 내부 모노레일이 공존하는 구조였다. 당시 실용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선정되지 않았다.
384페이지 분량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의 기록을 담은 책 〈Atlas of Never Built Architecture〉는 지난 5월 출간되었으며 국내외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