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Architecture] ② 프랑스 아파트와 한국 아파트-1
현상에서 맥락으로. 예술계와 건축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현상 뒤에 숨은 이야기를 고민하고 전달합니다. 매 칼럼마다 중심 소재로 세계 곳곳 현대 미술관이 등장합니다. 이곳이야말로 아트와 건축이 만나고, 이어지고, 또 하나가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술 애호가를 위한 유쾌한 교양 사전을 지향합니다.
압구정동 한가운데에 나 홀로 아파트가 있다
현재 이름은 대림아크로빌, 옛날 이름은 현대아파트 65동. 현대건설 사원 아파트용으로 지어진 아파트 한 동을 대림산업이 통째로 사서 리모델링했다. 18개월간 공사를 진행해 2004년 2월에 마무리했다. 한국 아파트 리모델링 역사에 기록될 만한 게,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한 세대통합 리모델링이었다. 기존에 10.5평형이었던 8세대를 1세대로 줄여 80평형대가 56세대 있는 아파트가 되었다. 평당 1000만 원에서 4000만 원으로, 가치(가격)도 급상승했다.
리모델링은 낡은 건축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다르다. 토대를 제외한 모든 것을 뜯는 대폭적인 개조부터 작게는 벽지와 바닥재를 바꾸는 내부 인테리어까지 리모델링이라 칭한다. 리모델링과 비슷한 말로 레노베이션이 있다.(둘의 뜻은 비슷한데, 호텔이나 빌딩 등 집보다 큰 규모의 건축물을 고쳐 쓸 때 레노베이션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리모델링은 재건축에 비해 돈도 덜 들고 친환경적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재건축이 통과되면 ‘경축’ 현수막을 붙이고 환호할까.
한국에서 ‘아파트 한 채’의 의미는 남다르다
아파트는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는 중심에 위치한다. 당연히 한 채를 1.3배 늘릴 수 있는 리모델링보다 2배로 늘리는 재건축을 원한다. 반면, 국가 입장에서는 리모델링이 유리하다. 재건축은 ‘지속 가능한 미래’와 상반되는 행위다. 50층 이상의 초고층 아파트는 도시 경관을 망가뜨리고, 재건축 공사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문제도 심각하다. 2019년 환경부에서 발표한 ‘폐기물 종류별 하루 발생량’을 보면 전체 폐기물 중 건설 폐기물이 44.5%에 달한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처럼 일상에서 사용하는 생활 폐기물이 11.7%이니, 건설 쪽이 압도적이다. 또 건설 폐기물은 소각이 쉽지 않아 땅에 묻는다. 그것들은 도시인이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쓰레기 매립지로 향한다. 고로 쓰레기 매립지의 수명은 건설 폐기물 양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 비해 유럽은 아파트 레노베이션이 활발하다. 국가가 주도해서 아파트를 지었기 때문에 고치는 것도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1960년대부터 이른바 ‘민관 합동’ 방식으로 통해 아파트 건설과 분양권 권리를 대부분 민간에게 넘겼다. 일반 건설 회사에서 짓고 팔았으니 고쳐야 하는 지금 와서 이래라, 저래라 끼어들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공공 임대주택은 HLM이라 부른다.
HLM은 ‘Habitation à Loyer Modéré’의 약자로, 정부에서 주거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에게 저가로 임대해 주는 아파트다. 정부 주도의 공공 임대주택 건설이 본격화된 시기는 1950년대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고 주거 안정을 위해 주택이 필요했다. ‘전쟁 이후 도시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현대 시설을 도입한 집합 주거 형태’라는 점에서 한국 아파트사와 비슷하다. 1953년 도시부 장관으로 취임한 피에르 쿠랑Pierre Courant이 대규모 주택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1976년까지 프랑스 전역에 약 2백만 호의 공공 임대주택이 공급되었다. 중앙난방 시설과 화장실, 욕실, 엘리베이터를 갖춘 아파트는 기존 주택과 달리 현대식 편의성을 갖추어 모던한 도시 생활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복원 건축에 헌신해 온 프랑스 부부 건축가
‘라카통 & 바살 아키텍츠Lacaton & Vassal Architectes’는 2021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 스튜디오다. 안 라카통Anne Lacaton과 장-필립 바살Jean- Philippe Vassal이 1987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했다. 이들은 눈에 띄는 랜드마크 건축물을 만드는 대신 아파트나 공공시설 등 삶의 공간을 수선하는 일을 주로 진행했다. 프리츠커상 심사단은 “라카통 & 바살 아키텍츠는 기술과 혁신을 토대로 한 복원 건축에 헌신해 왔다. 생태학적으로 반응하는 동시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업”이라 밝혔다. 둘은 ‘기존 건축물을 절대로 철거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일해왔다. “철거는 쉽고 단기적인 결정입니다. 에너지 낭비, 자재 낭비, 역사 낭비까지 많은 것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죠. 철거는 폭력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위치한 ‘Transformation of G, H, I Buildings’ 아파트
프랑스 건축사무소 라카통 & 바살 아키텍츠Lacaton & Vassal Architectes’가 2017년에 리모델링한 프로젝트다. 10층에서 15층까지 높이가 다른 아파트가 3동 있는데, 각각을 G, H, I로 부른다. 1960년대에 지어져 530세대가 거주했던 아파트 단지는 보르도주에서 골칫덩어리로 여기던 존재였다. 건축가는 이곳을 은퇴자들이 거주하기 좋은 쾌적한 아파트로 변모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눈이 시원하리만큼 탁 트인 전경. 저 멀리 보르도 포도밭이 보이게끔 아파트 전면을 덮은 콘크리트 벽체를 제거하고 테라스 안쪽으로 내부를 확장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늘어난 면적을 지지할 수 있는 구조물을 통해 내부 넓이를 드라마틱 하게 변화시킨 것이다. 거실과 테라스 공간이 이어지면서 내부는 매우 개방적인 느낌을 주는데, 여기에 커다란 통창까지 더해져 미학적인 면과 커뮤니티를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공동 주택이 대규모로 건설되던 1960년대에 지어진 타워 건축물도 있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Trans- formation of 100 Units’ 프로젝트로, 60년이 훌쩍 지난 건축물이라 기반 시설과 배관, 환기, 전기 시설 등에서 업그레이드가 절실했다. 건축가는 17층, 96세대에 이르는 유닛 하나하나의 건물 내부에 정원을 두고 자연광이 쏟아지는 건축물로 업그레이드했다. 아파트 전면에 발코니 증설을 포함한 전면 개보수를 주축으로 실내 사용 면적을 4.5평 이상 늘렸고 주요 구조체를 보수, 보강하여 내구성을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