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중 작가가 해외 셀럽이 아닌 쓰레기를 찍은 이유는?
박물관 유물이 된 쓰레기, <22세기 유물전>
치실, 컵라면 용기, 휴대용 버너, 선풍기, 건전지 등 일상 속에서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김명중 작가는 새로운 시선으로 소개한다. 바로 이 쓰레기가 후손들에게는 유물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 셀럽이 아닌 쓰레기를 뷰파인더에 담은 그의 결과물을 지금 만나보자.
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작가로 알려진 김명중(MJ Kim) 작가의 전시 <22세기 유물전>이 지난 12일부터 오는 8월 11일까지 북서울꿈의숲아트센터 내 드림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그간 해외 유명 인사들의 인물 사진을 찍어 온 작가는 2020년대 들어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사진에도 관심을 보여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버려진 쓰레기를 촬영한 사진을 소개한다. 2019년부터 촬영해 온 작가의 쓰레기 사진은 현재 우리가 내다 버린 쓰레기가 미래 세대에게는 땅에서 출토된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누구나 알고 있는 ‘쓰레기를 남기지 말자’는 말 대신 쓰레기를 유물로 여기게 될 후손들의 박물관을 재현해서 보여주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작가는 이처럼 독특한 아이디어에 이끌려 전시장을 방문한 관객이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그와 전화 인터뷰로 전시와 작품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Interview 1) 아울러 전시 큐레이팅을 맡은 컨트리뷰터스(김은학, 이정은)의 전시 연출에 대한 이야기(Interview 2)도 함께 만나보자.
Interview 1
김명중(MJ Kim) 작가
쓰레기를 찍게 된 이유는?
<22세기 유물전>은 ‘지금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22세기에는 땅에서 출토될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요. 아이디어에서 전시로 확장된 과정과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2019년부터 주변에서 발견하는 쓰레기를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어요. 언젠가 이 사진들을 전시로 선보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요. 쓰레기를 찍은 사진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관심을 받기 시작했죠. 광고대행사 오버맨을 운영하는 친구가 한 날은 스튜디오에 걸어둔 쓰레기 사진을 보더니 이를 주제로 ’22세기 유물’이라는 주제로 광고 기획을 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더군요. 마침 오버맨에서 독일 친환경 세재 브랜드 프로쉬(Frosch)의 광고를 맡아서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친환경을 지향하는 브랜드의 철학과 방향성과 쓰레기 사진을 통해서 경각심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어울려서 함께 전시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쓰레기를 사진으로 촬영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그간 인물 사진을 찍어왔진 정물을 촬영해 보진 않았는데요. 사진작가 구본창 선생님의 <비누> 시리즈를 보고 나도 정물을 찍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더라고요. 이후 시도를 해봤는데 기대한 것보다 사진이 재밌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작가마다 잘하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정물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었죠. 그러다 한 날 뒷산을 걷다가 기슭에 콜라병 하나가 땅에 반쯤 박힌 채 버려져 있는 걸 발견했어요. 사실 쓰레기가 문제라는 건 미디어를 통해 이미 익숙하게 접해왔잖아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시절에는 땅을 파면 청자나 백자 등 유물이 나왔는데 후손들은 땅을 파면 이런 쓰레기만 나오겠구나’. 마음이 아팠어요. 동시에 내가 버린 쓰레기를 유물처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죠.
인물이 아닌 사물을 찍다
폴라로이드로 쓰레기를 촬영하셨잖아요.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폴라로이드를 사용하게 된 이유도 궁금하더군요.
처음에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었어요. 사진이 너무 쨍해서 유물의 느낌이 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2020년도에 을지로 공업소 거리의 장인과 가게를 담은 <을지로 프로젝트> 때 사용한 8×10 대형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용했어요. 덕분에 오래된 이미지의 느낌을 낼 수 있게 됐습니다.
폴 매카트니, 조니 뎁, 오바마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BTS 등 그간 세계적인 인물의 초상을 촬영해오셨잖아요. 이와 달리 사물을 찍을 때는 접근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인물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가 지닌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죠. 요즘 힘든 일은 없는지, 힐링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등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화를 나누는데요. 사물과는 대화할 수 없잖아요. 대신 이들이 스스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봤어요. 빨래집게, 뿅 망치, 목 마사지 기계 등 쓰레기가 된 사물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걸 보고서 사진을 찍기가 편안해졌죠.
스토리가 담긴 쓰레기를 고르다
쓰레기가 된 다양한 사물이 있을 텐데요. 이번 전시에서 소개한 사물을 선정한 기준이 있다면요?
처음에는 제가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중심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여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많이 마시잖아요. 음료를 담는 플라스틱 컵과 빨대를 모아두고 이를 찍기도 했고, 팬데믹 기간에는 배달 음식을 많이 먹곤 했으니 일회용 수저와 포크, 음식 용기 등을 찍었죠. 그뿐만 아니라 쓰레기를 찾아다니기도 했는데요. 쓰레기 매립장부터 분리수거장, 고물상, 벼룩시장 등을 다니면서 비주얼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임팩트가 있는 사물을 찾아다니며 선별했습니다.
<22세기 유물전>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요?
작품이라고 하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전부 쓰레기잖아요. 무엇보다 사진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심각하고 무겁게 바라보는 건 아니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재밌게 관람하되 은연중에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Interview 2
컨트리뷰터스(김은학, 이정은)
<22세기 유물전>을 큐레이팅하다
컨트리뷰터스에서 <22세기 유물전> 큐레이팅을 맡았어요. 컨트리뷰터스는 어떤 일을 하는지, 또 이번 전시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2세기 유물전>은 김명중 작가님의 사진에서 시작됐어요. 우연히 산책을 하다 버려진 페트병을 보고 ‘아! 우리는 땅을 파면 선조들의 유물이 나오는 데 우리의 후손은 땅을 파면 플라스틱 쓰레기만 나오겠다’고 느끼신 거죠. 그래서 현재의 쓰레기를 미래의 유물처럼 촬영한 이번 사진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김명중 작가님과 친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 프로쉬, 프로쉬의 창의적인 광고를 제작하고 있는 오버맨이 22세기에 있을 법한 유물전을 함께 상상했고 전시를 함께 할 팀을 찾으셨죠.
컨트리뷰터스는 ‘22세기의 유물 전시’라는 상상력을 들었을 때 주제가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저희 역시 기후 위기나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었거든요. 매년 친환경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선보여 오기도 했고요. 그런 배경 덕분에 <22세기 유물전>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저희는 이번 전시가 현실로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관람객이 눈으로 봤을 때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전시 공간 연출, 전시장 운영 및 관리, 관람객 대상 연계 프로그램들도 제안했고요.
전시 공간 선정과 공간 구획은?
전시 공간도 흥미로웠어요.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 내 드림갤러리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는 꿈의숲 서문 입구에 자리한 종합 예술 공간인데요. 전시를 진행하는 드림갤러리 외에도 콘서트홀과 퍼포먼스홀에서 공연이 있어 항상 많은 분들이 즐겨 찾는 북서울 지역이 자랑하는 문화공간이에요. 일대가 아름다운 숲과 조경으로 둘러 쌓여 있어 지역 시민분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고, 이른 아침 산책하는 분들부터 주말에 가족이 손을 잡고 함께 찾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죠. 무엇보다도 공원 안에 위치해 자연 친화적이고, 시민 친화적이라는 점이 주요했어요. 드림갤러리는 전시 공간이 넓어 작가님의 작품을 많이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김명중 작가님부터 도슨튼 내레이션을 맡은 김혜자 배우님, 독일 세제 브랜드 프로쉬, 광고 회사 오버맨 등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전시를 진행하면서 고민한 지점도 궁금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함께 하는 모두는 곧 한 팀이라고 생각해요. 컨트리뷰터스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죠. 모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전시의 메시지인 ‘환경’과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잘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지만, 모든 과정에서 목표하는 우선순위가 있었기 때문에 조화로운 협업이 이뤄질 수 있었어요. 또한 각자 맡은 영역이 분명하게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전문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진행하는 것도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22세기 유물전>의 전시 구성도 궁금합니다.
저희에게 주셨던 아이디어를 따라 22세기의 유물 발굴 현장에 들어선 한 명의 고고학자가 된다는 콘셉트로 구성했습니다. 우선 드림 갤러리 전면으로 유물 발굴 현장처럼 공간을 가린 비계가 들어서 있어 시작부터 몰입을 유도하죠.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쓰레기를 발굴해 전시된 후손들의 박물관 공간이 나타나고요. 김명중 작가님의 사진과 사진 속 오브제를 볼 수 있어요. 레트로함과 노스탤지어가 느껴지는 색감을 지닌 사진은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찍은 ‘쓰레기’들이죠.
공간의 중앙에 위치한 설치물은 미래의 유물 발굴 현장인데요. 지구의 암석으로 변해버린 인류세의 플라스틱과 쓰레기들 사이사이 발견돼요. 그 뒤로 다시 작가님의 사진 작품 24점이 걸려 있고, 관람객은 그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각 작품들은 고유의 QR 코드를 지녔는데요.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김혜자 배우님의 목소리로 각 유물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어요.
한편 전시장에는 프로쉬 라운지도 마련되어 있던데 어떤 공간인지도 궁금했어요.
작품이 놓인 공간을 지나면 이번 전시의 캠페인 영상을 볼 수 있는 영상 공간이 있고요. 프로쉬 라운지는 이를 지나 마지막 공간에 조성되어 있어요. 프로쉬 라운지는 성분부터 제조 과정, 유통과 페기까지 전 과정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독일 친환경 브랜드 ‘프로쉬’를 소개하고 체험하는 공간인데요. 매일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세제를 만드는 프로쉬가 환경을 위해 어떤 연구를 했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해요. <22세기 유물전>도 브랜드가 환경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주최하게 된 대표적인 일이죠. 신규 플라스틱을 생산하지 않고,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프로쉬의 기술력과 실천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시청각 자료부터 플라스틱 재활용 워크숍까지 지구를 병들게 하는 쓰레기를 지구에 남기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은 이번 전시와 연계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프로쉬의 다양한 제품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점이에요.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 3
이번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포인트가 있다면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포인트는 김명중 작가님의 사진 작업이죠. 유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버린 쓰레기에요. 사진 속 사물들은 어쩌면 너무 평범하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쉽게 사용하고 버리고 있어요. 이 사물들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며 하나씩 가슴에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중앙 전시대에 연출한 유물 발굴 현장입니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이 저지른 환경의 극심한 변화를 지칭하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말해요. 우리가 중생대의 공룡 화석을 발견하는 것처럼 미래의 우리 후손들은 인류세의 플라스틱 공산품들을 발굴할 것을 상상하며 그 현장을 그대로 연출했어요. 세 번째는 김혜자 배우님의 목소리로 듣는 AI 도슨트에요. 따뜻한 목소리로 듣는 쓰레기에 대한 설명은 전시의 몰입을 돕고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줍니다.
한편 큐레이팅을 맡은 입장에서 이번 전시를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는 팁을 주자면요?
사진 작품 속 사물들을 중앙 전시대에 연출된 유물 발굴 현장에서 찾아보기를 권해요. 숨은 그림처럼 발굴 현장 사이사이에 사진 속 사물들이 숨어 있거든요. 이외에도 김명중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들을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도 2회 예정되어 있고, 매주 주말에는 플라스틱 플레이크로 만드는 워크숍도 진행해요. 또 방문한 모든 관람객은 스탬프 체험도 할 수 있죠. 프로쉬의 얼굴 ‘프로리’를 만날 수 있는 여러 이벤트도 준비했으니 기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환경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준비한 전시인 만큼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