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Architecture] ③ 1979년 베이징, 2023년 홍콩 – 2
현상에서 맥락으로. 예술계와 건축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현상 뒤에 숨은 이야기를 고민하고 전달합니다. 매 칼럼마다 중심 소재로 세계 곳곳 현대 미술관이 등장합니다. 이곳이야말로 아트와 건축이 만나고, 이어지고, 또 하나가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술 애호가를 위한 유쾌한 교양 사전을 지향합니다.
[Art & Architecture] ③ 1979년 베이징, 2023년 홍콩 -1
홍콩 엠플러스 뮤지엄을 아는가 엠플러스 뮤지엄 M+ Museum 은 율리 시그라는 한 개인이 기부한 컬렉션을…
*칼럼은 1편에서 이어집니다.
간척지라서 가능한 메가 스케일 건축 경험
엠플러스 뮤지엄이 들어설 사이트는 드넓은 간척지라 기존 땅주인이 없다. 덕분에 원하는 만큼 넓게 설계할 수 있는 자유가 건축가에게 주어졌다. 건축가 헤르조그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은 기회를 마음껏 발휘했다. 홍콩은 고층 고밀도 건축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다. 높은 지형의 언덕에서 위로 또 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도시지만 이와 대비되는 경험을 주는 것을 시도했다.
2개의 거대한 볼륨으로 나뉘는 건축물은 T자를 거꾸로 세운 형상이다. 하단 볼륨은 넓고 묵직하게 지면과 붙어 있고, 상단 볼륨은 얇고 가볍게 하늘을 향한다. 수직으로 높게 올라간 타워형의 건물에는 오피스, 레스토랑, 바 등이 들어섰고 짙은 녹색 유약을 바른 세라믹 패널 14만 개가 감싸고 있다. 건축가는 대나무 갈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세라믹 패널은 LED 미디어 디스플레이 화면이 되기도 한다. 5,664개의 LED 튜브 벽을 장착한 화면은 가로 110m, 높이 65.8m 크기로 이곳에 미디어 작품이나 광고 영상을 전시할 수 있어 바다 건너 홍콩 섬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넓고 평평한 대지를 산책하다.
하단 볼륨에는 전시장과 교육 센터, 극장과 라이브러리 등 미술관의 중심 기능이 들어가 있다. 수평으로 넓게 펼쳐진 건물 덩어리는 지표면에서 떠 있는 구조로, 건물 아래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고안되었다. 이곳에 서면 공항이나 신도시 쇼핑몰에서나 느꼈을 법한 공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실 운동장급으로 넓고 평평한 대지를 경험할 수 있게 설계했는데, 구룡 항구의 흙으로 메워 만든 인공 풍경이라 가능한 일이다.
뮤지엄은 지하철 구룡역Kowloon station 4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또 이곳은 광저우에서 선전, 홍콩으로 이어지는 익스프레스(고속철도)의 종착역이 될 것이다. 지하철역과 고속철도역이 뮤지엄 지하 공간과 이어진다. 건축가는 전철역으로 가는 통로 역시 뮤지엄 설계의 하나로 포함시켰다. 런던 테이트 모던 터빈홀이 공장 시설을 활용한 전시장인 것처럼 5개의 강철 메가 트러스가 존재하는 지하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건축 구조물이 밖으로 드러난 이 공간은 큐레이터와 작가에게 도전을 불러 일으키는 장소가 될 것이다.
워낙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이라 관람객의 동선 역시 중요하다. 엠플러스 뮤지엄의 입구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방문객은 뮤지엄 사방으로 입장할 수 있다. 야외 수변 공원에서도 계단식 좌석을 오르면 쉽게 뮤지엄으로 입장할 수 있고 지하철역과 이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층 갤러리 중앙에 있는 나선형 계단은 루프탑 조각 정원까지 이어지고 조각 정원에서부터 장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있는 지하까지 수직 동선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정도련 부관장은 엠플러스가 하나의 건축물이라기보다 ‘관계 맺음’의 장소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번 건축물에는 전시장만 33개가 들어가고 극장과 카페, 레스토랑까지 함께 있는 프로젝트라 단일 미술관 프로젝트와 접근 방식을 달리 한 걸로 알고 있어요. 하나의 건축물이라기 보다 문화 콘텐츠와 관람객의 폭넓은 관계 맺음을 유도하는 장소라 할까요?” 건축물 주변으로 1만 명이 즐길 수 있는 대형 야외 공원이 있다. 빅토리아 하버를 바라보는 수변 공원에서 가족들은 피크닉을 즐기고 연인들은 데이트를 한다. 완전히 새로운 땅에 지어진 완벽한 건축물, 평화로운 풍경까지 완성되었지만 요즘 엠플러스 뮤지엄은 평안하지 못하다.
성대한 개관식과 개관 반대 시위
홍콩 엠플러스 뮤지엄은 아시아 최초의 ‘컨템퍼러리 시각문화 뮤지엄’을 표방한다. 모던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술을 다루지만 디자인과 건축, 비주얼 아트 분야를 아우른다. ‘M+’의 뜻은 ‘미술관 이상의 미술관 more than museum’ . 중국 본토 현대미술에 집중된 율리 시그 컬렉션에 홍콩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미술과 건축, 디자인을 더하는 컬렉션을 더하고 있다. 개관 오픈을 앞둔 시점에 준비된 컬렉션은 8,000여 점이었다.
2021년 11월, 엠플러스 뮤지엄의 성대한 개관식이 있었지만 한쪽에서는 뮤지엄 개관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아이 웨이웨이 역시 개관에 앞서 엠플러스 뮤지엄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천안문 광장을 포함해 에펠탑과 백악관을 향해 작가의 가운뎃손가락을 날린 작품(‘원근법에 관한 연구 Study of Perspective’)을 전시 목록에서 제외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예술가들도 비판에 동참했다. 케이시 웡Kacey Wong은 2009년 서구룡 문화지구에서 작고 초라한 집을 바다에 둥둥 띄우는 퍼포먼스로 치솟는 부동산 시장을 비판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엠플러스 뮤지엄이 중국 정부의 검열을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작품인 패들링 홈Paddling Home은 현재 엠플러스 컬렉션이다.)
2020년 7월, 중국 정부는 반체제 행동과 자료를 단속하는 법을 새롭게 제정했다. 홍콩의 문화 공간인 엠플러스 뮤지엄 역시 이 법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들의 감독에 순응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1979년, 율리 시그가 베이징에 갔던 시절로 다시 시계를 돌려보자. 중국 역사에 오점으로 남았던 문화대혁명의 상처가 흥건했던 시기였다. 그래도 예술가는 존재했고 율리 시그는 그 시간을 기록하는 컬렉션을 남겼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율리 시그 컬렉션을 품은 뮤지엄 아닌가. 새로운 항해를 시작해야 할 기함이 항해는 커녕 구룡 반도 항구에 묶여 떠나지도 못하고 있다. 홍콩 엠플러스 뮤지엄에 꼭 가 볼 참이다. 응원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