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에 스며든 각자의 이야기, 와셀로

와셀로는 한 사람만을 위한 프리미엄 가구를 만드는 아틀리에다. 와셀로가 설파하는 좋은 가구의 가치에 귀기울여 보자.

벽 속에 스며든 각자의 이야기, 와셀로

한국의 가구 시장은 부동산 및 건설 산업의 성장과 궤를 함께해왔다. 신축 아파트가 우후죽순 생겨나며 빌트인 가구가 등장했고 많은 이들이 대기업에서 대량으로 공급한 빌트인 가구를 불편 없이 받아들였다. 부지불식간에 획일화된 공간에 자신을 맞추는 데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주방 가구 영업과 판매 일을 해온 이병관 와셀로 대표는 이런 획일성에 의문을 품었다. 각자의 일상이 스며든 빌트인 가구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 그는 정형화된 시스템 안에서는 획기적인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과감히 대량생산 체제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맞춤 가구를 만드는 디자인 그룹, 와셀로의 탄생 배경이다.

와셀로 갤러리의 통석 아일랜드. 산에서 채취한 바위를 깎아내 원재료의 고유한 질감을 극대화했다. 소재가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재료의 본질에 충실해 완결성을 높였다.

가구가 온전히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되려면 고객에게 정해진 선택을 유도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아틀리에 설립 이후로도 한동안 쇼룸을 운영하지 않았다. 2021년 처음으로 선보인 와셀로의 공간에 쇼룸이나 전시장 대신 ‘갤러리’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가구의 제품화를 경계하는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갤러리는 판매와 영업을 넘어 와셀로의 가치 철학을 전하는 곳으로, 오랫동안 천착해온 소재와 디자인 실험의 결과를 진정성 있게 선보이는 공간이다. 갤러리에 전시된 가구는 마치 음악이나 미술 작품처럼 관람객에게 정서적 감응을 선사한다. 일반적인 아파트 주거 공간을 넘어 다방면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오치균 미술관 전시 공간. 작업실 오브제와 가구가 위화감 없이 어울리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수도관에서 흐르는 물은 돌에 부딪혀 배수구로 쏟아지는데, 이는 손을 씻는 일상적인 행위에서도 생경한 감각을 느끼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오치균 미술관의 전시 공간을 조성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예술가의 작업실이었던 곳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였는데, 작가의 작업 방식과 태도를 연구한 뒤 그것을 가구에 적용해 사람과 공간, 가구가 일체화된 장소를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아주 작은 단위까지 사용자 몸에 맞추는 와셀로의 슬로건은 ‘For Sensitive Volume’, 여러 감각을 예민하게 동원해 정성 들여 가구를 만들겠다는 뜻을 담았다. 마치 공예가나 장인과 같은 태도로 작업에 임하는데, 가구가 눈으로만 보는 것을 넘어 만지고 사용하는 사물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소재와 제작 방식에 관한 연구 개발에도 공을 들인다. 이들이 지향하는 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정교한 가구다. 그런데 기존의 가구 제작 방식대로 면을 조립하거나 접착하면 구조가 뒤틀릴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하나의 원재료를 깎아 가구 만드는 방식을 새롭게 고안해냈다. 실제로 와셀로의 손길이 닿은 공간에서는 원형의 재료가 지닌 깊이와 무게가 그대로 드러난다.

단독주택 주거 공간을 조성한 프로젝트. 건축, 인테리어, 가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간결한 구조적 미학을 완성했다.

논현동의 단독주택을 위한 가구를 디자인할 때는 돌, 나무, 철이라는 세 가지 자연 소재를 활용했는데, 가공을 최소화하고 각각의 물성을 극대화해 재료가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제품 표면에 곡선을 적용하기 적합해 형태의 변주를 꾀하기에도 용이하다고. 지난 10년간 맞춤 가구 시장의 불모지를 개척해온 와셀로는 어느덧 완성도 높은 프리미엄 가구를 선보이는 그룹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앞으로 목표는 하이엔드 수입 가구의 공고한 아성을 넘어서는 것. 와셀로가 설파하는 좋은 가구의 가치가 어디까지 가닿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우리는 무엇 하나 공장에 임의로 맡기는 것 없이 모든 도면을 직접 그린다. 도면은 가구와 공간을 얼마큼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역량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치밀하다고 할 만큼 정교한 방식으로 가구를 만들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 가지 형태에 머무르지 않도록 다양한 조형 실험을 하고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쉼 없이 연구한다. 올해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 참석해 동시대 가구의 트렌드를 살펴봤는데,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가 비정형적 실루엣이었다. 와셀로 역시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조형성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관습적인 태도와 미감만 가지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체화하려는 집념이다.

와셀로 이병관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4호(2024.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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