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공항의 변신기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

스쳐 지나가는 장소에 불과했던 공항이 탈바꿈했다. 파리공항공단이 파리 공항 곳곳을 파리를 떠올리게 하는 곳으로, 프렌치의 예술성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무엇보다 흥미롭고 유쾌한 곳으로 리뉴얼해 소개했다.

파리 공항의 변신기

파리는 많은 이들에게 설레는 목적지임에 틀림없다. 에펠탑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고 쇼핑도 해야 하며 에스카르고도 맛봐야 하기에, 파리 공항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장소에 불과했다. 그래서일까, 파리공항공단Groupe ADP은 프렌치의 예술성을 널리 알리고, 이와 더불어 이미 커피도 마시고 향수와 초콜릿도 사고, 고급 부티크를 둘러보고도 환승 대기 시간이 남는 이들을 위해 터미널 일부를 리뉴얼해 소개했다.

의자의 하운즈투스 체크는 비행기를 패턴화했다. ©Karel Balas

파리 샤를 드골 공항 터미널 2G의 탑승 라운지가 확 달라진 분위기로 승객을 맞이한다. 터미널 2G는 샤를 드골 공항의 개장 이후 국제선 승객 3분의 2를 맞이하고 가장 많은 환승객이 이용하는 곳이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두세 시간가량 대기하게 되는데, 공항 측은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환대를 제공하고자 했다. 샤를 드골 공항과 오를리 공항 등 프랑스의 주요 국제공항을 소유 및 관리하는 파리공항공단Groupe ADP은 새로운 호스피탈리티 브랜드 ‘엑스타임Extime’을 선보이며, 프랑스 디자이너 도로테 메일리슈종Dorothée Meilichzon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았다. 도로테는 “이번 프로젝트는 1,300㎡ 규모의 공간을 심플하면서도 유쾌하고, 친밀하며, 타 공항과는 차별화될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라고 취지를 전했다.

디자이너 Dorothée Meilichzon은 타 공항과 차별화되고 환대를 경험할 수 있는 라운지를 디자인했다. ©Karel Balas
프랑스의 가구 및 장식 예술과 함께 몰입형 경험을 유도하는 라운지 공간. ©Karel Balas
쓰레기통은 실제 승무원이 기내에서 사용하는 트롤리를 재사용했다. ©Karel Balas

이 새로운 공간은 프랑스 가구와 장식 예술, 장인 정신의 순수한 전통은 이어가되, 여행객들에게 다채로운 풍경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파리와의 명확한 연결 고리를 지닐 수 있도록 했다. 라운지는 휴식, 위생, 간단한 보드게임을 위한 공간 등 여러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장난스럽지만 독창적이며 완전히 색다른 가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라운지 벤치에 전체적으로 적용된 도톰한 자카드 원단 업홀스터리는 ‘메종 테베논Maison Thévenon’에 주문 제작한 것으로, 하운즈투스 체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행기 패턴을 반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패브릭은 얼룩 방지 및 항균성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항에서 더욱 효율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1920년대를 연상시키는 버섯 모양의 알루미늄 소재 조명을 곳곳에 배치하고, 쓰레기통은 실제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쓰던 트롤리를 재사용했다.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에서 볼법한 분수대와 철제 의자를 중앙에 배치했다. ©Karel Balas

사랑, 예술, 미식의 도시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 파리를 연상시키기 위한 디자인 장치들도 흥미롭다. 파리의 명소인 뤽상부르 공원에서 옮겨온 듯, 홀 중앙에는 작은 원형 분수를 설치하고 그 주위로 그린 톤의 철제 의자를 놓아두었다. 실제 공원 의자처럼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암체어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의자를 구비했다. 원형 분수를 설치한 이유도 재미있다. 지난 1635년 르 노트르Le Nôtre에 의해 현재의 팔각형으로 바뀌기 전 최초의 분수 형태가 원형이었기 때문이라고. 이 외에도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그랑팔레, 오페라 가르니에를 떠올리게 하는 장식물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한 구불구불한 나뭇가지를 닮은 유광의 하얀색 조립형 가구이자 대형 오브제는 프랑스 예술가 장 마리Jean-Marie와 마르테 시모네Marthe Simonnet의 작품인 ‘나무그늘에서A l’ombre des arbres’로, 동서남북 자유롭게 원하는 방향으로 앉을 수 있어 편리하다.

​샤를 드골의 터미널 2E 홀 L에는 커다란 고양이 ‘이네스Inès’가 창밖의 활주로를 뒤로하고 곤히 낮잠을 자고 있는데, 이는 말레르브 파리Malherbe Paris가 디자인했다. 보안 게이트를 통과한 승객들에게 고양이처럼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라는 유쾌한 의도를 담고 있다. 시선을 돌려 위를 올려 보면, 예술가 샤를 페티용Charles Pétillons의 조명 설치물 ‘르 파르Le Phare’를 감상할 수 있다. 우리말로 등대를 뜻하는 작품은 흰색 풍선 혹은 구름을 닮아 친근한 모습이다. 야간에 조명이 켜지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공간을 풍성하게 장식한다.

Malherbe Paris가 디자인한 잠자는 대형 고양이 ‘Inès’. ©Gwen le bras
예술가 Charles Pétillons의 조명 설치물 ‘Le Phare’. ©Gwen le bras

이어, 조금 걷다 보면 푸스볼을 즐기거나 벤치에 앉아 쉴 수 있는 나무 그늘이 마련되어 있다. 푸른 잎 사이를 눈여겨보면 릴라 포핀스Lila Poppins의 ‘극락조’가 모습을 드러낸다. 약 20~50cm 크기의 이국적인 새 20여 마리는 놀랍게도 종이로만 만들었다고.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알록달록한 새의 모습이 찰나의 순간이지만 즐거움을 더한다.

​샤를 드골 제1터미널은 작년, 약 2년 만에 재개장하며 사진 전시 <파리의 발라드La Ballade de Paris>가 진행 중이다. 터미널 진입 통로에 나열된 사진 작품은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예술가인 장 프랑수아 라우지에Jean-François Rauzier가 촬영한 사진에 여러 이미지를 병치하고 복제하는 방식으로 완성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사진의 콜라주를 ‘하이퍼-포토그라피’라고 칭하는데, 그만의 상상력과 초현실적인 감각을 토대로 에펠탑과 같은 파리의 랜드마크와 건축적 요소들을 연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높이 9m에 무게 5톤 가량의 대형 작품은 오를리 공항 터미널 3에 영구 설치됐다. ©Alain Leduc
디자이너 Arnaud Lapierre의 ‘Vertigo’는 그 작품명처럼 비행기 이륙 시 느끼는 현기증을 앞서 경험하게 하는 독특한 설치물이다. ©Alain Leduc

오를리 공항 제3터미널에는 높이 9m에 무게 5톤가량의 대형 작품이 영구 설치됐다. 디자이너 아르노 라피에르Arnaud Lapierre의 ‘Vertigo’로, 현기증 또는 어지러움을 의미한다. 작품명은 비행기 이륙 초기에 탑승객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알루미늄 구조에 150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유광 스테인리스 스틸 큐브로 구성된 설치물 내부로 들어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치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일종의 현기증을 경험하게 된다고. 관제탑, 터빈 혹은 수수께끼 같은 토템을 연상시키는 오브제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하는 이들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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