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편집을 위한 치밀한 도구 상자, 툴박스

툴박스가 전달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결국 공간 만들기의 자유와 즐거움. 작은 움직임의 확산으로 도시의 변화를 모색하는 아라카와 기미요시 툴박스 대표를 서면으로 만났다.

공간 편집을 위한 치밀한 도구 상자, 툴박스

셀프 레노베이션을 선뜻 감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도구나 방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재료나 제품을 실제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툴박스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인테리어 건자재 편집숍이다. 단순한 제품 개발과 판매를 넘어 문손잡이, 선반, 벽체와 바닥 색상 및 소재, 그리고 방 배치까지 스스로 선택할 방법을 제시한다. 툴박스가 전달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결국 공간 만들기의 자유와 즐거움. 작은 움직임의 확산으로 도시의 변화를 모색하는 아라카와 기미요시 툴박스 대표를 서면으로 만났다.

toolbox arakawa
아라카와 기미요시
툴박스 대표
툴박스는 누구나 자신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자 도쿄R부동산이 설립한 형제 회사다. 어떤 계기로 이 플랫폼을 구상했나?

도쿄R부동산이 소개하는 많은 매물이 레트로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재건축으로 인해 이 매력적인 매물이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도쿄R부동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명목으로 도시의 풍경은 점점 삭막해졌다. 만약 공통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 어떨까? 설계자, 건설사뿐 아니라 거주자가 자신의 공간을 직접 꾸밀 수 있다면 부동산의 가치가 오르고, 멋스러운 주거 공간 또한 늘어나지 않을까? 도쿄R부동산의 고객 중에서 간혹 목수에게 부탁해 리모델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공간은 디자인 이론에서 벗어나지만 자유로운 감각이 돋보였다. 한편 그들은 잡지에 나올 법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자재를 어떻게 얼마에 구입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툴박스는 도시와 삶에 관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론칭한 플랫폼이다. 무엇보다 이런 움직임의 확산으로 도시 풍경이 바뀌기를 바랐다.

툴박스의 차별점 중 하나는 없으면 직접 만들어서 쓰는 것이다. 좀처럼 찾기 힘든 물건 중 툴박스가 디자인한 대표 상품은 무엇인가?

주거 공간에 접목하기 쉬운 크기와 형태로 원목 패널을 변형한 ‘클래식 립 패널’, 층고가 낮은 공간에 효과적으로 개방감을 줄 수 있도록 개발한 ‘플랫 레인지후드’, 가족과 함께 사는 공간에서 적당한 거리감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개폐 방식의 ‘목제 실내 창문’ 등이 있다.

showroom osaka Masanori Kaneshita
도쿄 신주쿠에 자리한 툴박스 쇼룸. 사진 마사노리 가네시타
space3 Masanori Kaneshita
툴박스의 패키지로 레노베이션한 주거 공간. 부엌과 거실이 유연하게 연결된다. 사진 마사노리 가네시타
제품의 요소요소가 까다로운 만큼 함께 일하는 사람과 회사가 더욱 중요하다. 협력 파트너는 어떤 기준으로 선별하나?

‘인간적인 느낌이 나는가.’ 툴박스가 제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기계를 사용해 동일한 품질을 오차 없이 대량생산 하는 일은 오히려 쉽다. 툴박스는 ‘자연스러운 질감을 남길 것’을 제조사에 요구한다. 소재감을 살리거나 손의 흔적을 남기는 이런 방식은 만드는 사람의 센스나 개성이 드러난다. 물론 툴박스의 요구 사항이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우리에겐 색이나 광택의 차이를 미묘하게 알아채고, 제품에 개성과 여백을 남기는 제작 방식을 수용하는지가 중요하다.

툴박스의 제품은 무엇보다 재료 본연의 매력이 돋보인다. 소재를 정교하게 다루기 위한 특별한 방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디자인을 목표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툴박스의 제품 개발은 소재와 가공 기술 그리고 만드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책상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보다는 우선 공장에 가본다. 제조사나 시공사가 사용하는 소재와 보유한 기술, 지금까지 만든 작업을 보고 나서 디자인을 생각한다. 무리하게 만들지 않고, 정직한 디자인을 지향한다.

최근 레노베이션에서 새롭게 주목하는 요소나 제품은 무엇인가?

스테인리스 열간 압연재다. 광택을 내거나 얇게 펴기 전의 판재로, 열간 압연의 제조 과정 중 첫 번째 공정에서 만들어지기에 ‘No.1’이라고도 불린다. 이 제품은 무광택의 은색과 요철이 생긴 표면이 매력적이다. 최근 이 판재를 난간으로 사용하기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재료 본연의 느낌과 9mm 두께의 중후함을 고스란히 담기 위해 최소한으로 가공할 예정이다.

TOOLBOX 27
툴박스 손잡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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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상재 머터리얼 라이브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는 툴박스. 선반, 손잡이, 연장을 비롯해 공간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사진 윤현상재
툴박스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제안하고자 하는가?

만드는 사람(자재 공급 업체, 시공사)의 가치관과 디자인하는 사람(디자이너, 건축주)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옷 스타일이 다르듯이 공간도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재료나 시공 방법이 한정적인 탓에 이를 구현하는 일이 쉽지 않다. 툴박스는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해 필요한 부품과 재료는 물론 시공하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요구할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을 제공한다. 만드는 사람과 디자인하는 사람의 간극이 좁혀질수록 개성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도시 풍경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툴박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건축가, 디자이너와 협업한 상품 개발을 늘리고자 한다. 툴박스는 이전부터 일본의 젊은 건축가와 함께 상품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을 주제로 ‘누군가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공모전을 개최했는데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뛰어난 디자인이 모였고, 그중 일부는 상품화 단계에 있다. 때로는 디자이너가 특정 공간을 위해 만든 소재나 부품이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인 디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디자인을 제품화하고 유통함으로써 공간 디자인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한국의 건축가, 디자이너들과 정보를 교환하거나 함께 상품을 개발하며 한국 사람들에게도 레노베이션의 매력을 전하고 싶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4호(2024.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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