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전
귀는 가장 좋은 눈이다
전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음악은 전시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디자이너가 가장 사랑하는 음반 레이블' ECM의 음악과 디자인을 한눈에 조망하는 전시가 아라아트센터에 열렸다.
영화를 제작할 때 감독이 중요한 것처럼, 뮤지션에게도 음반 레이블과 프로듀서는 중요하다. 1969년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가 설립한 ECM은 음악가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독일의 음반 레이블이다. ECM은 지난 40여 년간 키스 자렛(Keith Jarrett), 팻 매스니(Pat Metheny) 등 뛰어난 뮤지션들의 명반을 제작하며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8월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개최되는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전은 ECM의 음악과 디자인 모든 것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다.
만프레드 아이허의 레이블
ECM을 대표하는 말은 많지만, ECM은 무엇보다 ‘만프레드 아이허의 레이블’이다. 그는 2007년 독일의 한 신문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을 묘사하며 “소리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한다. 또한 소리는 떠다닐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워야 한다. 이 목표가 이루어지면 음악 녹음에서 기술은 사라진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자신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프로듀서가 단순히 음악을 녹음하는 데서 그친다면 그는 기술자일 뿐이지만, 자신만의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는 예술가다. 그런 의미에서 만프레드 아이허는 예술가이자 아트 디렉터다.
연주 순간을 완벽하게 담아내기 위한 그의 기술적 실험과 집념은 맑고 투명하면서도 특유의 공간감이 살아 있는 소리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ECM 사운드’라는 말까지 탄생시켰다. 아름다운 앨범 커버 또한 많은 사람들이 ECM을 사랑하는 이유다. 설립 이래 200명에 달하는 화가,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가 참여한 ECM의 커버 이미지들은 ECM을 ‘디자이너가 가장 사랑하는 레이블’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음악이 과연 전시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전시 준비 과정에서 기획자들이 가장 많이 들은 질문도 바로 이것이었다.
동시대 음악의 훌륭한 아카이브
이번 전시가 의미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아카이빙(archiving)’의 개념이 새롭게 정립되는 시점에 열린 전시라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화제가 된 전시들을 살펴보면 미술관과 박물관 전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10년 대림미술관에서 개최된 디터 람스의 <Less and More>전이나,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돼 큰 인기를 끌었던 <팀 버튼 전>이 대표적이다.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는 영국 록 음악의 아이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개 ‘전자제품 디자이너’나 영화 감독, 록스타의 전시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열린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이는 ‘디자인’이 전시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생긴 현상이다. “이제까지는 유물사적으로 의미 있는 물건을 박물관학에 의해 ‘수집(collection)’했다면, 이제는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의 해석이 담긴 ‘선택(selection)’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전시의 총괄 자문을 맡은 이재준 새동네연구소 소장의 설명이다. 현대미술이 점점 어려워지며 전문가의 설명 없이는 감상이 힘든 지경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디자인 전시에 열광했다. ECM이라는 음반 레이블이 ‘정말로’ 전시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에디션 오브 컨템퍼러리 뮤직(Edition of Contemporary Music)’의 약자인 ECM의 이름처럼, ECM의 앨범들은 만프레드 아이허라는 뛰어난 프로듀서에 의해 선택된 동시대 음악의 훌륭한 아카이브다.
또한 그동안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둔 블록버스터급 디자인 전시는 거의 모두 자체 기획이 아닌 수입 전시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기획자와 큐레이터들이 바닥에서부터 쌓아 올린 빛나는 성과다. 관계자가 독일 현지 ECM 본사에 수개월 동안 머무르며 ECM의 창고를 뒤졌고, 앨범 커버 작업을 한 아티스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 작품을 모았다.
소리를 위한 전시 디자인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하는 문제다. 이번 전시에서는 ECM의 음악·예술사적 의미뿐 아니라 ‘소리’라는 요소까지 보여주어야 했고, 이를 위해 주목한 것이 음악의 공감각적 성격이다. 음악은 단순한 듣는 행위 이상이라는 해석은 소리에 대한 심상을 중시하는 ECM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여백을 많이 남긴 전시장의 공간 구성이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느끼기 위해 디자인되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인지 전시장에서 직접 감상 할 수 있는 앨범만 160여 개가 진열된, 430평 규모의 공간을 오랜 시간 돌아다녀도 별로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관람자의 동선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된 감상 공간과 ECM의 맑고 투명한 소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최고급 음향 시설은 기본이다. 기획자는 이번 전시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기를 원했을까? “현대인은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하다. 외국 영화에는 미술관을 약속 장소로 잡은 후 친구와 함께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정확하게 짜여져 관람객을 가르치려 하거나, 어려운 개념을 무책임하게 나열하는 전시는 피했다. 그냥 보아도 좋고, 더 알려고 노력한다면 나름의 깊은 의미를 더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전시가 되었으면 한다.”
보는 대로 기록한 음악
만프레드 아이허는 ECM을 설립하게 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듣는 대로 음악을 기록하고 또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음악을 녹음할 장소를 무척 신중하게 결정한다. 마치 예술가가 캔버스에 칠할 색이나 작품의 재료를 고르는 과정과 같다. “소리는 예술적인 아이디어와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음악의 콘텐츠가 녹음에 어떤 공간이 적합할지 말해준다. 어떤 음악은 성당이나 교회가, 어떤 음악은 스튜디오가 어울린다. 이를 위해 항상 고민하고 엔지니어들과 상의한다.”
만프레드 아이허가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은 뮤지션 선택에서 커버 디자인까지 직관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개인적으로 ‘더 탐구해보고 싶은 소리’를 발견하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음악이든 아티스트에게 음반 발매를 제의한다. 그에게는 앨범 커버 또한 음악의 범위에 포함된다. 그렇다고 해서 ECM의 커버 이미지들이 음악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만프레드 아이허는 앨범 커버란 단지 음악으로의 초대장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발매된 모든 ECM의 앨범 커버 이미지를 그가 직접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가 이 ‘초대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이 듣는 대로 기록하는 소리처럼, 앨범 커버는 만프레드 아이허가 ‘보는 대로’ 기록한 음악인 것이다.
따라서 ECM에서는 앨범 커버를 디자이너나 예술가에게 의뢰하지 않는다. 독일의 한 잡지는 ECM 앨범 커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ECM의 음반들은 그 안에 담긴 음악과 소리만큼이나 그래픽적인 정체성 또한 독특하다. ECM은 미국 재즈에서 쓰인 쿨한 이미지와 인물의 우상화를 폐기했고, 도형과 풍경을 활용해 추상적인 접근법을 전개했다. 아이허는 이렇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Interview
김범상 전시 디렉터
“ECM의 총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번 전시 기획은 기타리스트 랄프 타우너(Ralph Towner), 비올리스트 킴 카쉬카시안(Kim Kashkashian), 재즈 보컬 노마 윈스톤 트리오(Norma Winstone Trio) 등 ECM 소속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 계획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뮌헨에 위치한 미술관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에서는 ’ECM–문화의 고고학(ECM-a cultural archaeology)’이라는 전시를 기획 중이었는데, ECM의 초청으로 전시를 찾은 후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ECM 초기의 프리 재즈를 중점적으로 다루어 예술의 장르를 넘나드는 ECM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ECM의 총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프레드 아이허도 이에 공감했고, ECM의 모든 아카이브를 아무 조건 없이 개방해 주었다.
이재준 전시총괄 자문
“‘풍경과 마음’ 섹션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이번 전시의 감상 포인트는 두 가지다. 그동안 ECM에서 발매한 1,400여 장의 앨범이 진열되어 있는 ECM 라운지에서는 편히 앉아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연대기 순으로 정리된 앨범 커버를 하나하나 감상할 수도 있다. 이곳은 층층이 나뉜 전시 공간이 어느 순간 모두 연결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하 2층 ‘풍경과 마음’ 섹션은 전시가 추구하는 방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지하 4층, 3층, 1층은 모두 ECM이라는 레이블에 대한 객관적 정보로 이루어진 반면 ‘풍경과 마음’ 공간에는 기획자들의 주관적인 해석을 담았다. ECM의 앨범 커버를 장식해온 주요 아티스트들의 작품과 이를 재해석한 스튜디오152의 영상이 대화처럼 엮이며 공간 가득 펼쳐지는데, 음악에 담긴 만프레드 아이허의 심상과 미디어 아티스트의 상상력, 관람객의 감상이 서로 교차되는 순간이다.
토마스 분슈(Thomas Wunsch), 에버하르트 로스(Eberhard Ross)
“음악과 앨범 커버는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좌: 토마스 분슈(Thomas Wunsch). 1957년생인 토마스 분슈는 우리가 지나치는 수많은 일상의 단면을 섬세하게 기록하는 사진작가다. 피사체를 멈춰있는 이미지로 박제하지 않고 시간을 쌓아 올린 듯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 에버하르트 로스(Eberhard Ross). 1959년 독일에서 출생한 에버하르트 로스는 동양 선불교 사상의 영향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평온함과 자연의 법칙을 회화와 사진,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작가다. 시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흔적이 그의 주요 작품 소재다.
ECM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로스 나는 30년 동안 ECM의 팬이었다. ECM의 음악은 나의 작업에 많은 영감을 주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2009년에 작품집을 보냈다. 얼마 뒤 나의 작품을 커버로 쓰고 싶다며 만프레드 아이허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분슈 1976년 처음 ECM의 LP를 구입했다. 나는 패션 사진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0년부터 순수 사진 작가로 전향했는데, 이후 40장 정도의 작품을 ECM에 보낸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음반 커버는 예술가나 디자이너에게 ‘의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로스 ECM의 경우 아티스트의 작품이 우연히 만프레드 아이허에게 발견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누군가에게 의뢰하는 게 아니라 만프레드 아이허가 직접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품을 사용한다고 아티스트에게 미리 알리지는 않는다. 어느 날 보면 내 그림이 커버로 나와 있는 식이다.
작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맡기는 것은 ECM에 대한 대단한 신뢰다.
분슈 처음 만났을 때 만프레드 아이허는 나의 작품을 가리키며 ‘이 부분을 좀 더 어둡게 바꿔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는데 그것이 일종의 테스트였던 셈이다. 아티스트가 얼마나 융통성이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사진이 너무 새카매질 거라고 내가 덧붙이기는 했지만(웃음).
로스 만프레드 아이허나 ECM의 디자이너들이 내 작품에 해가 되는 작업을 하지 않을 거라 믿고 있다. 그들이 먼저 예술가의 입장에서 커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만프레드는 음악 작업 시에도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모두 신뢰가 바탕이 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분슈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ECM에서 나의 작품을 180도 돌려서 커버에 사용한 것이다. 그때 마침 전시장에 똑같은 작품이 걸려 있었다. 나는 주로 형태가 없는 사진 작업을 하는데, 그 작품의 경우 두 방향 모두 정말 좋아서 커버를 본 후 전시장에 걸린 작품을 180도 돌려버렸다(웃음). 내 작품에 대한 ECM의 해석에 나도 다시 영향을 받는 셈이다.
한 작품에는 예술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신의 작품이 하나의 음반을 위한 이미지로 규정되는 것에 회의를 느낀 적은 없나?
분슈 앨범의 커버로 사용되는 것은 괜찮지만, 음반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작품을 단지 앨범을 위한 포장이나 도구로 여길 때는 섭섭한 것도 사실이다. ECM의 앨범 이미지는 하나의 작품으로 음악과 함께 예술품으로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스 음악과 앨범 커버는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이 사용된 음반을 들을 때면 언제나 커버와 음악이 잘 어울린다고 느낀다. 70년대 ECM의 LP를 구입하던 시절에는 단지 커버가 마음에 들어 앨범을 사기도 했다. 커버에 실린 나의 작품을 보고 음악을 떠올리거나, 거꾸로 음악을 듣고 내 작품을 떠올리는 것 모두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재민 fnt 대표가 뽑은 ECM 커버 아티스트
마요 부허(Mayo Bucher)1963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시작해 순수 미술 작가로 전향했으며, 명확한 대상의 특성을 묘사하는 대신 그 본질을 최대한 순수하고 추상화된 형태로 전달하는 작업을 해왔다.
“ECM의 앨범 커버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팻 매스니(Pat Matheny)의 <Offramp>나 칙 코리아(Chick Corea)의 <Return To Forever> 등 잘 알려진 음반을 골라야 하나 싶었다. 그러던 중 마요 부허의 작품이 담긴 앨범 커버가 눈에 들어왔다. 스위스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인 마요 부허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랄프 타우너(Ralph Towner)의 앨범 <Ana>에서였다. 특유의 재질감 있는 표면 위 베일 듯한 얇은 선과 몇 자의 작은 타이포만이 새침하게 얹혀져 있는 음반들이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 원본을 접할 수 있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ECM의 주목할만한 커버 디자인
만프레드 아이허는 ECM의 앨범 커버는 음악과 어떠한 논리적 연관성도 없다고 이야기해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 직관적 이미지 속에 담긴 메시지를 찾아보고자 했다. 소리와 이미지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물을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범상 디렉터가 커버 디자인이 인상적인 ECM 앨범들을 소개한다.
좌: 팻 매스니(Pat Metheny), <Rejoicing>. 팻 매스니의 젊은 시절 앨범으로, 커버는 ECM 초기 아트 디렉터 바바라 보이어슈(Barbara Wojirsch)가 디자인했다. 낙서와 드로잉을 결합하는 독창적 방식을 보여주었던 미국의 추상주의 화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영향이 엿보인다. 일그러진 타이포그래피와 자유롭게 그려진 선들은 마치 각 악기의 즉흥 연주에 반응하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보는 듯하다. 우: 얀 가바렉 그룹(Jan Garbarek group), <Twelve Moons>. 얀 예드리치카(Jan Jedlicka)는 체코 출신 작가로, 젊은 시절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마레마(Maremma)’지역을 방문한 뒤 100여 년 전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연안 지대에 매료되어 그곳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생 동안 재구성해왔다. 이 앨범에 쓰인 사진에서는 생생히 살아 있는 섬세한 질감을 발견할 수 있다.
좌: 키스 자렛 트리오(Keith Jarrett Trio), <Yesterdays>. 토마스 분슈는 추상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무형’의 이미지를 이야기 하곤 한다. 무형의 이미지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김범상 대표는 이 커버의 실물 작품을 보고 키스 자렛 트리오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마음속에서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분슈가 말하는 무형의 힘 아닐까? 우: 랄프 타우너(Ralph Towner), <Anthem>. 마지막 앨범은 아티스트와 상관 없이, 기획자가 가장 좋아하는 커버로 ‘그냥’ 골랐다. 이번 전시의 포스터 후보로 끝까지 고민했던 작품이라고. 비 오는 창 위로 와이퍼가 지나간 짧은 순간을 포착한 인상적인 작품이다. 랄프 타우너는 이 앨범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