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서 사는 삶을 보고 읽다
<더 한옥>,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공간 디렉터 정규태, 미술 평론가 유경희 등 한옥에서 사는 이들의 이야기
요즘 기후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집은 기후 위기에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진정한 시작점이다. 집을 짓거나 고치면서 처음 하는 고민이 ‘어떻게 집이 숨을 쉬게 만들지?’라면 어떨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런 생각이 불행히도 현재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생명 건축은 생명이라는 것을 전제로 주변 장소의 목소리를 듣는 건축이다. 태양은 어느 방향에서 뜨는지, 가장 멀리 보이는 풍경은 무엇인지, 바람의 방향은 어떤지, 집 깊숙이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적절한 창은 어떤지 등을 헤아리며 만든 집은 외부와 단절되지 않는다. 이런 질문에 한옥은 이미 많은 답을 알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변화한다. 이 책에 소개된, 오래됨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한옥에 대한 시도들은 우리의 일상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 될 것이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서 현재를 튼튼히 지지하는 미의식의 바탕이 될 것이다.
<더 한옥>의 ‘들어가며’ 중 일부, 김대균 건축가
한옥의 로망과 현실
어린 시절,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면 오래된 나무 대문을 열자마자 마당을 지나 사랑채의 대청마루로 뛰어갔다. 차가 들어가지 못해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골목 때문이었다. 지친 몸을 마루에 누이면 서까래와 하늘이 수평을 이루는 풍경이 보였다. 마당과 대청마루를 지나 사랑방을 한 바퀴 휘돌아 나오는 서늘한 바람의 길도 그 풍경에 보이는 듯했다. 해가 서산으로 지면 용마루에서 처마, 기둥, 툇마루, 디딤돌로 노을이, 어둠이 스르르 내려앉았다. 이젠 허물진 집이지만 반질반질한 나무의 감촉과 까쓸까슬한 창호지의 감촉, 바람의 소리, 아궁이의 냄새, 그런 것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서촌이나 북촌을 거닐 때면 그런 상상을 한다. 이 한옥에서 살게 되면 그 감촉과 냄새와 추억들이 다시 살아날까.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 그런 것들. 그 삶은 대치동이나 서울숲의 주상복합이나 한남동의 고급맨션에서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일 거다. 빌딩과 맨션에서의 삶이 안락과 여유, 기대 가치에 있다면 한옥에서의 삶은 자꾸 전혀 다른 방식일 거라는 기대와 설렘이 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모두 상상일 뿐이다. 낭만이나 로망을 바라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름다운 외관과 편안함, 휴식 등의 이미지만 보고 한옥을 주거 공간으로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언젠가 한옥 취재를 위해 대목장과 기와장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는 일반인이 감당하기 힘든 건축 비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규제, 작은 평수, 단열, 불편한 생활 등의 현실에 먼저 부딪힌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옥을 선택하고 예찬하는 이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반응할 수 있는 공간의 언어들이 있어요. 좁았다 넓어지고, 어두웠다 밝아지고, 높았다 낮아지고, 낮은 데서 높아지고…. 그러한 일상의 건축 언어를 정말 잘 차용한 집이 바로 한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좁은 문을 통해 들어오면 큰 마당이 펼쳐져 먼저 자신을 낮추고, 작은 방에서 트인 대청으로 나가면 어깨가 절로 펴지니까요. 예전에는 디자인을 하면서 좀 더 다르게, 좀 더 잘하고 싶었다면 요즘은 그런 마음을 많이 털어 낸 것 같아요.”
<더 한옥>의 ‘디자이너 양태오의 계동 한옥: 한옥에 살며 비로소 눈뜬 것들’ 중 양태오의 말 일부
한옥을 보금자리로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
한옥이라는 단어에서 ‘한韓’은 ‘하나’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가득’, ‘한 아름’과 같이 ‘전체’라는 의미도 있다. ‘한가운데’나 ‘한낮’처럼 ‘정점’을 뜻하기도 한다. 결국 한옥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집이란 의미다. 야구가 홈에서 출발해 홈으로 돌아오는 게임이듯이 우리 삶도 결국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다. 한옥은 그 형태마저도 품는, 품이 넓은 그릇이다. 그리고 집은 ‘생활을 담는 그릇’으로 종종 묘사되지만 ‘나의 생활을 닮은 그릇’이기도 하다. 같은 음식도 그릇의 형태나 재료에 따라 음식을 담는 양과 온도가 변화하고 색감이 달라지면서 음식의 맛 역시 달라진다.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가 쓰고 디자인하우스에서 펴낸 <더 한옥>은 우리의 일상이, 아니 우리의 삶이 돌아오는 집, 한옥의 삶을 조명한다. 아파트라는 그릇에 담긴 생활과는 전혀 다른 맛이 나는 한옥의 삶을 전한다. 한옥을 보금자리로 선택한 사람들의 한옥살이 계기, 개·보수 및 신축 과정, 한옥 생활의 장단점 등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가 본인의 특기를 십분 살려 화려하면서도 실용적으로 꾸민 계동 한옥이나 전국적으로 유명한 군산의 이성당 빵집 대표가 인생 2막을 꿈꾸며 마련한 세컨드 하우스, 카페나 식당 등 작업한 공간을 핫플레이스로 만드는 공간 아트 디렉터 정규태가 나이 많은 반려견을 고려해 수리한 북촌 한옥, 미술 평론가 유경희가 집이란 영혼을 고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구현한 집, 갤러리스트 홍송원·박담회 부부가 장 프루베의 조립식 건물과 한옥을 조화롭게 연결해 놓은 가회동 집, 3대가 함께 살기 위해 한옥을 새로 지은 화성 주택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한옥의 매력이 한층 더 잘 보이고 한옥살이가 가깝게 느껴진다.
상업공간으로 탈바꿈한 한옥
개인 주택이 아닌 상업 공간으로서의 한옥도 소개한다. 서촌의 정종미 갤러리, 차를 마시거나 쿠킹 클래스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락고재 컬쳐 라운지, 제주 카멜리아힐에서 운영하는 향산 기념관뿐 아니라 한옥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여러 호텔과 스테이도 함께 실었다. 한옥이라는 공간을 독자도 직접 경험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거주 공간으로서 한옥은 감상이 아닌 현대인의 삶이 반영되어야 한다. 살다보면 단점이 하나둘 발견되고 개선하거나 고쳐야 할 문제점들이 쌓이게 된다. 그 과정의 이야기도 담아 한옥에서의 삶을 미리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한옥을 꾸며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 불편한 과정을 감수하고서도 그들이 한옥에 사는 이유는 경제적 가치와 실용성보다 더 큰 의미와 가치를 얻은 덕분이다. 북에서 남으로 바람이 흐를 수 있도록 낮은 창을 하나 냈는데 투숙객이던 어린아이가 그 창을 문으로 사용하는 걸 보고 새로운 해석과 활용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한옥스테이 운영자의 말은 그 의미와 가치에 힘을 더한다.
확실히 아파트를 구성하는 공간의 명칭은 단순하다. 현관, 거실, 주방, 벽, 창, 천장, 문 등이다. 사방이 콘트리트로 구성된 갇힌 공간이다. 하지만 한옥은 다르다. 안채와 사랑채, 행랑, 곳간 같은 공간의 쓰임뿐만 아니라 용마루와 내림마루, 서까래, 추녀, 망와, 처마, 대들보, 문설주, 대청, 쪽마루, 디딤돌, 주춧돌 등 눈이 닿는 곳에 다 이름이 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애착과 애정이 닿는다. 한옥은 그런 공간이다. 책 속에서도 그 삶이 느껴진다. 일어나자마자 대청마루 문을 열고 나가 이불을 털고, 먼지가 내려앉은 마루를 닦는 게 루틴이 된 영화계 원로와 작업실, 주방, 뒷마당 창까지 거의 모든 공간에 밖으로 반침을 내 내부와 외부의 중간지대에 걸터 앉는 미술 평론가의 삶도 그렇다. 공간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하물며 바깥을 안으로 들이는 한옥의 삶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바꾼다. 한옥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 구조의 특징은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안마당, 뒷마당, 사랑마당, 행랑 마당 등 다양한 마당은 내외부가 교차된 풍경을 만든다. 계절과 날씨를 느끼고 아침과 밤을 느낄 수 있는 집은 내 몸과 마음이 하늘과 땅에 연결되어 있음을 저절로 느끼게 해 준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에서 한옥이 가진 보편적 가치가 있다.
1961년에 지은 근대식 한옥을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던 곳으로, 한쪽은 기울어지고 언뜻 보기에도 예쁜 한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이 한옥을 처음 본 그날이 정말 좋았어요. 처마 너머로 파랗게 하늘이 보이는데, 꼭 제임스 터럴의 작품을 보는 것 같았지요. 하늘이 제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는 곧장 계약을 하고 무작정 이곳으로 이사 와 살기 시작했다. 2020년 12월의 추운 겨울날이었다.
<더 한옥>의 ‘공간 아트 디렉터 정규태의 한옥 개조기: 오래된 도시에서 새로 쓰는 한옥’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