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녹색 DNA를 심다, 윤호섭 디자이너

그린 디자이너가 전하는 메시지는?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국내 최초 그린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윤호섭 디자이너의 전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둘레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다국적 기업과 일하던 광고 디자이너에서 디자인을 통해 '녹색 DNA'를 심는 그린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디자인으로 녹색 DNA를 심다, 윤호섭 디자이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 뮤지엄 3층 둘레길갤러리에서 국내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 명예교수인 윤호섭 디자이너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5월 13일부터 오는 9월 29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제목은 <greencanvas in ddp> . 여기서 말하는 ‘그린캔버스(greencanvas)’는 북한산 아래 우이동에 자리한 디자이너의 작업실 이름이다. 그는 전시 제목처럼 자신의 작업실 ‘그린캔버스’를 DDP 전시장으로 불러들여 왔다. 덕분에 전시장 곳곳에서는 작업실에 보관 중이던 소품부터 작품까지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70m 길이의 둘레길 복도를 채우고 있는 돌고래 그림이다. 전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그는 매일 전시장에 나와 멸종 위기종 제주남방큰돌고래 100여 마리를 그렸다. 그림 속에는 평화, 공존, 생명 존중 등 그린 디자이너로서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

<그린캔버스 인 디디피>전 포스터 디자인 (사진 제공. 서울디자인재단)
둘레길을 따라서는 멸종위기종인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실제 크기로 그린 그림을 걸었다. (사진 제공. 서울디자인재단)


광고 디자이너에서 그린 디자이너로

광고 디자이너로 일하며 디자인이 대량 생산을 부추겼다는 걸 깨닫고 그는 환경과 디자인의 가치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인사동에서 진행해 온 티셔츠 퍼포먼스. (사진 제공. 윤호섭 디자이너)

그린 디자인의 개념을 국내에 정착시킨 윤호섭 디자이너는 한때 소위 잘나가는 광고 디자이너였다.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합동통신사(현 오리콤)에 입사해 광고기획실 아트디렉터로 활동했다. 이후 1976년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제작부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하며 1970, 80년대 한국의 고도 경제 성장 시기 속에서 각종 국제 행사의 디자인과 다국적 기업들의 광고를 제작했다. 디자인 전문 위원으로 참여한 86년 서울 아시안게임, 88 서울 올림픽, 광주 비엔날레, 대전 엑스포, 세계 잼버리 대회와 1991년 선보인 펩시콜라의 ‘펩시’ 한글 글꼴 그리고 씨티은행의 한글 로고가 대표적이다.

당시는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투어 국내 진출을 꾀하던 시절이었다. 이들은 국내 시장과 소비자에게 자신들을 소개하기 위해 광고대행사를 찾았고, 자연스럽게 광고 디자이너와 그 업이 주목받았다. 윤호섭 디자이너의 말에 따르면 특히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디자이너는 업계에서 귀했다고 한다. 다국적 기업과의 디자인 프로젝트와 국제 행사는 예나 지금이나 광고 디자이너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경험이다. 하지만 그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그리고 대량 파괴로 이어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과 풍경을 디자인이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는 의문이 들었다. 그간 자신의 앞에 주어지는 디자인을 헤쳐 나가기 바빴던 그는 디자인의 가치와 본질 그리고 디자이너의 진짜 역할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이 질문들은 곧 그린 디자인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으로 이어졌다.

디자이너, 그린 디자인을 실천하다

윤호섭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고성 세계 잼버리 대회(1991) 포스터 (사진 제공. 윤호섭 디자이너)

윤호섭 디자이너가 그린 디자인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바로 1991년 고성 세계 잼버리 대회에서 만난 일본인 대학생 미야시타 마사요시군이다. 당시 그는 세계 잼버리 대회 포스터 디자인을 도맡았고, 호세이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던 3학년 미야시타 마사요시는 환경 자원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한국의 환경 자원봉사 활동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고, 윤호섭 디자이너는 이에 대한 답변을 주기 위해 국내의 환경 자원봉사 단체들을 알아보던 것이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커졌다.

1982년부터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디자인을 가르쳤던 윤호섭 디자이너는 1995년부터 학장을 맡았다. 미야시타 마사요시와의 만남 이후 그는 디자인의 가치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고 판단해 학부 교양필수과목으로 ‘환경과 디자인’이라는 과정을 신설하고, 2003년에는 대학원에 ‘그린디자인’이라는 전공을 개설했다.

2000년도에 연 첫 개인전 <Everyday Earthday!>에서 소개한 포스터 ‘돌고래, 사람, 새’. 작품 제작 과정에서 환경 오염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 신문지 위에 그렸다.

2000년대부터는 학교 밖에서의 활동도 본격적이었다. 그린 디자이너로서 2000년에는 첫 개인전도 가졌다. 제목은 <Everyday Earthday> . ‘하루하루가 지구의 날’이라는 뜻을 지닌 전시에서는 이번 DDP 전시에서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돌고래에 대한 관심도 엿볼 수 있다. 포스터 ‘돌고래, 사람, 새’가 바로 그 작품이다. 세 개의 생명체는 각각 바다와 땅 그리고 하늘을 상징하며 공존을 주장한다. 주제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도 윤호섭 디자이너는 그린 디자인의 가치를 실현했다.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인쇄 공정이 아닌 손으로 직접 신문지 위에 포스터를 그렸다. 물론 사용한 물감도 환경에 무해한 물감을 활용했다.

팬데믹을 겪으며 중단되긴 했지만 2002년부터 그는 인사동에서 콩기름으로 만든 친환경 페인트로 티셔츠 위에 그림을 그려주는 퍼포먼스도 꾸준히 이어왔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과 지구를 형상화한 그림으로 디자인한 티셔츠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음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반응이 좋았다. 오랜 시간 꾸준히 이어온 활동인 만큼 사람들로부터 ‘인사동 티셔츠 할아버지’라는 애칭도 얻었다고. 이번 전시 <그린캔버스 인 디디피(greencanvas in ddp)>에서도 티셔츠 퍼포먼스를 만날 수 있다.

2008년부터 매년 진행해 온 <녹색여름>전 리플릿 (사진 제공. 윤호섭 디자이너)

한편, 국민대학교를 정년으로 퇴임한 해인 2008년부터 2024년까지 무려 17년 넘게 이어온 <녹색여름>전도 그린 디자이너 윤호섭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매년 개최하는 이 전시는 초창기에는 그린 디자인 전공 학생들을 주축으로 꾸렸지만, 점차 환경에 관심 있는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출품하는 작품도 각양각색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갤러리 내부 창가 한쪽에 작품을 늘어놓아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2008년부터 2024년까지 제작해 온 리플릿도 한자리에 모아서 선보이는 점도 눈길을 끈다.

녹색 DNA를 심는 디자이너

관객 참여형 전시로 꾸린 <그린캔버스 인 디디피>전 (사진 제공. 서울디자인재단)

둘레길을 따라 설치한 제주남방큰돌고래 그림과 함께 전시장 중앙에 놓인 간이 볼링장은 이번 전시에서 꼭 체험해 봐야 하는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올림픽 오륜기 색상이 그려진 천 위에 버려진 테이프로 만든 공과 흙을 담은 페트병이 놓여 있다. 윤호섭 디자이너는 환경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원론적인 말을 늘어놓는 걸 지양한다. 자신이 먼저 나서서 실천한다. 그렇기에 관객들도 직접 몸소 체험해 보기를 권한다. 이렇게 작품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두고 그는 ‘녹색 DNA를 심는다’라고 말한다. 그가 녹색 DNA를 심는 궁극적인 목적은 일상에서 환경에 대한 책임 지각하고, 스스로가 작은 행동부터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서다.

실제로 그는 오랜 시간 자신만의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전기를 쓰지 않고, 옷을 더 이상 사지 않고, 자동차도, 냉장고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불편함 없이 잘살고 있다고 말한다. 적어도 스스로가 환경에 있어 이런 소비 형태가 잘못된 행동임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행동할 뿐이라고 한다. 머리로만 아는 것과 행동은 다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윤호섭 디자이너가 쌓아 온 환경에 대한 철학,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책임과 역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이 분명하다.


Interview

윤호섭 디자이너

1943년 출생. 서울대학교 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합동통신사(현 오리콤) 아트 디렉터를 거쳐 대우 그룹 기획조정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비롯해 광주 비엔날레, 대전 엑스포, 세계 잼버리 대회 등 글로벌 행사의 디자인 전문 위원으로도 활약했다. 1995년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학장 시절 국내 최초로 환경과 디자인 과목을 도입했고, 2003년 대학원 그린 디자인 전공을 신설했다.
인터뷰 중인 윤호섭 디자이너 모습

윤호섭 디자이너는 오후 2시면 어김없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둘레길갤러리 전시장으로 향한다. 전시를 찾아주는 관객을 일일이 만나 대화하고 티셔츠를 그려주기 위해서다. 일평균 300명 이상이 찾는 전시장에서 그는 쉴 틈 없이 관객과 소통한다. 이 모든 과정이 윤호섭 디자이너에게는 ‘녹색 DNA’를 심는 일이다. 다국적 기업과 글로벌 행사를 수행한 광고 디자이너에서 디자인을 통한 녹색 공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전시장을 찾아 그에게 짧은 인터뷰를 청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꼭 우이동 작업실 ‘그린캔버스’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를 진행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평소에 그간의 작품을 전시 공간에 펼쳐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왔죠.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DDP가 10주년을 맞이한 시점이라 의미도 남달랐고요. 10년 전 DDP가 개관한 첫해에 포스터 작업을 했던 것도 생각나더군요. 개인적으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번 전시는 우이동 ‘그린캔버스’를 전시장에 들여온 것과 다름없는데 아마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전시 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웃음)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간 디자인을 하며 생각해 온 ‘녹색 공감’, ‘공존’, ‘평화’에 대한 코드를 나누고 싶었는데 벌써 50일이 훌쩍 지났네요.

코드를 나누고 싶었다는 말씀 때문인지 전시장 내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관객으로부터 받은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DDP에 외국인들이 많이 와요. 우리가 프랑스 여행 가면 퐁피두센터나 루브르박물관 꼭 들리듯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DDP가 그런 장소가 된 거죠. 그래서인지 기본적으로 전시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중에서도 한 여성 관객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갤러리에 들어와 작품을 유심히 보다가 티셔츠 위에 그림 그리고 있는 저를 또 보다가, 다시 작품을 보기를 반복하더군요. 그러더니 저에게 와서 휴대전로 자기네 나라말로 글을 적어서 번역해 보여주더라고요. 무슨 말인가 싶어 봤더니 ‘울음을 참고 있어요’라고 적혀 있는데 그만큼 환경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했다는 거겠죠.

또 한 번은 20여 명 외국의 의사들이 단체로 관람을 한 적이 있는데 그중에서 리더가 오더니 ‘우리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풍요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라고 말해준 것도 인상적이었죠. 하루에 단 몇 명이라도 내가 생각하는 코드로 들어올 수 있다면 전시가 참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와 비슷하게 가고 있네요.

DDP 둘레길갤러리를 가득 채운 돌고래 그림들

전시 기간 전부터 매일 나오셔서 둘레길에 100여 마리의 돌고래 그림을 그리셨어요. 멸종위기종인 제주남방큰돌고래를 강조하신 이유도 궁금했습니다.

물론 제주남방큰돌고래가 멸종 위기종이라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에요. 2000년에 첫 개인전을 했을 때 소개한 ‘돌고래, 인간, 새’ 포스터를 보면 바다, 땅, 하늘로 상징된 생명체들이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쓰러져가고 있음을 경계하거든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가운데에 있는 인간의 역할이에요. 그걸 강조하고 싶은 거죠.

환경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 된 계기가 1991년 세계 잼버리 대회에서 만난 일본 대학생 ‘미야시타 마사요시’군과의 대화라고 알고 있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처음부터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에요. 그 친구가 환경 분야 자원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에서의 환경 자원봉사에 관서 물어보더군요. 그때는 저도 잘 몰랐으니까, 자원봉사가 가능한 환경 단체들을 알아보고 알려주겠다고 했죠. 그렇게 꾸준히 왕래하면서 저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그간 대량 생산을 부추긴 디자인 활동을 돌이켜보면서 나름의 결론에 도달한 거죠. 참 마사요시군은 생태적인 방법으로 치유하는 침술 의사로 일한다고 하더군요. 이번 전시도 온다고 했어요. (웃음)

95년도에는 국민대학교 조형대 학장직을 맡으시면서 ‘환경’과 ‘디자인’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셨잖아요. 당시 주변의 분위기나 반응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때만 해도 새롭게 전공을 만들 필요까지 있냐는 걱정 어린 시선도 있었죠. 전체적으로 무관심했어요. 그래도 당시 함께 한 교수들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힘을 얻었죠.

그린 티셔츠. 이번 전시장에서도 티셔츠를 가져오면 그 위에 그림을 그려준다.

2008년 퇴임하시고서 시작한 <녹색여름>전은 올해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팬데믹이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인사동에서 티셔츠 퍼포먼스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오셨고요. 지치지 않고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요?

글쎄요.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스스로가 강렬하달까요. 또 전시 활동하면서 작품에 담긴 의미를 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희망을 놓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가 지식만 배워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공부를 좀 덜 해야죠.

디자이너들이 존경하는 디자이너에게도 삶의 멘토가 있는지 궁금해요.

<나무를 심은 사람>의 저자 장 지오노(Jean Giono) 그리고 생명과 협동운동에 헌신한 무위당 장일순 선생. 그러고 보니 둘 다 장 씨네요.(웃음)

과거와 비교해 환경에 대한 인식과 책임은 확연히 높아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세요?

아무리 말로 해도 실제 인류의 삶에서 실행되지 않으면 그저 지식의 토로에 불과해요. ‘온난화가 심각해’, ‘분리수거를 잘해야 해’ 이런 건 누구나 하는 뻔한 말들이잖아요. 실제로 자신의 일상 속 의식주에 적용해야죠. 그래서 저는 최소한 이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하지 않는 것이고, 이건 해야겠다고 생각되는 건 해오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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